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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포풍, 폭풍이 몰려온다!! (6) - 4
게시물ID : history_45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름없는여자
추천 : 3/4
조회수 : 82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6/03 19:03:20
지난 글 : 제39군의 포풍 - 2부 제36군의 포풍 소련군 참모장교들은 만주 북서부에서의 진격에서 발생할 지형상의 난제들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외몽골의 사막과 만주의 늪지대, 그리고 만주 서부와 마찬가지로 대싱안링 산맥이 300 킬로미터에 달해 뻗어 있으면서 진격로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더 복잡한 문제는 관동군이 이곳에도 마찬가지로 요새들을 구축하고 고지의 이점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대한 땅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대싱안링 산맥과 아르군 강이었습니다. 길게 자란 수풀들, 바위투성이의 산길도 대군의 진격을 방해할 만 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하일라얼 시로 이 고지대의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하일라얼에서 연결된 철도는 만주 중부를 관통하고 있으며 국경 서쪽의 야코신을 종점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하일라얼에서는 주변의 요지인 찰라이도어와 만주리와 연락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하일라얼 당시의 만주리 그러나 이 지대에는 대규모 차량 집단이 통과하기에는 다른 지역들보다 나쁘지 않았는데 땅에서 물이 잘 빠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일라얼 강과 아르군 강 유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모래가 많은 마른 땅이었습니다. 이 고지대는 8월 평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지대였는데 소련군은 8월의 폭염을 대비해서 급수 시설을 적잖이 마련해 놓고 있었습니다. 소련군 사령부들의 관심사는 대싱안링 산맥을 비롯한 위험지대를 재빨리 통과시키고 보급선을 유지하면서 하일라얼에 주둔한 일본군을 찰라이도어-만주리 요새 지대와 고립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우에무라 미키오 중장의 제4 독립 야전군이 치치하얼에 사령부를 두고 주둔하며 만주 북부와 북서쪽의 수비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제4 독립군에는 시오자와 키요노부 중장의 제119 사단과, 제80 독립혼성여단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제119 사단은 관동군 내에서 정예로 꼽히는 부대였습니다. 119 사단은 차량화, 자동화율이 높았고 중화기도 많이 갖추고 있었습니다. 제119 사단은 야코신에서 포코투로 통하는 철도와 도로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곳은 관동군의 소련 침공시 시나리오에서 소련군의 예상 침공 방향이었습니다. 제80 독립혼성여단은 5개 보병대대와 1개 강습대대, 1개 포병대대와 기타 지원 대대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여단은 하일라얼 요새 지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80여단 소속 1개 소대병력이 아르군 강 유역의 강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일라얼의 제10 방면군 사령부에서는 이곳에 제50 기병연대와 제51 기병연대를 증강시켰습니다. 기타 만주국군 기병부대들도 증강되었는데 이들 중에는 적백내전 중 백군의 편에서 싸우다 일본에 귀순한 코사크 기병들이 소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말리노프스키의 자바이칼 전선군 사령부는 만주 북서부를 유린하고 하일라얼을 접수하는 임무를 A. A.