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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충무공 이순신 16/17(완결) - 내 죽음을 알리지
게시물ID : history_47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장비를정지
추천 : 29
조회수 : 2062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2/06/21 09:27:45
아주 오래전에 밀덕질에 꽂혔을때 썼던 글이라 반말체입니다.

수정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냥 올립니다. 이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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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충무공 이순신 16 - 조선-명 연합함대

 
 

명량대첩으로 일본수군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버린 이순신.
 

조선수군은 전력증강에 박차를 가하며 가끔씩 얼쩡대는 일본수군도 때려잡으며 바쁜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명나라에서 다시한번 대규모 구원군이 도착한다.
 

이번에는 육군뿐 아니라 수군도 같이 오게되는데 그 수군 사령관이 바로 ""진린"" 이었다.
 

이 사람은 성질이 개같고 지랄병이 하늘에 닿은 스타일이어서 한양에서 환영식을 할때도 선조앞에서
 

개행패를 부려대는통에 조정의 근심이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아무튼 이 양반이 배를 몰아 이순신의 본진에 도착하자 이순신은 즉시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예의에 어긋남하나없이 진린과 명나라 장수를 대접하니 개같은 진린도 이순신에게 호감을 품는다.
 

잔치가 진행되는 도중 일본군의 소규모 습격이 알려지고 이순신은 즉시 잔치를 중단시키고 출전한다.

 

  

명나라 함대도 같이 참가했는데 사실 명나라 수군의 전함은 판옥선에 비하면 그냥 나룻배 수준으로 전력에 
 

거의 보탬이 안되는 수준이라 사실 참관에 가까웠고 명나라 수군대장 진린은 아예 배도 안타고
 

그냥 산위에서 구경을 하기로 한다.
 

전투는 당연히 조선수군에게 개털리고 울면서 도망가는 일본수군 뒤통수에 대포까지 한방 먹여주는 식으로 
 

끝났고 진린은 이순신의 실력까지 확실히 믿게된다.

 

  

그러나 한일은 없지만 공이 탐났던 진린은 일본군 목 71개 중에 40개를 달라고 요구하였고 이순신은 짜증나지만
 

그를 줘버린다. 헌데 이 사실이 명나라 조정에까지 소문이 나버린다-_-;
 

명나라에서는 저 개같은 진린새끼가 또 사고쳤구나 하며 조사관을 파견해온다;;..(진린은 본국에서도 사고쟁이)
 

이때를 대비하여 이순신은 미리 보고서를 두개를 보내놓는 센스를 발휘한다.
 

첫번째꺼는 사실대로 내가 71개 했는데 진린이 40개 뺏어갔음. 이었고
 

두번째꺼는 진린님이 존나 돌진해서 40개나 득했음. 이었다.
 

 
 

조정에선 두번째꺼를 명나라에 줘서 명나라는 읭? 진린이 진짜 한듯? 조선정부 문서에 있네요. 하고 돌아가고
 

도로 명에 끌려가서 맞아죽을줄 알았던 진린은 이일로 이순신에게 굽신모드로 돌아선다-ㅅ-...

 
 

 

이후 명수군은 나름대로 고분고분하게 이순신의 말을 들었으나 개같은 명나라 스타일은 점점 드러난다.
 

주변 백성에게 행패를 매일 부려대니 이순신은 보고를 듣고 명나라 수군주변 민가 철거 및 기지이전 준비를
 

지시한다.

 
 

갑자기 일꾼들이 조선수군 기지와 민가를 뜯는걸 본 명나라 수군들이 진린에게 보고하자 진린이 이순신을 찾아와
 

사정을 묻는다. 이에 이순신이
 

"" 너님 첨에올땐 그래도 큰나라에서 도와주러 온다고 해서 기뻤는데 맨날 행패질이니 열받아서 우리 딴데갈꺼임 따로놉시다""
 

라고 대답하자 진린이 당황하여 님 우리가 좀 잘못한듯. 명나라 군사의 사법권도 님에게 드..드리겠습니다.
 

하며 명나라 수군통제권도 이순신에게 줘버린다-_-;
 

이에 이순신의 군법아래 명나라 수군도 통제된 강군으로 변화하며 백성에 폐끼치는일 없이 일본놈 때려잡기에 전력을 다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일본의 수장.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사망한다.
 

일본군은 전면철수를 시작해서 냅다 도망질을 시전하고 조선은 대부분의 국토를 회복한다.

  

 

이때 순천에 있는 성에 고니시라는 일본 장수가 갇혀있었는데 이순신은 함대로 포위하여 
 

결코 퇴로를 허용해 주지않는다.
 

명나라 육군사령관인 유정은 이미 고니시에게 뇌물을 받아먹고 이순신에게 길을 열라고 하지만
 

이순신은 단칼에 무시해버리고 명의 수군사령관인 진린조차 길을 열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고니시가 직접 뇌물폭탄을 진린에게 뿌리자 진린은 슬쩍 길을 열어 배 두척을 내보내주고만다.

 

 

그 배 두척은 구원군을 요청하는 전령이었고 뒤늦게 사실을 알아챈 이순신은 땅을친다.
 

