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쯤의 일이었다. 그 날도 학교 수업 끝나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었다.
평소처럼 일을 하는데 가게 밖으로 이상한 형체가 지나갔다.
흰색에 가까운 회색이었고 머리, 몸통, 팔, 다리는 얼추 나뉘어져 있지만 그 밖의 굴곡이랄 것이 전혀 없이 평평했다.
옷도 안입었는데 색깔이 그래서인지 나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러한 기묘한 형체가 가게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 손님도 없을 시간이고 해서 나는 가게 밖으로 따라나가보았다.
역시나 인간의 형상은 하고있지만 저건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바로 옆에서 스쳐지나가면서 얼굴도 확인해보았다.
눈코입 할것 없이 평평하고 머리카락도 없었다.
나는 서둘러 가게로 돌아가 점장님을 끌고 나와서 그 형체를 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점장님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으로,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하긴 그러고 보면 저런 이상한 형체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응당 눈길을 끌 법도 한데 놀라고 있는 건 나 뿐이었다. 아무래도 나 이외의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아르바이트 직원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아무도 그 형체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너...요새 레포트 쓰느라 바쁘다더니 괜찮은거냐? 자른다는 말 아니니까 며칠 정도 쉬도록 해."
아무래도 이런 내가 위험해 보였는지 점장님은 말했다.
이러다가는 다들 날 미쳤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사실 아까 그 형체도 보아하니 무슨 해를 끼칠것 같진 않았고 인간세계에 간섭을 하려는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면 정말 내가 헛것을 봤을 수도 있다.
일단은 보여도 안보이는 척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람들에게도 장난이었다며 대충 둘러대고 그 자리를 일단 모면했다.
그 후 며칠 간 그 일은 입밖에도 꺼내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 가게 같은 아르바이트 생 중 고등학생인 A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일이 끝나고 A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OO상. 이상한 형체 봤다면서요?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이었어요?"
"아 그거 농담이었어.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마."
내가 쓴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자 A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은요, 다들 미쳤다고 생각할까봐 입다물고 있었는데....저도 며칠 전부터 이상한 사람같은게 보여요..."
거짓말을 하는 기색도 없고 이야기를 일단 들어보니 디테일까지 내가 봤던 그 형체랑 같았다.
게다가 A의 말에 따르면 형체들은 단지 길을 걷고 있는게 아니라 어떤 사람을 따라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몰랐지만 그 형체는 매 시간마다 한두명씩 꼭 가게 앞을 지나간다고 한다.
끽해야 하루에 한두명일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 상당한 숫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형체의 정체가 궁금해진 우리 둘은, 하루 날을 잡아 학교와 아르바이트 둘다 빠지고 형체 뒤를 추적해보기로 했다.
드디어 디데이.
우리는 아르바이트 하던 가게 근처 골목에서 만났다. 의외로 금방 그 형체들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발견한 형체는 2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어떤 여성의 뒤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 형체는 항상 보던 그들과는 모습이 조금 달랐다.
우리가 늘 보던 형체는 흰색에 가까운 회색빛에 사람의 형체를 하고있었는데,
오늘 발견한 이 형체는 확연히 어두운 색깔을 띄었고 몸의 일부가 파손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오른쪽 어깨에서 배까지 원형으로 도려내져 있었다.
사람으로 따지면 즉사했을 부상.
"징그러워....OO상 이제까지 저런거 본적 있어요?"
A는 그 형체에 바싹 붙어 따라가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 나도 허여멀건 한 것 밖에 본 적 없어."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기분탓이려니 그 형체의 뒤를 쫓았다.
10분쯤 따라갔을까. 우리는 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모 방송국 건물이었다.
여자는 형체와 함께 건물 안에 들어갔지만 나와 A는 그 건물을 보고 아연실색 하고 말았다.
건물 주변에는 엄청난 숫자들의 형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열명 스무명 수준이 아니었다.
언뜻 봐도 삼사백명은 넘어 보였다.
하루에도 몇명씩 지나갔으니 한명이 아닐줄이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많이 있을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A또한 나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 둘은 한동안 그들을 지켜보며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 형체는 백색에 가까운 것이 있는가 하면 흑백에 가까운 것도 있다.
파손된 부분도 갖가지로, 아까 여자를 따라다니던 형체처럼 몸의 반 이상이 없는가 하면 머리의1/3만 남아있는것, 외팔인 것, 외다리인 것, 상반신이 아예 날아가고 없는 것 등 여러가지로 다양했다.
물론 우리가 늘 가게앞에서 보던 것처럼 파손이 없는 온전한 형체도 많았다.
