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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충무공 이순신 7/8/9
게시물ID : history_47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장비를정지
추천 : 21
조회수 : 125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6/21 09:13:58
아주 오래전에 밀덕질에 꽂혔을때 썼던 글이라 반말체입니다.

수정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냥 올립니다. 이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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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충무공 이순신 7 - 제 2차 출전

  

적선 45척을 격파하고 일본수군에게 조선수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시킨 1차출전이 끝난 후.


전라좌수영으로 돌아온 함대는 재보급과 수리를 하며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항해해 오고있는
 

전라우수영의 함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함대합류 예정일인 6월 3일이 되기전인 5월 27일.
 

원균에게서 일본수군이 노량부근까지 진출했다는 급보가 날아들고 전라좌수영 함대는 
 

이틀만에 출격준비를 갖추고 5월 29일 긴급출격을 하여 경상도로 이동을 시작한다.

 

 

23척의 전투함을 거느리고 나선 이순신은 노량앞바다에서 원균의 판옥선 3척(...)과 합류하여


선단을 편성한다. 그때 먼바다에서 일본수군 소속 한척이 이를 정찰하는것을 발견

 
이순신의 함대는 맹추격을 하여 사천까지 쫓아가서 그 배를 불태워버린다.

 



그리고 강기갑의 선거구 사천을 바다에서 바라보니 일본군이 해안과 산위에서 진을 치고 


일본군선역시 12척을 정박시켜 놓은 것을 발견한다.

 
수심이 얕아서 판옥선이 들어가기가 힘든 상황에서 이순신은 
 

"" 저놈들이 교만한 태도를 보이니 우리가 후퇴하는척 하면 따라나올꺼다 ""
 

라고 하며 배를 뒤로 물린다.

 

 
 

예상대로 일본수군은 기고만장하여 반은 본진수비를 하고 반은 공격을 시작한다.
 

이때 마침 조수가 밀물로 변하여 조선수군은 일제히 반전 일본 수군에게 공격을 가한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거북선이 포탄을 날리며 최선봉에서 적진을 향해 돌파를 시작하고

 
진형을 구성한 판옥선에서 맹렬하게 포격을 가하자 일본수군은 순식간에 걸레로 변신하며 

 
전멸당해버린다. 조선수군의 피해는 부상 3명.

  

 

이순신은 육지로의 추격은 포기하고 적군이 더 약탈하지 않도록 도망칠 작은배 몇을 남기고


후퇴한다. 다음날 새벽. 원균이 어제 남겨둔 배에 찾아가서 일본군 시체를 찾아서 목을 베었다고


연락해온다.

 
 

 

6월 2일 동쪽으로 이동하던 이순신 함대에 최전방 정찰대에서 당포에 일본군이 있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급히 함대를 몰아 당포에 도착하니 일본군 전투함이 21척이 정박하고 있었다.
 

그 중 대장선에는 7층짜리 누각이 있고 비단옷을 입은 일본군 장수가 금부채를 들고 호령을
 

하고 있었다.

 

 

 

 

조선수군은 거북선의 돌격과 함께 판옥선이 포격을 가했고 일본수군은 말그대로 개박살이 나며

 
무너졌다. 금부채들고 허세부리던 놈의 배에는 조선군 장수들이 난입해서 허생쟁이는 화살맞고 칼맞고 목이 날아갔고
 

금부채는 전리품으로 선조에게 보고서와 함께 나중에 보내진다. (금부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직접
 

하사한 물건이었음)

  

 

육지로 도망친 일본군을 섬멸하고자 상륙을 준비하던중 소식을 듣고 일본수군이 추가로 진입중이라는
 

첩보가 들어와 이순신 함대는 포위당할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급히 먼바다로 이동한다.

 
 

 

6월 4일.
 

조선인의 증언에 따르면 해전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겁에질려 조선인을 만나도 약탈이고 살인이고
 

필요없고 본체만체 정신없이 달아났다고 한다.
 

한편 당포앞바다에 정박중이던 이순신 함대는 출동준비를 하고 다시 이동을 시작하려한다.

 
그때 이억기가 이끄는 전라우수영의 함대가 당포앞바다에 도착하여 전라도 소속 수군은
 

연합함대를 편성한다. 이로써 판옥선이 50척이 넘어가는 강력한 함대는 동쪽으로 진격을 시작한다.


 


다음날인 6월 5일에 당황포에 일본군선이 모여있다는 첩보가 날아들고

 
연합함대는 당황포로 이동 일본수군 36척을 발견한다. 해안가에 있는 적군을 무작정 후려패면

 
육지로 올라가 백성을 해치게 될것을 우려한 이순신은 함대를 후퇴시키는 척 뒤로 물린다.

