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시대는 조선 왕조 500년 중 당파간의 정쟁이 가장 심했던 기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숙종은 탁월한 정치 감각과 비상한 재능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실추되었던 왕권을 회복하고 혼란해진 사회를 수습하여 조선 후기 봉건사회의 재도약의 기반을 닦은 왕으로 평가된다.
허나 숙종은 자신의 이러한 치적에도 불구하고 후궁과 세자를 둘러싼 암투와 음모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후대에 발생한 비극의 단초를 제공한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숙종의 총애를 받던 소의 장옥정이 왕자 균(경종)을 낳자 숙종은 균을 서둘러 원자에 정하고 생모인 장씨를 희빈으로 승격시켰다.
이에 대하여 명분을 중요시 해온 서인세력의 영수인 송시열은 정비인 중전 민씨(인현왕후)가 아직 젊기 때문에 후궁의 소생을 원자로 서둘러 정할 까닭이 없다는 상소를 올리게 된다. 장희빈에 대한 애정이 넘치던 숙종은 이를 왕을 능멸하는 처사라고 진노하여 송시열에게 사약을 내려 죽게 하는 한편 인조반정이래 오랜 기간동안 집권세력의 중추였던 서인세력을 대거 축출하고, 그 동안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남인세력을 대거 등용하였다.
장희빈의 친정 오라비인 장희재가 남인계열에 속해있었던 이유도 남인세력 등장의 또 하나의 배경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 숙종은 중전 민씨를 폐위 시켜 버리고 바로 장희빈을 중전에 앉히는 한편 원자 균을 세자에 책봉해 버린다. 그러나 변덕스러웠던 숙종은 본래 심성이 표독한 중전 장씨에게 이내 싫증을 느끼게 되고 대비전의 무수리로 있던 최씨에게 마음이 기울어 아들(영조)까지 얻게 되었다.
이에 질투심에 성질을 못 이긴 중전 장씨의 패악은 점점 심해져 마침내 숙종의 용안에 손톱자국을 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중전 장씨의 질투에 견디다 못한 숙종은 마침내 중전 장씨를 빈으로 강등시켜 버리고 폐비 민씨를 다시 중전으로 복위시키게 된다. 중전에서 쫓겨난 장희빈이 자신의 처소인 취선당에 신당을 차려 놓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며 매일 같이 중전 민씨가 빨리 죽기를 기원한 사실이 발각되어 숙종의 진노를 사게 되고, 결국 장희빈은 세자의 생모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사약을 받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따라서 장희빈의 정치적 후견세력이었던 남인세력이 완전히 거세되고 서인세력이 다시 득세하게 되면서 정국의 판도도 뒤바뀌게 되었다. 숙종은 생전에 인경왕후 김씨, 인현왕후, 민씨, 인원왕후 김씨 등 세 명의 왕비를 두었지만 정비에게서는 아들을 얻지 못하고 나인 출신의 희빈 장씨에게서 왕자 균(경종)을, 무수리(나인들의 시중을 드는 대궐의 종)출신의 숙빈 최씨에게서 왕자 금(영조)을 얻었다.
왕자 균과 금의 나이 차이는 고작 여섯 살에 불과했다. 당시 조정은 서인세력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는데, 숙종 말년에 이르러 집권당인 서인계열은 희빈 장씨 소생인 세자 균(경종)을 지지하는 소론파와 숙빈 최씨 소생인 연잉군(영조)을 지지하는 노론파로 분열되어 또 한번의 피바람을 예고하고 있었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숙종이 죽고, 아버지에 의해 어머니가 죽는 것을 목격한 비운의 왕 경종이 왕위에 올랐다. 어머니인 장희빈이 아버지인 숙종의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할 때 세자 균의 나이는 겨우 14살이었다.
장희빈은 사약을 받으면서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고 싶다고 애원을 하게 되고 이를 전해들은 숙종은 옛정에 끌려 마지못해 세자를 만나게 해 주었다. 형장에 세자가 나타나자 장희빈이 갑자기 세자의 고환을 잡고 늘어지는 돌발사태가 발생하였고, 이 사건 이후 경종은 생산 능력을 상실해 후사도 얻지 못한 채 늘 병마에 시달리다가 결국 요절하고 말았던 것이다.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의 즉위는 바로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간 노론파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예고하고 있었다.
