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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형 중세 병원과 사회 구조 (4)
게시물ID : history_45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름없는여자
추천 : 1
조회수 : 204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6/03 13:52:52
지난 글 : 근대형 중세 병원과 사회 구조 (3) 지난번에 올라온 글을 통해서 우리는 원래 호텔 내지 여관의 의미를 가졌던 Xenodocheion 혹은 Xenon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자선 기관과 병원이 혼재된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또한 여기서 다시 자선 기관의 의미가 퇴색하고 순수한 병원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대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예고했던 대로 오늘 다루어볼 내용은 실무적인 측면에서 각 병원은 어떤 재정 기반에서 활동하였기에 전면 무상으로 운영될 수 있었는가, - 이 부분이 차후 핵심적인 내용과 직접적으로 맞닿은 측면이 있습니다 - 그리고 몇 종류의 의사와 의료 보조, 의학교수와 의학도, 약학의, 간호원과 일반 노무 직원 등의 임금과 근무 등의 편린입니다. 원래 여기서 다루려했던 진료법과 치료법, 진료 기록 데이터베이스화 등의 주제는 세번째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1편이 더 늘어나겠군요ㅠㅠ) 먼저 병원의 전반에 관한 것부터 다루어 볼까요? 지금까지 이 시대의 병원을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세세한 자료는 1136년에 판토크라토르 수도원 공동체에 세워진 '판토크라토르 병원'의 규율 내지 준수 사항을 기록한 Typikon(티피콘)입니다. 이 자료를 참고해보면 판토크라토르 병원은 총 세 군데의 벽난로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병원도 대개의 경우 마찬가지여서 9세기 초의 한 기록에서도 노변(hearth)을 배치하였다고 하며 12세기, 트라키아 지방에 위치한 아이노스 시의 한 병원에서도 환자들의 난방을 위해 연료를 평소 확보하도록 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판토크라토르 병원의 경우 총 3개의 벽난로가 있었는데 이 중 1개는 대형 벽난로로 대부분의 병실이 위치한 건물에 있었으며 각 1개씩의 난로는 외과 그리고 별도의 동으로 구분시켜놓은 부인과에 마련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판토크라토르 병원이 총 5 군데의 장소로 구분되어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들 각각은 수술실, 수술대기실 겸 회복실, 부인과, 일반 병실, 응급실, 안과 질환 전용 병실 등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총 50석의 자리를 항시 마련해두고 있었구요. 이 장소들은 순전히 입원 환자를 위해서만 제공되는 장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래 진료를 위해서도 따로 장소를 마련해야하는 것은 필수였습니다. 대체로 10세기 중반 이전까지는 일단의 의사들이 거리를 활보하면서 환자들을 만나 진찰해주는 방식이 주류를 점했다면 이후부터는 외래 진료소를 마련하여 환자들을 진찰하는 방식이 주류를 점하게 됩니다. 여기에 시약소까지 결합되면서 일반 시민들은 간단한 병인 경우 나름 편하게 진찰 받고 약을 받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판토크라토르 병원은 판토크라토르 수도원의 수도사를 동원해서 목욕 시설을 관리하면서 환자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끔 관리하게 했습니다. 이외에도 의학도들을 위해 고대의 갈레노스, 히포크라테스로부터 시작해서 트랄레스의 알렉산드로스(이 사람은 의학 교과서 70권을 정리, 작성한 것으로 유명한 의사죠) 등의 유명 의학 전문가들의 저서를 구비한 자체 도서관과 의학 교수가 의학도들을 가르칠 강의실, 진료/처방 기록 및 약재/수술 도구를 보관하는 창고, 빨래방 등을 갖추고 있어 상당히 큰 규모였습니다. 동시에 병원에서는 예배당 또한 갖추고 있어 환자들에게 심신의 안정을 제공하는 역할도 수행하였죠. 대체로 다른 병원들 또한 기본적으로 이러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병원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분포도 사뭇 흥미롭습니다. 본래 병원이 출발했던, 자선기관의 개념 즉 극빈층을 구제하기 위한 장소로서의 개념은 이제 다소 무색해졌으며 병원은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의 제공과 풍부한 식단의 제공 친절한 직원들의 접대 때문에 빈민이나 일반 서민 뿐 아니라 중산층의 시민들도 상당수 이용한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1860년대 병원. 시설 측면에서 판토크라토르보다 나은 게 그다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수도원 단일 공동체와 일반 다중(多衆)은 어떻게 왕래하였을까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왕래 내지 순환 체계가 동로마식 복지 시스템 대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즉 '경건한 공동체(pious house)'에 속한 복지기관인 병원, 호스피스(말기 환자용 병원), 양로원, 고아원은 모두 외부 일반 시민들로부터 각각 이 시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맞아들였고 이 중에서 양로원, 고아원의 경우 환자가 발생했을 때 바로 병원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더 이상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 특히 12세기 한 병원의 사례로는 - 7일간의 판단 보류 기간을 두어 마지막까지 지켜본 이후 최종 판정을 내려 병원에서 퇴거시키되 호스피스로 옮겨 마지막까지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돌봄을 제공하였습니다. 그 외 공동체에 속한 수도사들이 관리하는 목욕 시설은 공동체 수용인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사용하였습니다. 병원의 경우 환자들은 스스로 일주일에 2일, 의사의 처방이 있으면 언제든지 의사의 호송을 받으며 목욕할 수 있도록 배려받았습니다. 대표적으로 '경건한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병원 등의 조직을 간단하게 도식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옮긴이 주 : 1) 노변(hearth 爐邊)이란 난방용 혹은 요리용으로 실내에 설치하는 화로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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