루친스키 중장의 제36군에 맡겼습니다.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루친스키 좀 어디 아파 보이는 인상입니다. 6월 28일에 말리노프스키는 극동전략방면사령부 명령으로 제36군이 제39군이 대싱안링 산맥을 돌파하고 만주에 돌입하는 대로 투입되어 하일라얼을 접수하고 찰라툰 시를 점령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말리노프스키는 제36군의 공세가 10일이면 끝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말리노프스키는 제36군의 주공 병력으로 제2, 86 소총병군단(5개 소총병 사단이 증강된)을 지정하고 군의 좌익을 맡겼습니다. 36군의 주공은 아르군 강을 도하해 하이루칸 산을 확보하고, 하일라얼 북부를 공략할 교두보를 마련하면서 하일라얼 북동쪽의 요새 지대를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 지역의 모든 관동군을 분쇄해 버리는 것을 작전 목표로 삼았습니다. 또한 특별히 구성된 작전 집단이 야전군의 우익을 맡으면서 조공을 가할 것이었습니다. 이 조공은 찰라이노어-만주리 요새 지대를 뚫고 들어가면서 두 도시를 확보하고, 관동군 병력들을 철도망 동쪽으로 쫓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자바이칼 전선군 소속의 다른 야전군들이 공세 전면으로 100~120 킬로미터를 할당받은 반면 제36군의 공세 전면은 250킬로미터에 달했습니다. 주공과 조공은 각각 100킬로미터 넘는 공세 전면을 할당받았지만, 두 그룹은 하일라얼에서 합류할 것이었습니다. 말리노프스키가 내린 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루친스키의 야전군은 2개 소총병군단과 1개 작전 집단 예하 7개 소총병사단, 2개 국경 수비 연대, 1개 전차여단과 기타 포병부대들을 예하에 두게 되었습니다. 6월 초순 동안 루친스키와 참모들은 작전안을 짜야 했는데 문제점이 하나 발생했습니다. 기습 효과 극대화를 위해 만주 국경 20킬로미터 안까지 들어가는 걸 금지함. 헐퀴, 그럼 정찰활동도 못하잖슴? 루친스키는 이 어려움에 대한 보고서를 사령부에 제출했고 결국 정찰에 대한 허가를 받아 냅니다. 6월 중순에 바실레프스키와 말리노프스키가 제36군 사령부를 방문하자 루친스키는 공세 작전안을 내놓습니다. 작전안에 따르면 5개 소총병사단과 1개 전차여단이 제36군의 주공으로서 아르군 강을 도하하해 하일라얼로 쇄도합니다. 제2 소총병군단과 제86 소총병군단이 북동쪽에서 하일라얼로 가는 진격로를 열고 일본군의 야코신으로 가는 퇴각 루트를 차단하면서 하일라얼 요새 지대의 일본군을 분쇄합니다. S.S. 포멘코 소장의 작전 집단은 2개 소총병사단과 2개 기관총 여단으로 구성되어 찰라노어-만주리를 꿰뚫고 나가 하일라얼 동쪽의 철도망을 차단하고 하일라얼의 주공과 합류합니다. 야전군 선견대인 제205 전차여단과 V.A. 부르마소프 소장의 제86 소총병군단이 선두에서 주공을 이끌고 8월 9일 저녁까지 모어 골에 도달할 것이었습니다. 같은 날 저녁, 선견대의 선두 부대들은 다른 부대들이 하일라얼 외곽부터 공략하는 동안 하일라얼 강의 철교들을 장악할 것이었습니다. 군 직할 포병 집단은 2개 포병군단과 기타 7개 포병대대로 구성되어 아르군 강 도하를 지원하고 일본군 요새들을 박살낼 것이었습니다. 작전 집단의 공세 준비 포격이 10분간 이어지며 찰라이노어-만주리 지대의 일본군 방어를 뒤흔들 것이었지만 기습을 위해 아르군 강의 도하점에 대한 준비포격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루친스키는 선견대에 일본군 지역으로 깊숙히 진격할 동안 확실한 화력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제12 항공군의 1개 폭격기사단이 일본군의 요새 지대, 비행장, 집결지를 타격할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36군은 전차 전력이 부족한 편이었는데 제205 전차여단이 핵심 기동 전력이 되었으며 기타 2개의 독립전차대대가 차량화부대의 화력을 지원할 것이었습니다. 자바이칼 전선군 사령부는 아르군 강 도하를 위한 대규모 공병들을 제36군에 지원해 주었습니다. 제35군은 제68 공병여단을 배속받았는데 이 여단은 4개 공병대대(제295, 296, 297, 298 대대)와 2개 독립 차량화 부교대대(제12,7 대대), 그리고 제12 부교연대가 지원되었습니다. 