 
이에 일본 수군은 기세등등하게 공격에 나서고 조선수군은 이를 포풍같은 속도로 포위한 뒤

 
깔끔하게 바다에 전부 처넣어버린다.

 
육지까지 헤엄쳐서 도망간 일본군 몇명은 날이 어두워지는 바람에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된다.

 
 

 

다음날새벽 유일하게 살아남아 도망쳤던 작은배 한척이 기어나올것을 예감하고 숨어있던 
 

조선수군앞에 예상대로 그 배가 나타나고 조선수군이 그를 습격 100 여명 이상의 일본군을
 

싹 잡아죽이는 성과를 거둔다. 이 배에는 일본수군 함대 지휘부가 마침 전부 타고 있었기에 
 

고위장수들이 전부 모가지가 날아가게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원균은 물에 빠져죽은 시체들을 건져올려 목을 열심히 베어 50 개의 수급을 확보한다.

 


 

다음날 더 동쪽으로 이동한 함대는 부산포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일본군선 7척을 발견하고 추격을 시작

 
일본군선은 짐까지 버리며 필사적으로 도망쳤으나 조선수군에게 끝내 붙잡혀 전멸당한다.

 
이후 조선수군은 해안을 샅샅이 뒤지며 일본군을 찾았으나 해역내의 일본군은 이미 전부 전멸당해버린터라

 
더이상 적을 찾지 못하게 된다.

  

 

이후 6월 10일 미조항 앞바다에서 연합함대는 해산하여 각각의 본진으로 돌아간다.
 

이 출전의 결과 이순신은 정 2품으로 이억기와 원균은 종 2품으로 승진한다.

 
 

 

한편 해전에서 처절한 패배를 당해 부산이 직접 위협당하게 되어 보급로가 위태로워지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최선봉에서 조선군을 격파하며 진격중이던 와키자카, 가토, 구키 등 

 
장수들을 남쪽으로 소환 대규모의 해군함대를 결성시켜 이순신함대를 제압할 것을 명령한다.

 
특히 와키자카는 용인전투에서 조선군 5만명을 단 1600 명으로 격파한 장수로 알려져있었다.

 

  

어쨋거나 명을 받아 남쪽으로 내려온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준비를 완료한 장수는 역시 와키자카

 
그가 거느린 함대는 73척.

  

이 소식을 들은 이순신역시 전라우수영, 경상우수영과 연합함대를 결성하고 맞대응에 나선다

 
결전의 장소는 한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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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충무공 이순신 8 - 한산도

  

 

더이상의 패전은 전쟁을 패배로 몰아갈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규모 해군을 결성. 이순신 함대의 제압을 명령한다.
 

이에 일본군은 100 척이 넘는 대규모의 해군함대를 결성. 
 

가장먼저 준비를 완료한 와스자카가 76척의 함대를 이끌고 나타난다.

  

 

조선수군 또한 7월 4일 전라좌수영에 집결. 이틀뒤인 7월 6일 출격한다.
 

함대규모는 판옥선 59척에 협선 50척.

 
대형선박의 숫자가 더 많은 조선군이 약간 더 유리한 상태였다.

 

 

양쪽의 함대는 7월 8일 견내량에서 마주친다.

 
암초가 많고 수심이 얕고 좁은지형의 견내량은 대형선박 위주의 조선수군에게 불리한 지형이었으며

 
이긴다 해도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칠 수 있기에 일본수군에게 더욱 유리했다.

 
이에 이순신은 5-6 척의 판옥선을 미끼로 세워 슬슬 일본함대를 건드리다가 후퇴를 시작한다.

 

 

기세가 끝까지 오른 일본함대는 조선수군을 맹렬히 추격하기 시작했고 조선수군은 뒤돌아보지않고
 

열심히 도망친다.

 
그리고 마침내 드넓은 바다인 한산도 부근 먼바다로 양측의 함대가 들어서는 순간.

 
 

이순신의 대장선에서 신호탄이 솟아오르고

 
그순간 100 척이 넘는 조선수군은 일제히 뱃머리를 돌리며 학의 날개를 만든다.

  

 

그리고 시작된 학살

 
조선수군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포격전을 위한 학익진을 바다에서 함대로 만들어내며 일본수군에게

 
맹렬하게 화력을 집중시켰다.

