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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humorbest_466831 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역설소년 ★
추천 : 110
조회수 : 11507회
댓글수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4/23 13:59:41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4/23 13:03:31
시놉시스 우리는 모두 똥을 싸며 살아간다. 똥을 싼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으며 우리가 음식을 섭취한다는 축복의 증좌이다. 똥은 솔직하다. 좋은 것을 잘 먹으면 좋은 똥이 나오며 나쁜 것을 먹으면 나쁜 똥이 나온다. 우리는 때때로 똥을 참아야 한다. 이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다. 똥이 마려우면 싸야한다. 인간의 생리 욕구는 크게 식욕, 성욕, 수면욕, 배설욕으로 나뉘며 이 중에 가장 참기 힘든 것이 배설욕이다. 때는 바야흐로 2009년, 당시 난 26살이 되었다. 2008년 겨울 이리저리 모은 종자돈으로 시작한 주식이 중박이 터졌다. 4대강 바람을 타고 4대강 테마주에 올인을 했었던 것이 중박이 터진것이다. 약 3000만원 정도의 돈이 생겨 차를 샀다. 좋았다.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처음 차를 샀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유난히 맑은 하늘과 코를 찌르는 새차의 가죽시트 냄새는 한층 내 흥을 돋구었다. 신났다. 처음 한 달은 수도권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며 쳐먹고 드라이브하고 쳐먹고 드라이브 했다. 그 날도 맛집 찾아 돌아다니며 쳐먹었다. 필자의 집은 안산이었다. 구리에 맛집을 찾아 식사를 하고 차도 마시고 저녁에서야 집으로 향했다. 100번 고속도로(서울외곽고속도로)를 탔다. 차를 타기 전 배에서 약간의 꾸릉이 왔다. 꾸르릉... 그러나 20수년의 임상데이터로 비교했을 때 충분히 집까지 버틸 수 있는 꾸릉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선택이 큰 참사를 야기하는 복선이라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하였다. 약간 불안한 상태로 구리IC에 진입하여 안산으로 향했다. 음악을 틀었다. 부활의 Lonely Night, 박완규 형님의 통쾌한 고음을 들으며 하이웨이 드라이브를 즐겼다. 하남시 까지도 분위기는 좋았다. 이퀄라이저에 몸을 맡기며 음악 선율과 비트에 취해 끄덕거림도 잠시 송파IC 쯤에 2차 꾸릉이 왔다. 꾸르르릉... 그리고 약간의 똥방귀... 그 때 IC 출구로 나가 지하철이던 어디던 똥을 쌌다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인간이라는게 똥을 참다 보면 그런게 생긴다. 오기? 또는 자존심?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지만 증명하고 싶었던게다 '집에가서 싼다' '버틸 수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힘겨운 나만의 싸움이지만 난 이겨낼것이다. 그렇게 2차 꾸릉을 이겨내고 더욱 가속 패달을 밟았다. 위기 뒤에는 항상 기회가 있다는 말이 있다. 야구도 그렇다. 무사 만루의 위기를 극복하면 반드시 다음 공격에 찬스를 잡는다. 그래 나는 지금 무사 만루의 위기다. 똥을 참다 보면 갑자기 편안해 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갑자기 내가 똥을 참고 있었나? 착각이 들 정도로 편안함이 찾아오는 시기다. 대부분의 인간은 저 시기에 이런 생각을 한다. '어라? 버틸 수 있겠는데?' 이런 무서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시기다. 그 시기는 마치 폭풍전야와 같다. 신이 인간에게 준 마지막 기회이자 선물인 것을 인간은 알지 못한다. 나 역시 알지 못했다.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송파를 지나 성남에서 3차 꾸릉이 온다. 어어어... 이건 아니다.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 전의 상황과 180도 틀리다는 것을 직감아니 육감으로 알게 된다. 이미 계기판엔 150키로넘게 찍히고 나의 모든 말초신경은 시각과 괄약근에 집중된다. 100번 고속도로엔 과속방지 카메라가 많다. 카메라가 나올 때 마다 급제동을 건다. 여기서 고비다. 급제동시 몸이 쏠리면서 몸안에 있는 똥도 관성의 법칙에 의해 몸 밖으로 쏠린다. 조심해야 했다. 브레이크 제동시 시트에서 엉덩이를 들어 같이 힘을 주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오른발에 힘을 주다 보면 괄약근이 풀린다. 괄약근과 오른발목의 힘의 균형과 방향을 고르게 하기 위해 시트에서 엉덩이를 떼야 했다. 본능적으로 체득했다. 누가 알려준 것이 아니다. 몸이 반응한 것이다. 고비는 멈추지 않았다. 똥방구는 10초가 멀다하며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성난 압력밥솥 같았다. 평촌에 도착할쯤 4차 꾸릉이 오면서 나의 멘탈도 붕괴되기 시작했다. 자존심이고 뭐고 자신과의 싸움이고 뭐고 일단 고속도로를 벗어나야 했다. 평촌IC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갓길에 대고 앞문과 뒷문을 열어 그 사이에서 쌀까도 생각했다. 희망은 보였다. 출구가 보였고 미친듯이 그 곳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식은땀은 이미 나의 등과 팬티를 적셨고 주유수에서 준 티슈를 주머니에 꾸겨넣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제일 먼저 보이는 상가에 차를 세웠다. 주차할 여지가 없었다. 그냥 비상등을 켜고 상가 앞에 차를 댔다. 일만 볼 수 있다면 주차 딱지 따위 상장으로 여기리라. 고지서 따위 승전보로 여기리라. 위기에 있을 때 인간의 뇌는 놀랄만큼 인지능력이 상승한다. 처음 보는 건물의 평면도과 입체적으로 머리속에 그려졌다. 