숙종은 말년에 노론 측의 영수 이이명을 만나 연잉군 금을 세자 균의 후사로 결정해달라는 유탁을 내리게 된다. 이후 숙종이 죽고 경종이 즉위하자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파는 선왕의 유명을 받든다는 명분을 내세워 소론파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왕의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는데 일단 성공하게 된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을 보면서 성장한 연잉군은 자신이 세제에 책봉되자 오히려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자구책으로 세제의 자리를 극구 사양하고 나섰으나 노론파는 자신들이 반대했던 희빈 장씨의 아들인 경종을 견제하기 위해 연잉군을 적극 내세웠다.
연잉군의 세제책봉에 성공한 노론파는 여세를 몰아, 아예 경종의 병약함을 내세워 세제로 책봉된 연잉군의 대리청정을 주장하고 나서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노론파의 저돌적인 공세는, 평소 우유부단했던 임금에게 위기를 느끼게 해 여기서 더 밀릴 수는 없다는 결심을 굳히게 만들고, 또 대리청정 주장을 왕을 하야시키려는 역모로 규정한 소론파의 결사적인 반격을 불러 일으켜 오히려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말았다. 세제의 대리청정 주장은 결국 노론파에 대한 대대적인 탄핵으로 이어져 노론파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유배의 길에 오르는 수난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노론파가 경종의 시해를 모의했다는 남인계열인 목호룡의 고변이 터져 나오자,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 오던 노론파는 완전히 거세당하게 되었고 경종의 남은 재위 기간동안 정국은 소론 측이 독점하게 된다. 하지만 경종이 재위 4년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노론파가 지지해온 연잉군(영조)이 즉위하자 소론파의 짧은 권력 독점기도 다시 막을 내리고 말았던 것이다. 노론과 소론의 살벌한 권력다툼의 와중에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가까스로 왕위에 오른 영조는 먼저 자신을 박해하던 소론파를 대거 숙청하나 한편으로 노론파의 권력독점도 허용하지 않는 탕평책을 실시하여 왕권의 안정을 기하였다.
영조도 숙종과 마찬가지로 정비인 정성왕후 서씨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했다. 후궁인 정빈 이씨에게서 효장세자를 얻었으나 그 또한 요절해 버리고 또 다른 후궁인 영빈 이씨에게서 얻은 사도세자 선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영조가 노환으로 사도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을 시키자 그 동안 정권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소론세력과 남인계열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게 되었고, 계비 정순왕후와 노론세력들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왕과 세자를 이간질시켜 나갔다.
결국 이들의 무고에 넘어간 영조는 세자를 자주 질책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미움을 받은 세자는 조울증 증세를 보이다가 급기야는 행동도 점점 거칠어져 수시로 왕궁을 빠져나가고, 여승을 입궐시켜 밤을 같이 지새거나 궁녀를 함부로 죽이는 등 기이한 돌출행동을 일삼았다. 이에 과격한 성품의 영조는 격노하여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명하게 되고, 이에 응하지 않는 자신의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둬 놓고 8일 만에 굶겨 죽이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때 사도세자의 나이는 불과 28세였다.
산(정조)은 불과 열 살의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눈으로 목격하였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정조 역시 당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내내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세손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영조가 죽고 스물 넷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정조는 서서히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준비해 나갔다. 정조는 먼저 세손시절부터 자신의 심복이었던 홍국영을 전격적으로 도승지로 기용하고 왕궁 호위부대인 숙위소의 대장도 겸직하게 하여 실권을 장악하게 하였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노론 벽파세력은 그의 아들인 정조의 즉위에 크게 긴장하고 있던 차에 권력이 홍국영에게 집중되자 그를 견제하기에 여념이 없게 되었다. 당시까지 여전히 다수파로 군림하던 노론 벽파세력의 눈길을 분산시키는데 일단 성공한 정조는,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하고 개혁세력들을 대거 결집시켜 새로운 개혁 정치를 꿈꾼다. 정조는 규장각에 학식이 높고 능력이 있는 신진인사들을 비록 서얼출신이더라도 출신성분에 관계없이 널리 등용하여, 오랫동안 당파와 가문의 배경만으로 출세하던 분위기를 쇄신하고 노론 벽파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권력을 분산시켜 나갔다.
