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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국의 대영제국 몰락 계획 War Plan Red-2 브금주의
게시물ID : history_77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kyung
추천 : 12
조회수 : 12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2/20 10:42:39



천조국의 대영제국 몰락계획 War Plan Red-1:당시 세계정세와 영국의 대비 http://cafe.daum.net/Europa/3L0P/2026





1차세계대전 당시의 유럽-중동 지도.


1차 세계대전 당시 명목상 GDP 와 가용 GDP

The Economics of World War I 을 인용하였습니다.

쉽게 설명드리겠습니다:

단순 명목상 GDP로만 국력을 계산한다면 당시 러시아와 독일은 비슷한 국력입니다.

 프랑스는 러시아 독일의 절반을 약간넘는 수준이고 식민지까지 합한다면 

러시아 독일의 3분의 2의 국력까지 추산할수있게됩니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은 여타 열강들과 비교하여 

gdp가 작긴 합니다만 러시아와 독일의 40퍼센트가량의 국력을 보유하고있습니다.


 여기서 간과하지말아야할점은 그 국가들의 농노계층과 서민계층들입니다. 

예전엔 잘 몰랐는데 대륙국가들은 당시 서민층 및 농노층에게서 세금이라든가 국가의 재원을 뽑아 내는데에

 굉장한 어려움을 겪고있었습니다. 


만약 당시 대다수의 국민이던 서민층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상태에서 겨우 삶만 연명해가는 상태인데 

농사를짓거나 노동을해야할 젊은 세대들이 전쟁에 불려나가거나 

국가적 사업에 불려나간다면 국가의 생산력이나 재원은 상당부분이 마비된다고 봐야됩니다. 


이것이 제가 추산한 실질적(가용)GDP 기준입니다. 

제가 관측하기에 당시 중국의 경우는 명목상 GDP로만 따지면 독일과 근접하고 

인도의 경우 영국본토보다 근소하게 뒤처지는 수준의 GDP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이안되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인구가 많기에 나온것입니다. 


근데 그 인구들의 대부분은 단순히 '삶을 연명해가는 수준' 으로써 국력으로의 전환은 불가능에 가까웟다 봐야합니다.

  당시 중국의 인구 1명 1명 모두다 일정부분 경제력으로 전환하여 추산해낸 gdp 로따지면

 일본의 3배이상이 넘는데 당시 일본에게 외교적으로나 국력적으로 중국은 매우 크게휘둘리고있었으니까요. 


 당시 중국의 경우 1명의 농민이나 노동자들은 1년에 500달러를 평균으로 벌었다한다면 

미국의 서민 1명은 5500달러를 범으로써 미국의 경우 단순히 삶을 부지해가는 수준이아닌 

어느정도 사치품을 누릴수있는 중산층까지 도달했습니다. 무려 10배가넘게차이나니 더이상설명은필요없겠지요. 


이뿐만아니라 여러가지(인프라, 교통망 네트워크)등을 다 팩터에 넣어서 계산해낸 실질적 GDP입니다. 

식민지들은 제외하였고 자치정부를 가지고 있고 

행정을 자체적으로 했던 영연방들(캐나다,호주,뉴질랜드,남아공)등은 한데 묶어서 포함시켰습니다.

국가명목상 GDP (억달러)인구 (백만)% 최저생활자 인구(식료품 = 수입)가용 GDP(억달러)
독일2446737153
오스트리아 헝가리101517030
영국(브리튼본토)2264612199
영연방78203253
프랑스139404183
러시아2581738051
이탈리아91365937
미국5381224512

프랑스 아프리카 식민지들의 경우 명목상 GDP 30억-40억달러에 근접하며 

가용 GDP로는 2-4억가량이 될것으로 추산됩니다.


영국 인도및 여타 식민지들을합하면 220-230억 명목 GDP에 근접하고 가용 GDP로는 11-22억정도라고 추산됩니다. 

당시 중국은 240억 명목 GDP이고 가용 GDP는 28억-33억 정도라고 추산됩니다. 


인도 중국은 사실상 인구가 당시 인도의 경우 2억 5천 중국은 3억 3천만가량이었으니 

그수많은 거지들조차도 gdp 로 환산된거니 국력으로 치기힘들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실질적 GDP는 1차세계대전 당시 정세를 보다 더잘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로 왜 독일이 영국의 간섭이 없을시에 러시아와 프랑스를 동시에 전쟁에서 이길수있었다고 자신이 있었는지.

 2번째로 왜 오스트리아 헝가리와 러시아가 실제 전쟁에서 보여준 국력이 거대한 덩치에 비해 미미했는지. 

3번째로 왜 캐나다 및 영연방의 지원이 유럽전선에서 추축군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었는지입니다. 


사족: 여기서 제추산은 일단 우리가 모두 인지하고있는 실제 gdp와 인구수를 기반으로한다음  

최저생활자와 그렇지않은 서민층및 중산층을 계산 팩터에 넣어서 가용 GDP를 추산하였습니다.