제36군은 8월 8일에 아무르 강 부교가설 작업을 시작하는 동시에 미국에게 랜드리스로 지원받은 DUKW 수륙양용차량을 사용하는 제653 도하대대가 아르군 강을 건너 도하점을 확보할 것이었습니다. 식수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자 루친스키는 아무르 강과 하일라얼 사이로 진격하는 사이 제90 급수중대를 편성해 아르군 강의 식수를 될수 있는 대로 챙기고 몇 안되는 수원지에서 식수를 확보할 것을 계획했습니다. 이 중대는 급수 차량과 물탱크를 갖추고 수원지를 찾아다니며 물을 모으고 목마른 병사들에게 식수를 제공할 것이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소련군이 가진 만주 지도가 부정확하여 제대로 된 수원지를 찾고 확보할 지는 미지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루친스키는 또한 아르군 강을 도하해야 한다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아르군 강의 강폭은 150미터에 달했습니다. 게가다 유속은 시속 20킬로미터로 빠른 편이었고 도하점은 차량이 빠져나가기 쉽지 않은 습지였습니다. 현재의 아르군 강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68 공병여단의 공병들은 도하점에 통나무 발판을 설치하고 목재 부교를 임시로 부설할 것이었습니다. 자바이칼 전선군의 공병총감인 A.D 트실린 대장은 많은 목재들을 제68 공병여단에 지원해 주었습니다. 제68 공병여단은 이 목재들을 위장막 속에 잘 숨겨놓았습니다. 8월 8일 0060시 경에 제36군은 소만 국경에 도달하여 짧은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고, 선두의 2개 소총병사단 소속 공병들은 국경지대 지뢰 제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8월 9일 0020시, 국경 수비 연대소속 병력들이 아르군 강을 도하하기 시작하며 강 남쪽 둑의 일본군 초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계획대로 군 직할 포병 집단이 찰라이노머-만주리 요새 지대에 10분간의 준비 포격을 가하며 작전 집단의 공세 서막을 열었습니다. 칠흙같은 밤에다가 안개까지 낀 침투하기에는 최적의 기상 상황에서, 소총병 사단의 선두 대대들이 보트를 통해 도하를 시작했고 도하에 성공한 공병들은 부교를 놓느라 죽을 힘을 다했으며 강습 병력들은 재빨리 2km에 이르는 도하점을 확보하고 공병들의 부교 부설 작업을 엄호했습니다. 공병의 중요성 다시 찬양 1시간 후, 제17 부교대대가 무게 30톤, 폭 30미터의 부교를 아르군 강에 가설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동안 제2 소총병군단 소속 5개 대대 병력이 도하에 성공하고 있었습니다. 제2 소총병군단의 좌익에서는 제635 도하대대가 Staro Tsurukhaytuy에 2개 소총병연대 병력을 25분만에 상륙시켰습니다. 도하한 공병들은 이 지점에 5개의 부교를 가설했습니다. 계속된 부교가설 작업으로 제2 소총병군단과 제86 소총병군단은 30시간만에 전군이 아르군 강을 도하해 만주로 돌입할 수 있었습니다. 아르군 강을 도하한 강화된 205 전차여단은 Staro Tsurukhaytuy와 하일라얼을 잇는 도로로 진격해 확보하고 1500시에 모어 곳과 토우츠샨으로 가는 교두보롤 확보했습니다. 205 전차여단은 최대 속도로 남쪽으로 포풍같이 쇄도하며 일본군 저항 거점들을 마주치지 않고 2000시에 Burkhata Valley 계곡의 Postoianyi Dyor에 당도하여 도시와 주변 요새들을 8월 10일 아침까지 점령했습니다. 부르마소프 소장은 이 도시에서 수색대를 보내고 여단에 밤새 진군을 독려했습니다. 수색대가 동쪽 방면의 정찰을 마치고 돌아와 하일라얼 북쪽의 일본군 요새 위치들을 보고하자 부르마소프는 이 요새들을 우회하고 1개 소대병력만이 지키고 있는 하일라얼 철교를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8월 10일 2130시에 이 다리는 소련군의 손에 들어왔고 205 전차여단은 하일라얼 강을 건널 다리를 확보했습니다. 여기까지 제205 전차여단이 소모한 시간은 고작 12시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여단은 100킬로미터 이상의 폭풍같은 진격을 해냈습니다. 