정조는 점차 영조 시대 권력에서 밀려나 향리에서 학문에 정진하던 남인에 뿌리를 둔 실학파와, 노론에 기반을 두었지만 개혁을 추구하는 소장 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북학파 등의 중용을 넓혀 나갔고, 이에 노론 벽파세력은 한층 위기감을 느끼며 자신들에게서 점점 멀어져만 가는 권력의 끝자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어느 정도 왕권 강화에 성공한 정조는 본격적인 개혁을 위해, 수구세력의 오랜 권력의 근거지인 한양을 떠나 수원으로 행정수도를 옮길 계획을 세우고 정약용으로 하여금 화성(華城)을 건설하게 하는 한편, 화성에 친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을 창설하여 목용검으로 하여금 지휘를 맡게 하였다.
목용검은 영조 시대 노론에게 몰려 처형당한 목호룡의 손자로, 자신의 부모를 비롯한 전 가족이 재산을 몰수당하고 관노로 전락하여 전국 각지에 흩어진 상태에서 비참한 관노의 신분으로 태어났다. 목용검은 자라서 자신의 출생 배경을 알게된 이후 노론의 무리들을 조부를 죽이고 가문을 몰락시킨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며, 조부와 가문의 원수를 갚는 것을 유일한 삶의 목적으로 살아온 터였다.
역적의 자손과 관노의 신분으로 어차피 과거에 응시할 기회도 없었던 목용검은 어릴 때부터 복수의 일념으로 무예에 전념하여 그 기량이 장안에 소문이 날 정도여서, 정조가 즉위한 후 숙위대장 홍국영의 추천으로 왕실 경호부대인 숙위소의 말단으로 들어와 오늘에 이르게된 인물이었다. 노론의 시달림에 항상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자라온 정조가 장용영 대장으로 관노출신인 목용검을 전격적으로 발탁한 것은 이러한 그의 출신배경으로 미루어 노론 무리들의 위협을 확실히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또 한편 노론 무리들의 간교로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세손시절의 자신과, 처지가 비슷했던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해 동병상련의 연민을 느낀 탓도 있었다. 목용검의 등용은 바로 조정에서 큰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처음에는 양반의 자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지도 않은 자에게 중책을 맡겨서는 아니 된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였지만, 목용검이 바로 자신들의 정적이었던 목호룡의 손자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된 노론 일파는 그의 등용을 놓고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역적의 아들을 등용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그의 등장은 바로 자신들의 목에 정면으로 칼날이 겨누어 졌다는 것을 너무나 명확히 인식한 까닭이었다. 결국 후일 목용검의 칼날 아래, 100년간 이어온 자신들의 권세는 물론이고 목숨까지 추풍낙엽이 되어 역사의 후면으로 사라지고 말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수원 화성의 수축이 완성되고 장용영의 정비를 완료한 정조는, 새로 수축된 화성으로 옮긴 사도세자 능인 현륭원에 참배하기 위한 대규모의 행차를 지시하고 조정의 모든 문무백관들에게 화성행차에 수행할 것을 명하였다.
화성행차를 위한 제반 준비 사항을 손수 꼼꼼히 챙기며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친 정조는 저녁 내내 처소에서 꼼짝도 않고 혼자서 골몰히 생각에 잠기었다. 정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 아니 드디어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왕위에 오른 지 어느 덧 20여 년. 하루가 편치 않은 가시방석의 나날들이었다.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스물 넷에 왕위에 올라 이제 어느 덧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다.
