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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충무공 이순신 4/5/6
게시물ID : history_47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장비를정지
추천 : 22
조회수 : 131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06/21 09:08:12
아주 오래전에 밀덕질에 꽂혔을때 썼던 글이라 반말체입니다.

수정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냥 올립니다. 이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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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충무공 이순신 4 - 조선수군의 무기체계

  

지금 국방부가 포병덕후이듯 우리 조상도 대포덕후였음-ㅅ-..
 

그 덕에 딴놈들 다 배에 줄걸고 올라와서 우와앙 하는 시대에 혼자 배에 대포달고
 

뿜뿜뿜뿜이 주력전술이었던 어떻게보면 어마어마한 수준의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음...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무기체계

 
 

 

전함.

1. 판옥선

조선군의 주력전선. 상당히 대형이며 구조가 아주 단단하다. 갑판이 높아 낮은 배인 일본전함에서

올라타기 힘들다. 임란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활약을 펼친 전함




2. 거북선

거북이 모양으로 등판에 쇠로 만든 침이 달려있어 올라탈수가 없음. 아주 강한 선체를 가지고

있으며 속도가 판옥선에 비해 훨씬 빠름. 강력한 돌격을 주력전술로 사용하며 적진 한복판에

뚫고 들어가서 적함대의 진형을 개판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





무기체계

1. 구식병기

활 - 말이 필요없음. 배에 싣는 활은 대부분이 최고급 성능을 내는 각궁계열이었음.

참고로 조총보다 사거리가 길었음-_-; 물론 파괴력도 더 좋았고; 거기다가 불화살도 쏠수있고

그와중에 명중률까지 더 좋았음;;;;(물론 이건 조선의 사수들이 월등히 우수했기때문)





도검 - 개인용 전투병기. 생각한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꽤 사용되었음. 기록엔 조선수군이 원거리에서

조지고 달려들어서 오히려 일본배로 건너가서 칼부림으로 일본군사들을 조졌다는 문헌이 나옴;;





장병겸 - 거대한 낫. 몇미터짜리 낫으로 헤엄쳐서 조선판옥선에 기어오르려고 애쓰는 왜적들을

싹뚝-_-; 하는 용도였음. 이순신 장군이 직접 고안






2. 화포

1) 천자총통 - 초대형 대포

무게 300kg 길이 1.3미터의 대형 대포. 대장군전등을 발사하는 무기였음. 너무 커서 오히려 잘 안쓰임

 * 대장군전 - 2.5미터짜리 통나무였음. 사거리 1.5키로-_-; 어떤 배든 맞기만하면 반으로 쪼개짐-_-;

 * 이 외에 다른 포탄을 사용하면(산탄이나 쇳덩이 등등-_-;) 3.8 키로까지 날아가는 굇수였음

 참고.  당시 왜의 조총 사거리 110 미터;




2) 지자총통 - 대포

조선군의 주력무기였음. 무게 96kg, 길이 89cm 짜리 대포였음. 사거리 1키로;

조란환(자그마한 쇠공) 200 여개를 장전해서 한번에 발사-_-; 맞는놈은..... 닥치고 전멸크리;

그 외 그냥 대포나 대장군전보다 쪼끔 작은 통나무인 장군전도 쏨;




3) 현자총통, 황자총통 - 순서대로 조금씩 작아짐. 



 



4) 승자총통

소구경 개인화기임. 8 ~ 15 개의 작은 철환을 집어넣고 사격;

개머리판과 가늠자 가늠쇠까지 갖추고 있음-_-; 즉, 조준사격이 가능한 산탄총이었음;;;





5) 완구

현재의 박격포.

거대한 돌덩이(최대 44kg)나 폭발하는 대포를 넣고 쏘는 곡사화기

120 키로짜리 대형부터 손으로 잡고쏘는 미니버전까지 다 있음.







결론.

최대사거리 110 미터짜리 조총으로 무장하고 주력전술이 달려들어 밧줄걸고 건너가서 칼싸움.