포풍! 포풍이 몰려온다! 205 전차여단과 다른 제대들의 대부분의 병력이 하일라얼 부근에 도달했고 1개 차량화소총병 대대는 안보산 북쪽의 일본군과 맞닿트려 교전을 벌였습니다. 부르마소프는 동부 고지대를 확보해 저지선을 만들고 하일라얼 북동쪽으로 치고들어가 철도역을 확보한 후 도시 중심으로 돌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제 152 소총병연대가 2300시에 기동 지점으로 기동하며 일본군과 치열한 시가전을 벌였습니다. 하일라얼 공략도 도시 북서쪽의 Oboto 산에는 일본군 중포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도시에 소련군이 돌입한 걸 알고 놀라며 제205 전차여단을 향해 포격을 가하며 여단의 진격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고 제205 전차여단은 재정비 후 진격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반면 제152 소총병연대는 일본군의 저항에 진격이 더뎌졌고 하일라얼의 일본군이 밤새 죄다 소탕된 뒤에야 제205 전차여단과 합류할 수가 있었습니다. 8월 10일 동안 205 전차여단은 하일라얼을 확보하고 고지대로 진격해 성가시게 굴던 일본군 포병들을 처리했습니다. 루친스키는 I.V 자마하예프 소장의 제94 소총병사단에 205 전차여단을 지원하라고 명령했습니다. 8월 10일 2400시에 205 전챠여단이 구축한 하일라얼 요새 지대에 대한 얇은 포위망을 제94 소총병사단이 합류함으로서 더욱 두텁게 만들었습니다. 하일라얼을 향해 포격을 가하는 소련군 제205 전차여단이 하일라얼을 접수할 때 제2 소총병군단은 동쪽과 남쪽으로 진군하여 드라고젠카와 나키크불카, 야코신의 일본군 병력들을 섬멸했습니다. 제86 소총병군단은 제205 전차여단의 후속으로 하일라얼에 입성했고 작전 집단은 만주리와 찰라이노어 요새 지대를 무너트리고 하일라얼로 향했습니다. 제36군의 공세는 일본군에게 완벽한 기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제36군은 만주리와 찰라이노어 수비 병력들을 삽시간에 큰 어려움 없이 압도해 버리며 8월 9일 저녁에 하일라얼에 다달았습니다. 하일라얼을 수비하던 일본군 제80 독립혼성여단은 끈질기지만 헛된 반격을 205 전차여단에게 가했지만 후속으로 온 제86 소총병군단에게 제압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일본군 제119 사단은 제4 독립 야전군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대싱안링 산맥에 구축된 Wunoehr 요새 지대로 재빨리 들어가 대싱안링 산맥으로 진격하던 제205 전차여단의 공세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205 전차여단의 종심 깊은 공세와 기습은 대부분 목표를 달성했지만, 하일라얼의 일본군을 완전히 포위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만주국 기병부대들은 하일라얼 남쪽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제80 독립혼성여단은 하일라얼에 완전히 갇혀버렸고 포위된 다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박살나 버렸습니다. 소련군의 무자비한 포격과 좁혀드는 포위망 안에서 제80 독립혼성여단은 8월 18일에 만신창이가 된 채 3,827 명이 항복했습니다. 일본군 제119 사단 또한 4일간의 대싱안링 산맥 방어를 뒤로 한 채 소련군의 폭격, 포격에 시달리며 동쪽으로 후퇴해야 했습니다. 제205 전차여단은 8월 폭풍 작전에 참여한 모든 제대들 중 가장 종심 깊은 포풍 진격을 달성해 냈습니다. 제205 전차여단의 기동은 소련군의 선견대 운용전술 발전을 보여준 좋은 사례가 되었습니다. 205여단이 아쉬운 점을 남긴 대싱안링 산맥 요새 지대 공략 실패는 소련군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일본군 119 사단이 소련군보다 더 빨리 요새 지대로 기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군도 할 때는 하는 때가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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