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는 당신이 다른 어떤 심미적인 활동보다 재패니메이션에 투자하는 시간이

압도적인 경우에 계신분들 에게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은 간간히 나오는 당신이라는 호칭에 민감해 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빠라느니 왜색이라느니 하는 내셔날리즘에 기반한 비판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안노 히데야키나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거장들이 일생에 걸쳐 비판하고 걱정한

오타쿠문화의 폐쇄성과 현실 도피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하지 않나 하는 말입니다.

일본 아니메 오타쿠는 다른 어떤 종류의 오타쿠 보다 짙은 폐쇄성, 현실도피성, 편협한 장르문법성 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오타쿠는 한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이야' 라는 일반 오타쿠(?) 정의 뒤에 숨어서 재팬아니메 오타쿠 변론을 하는것은 논점을 흐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 아니메 산업이 오타쿠들의 빈약한 자존감 혹은 열등감을 자양분 삼아 점점 질과 다양성이 열악해지는 쪽으로 진행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매체를 가지고 이렇게나 뻔하고 편협한 작품들만 찍어내고 소비되는 구조는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덕후들은 항상 이럴때 오시이 마모루 부터 라스코 시릭 등등을 거론하며 자기방어를 하지만, 솔직해 집시다. 덕후들의 벽에 걸려있는 화보와 책장의 피겨들은 메타모프나 나무를 심는 사람에서 튀어나온 것들이 아닙니다.

당신이 소비하는 것들은 빈곤한 자존감과 자아상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갑자기 나를 사랑해주는 미소녀

갑자기 알게된 내몸에 봉인된 힘 (그리고 나를 무시한 사람들 앞에서 짜잔하고 내보일수 있는 ...)

나의 약함을 보완해주고 나만 탈수 있는 거대한 로봇...

안노 히데야키도 이것들을 빼버리면 어떤 오타쿠도 보려하지 않는 편협한 성향에 크게 절망했다고 합니다.

이런 소재들의 공통분모는 '빈약한 자존감' 입니다. 이것이 키워드가 아닐까요? 위에서 열거한 소재들 로는 약한 자존감을 강하게 만들지지 못합니다. 단지 잠시의 도피처를 제공해주어 자존감이 아닌 허무하고 실체없는 자존심을 잠시 세워줄 뿐입니다.

재패니메이션은 오타쿠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중독성 마취제를 놓아주는 것일 뿐입니다.

너는 별로인 사람이라 너를 좋아해 주려면 너무도 착하고 순진한 여자가 필요해

너는 약한 사람이니 초능력이 필요해

너는 이것이 있어야 해 저것이 있어야 해....

물론 모든 질낮은 판타지적 문화상품이 이런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재패니메이션은 그것만이 압도적으로 많이 생산되고 소비 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나는 충분히 잘나지 못했다.' 라는 이러한 수치심을 융은 '마음의 진창' 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것을 지독하고 집요하게 자극하여 돈을 버는 산업이 바로 재패니메이션의 지금 모습입니다.

당신이 당신만의 세계에서 이런 환각작용과 함께 살고 싶다고 하신다면 물론 당신의 자유입니다. 존중해야겠죠.

그러나 질낮은 판타지는 완성된 자아 앞에서는 매력이 약해지는 법입니다.

자기를 담담하게 인정하고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고, 내가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세상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탐색하기로 결심한 사람만이 가질수 있는 당당함과 믿을수 없을 정도의 편안함.

자기를 사랑하고 긍정 할때만 올수있는 이런 정신적 성숙을 더디게 하는 쪽으로만 발전하고 있는 재패니메이션에 대해서 한번 치열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애니메이션을 즐기고 사랑한다면 그 문화를 좀더 비옥하게 가꾸는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쓰다보니 너무 길어지고 귀찮아 졌습니다. 에반게리온 이야기 같은 셀프탈덕 이야기들도 더 하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