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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공부중 - 10
게시물ID : history_77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구이일
추천 : 4
조회수 : 86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2/20 20:35:23
설날을 보내고, 레일로 여행을 바로 갔다가 어제 집에 왔습니다.

매일같이 한다구 해놓고 시작한지 얼마나 됬다고 놀러 갔네요.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이런 글을 쓴다고, 누가 꾸준히 본건 아니지만요.


저번에 삼국시대, 남북국시대를 끝내고 이제 고려에 들어가겠습니다.


간략하게 고려의 지배층의 변화에 대해서 먼저 구분하겠습니다.


고려는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무신정변을 기준으로 하여 1170년 이전과 이후로 나눕니다.


전기 중 초기에는 호족과 6두품이 세력을 유지하였고,


전기 중 중기에 문벌귀족 세력과 향리의 세력으로 갈렸습니다.


후기 중 초기에는 무신정변을 통해 무신들이 정권을 장악하였지만,


원간섭기시기에 오래지 않은 역사에서 있었던 친일파처럼, 원에 빌붙어 권력을 유지한 권문세족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말기에는 지금까지 차별받던, 지방의 향리세력이 성리학을 수용하면서, 신진사대부 세력이 성장하였습니다.


이 신진사대부 중 일부는 혁명파, 일부는 온건파로 분류 되어 혁명파가 조선을 건국하게 되며 고려는 망합니다.


위와 같이 대략적으로 고려를 지배하는 세력을 이해하고 시작하겠습니다.


고려도 이전의 삼국시대와 같이 초기부터 모든 세력이 정비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체제를 정비하는 시기가 필요합니다. 고려의 체제의 정비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태조 왕건은 지방 호족의 힘으로 고려를 건국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 호족의 세력이 클 수 밖에 없었고,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호족에 대한 정책으로는 호족과의 결혼을 하는 혼인제도와 왕의 성을 내려주는 사성제도, 또한 공에 따라서 역분전이라는 수조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심관 제도와 같이 지방에 대한 권리와 더불어 연대책임을 주는 제도도 존재하였고,


지방 호족에 대한 경계제도로는 기인제도와 같이 예전 신라 시대의 상수리 제도와 비슷한 인질제도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지침서로는 청계, 계백료서, 훈요10조 등이 있습니다.


나라 건국 초기는 민생이 어지럽고 안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조세를 1/10으로 감면하는 조세감면과 


고구려 시대의 진대법과 같은 흑창제도를 이용하여 농민에 대한 구제책을 펼쳤습니다.


마지막으로 국가 건립 초기에는 자주적으로 북진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태조 왕건이 이렇듯 여러 제도를 시행하였지만 사후에는 많은 자식들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때 왕규의 난과 같은 난이 발생하여 잠시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때, 광종이 등장합니다.


광종은 왕위에 오르고 초기에는 호족들에게 온건한 정책을 펼쳐왔지만,


점차 칼날을 내보였습니다. 


먼저 노비안검법을 통하여 호족의 군사력 기반이 된 노비를 해방하고 양민으로 만들어


호족의 세력을 줄였으며, 양민을 늘려 세수를 확보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과거제를 시행하고, 공복을 제정하여 자기의 세력을 만들어 호족을 견제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힘을 갖춘 광종는 호족을 숙청하기 위한 명분으로 난이 일어났다고 하여,


대다수의 호족을 숙청하여 왕권을 강화시켰습니다.


이렇게 강화된 왕권을 통해서 칭제건원을 하였습니다.


후에 경종이 전시과(시정)를 시행하였는데, 이 전시과는 이전의 역분전과는 다르게 관직에 따라 지급한 것으로 왕권 강화 정책의 일환입니다.


이렇게 광종과 경종이 왕권을 강화를 시켰고, 성종이 왕위에 오릅니다.


성종은 6두품 출신인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개편을 시작하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중앙행정조직을 2성 6부로 지방행정조직을 12목으로 개편하였으며, 지방관을 파견하여 지방에 세력을 늘렸습니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불교의 폐단을 비판하였고, 유학을 장려하였습니다.


이렇게 성종의 대에 도달하여 고려의 체제가 정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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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행정조직에 관해서 연이어서 쭉 나가보겠습니다.


위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중앙행정조직을 2성 6부, 지방을 5도 양계 및 12목으로 개편하였는데,


중앙행정 조직에서


중서문하성은 2품이상의 관리만 가능한 재신과, 3품이하의 관리가 일하는 낭사라는 관직이 있고,


재신은 정책을 심의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낭사는 언론과 관련된 역할을 하였습니다.


상서성은 6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이병호형예공 순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 외에도 중추원이 존재하는데 이 중추원은 2품이상의 관리 추밀과 3품이하의 관리 승선이 있습니다.


추밀은 국가기밀을 관리하고 승성은 왕의 비서 역할입니다.


어사대는 감찰을 하는 기관이고,


삼사는 회계기관입니다. 후에 설명된 조선에도 삼사가 있는데 조선 삼사는 언론기관이고 고려시대에는 회계기관입니다.


위는 기관의 설명이고, 고려시대에는 고려시대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고위 관직 즉 2품이상의 관직을 가진 자들이 실질적으로 나라일을 논의하였습니다.


이 회의는 재추회의라고 명명되었고, 이 아래에 군사적인 일을 담당하는 도병마사와, 국가의 의례를 담당하는 식목도감이 있었습니다.


또한, 언론을 담당하는 남사와 감찰을 담당하는 어사대가 뭉쳐서 대간의 역할을 하였으며, 정책을 Sign하는 서경, 간쟁, 봉박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제 지방행정조직 5도 양계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5도는 지방의 행정기구이고 양계는 특수행정구역으로 북계와 동계로 불리며 외세의 침입을 방어하는 지역입니다.


5도는 3경(개경, 서경, 동경(->남경)), 4도호부(군사), 8목(행정)으로 나뉘었으며, 그 아래에 군, 현과 같은 작은 지방행적조직과


그 아래에 속군과 속현, 향, 부곡, 소가 있습니다.


군, 현 까지는 수령이 직접 파견되어 지배하였지만,


지방의 다수를 차지하는 속군과  속현, 향, 부곡, 소 까지는 직접 파견을 하지는 못하고, 향리가 지역실세로서 지배하였습니다.


군사 조직은 북계와 동계에 주진군이 있었고,


중앙군으로는 2군 6위가 있습니다. 이는 직업군인으로 군적에 올라 군인전을 받았습니다.


지방에는 주현군이 있었으며 군적에는 오르지 않아 군인전을 받지 못했습니다.


.........................


어제 태백을 다녀와서 눈을 맞으며 등산을 했더니, 살짝 감기에 걸린거 같습니다. 원래 고려 후기의 정치 변화까지 하려고 했는데,


하나 더 강의 듣기가 너무 싫네요..


내일 좀 더 분발 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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