할아버지 영조의 계비로 들어온 정순왕후의 시기와 그녀를 둘러싼 외척 경주 김씨 일가와 노론 벽파 일당의 모함으로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여드레만에 죽어 가는 것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정조는, 왕위에 등극한 이후에도 호시탐탐 왕권을 위협하는 벽파의 무리들을 생각하니 온 몸으로 전율이 지나감을 느꼈다. "전하, 숙위대장 목용검 대령하였나이다" 바깥의 기척에 흠칫 정신을 가다듬었다. "준비는 다 되었느냐? " "예, 전하, 분부만 내려 주시옵소서"
정조는 한 자루의 칼을 꺼내 목용검에게 내밀었다. 그 칼은 바로 아버지 사도세자가 어릴 때 무술을 연마할 때 사용하던 칼로 정조가 남몰래 고이 간직해 온 것이었다. "내 이것을 너에게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겠느냐?" "예, 전하, 황공하옵나이다. 소신, 죽음을 각오하고 전하의 뜻을 행하겠나이다" 검을 받아드는 목용검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 짧은 순간에 종의 신분으로 태어나 그것도 역적의 자손으로 갖은 천대를 겪으며 자란 지나온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일이면 그 모든 것을 갚는다. 내일이면. 내 기꺼이 가문의 명예와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 검을 쥔 목용검의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심환지를 우두머리로 하는 노론 벽파세력들은 이번 화성행차가 자신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화성행차의 명분이 바로 자신들이 죽게 한 사도세자의 추모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히 불안한 터인데, 더구나 한양을 떠나 자신들의 무력이 전혀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수 천 군사들이 모여 있는 수원으로 행차한다는 것은 곧 호랑이 아가리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화성 행차 하루 전, 북한산에서 은밀히 모인 우의정 심환지를 비롯한 노론 벽파의 영수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거 이 번에 내려가면 큰 화를 당하지나 않을까 모르겠네" 평소 성품이 경박하던 호조판서가 무거운 적막감을 참지 못하고 불쑥 한 마디 내뱉었다. 심환지의 양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니 뭐 우리가 지은 죄도 없는데 화는 무슨 화" 형조판서가 평소의 호방함을 잃지 않고 시큰둥하게 대꾸를 했다. 실제로 지금 요직을 맡고 있는 조정의 50대들은 사도세자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아니 그래도 우리 당이 주장해서 임금의 아버지를 죽게 했으니" "어허험" 호판의 경솔한 발언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심환지는 크게 헛기침을 해댔다. 자신들 당파의 최고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심환지가, 오가는 대화를 못내 못 마땅해 하는 걸 눈치챈 좌중엔 다시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의 친정 오라비인 김관주가 침묵을 깨고 낮은 목소리로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앉아서 그냥 당할 순 없지" 김관주의 중얼거림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 터라 다음 어떤 말이 튀어나올까 두려운 눈초리로 모두들 김관주의 입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좌중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 김관주는 마침내 작심했다는 듯 무릎을 한 번 크게 치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좌중을 둘러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오늘밤이라도 당장 군사를 일으킵시다. 내가 준비해 둔 아이들이 있으니"
김관주의 입이 떨어지자, 충분히 예상 못했던 말이 아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사방을 둘러보며 서로를 멍하니 쳐다들 보았다. 김관주의 한 마디 말에 심환지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잠시 정신이 혼미해 옴을 느꼈다. "어허, 그 무슨 천하에 불충스러운 말을, 어찌들 이리 경솔하신가" 정신을 가다듬은 심환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밤이 이슥하도록 계속된 회의에서, 뭐 별일이야 있겠느냐며 애써 태연한 척 하는 낙관파와 가면 바로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비관파가 섞여 갑론을박이 거듭되자, 김관주와 병조판서 등 일부 강경파는 여전히 이 기회에 차일피일 미루던 거사를 앞당겨 반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재차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현실적인 준비의 부족을 실감한 좌중의 만류와 후학들이 신중치 못하고 경망스럽다고 대노하며 꾸짖는 심환지의 역정을 꺽지 못한 채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일행은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야심한 밤을 가르고 하나 둘씩 뿔뿔이 어둠 속으로 흩어져 갔다.
화성행차 새벽 북한산에서 돌아온 심환지는, 아직 살아 정승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고 체념한 채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미리 예감하고, 조상에게 예를 올리고 가족들을 불러 인사를 나눈 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대규모의 화성행차 행렬에 섞여 수원에 다다른 조정의 백관들은 왕이 친히 베푸는 만찬에 초대되어 흥겨운 연회를 즐겼다.
불안에 떨며 눈치만 보고 있던 벽파출신의 인사들도 왕이 대취하고 흥겨워 하자 한시름을 놓고 덩달아 대취하며 흥을 돋구었다. 밤늦게 연회가 끝나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하던 조정의 백관들은 한밤중에 느닷없이 왕의 위독을 알리며 입궐하라는 파발들의 부산한 움직임에 놀라 허둥지둥 왕의 처소로 향했다. 왕의 처소에 모인 일행을 둘러 본 우의정 심환지는 '아차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번뜻 들며 정신이 까마득해 옴을 느꼈다. 부름을 받고 모여든 일행들이 모두 자신들이 속한 벽파출신들 뿐이고 시파출신이나 남인계열 등 여타 왕의 총애를 받는 인물들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때 어둠 속에서 수 백 개의 칼날들이 번뜩이고 희미한 달빛 아래 복면을 한 괴한들이 일제히 허공을 가르며 이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