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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詩/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를 읽고
게시물ID : sisa_467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강철군화글
추천 : 3
조회수 : 30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08/04/26 22:48:29
270164 강철군화 2008/04/26 124 <北의 詩/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를 읽고 굶어죽은 300만 북한동포들의 참상에 눈물흘리며, 조국 대한민국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다 나를 울린 시집 며칠 전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시집을 한 권 읽었다. 하지만 이 시집은 지하철에서 읽을 것이 아니었다. 집에서 조용히, 아무도 없을 적에 읽어야 할 책이었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몇 번이고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이 마흔이 넘은 사내자식이 남들 다 지켜보는 지하철 안에서 눈물이 쏟아져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수시로 손수건을 꺼내 들어야 했다. 나를 울린 시집은 <北의 詩/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조갑제닷컴 刊)였다. 탈북시인 장진성(가명)씨가 쓴 이 시집에는 1990년대 중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기’ 이후 굶어죽고, 얼어죽고, 총맞아 죽어간 수백만 북한동포들의 참상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대학시절 읽었던 브레히트의 시 가운데 <밥에 대하여>라는 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북의 시인이 지은 이 시집에 실린 시 대부분은 그야말로 <밥에 대하여> 연작시(連作詩)라고 해도 될만한 것들이었다. 굶어 죽어가는 자들이 노래한.... 북의 시인이 노래한 기근과 기아 <숟가락>이라는 시에서 시인은 “쌀이 없는 집이어선지/그 집엔 숟가락이 없다/숟가락마저 팔아서 언젠가 아버지 제사상 차렸다”면서 “그 집 다섯 식구/소원은 하나같았으니/ 앞으로 살림이 조금 펴지면/집안에 두고 싶은 첫 재산은 숟가락/다/섯/개”라고 노래한다. 쌀밥 먹는 민족에게 숟가락이 필요 없다니, 살림이 피면 가지고 싶은 첫 재산이 숟가락이라니....우리 역사상 가장 먹고 살기 힘들었다는 조선 말기에도 그 지경은 아니었으리라. <밥이라면>이라는 시의 내용은 더 기가 막히다. <밥이라면 밥이라면 시퍼런 풀죽으로만 알던 아이 생일날 하얀 쌀밥을 주었더니 싫다고 발버둥치네 밥 달라고 내 가슴을 쥐어뜯네> 다 아는 사실이지만 북한의 참상은 배고픈 것으로, 밥을 곪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300만 명이 굶어 죽었던 것이다. 시인은 이 굶어 죽어가는 이웃들에 대한 애가(哀歌)도 잊지 않았다. <나의 옆집 나의 옆집은 다섯 식구 늙은 부모 갓난 애기 젊은 부부 부모가 귀해 아이가 불쌍해 그래서 더 못 먹고 그래서 더 못 자던 그 젊은 두 사람 젊은 탓에 먼저 죽었다 가정에 마을에 도시에 나라에 굶어 죽은 사람들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그 숫자를 옆집에서 세었다 그 두 명에서 세었다> 이웃의 죽음을 목격한 시인에게, 출근할 때마다 거리에 널 부러진 시체들을 보면서 그들을 돕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던 시인에게(<나는 살인자>), 이제 굶주림은 자신과 가족의 일로 닥쳐온다. 시인은 자신의 가족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 노심초사한다. <우리의 삶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먼저 흔들어본다 숨소리 가냘픈 동생을 옆 집 철이처럼 영원히 잠든 것만 같아서 어머니가 늦어지면 바람 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가슴 조이며 온 밤 뜬 눈으로 날을 샌다 우물 집 아줌마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이신 것만 같아서 우리의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어서> 삶을 즐겁게, 보람 있게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급선무인 땅- ‘만일 조부모님께서 62년 전 결단을 내려서 38선을 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지금쯤 굶주리는 가족들을 보며 노심초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굶어 죽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굶주림 속에 피어난 사랑 하지만 처절을 극한 그 고난 속에서도 사랑은 꽃핀다. 그 땅에서도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 시부모에 대한 며느리의 사랑, 며느리에 대한 시부모의 사랑, 그리고 이웃집 처자에 대한 총각의 사랑이.... <밥알 멀건 죽물에 쌀알이 얼마나 섞인다고 어머니는 매끼마다 쌀 다섯알씩 절약하셨네 알알이 모아지고 한 줌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밥을 지으셨네 나에게 생일 밥 차려주셨네 한 그릇 더운 밥 목 메어 세어보니 어머니가 그동안 못 드셨던 450개 밥알이었네> 위의 시에서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그렸던 시인은, <밥이 남았네>라는 시에서도 굶주림 속에 피어나는 가족애를 그렸다. <밥이 남았네 어디서 얻었는지 찬 밥 한 덩이 아내 앞에 내밀려 남편은 즐겁게 말 했네 - 나는 먹고 왔소. 