 

 

 

 

집중타를 맞은 일본수군의 선봉이 처참하게 박살나자 일본수군은 겁에질려 배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이미 학익진은 완성이 되었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포탄은 일본수군에게 도망을 허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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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장수와 군사와 관리들이 승리한 기세로 흥분하여, 앞 다투어 돌진하면서 화살과 화전을 잇달아

 
쏘아대니, 그 형세가 마치 바람같고 우레같아 , 적의 배를 불태우고 적을 사살하기를 일시에 다 

 
해치워버렸다. -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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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끝난뒤 위용을 자랑하던 일본함대는 온데간데 없었고 최소 3천명에서 최대 4천명까지 집계되던

 
일본 수군은 한산도 앞바다에 모조리 가라앉는다.
 

일본수군은 총 76척중 59척이 격침당했고 대장인 와키자카조차 간신히 목숨을 건져 미역으로 몇일을

 
견디다가 구조된다. 이후 그는 피부가 고와지며 미모가 급상승해 해수욕과 미역웰빙의 홍보대사가 된다.

 
그를 제외한 그의 부장이나 다른 고위장수는 모두 전사하거나 할복으로 목숨을 잃는다.

  

 

한산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조선군은 가덕도로 진출하기 위해 항해를 계속하다가

 
안골포에 와키자카와 함께 내려온 구키와 가토의 함대 42척이 숨어있다는 첩보를 받게된다.
 

조선수군은 바로 뱃머리를 돌려 안골포로 향하고 곧 항구 앞바다에 조선수군의 함대가 나타난다.

  

 

하지만 한산도의 소식을 이미 들은 일본군은 겁에질려 항구밖으로 나오지 않고 숨어있었고

 
이순신은 계속되는 유인작전이 먹히지 않자 다른 작전을 사용한다.

 
판옥선을 조를 짜서 교대로 몇척씩 항구안쪽으로 들어가서 포격을 가하는 형식으로 연환공격을 가한다

 
계속되는 연환공격에 일본수군의 전함들은 절반이상이 파괴당했고 전멸위기에 몰린다
 

 

 

그때 배를 모두 파괴하면 육지로 도망친 일본군이 백성들에게 피해를 줄것을 염려한 이순신장군의
 

명령으로 공격이 중지되고 작은배 몇척은 살아남게된다.

 
조선수군은 안골포 앞바다에 그대로 정박하여 밤을 보냈고 어둠을 틈타 가토와 구키는 남은배를

 
이끌고 필사적으로 도망쳐버린다.
 


 

이후 조선수군은 경상도일대를 장악하고 일본수군을 수색하였으나 발견할 수 없었고


6월 12일 한산도로 돌아와 외딴섬에 고립되어 굶어죽기 직전인 일본군 패잔병의 처리를

 
원균에게 맡기고 조선수군 연합함대는 해산하여 각자의 기지로 재보급을 위해 돌아간다.

 

 

한산도 대첩과 안골포 해전으로 인해 일본군의 수륙병진작전은 완전히 무너져버렸고
 

일본군은 해전금지 명령이 떨어진다. 조선수군은 제해권을 완벽하게 장악했고 일본군은

 
극심한 보급난에 시달리며 전쟁수행이 더이상 불가능해질 정도의 어려움을 겪게된다.
 

결국 조선의 허무한 패배로 끝날뻔한 임진왜란은 이 전투를 계기로 전세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후 조선수군은 전력증강에 힘을 쏟아 52척이던 판옥선이 72척으로 늘어나게 되고


전력이 착실하게 계속 증강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8월 8일. 이순신은 한통의 첩보를 받는다.
 

보급이 끊긴 일본군이 전쟁을 포기하고 도주할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는 소식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부산을 막아설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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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충무공 이순신 9 - 부산포 해전

 

 

한산도와 안골포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고 경상도의 제해권을 장악한 조선수군.
 

수군의 제해권 장악과 의병들의 보급로 습격으로 왜군의 진격이 사실상 정지되고 

 
전세의 흐름이 변화하기 시작하자 일본놈들이 도망갈 것이라는 첩보가 날아든다.

 

  

 

이에 이순신 장군은 부산을 직접 공격할 결심을 한다.

 
8월 24일.


이억기와 함께 전라좌수영에서 조선수군 함대는 출동한다. 목표는 왜군의 근거지. 부산.

  
 

 

원균과 합류하여 동쪽으로 항해하며 왜군을 수색하였으나 들려오는 소식은 조선수군의 출동소식을 


듣고 전부 미친듯이 도망쳤다는 얘기뿐.
 

부산 바로 근처에 도착한 조선수군은 근처 포구를 정밀수색하여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숨어있던 일본수군

 
24척을 찾아내 격침시켜 버리고 부산앞바다로 나아간다.