그리고 곧 일본수군의 전병력이 고니시를 구원하기위해 몰려온다는 첩보가 날아들고
 

이순신은 구원군으로 오는 일본수군을 먼저 모두 해치울 생각으로 노량으로 함대를 출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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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충무공 이순신 17(완결)- 내 죽음을 알리지말라
 

일본수군의 접근을 미리 알아챈 조선-명 연합함대는 노량해협에 매복한다.
 

명의 수군과 조선의 수군은 달빛도 없는 밤에 섬그늘에 조용히 배를대고 일본수군의 접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일본의 수군함대가 조용히 노량해협에 진입하고 조선-명의 연합함대는 퇴로를 차단하고 
 

일제히 포문을 열어 일본함대에 기습을 가하며 전투를 시작한다.
 

길가다가 처맞기 시작한것으로도 모자라 그 상대가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인걸 깨닫고는 일본의 수군함대는
 

정신줄을 놓으며 개맞듯이 맞으며 걸레짝이 되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박살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유일하게 포위망이 없는 넓은 바다로 가는 길이 있는것을 깨닫고
 

일본수군은 그쪽으로 전력을 당해 탈출한다.

  

 

하지만 그곳은 넓은바다가 아닌 포구 안쪽으로 들어가는 입구였고 이순신의 예상대로 일본수군은 삼면이 막힌곳에서
 

조선수군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기 시작한다. 이 전투에서 명의 전투선은 너무 약하고 작아서 판옥선 두척을 
 

각각 명나라 수군 대장과 부장에게 내줬었는데 명나라 부장인 등자룡이 판옥선을 몰고 일본함대 한복판으로 
 

중앙돌파를 한다-_-(왜?)

 
 

당연히 등자룡은 포위당해서 위기에 빠지고 부장의 위기를 본 진린또한 그를 구원하기 위해 진출한다.
 

명 수군 대장이랑 부장이 쌍으로 뒈질것이 분명해 보이자 이순신은 전 함대를 전진시키며 일본의 대장선에 집중타를
 

날려 일본수군의 세명의 사령관중 한명을 죽여버린다. 
 

대장선이 공격당하자 일본수군의 반격이 주춤해지고 그틈을 타 진린을 구하는데 성공하지만 등자룡의 판옥선은
 

다구리끝에 불타고 등자룡또한 전사한다.

  

 

이후 날이 밝아올때까지 맹렬한 전투는 계속되었고 이순신의 대장선은 앞장서서 공격을 주도하며
 

이순신 본인은 총사령관임에도 직접 북채를 잡고 북을치며 전투를 이끌며 독려한다.

 
 

 

그리고 그때..
 

대장선으로 일본군의 조총탄이 날아든다.
 

 

 






 

 

이순신은 즉시 주변에게 즉시 방패로 자신을 가리게 명령한뒤
 

""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말라 "" 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린다.

 

 

 

 

 

이후 이순신의 큰아들인 이회와 조카 이완이 대신 북채를 잡고 전투를 독려했고 정오까지 이어진 격렬한 전투끝에
 

간신히 살아남은 일본전투선이 도망치고 전투는 종료된다.
 

전투결과 일본 수군 전투함 250척 가운데 200 척이 격파당해 침몰되고 50 여척만 간신히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순천에 고립되어있던 고니시는 이 전투중에 몰래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조선수군은 등자룡이 지휘한 판옥선 1척 소실, 30 여명 전사가 피해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30 여명 가운데 총사령관 이순신 또한 포함되어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이순신의 전사소식을 들은 명의 수군도독 진린은
 

세번이나 땅에 쓰러지며 "" 나는 노야가 살아와서 나를 구원한줄 알았는데 어찌하여 죽었는가 "" 하고 외치며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고 하며 군사들과 백성들은 소식을듣고 온나라가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시장에 나간 사람들은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술을 먹지 않았고 명나라 군사들도 고기를 먹지 않으며 그를 기렸고
 

이순신의 상여가 들어오자 선비들은 글을 지어 제사를 지내고 백성들은 길에 몰려나와
 

"" 공이 우리를 살렸는데 이제 공께서는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시려 하나이까 "" 하며 수레를 붙잡고 통곡하여
 

상여가 나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명나라 군의 문사 형개는 바다위에 사당을 세워 그 충혼을 기려야 할것을 얘기하였으나 이루어지지 못하자
 

백성들이 직접나서서 스스로 사당을 짓는다. - 현재 전남여수에 있는 충민사.

 
 

 

전쟁이 끝나고 명나라 장수들이 한양에 모였을때 오만했던 명의 장수들또한 한사람도 빠짐없이 이순신을
 

칭송하며 자신을 굽혔고 당파가 달라 서로를 인정하지 않던 서인이나 북인들도 이순신에 대해서만은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선조는 이순신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며 딴청을 부렸다.

 
 

 

 

노량해전을 끝으로 7년간 벌어진 임진왜란에서 조선과 일본의 전투는 더이상 벌어지지 않았으며
 

경상도 해안에 남아있던 잔여 일본군은 모조리 일본으로 조용히 되돌아간다.
 

이전투에서 대부분의 수군이 궤멸당한 일본은 본국으로 돌아간뒤 400 여년 이상 조선을 침공하지 않는다.

  

 

충무공 이순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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