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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흐느끼며 울먹인채 눈물을 흘렸고, 고개만 떨군채 머리위로 눈만 쌓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 앞에서 온통 구겨진 표정으로 난 더이상 그녀에게 단 한걸음도 발을 떼지 않았다.
그동안 쌓인 울분이라고 했다. 소리 지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만 같았다. 대답없는 메아리였지만 적막한
함박눈 사이사이로 내 고함소리는 그녀에게로 향했고, 쐐기가 되어 그녀의 가슴속을 찔러댔다.
10분이 흘렀지만 우리 둘은 그대로였다. 돌처럼 굳은 우리 둘은 조금도 가까워 질 수 없었다.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물었다. 떨고 있는 그녀를 뒤로한 채 난 뒤로 한 발 성큼 내 걸었다.
또 한걸음. 또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에 쌓인 눈이 밟혀 뽀드득 하고 소리가 난다. 신경쓴적도 없던 쓸데없는 그 소리가.
한걸음을 내딛을때마다 아마도 그녀와는 더 멀어질거다. 뒤돌아봐도 보이지 않을쯔음 되려면 몇십 발걸음 더 가야 한다.
몇 걸음 더 걷는데 너무 추웠는지 콧물이 나왔다. 양 팔을 겨드랑이에 쑤셔 넣고 한번 훌쩍였다.
훌쩍... 훌쩍.. 잦아지는 콧물이 감당하지 못할 때쯤 눈물이 함께 흘렀다.. 이런 일 없을거라고 믿었던 내가 지금
그녀를 뒤로 한 채 애써 참았던 눈물이 소리없이 흐르기 시작 했다.
이내 몇걸음 더 옮기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고개를 떨궈 울어댔다. 자존심이니 남자니 소용없이 그냥 너무 답답해 울었다.
인생을 모두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라면 내 평생을 모두 걸어 함께 할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믿음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부풀어 올라 영영 깨지지 않을 굳건함으로 변했었다.
하지만 부풀어 오른 그 믿음은 작은 바늘의 끝에서 이내 터져 버리고 말았다.
다른 남자의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주며 웃어 넘기는 모습에서 우연히 돌아봐 내 눈과 마주쳤을때
그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른체 도망쳐야 했었다. 그게 어쩌면 내게 변명하기 쉽게 될수도 있었을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정적이 흐르는 그 곳에서 멈춰서서 변명도 없이 터져버린 내 믿음을 받아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물이 그칠줄 몰랐다. 더이상 걷지 못한 내 길 앞엔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이 새하얗게 흩뿌려져 힘내라 하지만
한걸음 내걷기가 이렇게 힘들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심호흡 한번 크게 쉬고 눈물을 걷어냈다. 찬 바람에 흘린 눈물이 차가웠지만 내 알 바 아니다.
그렇게 난 뒤돌아 보지 않았다. 아니. 뒤돌아 볼 수 없었다.
눈발에 희미해져 그녀의 모습이 더이상 보이지 않을거라 생각도 들었고,
보인다 하더라도 고개 숙여 우는 그녀의 모습에 동정심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것보다 더 돌아볼 수 없었던건
고개숙여 울던 그녀가 더이상 그 자리에 없이 떠나버렸을까봐 난 더 돌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난 골목을 돌아 숨어 앉아 못내 끊지 못한 울음을 하늘에 내지르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