요게 주력 전술이었던 왜의 수군에게 몇배나 거대한 배를타고 킬로미터 단위에서 부터 산탄을

퍼붓는 조선수군은 사신이었음-_-;;





거기다가 떨어지는 명중률을 학익진같은 전술적 운용과 산탄 같은 무기체계의 사거리별 사용으로

보완한 이순신장군의 함대운용능력까지 합쳐지면 그거슨 개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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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충무공 이순신 5 - 그분의 이야기

  

그분..

 
성웅 이순신 장군님과 더불어 늘 같이 회자되는 그분.

 
그래.. 그분의 임란초 이야기..
 

 


조선의 남쪽바다를 책임지는 해군기지는 넷이었어.
 

경상 좌, 우수영. 전라 좌, 우수영

 
이렇게 네곳이 있었지. 원균은 경상우수영. 경상도 남쪽바다를 지키는 해군의 수장이었어.

 
이곳은 조선 해군의 최대전력이 집결된 곳이고 70척이 넘는 전투함을 보유한 강력한 해군기지였지.

 
원균은 임란당시 이곳에 부임한지 2달이 넘은 상태였다. 보통 수사(해군사령관)의 임기가 2년인걸
 

감안하면 최소한 업무인수인계는 다 끝난 상황이라고 보면되지.
 

 


전쟁이 터지고 최초에 경상도 동쪽을 지키는 울산에 위치한 경상좌수영은 병력을 동원하지만 싸워볼 


생각을 하지못하고 사령관이 도망친다. (3편 참조)

 
하지만 전라도의 양 수영과 경상좌수영, 그리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동원체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해서

 
병력소집까지는 일단 모두 성공해. 지휘관이 도망치거나 해서 모였던 병력이 흩어지긴 했어도 말야-_-

  

 

하지만 원균의 경상우수영은 병력동원조차 못한다.
 

유일하게 단 한곳. 원균이 있던곳만 병력동원에 실패하지.

 
더구나 일본군은 한동안 원균의 관할구역으로는 오지도 않고 부산에서 대구로 바로 치고 올라가고 
 

있었고 일본수군역시 부산을 떠나지 않고 있었어.

  

 

원균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한채 그냥 있었던거야.

  

 

시간이 흐르고 일본수군이 드디어 움직여서 거제도방면으로 진출하자 주변 지휘관은 모두 도망치고

 
오직 단한명 거제현령 김준민만이 군민을 모아 방어태세를 갖추었고

 
최대 군사기지인 경상우수영에서는 사령관이 겁에 질려 육지로 도망가고자 멀쩡한 전투함을 침몰시키기 
 

시작한다. 이에 옥포만호 이운룡이 씨발새끼야 미친거 아니냐고 원균 싸대기를 시원하게 갈기..지는 

 
못하고 그냥 말려서 중단시킨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투함이 사용불능 상태로 변했고 그나마 뒤늦게 모였던 수군들 역시 해산된다.

  


이후 원균은 남은 10 여척을 이끌고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함대에 편입된다.
 

만약 경상우수영의 전투함들이 그대로 건재하였다면.. (심지어 일본군은 오지도 않고 있었다-_-)

 
전라좌, 우수영의 함대와 연합하여 140척이 넘는 엄청난 수의 대함대를 구성할 수 있었을테고

 
그렇게되면 임진왜란의 판도는 보다 빠르게 변화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조선수군 전력의 삼분의 일 이상을 오지도 않은 일본군에 지레 겁먹고
 

본인손으로 태워버리는 활약을 임진왜란 초반에 하신다.

 

 

이후 원균의 미니함대는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함대에 합류하고 
 

이순신의 함대는 폐허가 된 경상우수영을 지나 경상도 해역으로 진입하며 정찰대를 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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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충무공 이순신 6 - 제 1차 출전
 

조선의 운명이 바람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던 시기

 


1592년 5월 4일 

 
판옥선 24척을 주력으로 하는 85척의 전라좌수영 소속 조선수군함대는

 
함대사령관 이순신의 지휘아래 출격하여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는 경상도를 향해

 
항해를 시작한다.

 
 

경상도로 진출한 이순신의 함대는 소비포 앞바다에서 1박을 한뒤 경상우수영의 잔여함대와
 

합류하기로 약속한 당포앞바다에 도착한다. 하지만 약속한 함대는 도착하지 않고 있었고

 
이에 사령관은 쾌속선을 보내 

 
""빨리와라 개샛키야"" 라는 전령을 보낸다.

