일단 철학이라는 학문이 우리나라에서 전공하기가 쉽지가 않음에도 공부하시고
또 그 공부한 지식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선 좋은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그 베이스는 깔고요.
제가 전부터 님의 그런 좋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오히려 이야기 해 봅니다. 왜냐하면 좋은 일은 안타깝게 낭비되는 것 보다 좋게 쓰여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님께서 갈등을 느낀 그 분의 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겠습니다.
일단 길 찾은 강아지님의 좋은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호의로 받질 못하고
냉랭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을 해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짧게 변론을 하자면 그 이유는 ‘불쾌함’ 혹은 ‘자존심’ 혹은 ‘오기’ 같은 감정 때문이 아닐까요?
님께서 베푼 호의는 님이 쓰신 글에서처럼 좋은 의도였음에도 왜 받아들이는 이는 그것을 불쾌하게 받아 들였던 걸까요?
자신의 호의를 적대시하는 사람이 한명 이상이었다면 역으로 혹시 내 방식이 잘 못 된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님께서 중학교 때 처음으로 철학에 관심을 가졌을 때
그것에 대해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
질문을 했을 때 그 질문을 오해하며 바라봤던 수많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을 떠올려 보세요.
그때 님께 진지하게 그런 고민에 대해 함께 해 줄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님께서는 그때 어떤 선생님과 친구가 어떤 방식으로 님과 철학을 논해주길 바랬는지 궁금합니다.
성철스님께서는 본인을 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삼천 배를 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성철스님께선 어린 아이와는 아무런 조건 없이 너무도 다정하게 또 쉽게 만나주셨죠.
비트겐슈타인이 가족을 떠나 가난한 철학자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한 학생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학생은 자신의 눈에 신과 같이 보이는 위대한 철학자에게 수학적 질문을 던졌고 이 철학자는 그 문제에 대해 무척 심각하게 골몰했습니다.
학생은 자신이 던진 그 질문을 함께 고민하며 열심히 문제를 풀어 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엄청난 희열을 느꼈죠.
얼마나 뿌듯하고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졌을까요?
자신의 질문에 대한 결론을 얻었다는 성취감 보다는 자신이 비트겐슈타인의 사유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에 대해서.
하지만 한참 나중에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비트겐슈타인은 그 학생의 질문에는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 철학자는 학생의 문제에 대해서 정 반대의 생각으로 문제에 대해 이미 접근하고 있었고
그 문제 자체는 이미 비트겐슈타인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죠.
그렇다면 도대체 왜 비트겐슈타인은 관심도 없는 학생의 질문에 그렇게 골몰하며 함께 문제를 푸는 척 했던 것일까요?
그것이 그가 가진 부를 나눠 줘는 방식이었다네요.
공자 또한 제사를 지내는 절차에 대해 다 알고 있었지만 일일이 관리인에게 그 절차에 대해 물어보았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유식한척 하면서 제사 절차도 모르냐고 공자를 비난하자 공자는 그것은 관리인에 대한 예를 표한 것이라고 했었죠.
훌륭한 ‘대인’은 자신의 ‘앎’을 함부로 내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접근 방식...
니체는 고결한 자의 선한 베품이라는 것은 받는 자로 하여금 수치심과 자책감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의도였고 많은 선행이었다 하더라도 잘 베푸는 기술이 없다면 그것은 오히려 악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받는 자로 하여금 수치심과 자책을 생기게 하며 무언가를 베풀고
또 베풀었다고 자기만족에 뿌듯해 하는 것은 결코 선한 베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님께서 배우신 ‘철학 전공’적 교육이라는 것은 일반인들의 ‘철학’과 많은 거리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의학을 전공하는 의대생들의 그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요?
그러니... 님께서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신체 해부도를 꺼내놓고 엄청 복잡하고 어려운 공식들을 나열해 놓고 뇌호르몬이니 뭐니
장황하게 설명한 뒤 그러므로 결론은 “사랑은 이런 것이다. 더 질문있나? 반대의견은?” 이런 거거든요.
돌아갈 답변이 뭐가 있을까요?
“....”
혹은
“그래 너 잘났다.”
님의 댓글을 한 번씩 보면 그런 설명이 들어가야 하는 질문도 있지만 ‘오유’의 철학게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지적을 하거나 오류를 잡아주시고 싶다면 님의 언어가 아닌 질문하는 자의 언어로 잘 생각 해 보시고
상대가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잘 풀어 주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곳 철학게시판에는 배우러 오는 사람들 보다는 자신의 철학적 생각을 이야기 하고 싶고 또 나누고 싶고
또 그 나눔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싶지 지적을 당한다거나 오류라고 직설적으로 지적당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그런 식의 분위기가 된다면 사람들은 글을 쓰기 전에 자신을 검열하게 되지 않을까요?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태도.
철학이 품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태도’일 것이고
누군가에게 어떻게 내 지식을 티 나지 않게 툭 하고 던질 수 있을까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지혜”가 아닐까요?
철학 전문적 설명을 듣고 싶다면 동강을 다운받았지 뭐하러 오유 철게를 찾겠습니다.
저 뒤에 제가 올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하버드 강연만 해도 훨씬 쉽게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철학적 의견은 나누고 싶어 하는 그리고 자신의 ‘앎’을 주고 싶어 하는 님의 좋은 마음 자체는 존경하고 싶습니다.
저도 진지 글을 남겨봐서 알지만 정신과 시간을 투자하는 일은 애정 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니까요...
다만 타인의 언어를 잘 이해하고 배려해서 자신의 언어를 사용해 주시면 얼마나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날까 싶네요.
그리고 가끔 ‘이건 토론이 아닌 거 같아...’라고 생각이 든다면 그냥 조용하게 덮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님이 말씀하신 대로 님께선 토론자의 입장 보다는 전공자의 입장으로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하는듯 싶어서요...
님께서 하고 싶은 것이 타인을 이해시키는 것인지 어찌해서든 이겼다는 성취감을 바라시는 것인지... 잘 한번 생각해 보심이...
뭐 제 글에 공감 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이것도 어차피 제 개똥철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