 

아주 완벽한 추산방법은 아니지만 당시 세계 국력과 정세를 

그나마 정확하게 보여줄수있는 하나의 지표로써 사용될수있다고 믿는바입니다. 






대영제국의 영광 바다를 메우는 대영제국의 함대. 로열 네이비:  가장 강대한 해군 circa 1890



1900년대 초반 1910년대-1930년대를 살펴보면 

사실상 미국을 경제적이거나 군사적으로나 국력면에서 따라잡을 국가는 사실상 존재하지않았습니다. 


그나마 1910년대 초반까지야 영국의 Royal Navy 가 그나마 거대한 적자를내서 

미국과 독일합친수준의 1.5배에서 2배수준가량의 엄청난 해군을 유지해나가면서 

계속 해군들을 증강해나가고있었지만, 이것도 국력에 어느정도 한계를 가하는 일이었고 

식민지와 영연방의 협조를 얻어도 슬슬 영국도 무한 해군경쟁에 힘이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가 1920년대 후반 1930년대 초쯤 되면

 사실상 미국의 해군은 이 적자덩어리로 만들어낸 초거대 해군함대 Royal Navy 와 동급 또는 

약간 웃도는 수준까지 규모가 증강되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걸 고작 1-2퍼센트의 국력을 투자하여 10년이란 기간만에 다따라잡은것이지요. 

이렇게 되니 사실상 영국또한 긴장을 할수가 없게됩니다. 

이미 사자의 위엄은 빅토리아시대때를 끝으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1870년대 당시 미국의 철도 건설 현황




연탄사용: 영국산 연탄 수입은 1800년대 중반에 오면 미국에서 10퍼센트대로떨어지기시작하고 대부분이 자급자족이가능한상태가된다.





석탄이 1800년대 후반 1900년대에 이르면 70퍼센트 정도의 

미국인들이 연료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부유해지고 국가가 강성해졌음을 알수있다.




생산력이란 측면에서 또한 미국은 이미 영국뿐만아니라 독일까지 한참전에 추월한 상태였습니다. 

영국에게 이미 생산력이나 GDP로써는 남북전쟁 직후인 1870년대 이미 추월해버린지 오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무역으로써 축적해놓은 경제력및 흑자가 있었기에 

세계최강자리에 20-30년 더 군림해있을수있었지만 1890년대에 들어서면 

독일까지 영국(영국본토)을 경제력에서 압도해버리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미 30년만에 영국의 

그 쌓인 흑자와 영연방의 거대한 무역자본조차도 상쇄해버릴정도로 

경제면에서는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이 되버린지 오래였습니다. 


그러니 당시 영국이 의지할곳은 식민지의 자원및 영국의 자랑인 Royal Navy 뿐이였습니다. 

그나마도 문제가있었던것이 식민지의 경영이 적자일로를 걷고 있었던것입니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식민지 착취를할려해도 

인프라와 식민지 국가의 국민들에게 '일정부분' 은 투자를 해야했습니다.


 근데 기본적으로 이질적인 문화의 식민지 국민들을 다룰때 무력적으로든 유화적으로든 

본국에서의 지출이 어느정도 나가야했고 또한 


식민지국민들을 기본적인 초등학교-중학교 교육까진 시켜야 부려먹을수있었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지출등이 나가야했습니다. (교통, 건물 인프라등도 당연히 큰지출이고요) 


그런데 점점 공업화가 진행되고 자원또한 고갈되거나 가치가 하락함으로써

 본국이 얻을수있는 경제적 수익이 줄어들기 시작하니 식민지 경영은 1800년대 후반부터 적자일로를 걷습니다.


 예전에는 모피등 신대륙과 아프리카에서 나오는 향료 비단 만팔아도 큰돈을벌수있게되었는데 

공업화에따른 자원가치의 하락및 인건비 상승등으로 그 메리트를 크게 잃어버리다보니 

식민지 경영이 적자에 이르고 동인도회사등에 주주들이 주식을 매도하면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1900년대에 들어서는 대영제국또한 적자에 허덕이기시작했고

 전통적인 식민지 강국(영국-프랑스) 들은 신흥강국과의 군사경쟁에서 부채가쌓여가고

 

국가재정상황이 안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비스마르크가 빌헬름황제에게 

"독일은 식민지따위 필요없이 본국만 잘 키우면된다. 식민지는 오히려 손해다" 라고 했던 말이

 맞아 떨어지고 있는 참이였지요.  그에 반해 미국은 그야말로 최강국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1900년대 초 당시 미국의 번영


철강생산력은 유럽전체의 1.5배-2배에 육박하기 시작했고 1880년대쯤에 완공되기시작한 철도의 길이는

 유럽전체보다 길었으며 

유럽 정치인들이 뉴욕의 마천루와 엘리베이터를보고 자기들보다 더앞서있다고 느낄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식자율또한 미국이 가장 높았고 대학의 숫자 또한 유럽전체와 맞먹을 숫자로 성장하였습니다. 