  

 

약속날짜가 하루가 지난 6일 오전

 
조선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던 경상우수영 소속 수군이 이순신이 기다리는 당포앞바다에 도착한다.
 

원균이 직접타고온 판옥선 1 척. 

 

......

 
 

아 씨1발놈 진짜.. 쓰다보니 열받네

 
 

아무튼 그에 이어서 주변 포구에 있던 판옥선 3척과 기타 잡탕몇척이 더 참가하여 이순신은 함대구성을

 
완료하고 일본군이 기다리는 바다를 향해 동쪽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기지를 출격한지 3일이 흐른 5월 7일. 함대는 옥포( 지금의 거제도 ) 에 도착한다.
 

최전방에 정찰대로 나가있던 척후장의 배에서 적군을 발견했다는 신기전이 날아오르고
 

조선수군의 함대는 사령관의 첫번째 전투명령을 바로 전파받는다.
 

"" 가볍게 움직이지말고 침착하게 태산같이 신중한 행동을 취하라 ""

 
 

그때까지 조선수군따윈 본적도 없던 일본수군은 거제도 해안에 30척이 넘는 배를 대고
 

신나게 약탈을 벌이고 있었다.

 

 

전라좌수영의 함대는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침착하게 전열을 구성했고 질서정연하게
 

전투모드로 옥포만으로 진입한다. 이를보고 기겁한 일본 수군이 급히 배에올라 선봉 6척이
 

허둥지둥 몰려나오며 조총사격을 시작.

 
 

 

이를 본 조선수군의 함대는 일제히 포문을 연다.

 
질서정연하게 원거리 집중포격을 가한결과 일본수군은 총 26척의 선박이 격파당하며 박살났고 
 

겨우 살아남은 일본군은 육지로 올라 산으로 도망친다.

 
이에 사령관은 전투병력을 해안에 상륙시켜 일본군을 섬멸하려 했으나 날이 어두워져 포기
 

영등포 앞바다에서 재보급을 실시하며 함대를 방어대형으로 짜고 밤을 낼 준비를 한다.

  

 

그때 적선이 출현했다는 보고가 척후장의 배에서 날아오고 보고를 받은 함대는 즉시 재출격

 
웅천 합포앞바다까지 고속항해하여 척후장이 발견한 일본수군소속 5척을 격침시켜 버린뒤 
 

창원에 있는 남포앞바다에서 밤을 보낸다.

 

 

다음날 새벽 진해까지 진출한 이순신의 함대는 진해의 고량포에 일본군선이 있다는 보고를 접수
 

즉시 출동하여 해안에서 약탈을 하고 있던 일본수군을 발견 13척을 전부 불태워버린다.

  

 

이후 주민으로부터 일본군의 약탈과 잔인한 행위에 대한 증언을 들은 이순신과 수군들은
 

분노하여 공격계획을 세웠으나 그때 선조의 도망소식이 전해지고

 
전쟁의 장기화를 예상한 함대는 전라우수영의 함대와 합류하여 세력을 강화하기로 결심

 
전라좌수영으로 회항한다.

 
 

출격하여 일주일만에 세번의 전투를 치르고 피해없이 45척의 일본수군을 격파한 이순신의

 
함대는 그렇게 1차 출정을 마치고 귀환한다.
 

이후 이순신은 부하들의 잘잘못과 작전상황을 단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한뒤 보고서로 작성해서
 

조정으로 장계를 보냈고 2차 출전을 위해 전라우수영에게 빨리 합류해달라는 공문을 보낸다.

 

 

하지만 이억기의 전라우수영함대가 합류하기도 전인 5월 27일에 일본수군이 노량인근으로
 

이동해왔다는 원균의 급보를 받고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함대는 비상출격을 한다.

 

 

 

 

 

 

 

 

 

덧.

 

이 전투에서 원균의 활약으로는 이미 아군이 빼앗은 적선을 자신이 빼앗은것으로 만들기위해

 

아군에게 활을 쏴서 두명이 부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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