치킨집과 슈퍼 사이의 출구를 찾아 상가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뛰지 않았다. 아니 뛸 수 없었다. 약간의 틈이라도 허용할 수 없었다. 화장실 입구가 서로 마주보는 형태의 화장실이었다. 나무로 된 문은 낡아 있었고 문 밑 부분은 20센티 가량 없는 형태의 문이었다. 끼익 소리와 함께 화장실 진입에 성공했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똥을 참는 인간들이 똥을 바지에 싸게 되는 경우가 집에 도착하거나 화장실에 다 도착해서 안도감에 멘탈을 놓아 싸게 된다고 한다. 변기에 앉기 전까지 정신줄을 놓으면 안된다. 끝까지 잡아야 한다. 화장실 안에는 3개의 소변기와 2개의 칸막이가 있었다. 우측의 문을 열었더니 좌변기는 없고 왠 온갖 청소도구로 가득차 있었다. 후... 다시 심호흡을 하고 좌측 문을 열기 위해 보았다. 하... ㅅㅂ 경첩에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오함마로 찍어 내려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차선책을 생각했다. 여자화장실? 하지만, 여자 화장실에는 이미 아줌마들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우선 남자화장실의 출입문을 잠궜다. 그리고 백안을 열어 모든 가능성을 체크했다. 세면대 소변기 대걸레 빠는 곳 타일바닥 가능성은 모두 희박했다. 나의 괄약근은 절박했다. 후... 지금부터 나는 인간이 아니다. 생각하는 사고하는 사람이 아니라 난 그저 한마리의 포유류 짐승이었다. 여러 가능성 중 소변기를 택했다. 바지춤을 내리고 압력밭솥의 추를 열었다. 2002년 16강 이탈리아의 경기에서 안정환의 마음이 이것과 비교할 수 있으리라. 지옥에서 천국으로 로드 투 헤븐 프롬 헬 약 1리터 가량의 설사가 쏟아져 내렸다. 결코 나온 것은 설사 뿐이 아니리라 내 안의 번뇌와 고뇌, 내 안의 욕심과 이기심, 자만과 오만, 고통과 아픔 모든 것이 흘러 나왔으리라. 그렇게 무아지경을 느끼는 것도 잠시 두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덜컹덜컹' 문이 움직이며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뭐야 잠겨있는데? 아줌마 문 잠겨있어요~" 아줌마가 대답했다. "그럴리가 없는데... 잠시만요 키좀 찾아보고..." 뭐 이런 쟞같은 상황이 있을까... 난 그저 똥을 싸고 싶었을 뿐인데... 그냥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으로 그냥 똥을 쌀 자유를 누리고 싶었던 것 뿐인데 어떻게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을까? 사람이 마음이 급해지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다. 바지춤을 올리고 나도 모르게 소변기의 물 내리는 버튼을 눌렀다. 후... 넘친다. 화장실 바닥은 나의 똥... 아니 나의 번뇌과 고뇌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난 판단을 내려야 했다. 선택을 내려야 했다. 두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 우기는 두 여인을 심판했던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했다. 그 찰나 잠시 화장실 밖이 조용해졌다. 머리속에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도망가기로 했다. 변명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를 개새끼라 불러도 좋다. 그 때 나는 인간이 아니라 한마리 개만도 못한 존재였다. 고로 개새끼라 해도 그 당시 나에겐 칭찬이다. 난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현실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 없었다. 문을 열자 마자 뛰었다. 뛰고 뛰었다. 배는 비었지만 수치심과 두려움, 민망함, 미안함으로 마음은 가득찼다. 그렇게 차에 올라타고 다시 집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돌아갈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똥과의 고군분투는 끝이 났다. 소변기에 똥을 싸고 도망을 가면 무슨 죄인지 모르겠지만... 죄 값을 치루고 싶었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범인은 범행 현장에 반드시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일주일 후 그 상가를 찾았다. 상가 슈퍼에서 병음료 셋트를 사서 박스안에 소정의 죄값을 채워넣고 화장실 청소도구함이 있던 칸에 넣어두었다. 3년 전의 일을 이렇게 글로 적는 것은 그 때의 상처가 어느정도 치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일을 겪은 화장실 청소 아줌마의 상처는 아직 치유가 안되었을 수도 있다. 죄송하다. 세상에 미친놈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하고 남은 생은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나도 그 일을 겪고 많이 겸손해졌다. 세상에 이해를 못하는 인간들 투성이었지만 이제는 이해하려고 한다. 나 역시 그런 인간중에 하나였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출근하기 전 내 차 트렁크에 누가 토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위산으로 인해서 토가 묻어 있던 곳에 칠이 조금 색이 바라긴 했지만 난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세상을 사는 여유는 경험에서 온다. 자세를 낮추고 세상에 감사하며 사는 마음 이 것이 우리를 풍요롭게 만든다. 세줄교훈요약 1. 운전을 30분 이상 하기 전에는 항상 화장실을 다녀올 것 2. 똥을 참다 2차 꾸릉 후 평안기는 신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는 것 3. 상가 화장실 이용시에는 항상 신식 건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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