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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산 길
게시물ID : readers_47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꽃아문
추천 : 2
조회수 : 28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12/02 01:28:27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습니다. 그녀의 앞에는 수확이 끝난 텅 빈 논이 펼쳐져 있습니다. 드문드문 지푸라기와 벼 밑동, 해충을 제거한다고 잡초를 태운 거뭇거뭇한 흔적만이 답답한 베이지색의 논에 목탄 색으로 명암을 주고 있습니다. 논밭 사이 작은 개울들은 겨울임을 알리는 듯 살얼음이 새하얗게 낀 모습이고 얼음 밑 물 역시 죽은 듯 고요히 흐르고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입은 옷을 재정비 해 봅니다.

굽 낮은 검은 구두와 베이지색 스트라이프 정장치마 푸른빛 도는 블라우스와 베이지색 자켓 그 위에 검은 코트. 텅 빈 논과는 너무나 이질적입니다. 그리고 또 너무나 추워 보이는 옷차림입니다. 여자는 한참을 논 뒤로 펼쳐진 산을 바라봅니다. 활엽수보다 침엽수가 많은 산 인지 12월의 눈 속에서도 산은 특유의 초록빛을 모두 잃지 않은 모습입니다.

모든 색이 우중충하기 만합니다. 눈앞을 흐리는 이 눈이 너무나 고맙기만 합니다.

 

사실 여자는 이 산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 산은 4년 전부터 일 년에 두 번 은 싫든 좋든 오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가족 또는 사촌들과 함께였습니다.

여자는 이 산이 너무 싫습니다. 볼 때 마다 눈시울이 무겁고 콧잔등은 짠해집니다. 자신의 눈시울이 무거워지자 여자는 서둘러 고개를 돌려 다른 풍경을 바라봅니다. 논 사이사이 작은 집들과 복숭아 과수원이 보입니다. 따뜻한색의 붉은 지붕의 집들이 여자의 눈에는 너무나 얄밉습니다. 여자는 눈가를 찌푸리고는 논밭 사이 작은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평범한 논길인데도 여자의 구두는 벌써 3번이나 벗겨졌습니다. 논길에는 어울리지 않은 복장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중요한 각오라도 한 사람처럼 신발을 고쳐 신으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10여분을 걸었을까 멀게 만 보이던 산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산 입구에는오래된 감나무가 서 있었는데  그는 잎을 다 떨어트리고 그 밑 에는 썩은 홍시만 가득했습니다.

 

여자는 산 입구를 막아 만든 다른 사람의 깨밭 으로 성큼성큼 들어갔습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입은 정장이 상하는 것도 스타킹이 구멍 나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 듯 점점 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바짝 마른 쇄기풀이 옷에 가득 달라붙었습니다. 그렇게 또 5분을 걷자 가파른 산길이 행자를 반기듯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엄청나게 가파른 길이지만 더 이상 수풀을 해쳐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여자는 가볍게 한숨을 쉽니다. 머리에 붙은 잎들과 옷을 정리합니다 검은 구두는 벌써 진흙과 쐐기풀 가시들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여자는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 합니다. 어느새 눈은 굵어져 산길을 적시고 있습니다.

굵어진 눈 덕분에 진흙이 된 산길은 처벌, 처벌, 진흙 걷는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텅 빈 나뭇가지에 바람 부딪치는 소리, 낙엽 구르는 소리, 그리고 여자가 산길을 오르는 소리.

겨울산은 그렇게 앙상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여자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 보았습니다.

 

거세지는 눈길에 정신이 팔려있던 여자는 그만  미끄려지고 말았습니다. 손은 더러워지고 작은 생채기가 생겼습니다. 진흙에 신발이 빠지고 발이 더러워졌습니다. 여자는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차가운 바람에 코끝은 이미 얼어붙었습니다. 신발의 진흙을 나뭇잎으로 툴툴 털어내고 산을 오릅니다.

 

눈에 그렁그렁 한 눈물과 상반된 진지한 눈빛 꽉 다문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습니다.

 

여자는 또 다시 산을 오릅니다. 산길은 점점 험준하기만 합니다.

몇 번 올라와 본 길이지만 이렇게 날씨가 나쁠 때면 여자는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이 길을 오르지 않았습니다. 가족들 역시 여자가 몸이 약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강제로 끌고 가지도 않았습니다. 여자는 과거의 자신을 탓하며 불편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산 중턱쯤 오르자 작은 갈림길이 나타났습니다. 갈림길에 들어서자 한 치 앞도 안보이던 숲 위로 탁 트인 공간이 보였습니다. 여자는 고개를 들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갈림길을 지나 넓은 공터가 나왔습니다. 밝은 갈색으로 잘 마른 잔디와 붉게 봉우리 진 동백나무 한그루가 여자를 맞이 해주었습니다.

 

여자는 공터에 들어가기 전 가져온 물티슈로 옷과 신발을 다시 정돈 하였습니다. 매우 새초롬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공터로 들어섰습니다.

 

공터에서 산 아래를 보자 얄밉던 붉은 지붕들과 복숭아 과수원 바싹 마른 논 과  논을 감싸고 도는 개천이 보입니다. 저 멀리 여자의 고향 마을도 아득히 보입니다. 하얀 눈이 너무나 아름답게 세상을 감싸고 있습니다.

 

여자의 눈에 또 한번 눈물이 맺쳐 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처럼 혼나는 강아지처럼 눈앞이 흔들립니다. 괜히 입술만 물게 됩니다. 괜히 하늘만 바라봅니다. 차가운 눈이 여자의 얼굴위로 떨어집니다. 여자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가엾게 간신히 열립니다.

 

 

아빠..... 나..왔어..”

  

여자는 다섯글자를 이어 말하지 못합니다. 말꼬리는 바람소리에 실려 들리지 않습니다.

여전히 뒤돌아서서  무덤을 바라보지 못하고 하늘만, 마을만 바라봅니다.

 

참아온 눈물을 끅끅거리며 흘리는 여자 뒤로

눈은 여전히 계속 하얗게 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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