인구는 이미 1억 1천만을 돌파하여 영국+영연방+독일의 인구급으로 성장하였고 

서구권에선 러시아 다음의 인구대국이였습니다. 


게다가 러시아는 70-80프로 가량이 농노여서 사실상 10-15프로 가량의 인구만 가용이가능했던거에 반해선

 미국은 전국민이 가용가능했고 인구성장률, 인프라 또한 러시아뿐아니라 서유럽국가들조차 앞서있었습니다.


즉 이렇게 되니 1편에서 나왔던 그 의문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 보이실겁니다. 

영국은 미 육군에 대한 대규모 침공을 투사할수 있는만한 힘을 지니고 있지않았습니다. 


Royal Navy의 대장 Herbert Richmond가 아주 간단명료하게 미국 침공 계획의 불가능함에 대해 말해줍니다.

 " 전 세계에서 미국의 육군을 상대할 수 있는 세력은 존재하지않는다. 


우리의 인구는 고작해야 4천 7백만명이며 미국은 1억 2천만명인 이상 

미육군을 상대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또한 캐나다와 남미에서 의 무역이 심각하게 타격을 입거나 심지어 

그 영토들을 상실한다고 해도 우리들의 전체적인 피해는 

브리튼 본토의 젊은이와 자원들을 상실하는거에 비해선 심각하지않다" 


게다가 영국은 식민지에서 최대 동원해봐야 

영연방의 한계치가 100만-150만 인도가 200만가까이가 말그대로 최대한계치입니다. 

근데 이것은 2차대전급의 총력전의 개념을 상정한것이므로 당시기준으론 더적을 가능성이 훨씬높습니다.


 그리고 이병력들은 1번에 동원되는 백만의 대규모 병력이아니라

 몇년에 걸쳐서 몇만씩 나눠서 지원되던 병력이였습니다.

 인도만 10만단위로 한번에 보낸 유일한국가고요(그러나 병력의 훈련도나 질이;;;) 

즉 미국 육군을 상대로한 육상에서의 전투는 완전한 참패가 될거란걸 예측하고있었던것이지요.






당시 영국의 캐나다지역 해군주둔기지이던 할리팍스지역.



따라서 1차대전에서의 미국의 전쟁수행능력을 이미 목격한(대양을지난 대규모 상륙작전등) 영국으로써는

 사실상 육군으로 맞서기엔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린겁니다.

 하지만 1편에서 이미 설명드렸듯이 캐나다에 올수있는 미군에 대한 대비로써 상당한 원정군을 파견하였고 

이들의 목적은 캐나다보호(불가능) 최소한 캐나다지역 영국 해군주둔기지인 Halifax만큼은 지키는것이었습니다.





1900년대 초반 아시아 정세.

빨강: 영국

필리핀에 위치한 파랑:미국

주황:네덜란드

연한파랑:포르투갈

진한파랑:프랑스


그럼 대서양이 아닌 태평양과 극동지역은 어떻게 방어할 생각이였을까요? 

영국은 극동지역데 더강력한 함대를 배치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미국의 극동지역 진출로는 필리핀하나인데 비하여 


영국은 다수의 태평양제도들, 호주, 홍콩및 동남아시아 일부분등을 점거하고 있었으니까요. 

 일단 미국의 필리핀지역의 진출을 봉쇄하고 점령한다면 태평양에서의 미국의 확장을 막을수 있다고 예상하였습니다.




하지만 식민지 상실및 극동의 교두보가 위험에 처한다는 이유때문에 이렇게 배치하는 태평양의 함대들은 

로열 네이비의 분산을 가져 올것이고 필리핀의 봉쇄가 실패하게된다면 

오히려 분산된 해군전력으로 인한 미국의 역공으로 

영국이 대서양 무역의 봉쇄를 당하게 될 위기에 처하는것이였고 


그렇게된다면 영국이 항복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미국함대가 동대서양 지역에  동맹을 구하게 된다면

 버뮤다 지역 주둔 함대로 무역보호하는 방법도 통하지않게되게 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회의적인 일부 영국 해군 수뇌부 측에서는 아직 성장을 크게 못한 

일본과는 다르게 미국은 영국의 무역로를 차단할만한 규모의 거대한 함대와 함께 

그것들을 보급가능한 해외 전진 기지들이 충분히 있기때문에


 미국이 대서양을 함대로 건너서 견제하기도 전에 무역로가 끊기고 극동지역에서의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대영제국은 필패를 맞이하게 될거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영국 수뇌부는 미-영전쟁에서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육군 수뇌부에선 사실상 도저히 이길수없다고 판단을 내렸고 


해군 수뇌부조차 미국에 결정적이거나 큰승리를 취할수는 없으며

 무역로를 보호하고 전쟁이 일어났을시 조금더 유리한 협상으로 끌어낼

 전략적 방안을 모색하는것이 전부였습니다.


이제 미국역사뿐아니라 세계역사상에서 입안된 

그 어떤 작전보다 거대한 규모의 작전인 미국의 War Plan Red 에 대해 3편에서 다루도록하겠습니다.


 출처 - 다음 유로파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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