온종일 뙈기밭 일구고 뒤 산에서 돌아오신 시부모께 며느리는 그 밥덩이 배부른 듯 내밀었네 -이것밖에 안 남았네요 임신한 새 아기 굶기는 게 평생의 죄 같아서 속이 더 주름지던 노인내외 보물처럼 감추며 말했네 - 이 밥이면 아침은 되겠수 그날 끝내 밥이 없는 집에 밥이 남았네> <문 두드리는 소리>라는 시는 기아의 와중에 피어난 사랑에 관한 노래다. <문 두드리는 소리 아침이면 문 두드리는 소리 며칠 전엔 옥수수 한 줌 이튿날엔 감자 한 알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던 문 두드리는 소리 매일처럼 찾아오진 않았어도 찌든 가난 조금씩 나누는 그 정성 눈물겨워 매일매일 기다려지던 문 두드리는 소리 훗날에야 안 일 옆집 칠성 형님 누나를 사랑하며 문 두드렸던 소리> 시인이 아침마다 기다렸던 ‘문 두드리는 소리’는 그 처절한 굶주림 속에서 피어난 순애보였던 것이다. 아마 이 시를 읽으며 “보라. 그 ‘고난의 행군’속에서도 사랑이 꿏피는 북녘땅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냐? 물신주의에 찌든 남조선보다 훨씬 인간 살 맛이 나는 곳이 북조선이다”라고 거품을 무는 인간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든 것이 무너진 땅 기아는 북한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말았다. 인프라와 공장이 무너지고, 가족이 무너지고, 공산당의 주민동원체제도 무너졌다. 그리고 교육도 무너졌다. 학생들이 굶어 죽고 스승마저 굶어 죽었기 때문이다. <출석부 달리던 열차가 멎고 공장의 굴뚝들이 숨죽고 학교들과 병원마저 하나 둘 문 닫아도 백발의 교수는 하루같이 교단에서 출석부를 펼쳤다 부르튼 입술로 학생들을 호명했다 대답이 없을 때마다 자신의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 굶어도 배워야 한다고 애타게 호소하던 백발교수 그러던 교수가 오늘은 제 자리를 비웠다 인격의 높이 지성의 높이 스승의 높이로 학생들이 쳐보다보던 교탁 위엔 고인의 초상화만 있었다 출석부는 펼쳐져 있는데 이름들은 기다리는데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여기저기 터지는 격정의 흐느낌 애타는 그리움이여 한 생(生)을 순직으로 이으시며 조국의 미래를 부르시던 스승의 그 출석부 앞에선 누구도 지각할 양심 결석할 권리가 없어 학생들은 저마다 일어섰다 울면서 손들고 외쳤다 - 선생님 제가 왔습니다 - 선생님 저도 왔습니다> 시집을 넘기며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마다 손수건을 꺼내들던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눈물을 쏟고 말았다. 아마 주위에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목놓아 울었을지도 모른다. 시인의 분노는 김일성, 김정일에게 향한다. 그는 <궁전>,<사적비> 등의 시에서 굶어죽어가는 인민들은 아랑곳 없이 김일성 우상화에 돈을 쏟아붓는 김정일을 정면으로 규탄하고, <강철>에서는 김정일 정권에 맞서다 탱크에 깔려 죽어간 황해제철소 노동자들을 기리며 “독재 앞에선/인간이 되지 말라!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도 강철이 되라!”고 절규한다. 탈북 그리고 결국, 시인은 북을 등진다. <우리의 이별>에서 “잠시/집을 나서면서도/간다고 인사하고/언제 오마 약속하는데/ 혈육과 헤어지면서도/고향을 떠나면서도/국경을 넘으면서도/작별할 수 없었던 우리들”이라고 노래했던 시인을 두만강을 넘은 뒤에는 오히려 허탈해 한다. <두만강 돌처럼 얼어붙은 국경 두만강 뛰어가면 몇 발자국 넘으면 단 몇 초 고작 이것이었던가 우리에게 한생 없어보이던 자유의 거리가 해방의 시간이> <우리는 조국을 버린 것이 아니다>라는 시에서 “우리는 이 조국을 버린 것이 아니다. 이 조국이 우리를 버린 것이다”고 노래했던 시인은 아마 중국 땅을 떠돌던 끝에 중국 주재 우리 공관으로 향했던 모양이다. 그 감격을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태극기를 보았을 때 태극기를 보았을 때 태극기를 몰랐던 우리였지만 그 밑에 온 몸이 무너졌다 울음부터 터뜨렸다 태극기를 보았을 때 그 땅을 보지도 못했지만 조국이라 부르며 두고 온 조국을 저주했다 태극기를 보았을 때 애국가를 듣지도 못했지만 바람에 펄럭이는 그 소리만으로도 우리도 이제부턴 국민임을 느꼈다 태극기를 보았을 때 자유도 민주도 몰랐지만 그 하얀 색깔에서 우리도 보았기에 목청껏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를> 북의 시인이 이토록 감격으로 대면한 태극기에 대해 우리가 이렇게 뜨거운 격정을 가져본 적이 있을까? 우리가 당연하게 느껴온 그 모든 것들, 자유, 민주, 굶주림이 없고 풍요로운 삶-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해왔던가? 태극기로 상징되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그 모든 것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열심이었던가? 비록 자유를 얻었어도, 대한민국이라는 새 조국을 얻었어도 시인의 마음은 북넠땅을 떠나지 못한다. 그는 커피 한 잔 값으로 북한 동포 몇 사람을 살릴 수 있나를 생각하며 커피 한 잔 먹지 못하고(<커피값>), 밤마다 두고 온 북넠땅의 기억 때문에 잠 못 이룬다(<꿈에서도 바라는 꿈>).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그치질 않는다. <탈북자 탈북자 우리는 먼저 온 미래 오고야 말 통일을 미리 가져온 현재 北은 과거 南은 내일 그 경계선을 지으며 분연히 일어선 인간 38선> 조국 대한민국에 감사를! 혹자는 말한다. "박정희가 가난을 몰아냈다는 것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또 혹자는 말한다. "자존심을 가지고 주체성을 지키며 사는 것이 조금 잘 사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그런 소리가 말짱 헛소리라는 것을 <北의 詩/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는 잘 보여준다. 사는 것이 팍팍할 때, 대한민국 돌아가는 것이 영 못 마땅할 때, 삶을 살면서 길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때, <北의 詩/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살만한 나라라는 생각, 고마운 나라라는 생각, 그리고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 프리존 http://www.freezone.co.kr/cafebbs/view.html?gid=fz&bid=col&pid=27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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