  

 

앞서 나간 정찰대에서 부산포구 내부에 일본 수군 500 여척이 정박하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조선수군이 부산앞바다로 진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래도 맞대응 하기위해 일본놈들의 대형전함 4척이
 

출전하여 기세좋게 포구입구를 막아섰지만 폭풍같이 날아드는 포탄과 대장군전에 순식간에 걸레조각처럼 
 

찟어져 버렸고 살아남은 수군들은 헤엄으로 겨우 도망친다

 
 

 

그 틈을 타서 조선수군이 부산포구 안쪽으로 일렬종대로 돌파해 들어갔고 일본수군은 배를 포기하고 

 
해안가에 늘어선 산위에서 사격을 하며 저항한다.

 
바다쪽을 제외하고 3방향에서 날아드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조선수군은 포구안으로 돌진했고 일본수군의

 
배에 집중공격을 퍼붓는다. 일본수군의 배는 조선군의 치열한 사격에 100 여척 이상 불타오르며
 

파괴당하고 근처 해안의 일본군도 판옥선과 거북선의 포격에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하지만 조선수군역시 육지에 접근해서 근접전을 펼치는 바람에 일본군의 사거리내로 들어가 그동안 없었던 

 
사상자 발생하기 시작했고 늘 최선봉에서 돌파하던 선봉대장 정운이 총에 맞고 전사한다.
 

이순신은 크게 슬퍼하며 장계(보고서)에 이 사실을 알리지만 선조에 의해 끝내 정운은 공신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다음날인 9월 2일에도 이순신은 부산포를 다시한번 공격하기 위해 진입을 시도하지만

 
이미 주변 모든 섬과 해안가에 일본육군까지 몰려나와서 육군의 도움없이는 공격이 힘든 수준으로

 
견고하게 방어선을 만들어 놓아서 공격을 포기하고 재보급을 위해 회항을 결심한다.

  

 

이후 근거지인 부산포까지 공격당해서 100 척이상 배가 파괴당한 일본은 해전금지수준이 아닌 완전포기로 

 
돌아섰고 일본군의 전략은 해안가에 성쌓고 버티긔로 변하게 된다.

 
 

부산포해전을 마지막으로 임진왜란 첫해 임진년의 10차례 해전은 모두가 완벽한 조선수군의 승리로 끝났고

 
일본은 전쟁을 지속할 능력을 잃게된다.

  

 

이후 조선의 요청을 받은 명나라가 참전하여 명의 대군이 국경을 넘어 조선으로 진입하고 평양성 탈환에 성공한다.

 
자신만만한 명은 남해바다를 제압한 조선수군에게 전문을 보내 "" 곧 일본놈들이 도망칠테니 바다를 막으라 ""

 
라고 명령한다.

 

 

이에 바다로 안나오는 일본놈들때문에 전투없이 전력증강과 훈련만 하던 이순신 장군은 출동준비를 한다.

 
하지만 자신만만하던 명군은 벽제관에서 일본놈에게 개발살나서 그 이후 식충이로 급변신하고-_-
 

도망온다던 일본놈은 왜 안오나 투덜투덜 하던 조선수군은 남해안을 뒤지며 일본놈들을 찾아헤맨다

  

 

조선수군이 출진한지 5일이 지난 2월 12일.

 
한양탈환을 위해 행주산성에 와있던 권율장군이 이끄는 1만의 조선군에게 3만명의 일본군이 맹공격을 가한다.

 
위기에 처한 권율장군은 주민들에게자 일본놈 한놈당 내신가산점 1점. 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분기탱천한 아줌마들의 앞치마류 최강. 짱돌날라 맞추긔 신공에 일본군은 빛의 속도로 전멸당하며 패주를 시작한다-_-

  

 

한편 이순신 함대는 일본군을 끊임없이 찾아헤매이다 웅포에서 10 척을 겨우 찾아내서 순식간에 전멸시킨다(...)
 

이후 찾다가 찾다가 지친 조선수군은 식량이 오링나서 포기하고 기지로 회항하게된다.

 
 

 

덧.1

 

웅포해전에서 원균은 전투과정에서 선봉에서 돌진하다가 암초에 부딪혀 위기를 맞은 아군배를 구원하라는 요청을 거부하고

 
안전한 후방에서 계속 버티다가 이순신의 분노를 사게된다.

 

 

덧.2 

 

이후 이상하게 어부만 있는 섬에 자꾸 드나드는 원균부하의 배를 의심한 이순신이 그놈들 잡아족친결과

 
공적에 올리기위해 조선인 어부를 납치해서 목을 벤뒤 적군의 목인것 처럼 꾸미려던 원균의 음모가 드러나고


경상우수영 소속 원균의 부하들조차 이순신을 찾아가 분노와 원통함을 표하며 하소연 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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