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고대 로마 제정기, 로마 인들이 영양분을 얻었던 공급원은 주로 밀가루, 곧 빵으로부터였습니다. 고대 제정시기 성인 1인당 최고 6파운드(1)의 빵을 소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수치가 12세기에 이르면 1.5파운드까지 감소하게 되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1/4배의 엄청난 차이가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대 로마 시기에는 아직 육류 소비가 일상화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6파운드에 이르는 빵을 소비할 수 있었던 것인데요, 이렇게 탄수화물에 국한된 영양섭취는 올바른 영양 균형상태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고대 제정 시대 로마 인들의 키가 다른 시기 육류 소비가 활발하던 때보다 작은 것은 필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세 로마 시기에 들어서 일반적인 식단은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변하였습니다. 곡물, 콩, 올리브 기름, 일일 생산품-유제품 종류?-, 어류, 육류, 채소류, 과일류, 꿀(당류 보충), 가금류(알, 고기), 버터(소아시아 내륙에서 올리브 대용). 뭐 이러한 식단으로 대충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여기에 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 합니다. 육류 섭취가 일상화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 서민들이나 가난한 농민들이 충분히 고기를 섭취하기는 힘들겠지요. 그러한 결핍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콩이 제시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각론을 제하고나서 가장 중요한 고기 소비로 넘어가보면, 특히 11-12세기에 들어서 육류 섭취량이 정점에 달하였음이 여러가지 문헌에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이 글의 제목을 제공한 글도 있었는데요,
무려 '고기는 흉년을 위한 구황식품' 이라는 묘사를 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이 시기에 육류가 일반적인 식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하네요.
'고기는 구황식품 아닌가요? 뿌우~' 사실 고기를 구황식품으로 분류한 것은 부자나 귀족들의 사치스런 취향때문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천한 것들은 빵 없으면 고기나 먹어!? 고기를 구황식품으로 묘사했던 것은 가축이 곡물이 풍요롭게 생산되었을 때 이를 비축함으로써 곧 닥칠 흉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는 실제 과학적으로 판명할 수 있는데, 현대 그리스에서 17년마다 2년씩 밀 생산량이 형편없이 악화된다고 합니다. 그나마 현대가 아닌 중세기에 이런 2년의 공백은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었고,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에서 육류 공급은 최선의 대책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육류 공급이 대량으로 가능할 수 있었던 요인은 상당히 광활한 목초지의 존재에도 의존하고 있습니다.
대략적 강수량 분포 짙은 부분일수록 강수량이 적은 편인데, 로마 제국령의 상당 부분이 저런 지역이라 농경은 안되어도 목축에는 제격이죠 육류와 더불어 제공되는 콩, 다양한 채소와 과일류(사과, 견과류, 무화과, 배, 멜론, 석류, 건포도, 올리브, 꽃상추, 시금치, 당근, 양배추, 부추(리크), 순무, 무, 샐러드용 비트 뿌리, 양파, 마늘, 오이, 양상추, 호박 등)는 당연히 영양상태를 유지하는데 최적의 식단을 제공해주었고 이 덕분에 영양학적으로 크게 손색이 없는 식단이 완성되었습니다. 또한 11-12세기의 평균적인 농민 가정은 자급자족, 아니 그 이상의 식량 생산을 했고, 도시 노동자들의 임금조차도 생계를 유지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면에서 볼 때, 11-12세기 시기 로마 제국의 시민들은 충분한 영양 섭취를 할 수 있었고 농민들의 경우는 잉여 생산물이 충분히 남아도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렇듯 풍요롭고 부족한 것 없는 태평천하가 도래하였으므로 이 시기에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도시화와 인구 증가, 엄청난 상업 발전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이 존재하는 데 있어서 Harvard 대학교 Angeliki. E. Laiou 교수님과 Dumbarton Oaks 연구소의 논문집 중 EHB04 - [The Human Resources]가 큰 조력이 되어주었음을 말미에 알립니다. 주 1) 본 논문에서는 4파운드 내지 6파운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