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남들은 군생활 했던 시간이 낭비였다고들 하지만
난 말이다 군대에서 너를 만났기 때문에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지 오히려 엄청난 행운이었고 정말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넌 언제나 뭔가 다른 녀석이었다.
나보다 한달 후임이었지만 너를 대할 때는 마치 절친한 선임병을 대하듯 편안해지곤 했다.
사실 내가 밤에 공부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너 때문이야
언제나 새벽 2시까지 연등으로 공부하다 자는 너를 보면서 내가 배운점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별 어처구니 없는 룰이지 않냐? 상병부터 연등이 가능한
그 병신 같은 설정은 아직도 우스울 따름이다. 지금은 변했을지도 모르겠네.
너나 나나 전역한지 이제 10년이 넘었잖냐
아무튼 나 너한테 말하고 싶은게 하나 있다.
이제 니가 아는 게임을 만든 회사로 옮기게 됐어.
너 춘리 엄청 좋아했었잖아? 허벅지가 니 스타일이라고...
난 춘리가 검은색 스타킹이라 좋아했었지만 ㅋㅋㅋ
확정난건 지난주 금요일이었는데 지금에서야 너한테 알리는 이유가
정리를 좀 하고 알리는게 좋을거 같아서 그랬다.
몇일 늦게 알려주는거 이해해라.
내 스타일 알잖냐 원래 좋은일이든 안좋은 일이든
끙끙 앓다가 내가 뭔가 준비가 되면 그제서야 알리는거...
까만얼굴에 비해 유난히 하얀 이빨을 활짝 드러내보이며 축하해 줄 니 모습이 눈에 선해.
그런데 그렇게 웃어주는 널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 아프다.
전역하고 나서 전화를 자주했어도 단 한번 만나보지 못했다.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는 이유로 그러지 못한게 지금 내 한이다.
내가 대구에서 일할 때에는 넌 서울에 있었고
내가 잘되서 서울로 오니 넌 고향인 부산으로 가더라.
술 한잔 하자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데 결국 그 쉬운 소주잔 한번 함께 기울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가봐 오늘 넘기는 술은 유난히 쓰더라.
이 이야기를 니 싸이월드에 남기려고 했는데
니 싸이에는 꾸준히 그 이모님이 너를 추억하면서
방명록에 글을 남기시길래 내가 괜시리 그 공간에 폐끼치는거 같아서
걍 술처먹고 넋두리 해도 되는 이 곳에 남긴다.
고맙다 동재야
너의 위로는 지금까지도 나한테 큰 힘이 된다.
막상 실무에 오니 있는지조차 모르는 게임기획전문가 자격증 준비할 때도 그렇고
내가 만든 시나리오로 게임하나 만들겠다고 설칠 때에도 넌 웃으면서
내 요구대로 캐릭터를 그려주었었다. 내가 참 죽일 놈인게 이사하다가
니 그림 다 잃어버렸다. 아마 엄마가 정리하면서 너무 낡고 그래서 버렸나봐
연필로 그려서 선도 번지고 그랬었거든...
그점은 너무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도 특징들은 까먹지 않고 지금까지 정리해 두었으니
다시 작업하게 되도 같은 특징을 가진 녀석들로 나오게 될거니까 너도 좋아하리라고 생각해.
공부도 잘하고 남들 다 아는 명문대 다니고 거기에 그림도 잘그리면서 성격까지 좋은
니 녀석이 먼저 가서 어찌보면 참 다행이라고 해야 될거 같다 ㅋㅋㅋ
솔직히 엄친아에 넘사벽 아니냐!?
넌 너무 완벽했었단 말이다.
특히 니가 나한테 해주었던 위로는 너무나 특별해.
다른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할 수 있어.'
'노력하면 할 수 있다.'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아니야.
너는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되는 말을 해줬다.
너'라면' 할 수 있다.
라고...
자격증 시험을 앞에두고 뭘 공부해야할지 몰라 주저하던 나에게도 그랬고,
첫 회사 면접이 잡혀서 안절부절 못하던 나에게도 그랬고
이직을 해야할지 말지 고민하던 나에게도 그랬고
지구 최대의 기업인 마소와 공동개발을 하게 되서 부담 된다고 했을 때에도
늘 그렇듯이
너라면 할 수 있다.
라고 해줬다.
정말 마법같은 말이야.
나처럼 인생이 직구밖에 없는 놈들 한테는 엄청난 힘이 된다.
천성이 무식하고 멍청해서 될 때 까지 노력하는거
그래서 투박할 수 밖에 없는 나같은 녀석들에게는
'너라면 할 수 있다'이라는 말이 나 스스로를, 그러니까
내가 노력했던 그 시간들을 믿을 수 있게 하는 마법이다.
아...
씨팔 보고 싶다. 아니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
너한테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하고 싶고 남기고 싶은 말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진짜 그냥 보고 싶고 목소리 듣고 싶다는거 밖엔 못하겠네.
술이 좀 되서 글을 잘 쓰고 있는건지도 잘 모르겄다.
각설하고 앞으로 딱 2년 남았다.
2년 더 지나면 내가 만 10년 경력이거든?
그때에는 내가 뭔가 스스로 비전을 찾아서 움직이려고
지금 준비 중인게 있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분명 니가 그려 준 캐릭터들로 멋들어진 작품하나 만들 수 있을거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없었다고 서운해 하지마라
구라안치고 내가 연락받은건 동생분에게 니 장례식이 잘 끝났고
좋은 곳에 갔다는 문자가 전부 였다. 그리고 그 문자를 받자마자
대체 무슨일이냐고 전화를 해보니까 그제서야 니가 나랑 같은 세상에 없다는걸
내 귀로 직접 듣게 됐어. 나도 알았다면 빚을 내서라도 내려갔었을거다.
건강 때문에 그렇게 갔다고 들었는데 좀 쉬엄쉬엄하지 그랬냐.....
후아...
부엌에 니 잔 하나 따라놓을게 와서 마시고 가라.
거기는 행복이라는 말이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도 항상 하던 인사인 말로 마무리 하마.
넌 충분해 그러니까 행복할거다.
나도 이제 새로운 직장도 다니고 밤에는 팀 활동도 하고 해서
참 고달플거 같은데 나 스스로 잘 격려하면서 지내볼게
이젠 너의 위로를 들을 수가 없으니까...
나라면 할 수 있다.
그래. 나라면 할 수 있을거다.
고맙다 동재야.
널 잊지도 않겠지만 잊혀지지도 않을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