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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종기.
게시물ID : history_45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algura
추천 : 11
조회수 : 4190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2/06/03 16:04:13
백광현(白光炫, 1625~1697년)은 조선 후기의 침의(鍼醫)이다. 본관은 임천이며 자는 숙미이다. 백광현은 종기의 외과적 치료술을 본격적으로 개발한 사람으로, 한의학에 외과적 치료술을 본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종기 치료사에 획기적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는 침을 써서 종기를 절개해 독을 제거하고 뿌리를 뽑는 과격한 치료법을 썼다. [편집]생애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원래 말의 병을 고치는 마의(馬醫)였는데, 그는 말의 병을 오로지 침을 써서 고쳤고 의서는 보지 않았다. 침으로 말의 병을 다스리는 기술이 진보하자, 사람의 종기에도 시술해 보았더니 효험이 있었다. 그는 이내 사람의 종기를 치료하는 의원으로 전업했고, 수많은 종기의 증상을 보면서 임상경험이 풍부해져 의술이 더욱 정심해졌다. 현종 때 내의원 의관이 되었다. 《현종개수실록》 11년 음력 8월 16일에 현종의 병이 회복된 것을 기념하여 내의원 의관들에게 가자(加資)를 하는데, 백광현의 이름이 처음 보인다. 그는 공이 있을 때마다 품계가 올랐고, 마침내는 어의를 지냈으며 현감까지 되었다. 1684년(숙종 10년) 음력 5월 2일에 왕은 그를 강령 현감(康翎縣監)에 임명했다가 이어 포천 현감(抱川縣監)으로 바꾸어 임명했다. 1691년에는 지중추부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숭록대부에 올랐다. 1695년(숙종 21년) 음력 12월 9일 숙종은 백광현을 각기병을 앓는 영돈녕부사 윤지완(尹趾完)에게 보내는데, 이날 《숙종실록》은 “백광현은 종기를 잘 치료하여 많은 기효(奇效)가 있으니, 세상에서 신의(神醫)라 일컬었다.”라고 하였다. 아마도 종기를 치료하는 능력 때문에 내의원에 들어갔던 것으로 짐작된다. [편집]평가 정래교에 따르면 “종기를 절개해 치료하는 방법은 백태의(白太醫)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하였다. 장지연(張志淵)이 “우리 나라의 결렬의 법(상처를 찢어 치료하는 법)이 백태의로부터 시작하였다.”라고 한 바와 같이 그는 침에 의한 수술의 권위자였다. ------------------------------------------------------------------------------------------------------ 열악한 위생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종기환자들이 많았고 왕들의 목숨까지도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나름의 치료법이 존재했던 것 같지만 종기를 째고 고름을 짜내는 식의 치료들은 천민출신의 종기전문가들이 주로 많이 했었다고 하더군요. 구한말 서양의사들도 종기수술을 꽤나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 그당시에도 민간에는 종기치료전문가들이 존재하고 있었지만은 단순히 종기를 째서 심지 같은 걸 집어넣어서 고름이 빠져나오는 길을 만들어주는 정도에 그쳤다고 합니다. 소독의 개념도 없었고요. 제중원에서 수술했던걸 보면은 종기를 짼다음에 고름을 짜고 그 뿌리까지 뽑아낸다음에 희석한 석탄산 용액을 절개부위에 주입해서 소독을 했다고 합니다. 치료경과는 대부분 다 좋았다고 하네요. 조선시대에 종기치료로 이름을 날린 사람들 중에는 소독의 개념을 경험적으로나마 이해하고 독한 소주등을 이용해서 소독하는 방식등을 사용한 사람들이 존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네요. 수많은 종기환자들을 치료해서 살려내려면은 감염을 막아내는 방법 정도는 경험적으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어야 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기수술 장면 의료비용이 부담되는 민간인들의 종기수술 천조국인것 같은데 소독이랑 항생제만 잘 맞아주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 같군요. 천조국은 그런 거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터넷에 자가치료법들도 많고.... 소 고름 짜내기

BGM정보: http://heartbrea.kr/963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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