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년 전이다. 내가 전역 날이 다 되어 행정반으로 내려갔을 때다. 군대 왔다 가는 길에, 집으로 가기 위해 행정반에서 일단 얼글을 비춰야 했다. 행정반 소파에 앉아서 전역증을 주는 행보관이 있었다. 전역증을 가지고 가려고 행보관에게 이야기 했다. 왠지 주지 않으려 했다.
"좀 줄 수 없습니까?"
"전역증 어련히 줄까봐? 계속 이야기 하면 안 줄거야."
대단히 짜증나는 행보관이었다. 더이상 재촉하지 못하고 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커피만 마시고 있었다. 처음에는 줄 것 같더니 일과시작시간이 다되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줄 만 한데, 자꾸만 안 주고 있었다.
인제 가야하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첫 기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기차가 늦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내며,
"전역 당일 일찍 나가라는 법이 있어? 재촉한다고 줄 것 같아?"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전역날인데 무얼 더 하란 말이오? 행보관, 외고집이시구먼, 기차시간이 없다니까요."
행보관은 퉁명스럽게
"전역증 없이 나가, 난 안 줄거야."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기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늦어진다니까. 전역증이란 주는 사람 마음이지, 재촉한다고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보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전역증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전역증이다.
기차를 놓치고 다음 기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군대일을 해 가지고 군대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병사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자존심만 세운다. 전역자우대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행보관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행보관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취사장 지붕 벌집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공포스럽게 보였다. 구리구리한 눈매와 검은 피부에 내 등줄기가 곤두섰다. 행보관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증폭 된 셈이다.
집에 와서 전역증을 내놨더니 어머니는 내 아들 전역했다고 야단이다. 집에 없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입대 전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의 설명을 들어보니 군대를 가기 전에는 어린 아이 같아, 행동을 함부로 하고 남에게 속기 쉽단다. 이렇게 전역하고 어른이 된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짜증이 확 났다. 그리고 행보관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국방부에 찔러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