흰빛을 띌수록 파손이 심하다거나 검은 빛을 띌수록 파손이 심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색깔이나 파손도는 딱히 관련성이 없어보였다.
그리고 흥미로웠던 것은 사람을 따라다니는 형체들은 말고 아직 따라다니는 사람이 없는 형체들이었다.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형체들은 방송국 건물앞이나 지하 주차장에서 무작정 대기하다가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골라 따라붙었다.
원칙적으로는 한명당 형체 하나가 따라붙었다.
그렇다고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마다 다 따라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형체가 따라다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은 전혀 알수 없었다.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고 나가는 사람의 경우, 탑승하는 순간 형체도 함께 빨려드는 듯이 같이 탔고, 타겟이 내리는 순간 형체도 연기처럼 나타났다.
A와 나는 이런 광경은 일찌기 본적이 없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 광경이다.
한참동안 형체들을 관찰하는데, 갑자기 아무런 기척없이 A의 뒤에 불쑥 형체가 나타났다.
너무나도 놀라 A에게 뭐라 말하려는 순간,
"너희들 우리가 보이는거지?"
형체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기괴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았고,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마치 전파수신상태가 불량스러운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지지직 하는 잡음이 섞여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돌아보려는 A를 서둘러 붙잡았다.
팔을 붙잡고 그를 조금 끌어당겨 뒤에 있는 형체에게서 살짝 거리를 두고, 들리지 않도록 소리를 죽여 말했다.
"저 말에 대답하지마. 쳐다도보지 말고. 이제부터는 문자로 하자."
그 때 어째서 이런 판단을 내린건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된다는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다.
[일단 무조건 모르는 척해. 우리가 그들을 못본다는 걸 형체들이 확실히 인식할때까지 연기해.]
A에게 문자로 지시한 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밥을 먹으러 가자며 부산을 떨어 그 자리를 떴다.
어쨌거나 일단 그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부자연스럽지 않도록 대충 아무 대화나 주고 받으며 우리는 한동안 걸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할말이 없는 법.....
할말을 만드려고 마구잡이로 아무 말이나 꺼냈다 금방 대화가 끊겨 정적이 흐르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에도 형체는 우리를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너희들 보이는거 맞지? 우리가 여기 있는거 실은 알잖아? 무시하지마. 보이는거 다알아."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우리들 앞에서 형체는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우리의 표정을 살피며 끈덕지게 말을 걸었다.
친절한 듯 하지만 묘하게 악의가 담긴 말투에, 얼굴은 눈코입 없이 평평해서 표정이 보이지 않는게 꽤나 공포스러웠다.
나는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맛집이 있던걸 기억해내고 A에게 말을 꺼냈다.
"여기서 조금 먼데 맛있는 집이 있어. 거기 갈래?"
우리는 전차를 타고 30분 이상 걸려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개찰구를 나서는데 A에게서 문자가 왔다.
[따라오는 형체들이 늘어났어요..]
깜짝 놀라 올려다본 A의 얼굴은 심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전차안에서도 한명밖에 못본 것 같은데 대체 언제 늘어난거지...
나는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 눈치껏 부자연스럽지 않도록 뒤쪽을 살며시 체크했다.
10명도 넘는 숫자.....
늘어났다기에 두세명이겠거니 했는데 예상 밖의 사태다.
겁이 났다.
불안정한 마음을 필사적으로 숨기며 일단 목적했던 맛집으로 들어가 나는 카레를 주문했다.
머리속은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했다.
그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을 형체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우리는 필사적이었다.
결국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식사를 마쳤다.
누가 봐도 맛집에서 밥먹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애시당초 열 몇명의 형체들이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빙 둘러싸고 주문이라도 외우는 듯 "우리 보이는거 맞지?" "우리 보이는거 맞지?" 라는 말을 반복해대는 상황에서 맛을 음미할 마음의 여유따윈 없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맛집에서 나와 차례로 쇼핑에, 오락실에, 평범하게 놀러다니는 시늉을 하면서 형체가 보이지 않는 척 연기를 지속했다.
하루종일 노력한 보람이 있어 저녁때 쯤 되니 형체들도 하나 둘 줄어, 결과적으로 두명이 남았다.
하지만 남은 그 두명이 도무지 사라질 생각을 하질 않았다.
[오늘은 일단 집에가자. 그 많던 형체들도 다 사라졌으니 쟤네들도 조만간 없어질거야. 조금만 더 버티자.]
어쩔수없이 A에게 문자를 보내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나와 A가 각자의 집으로 향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두명의 형체들도 각각 한명씩 우리 뒤를 따라왔다.
집에 도착해서도 형체는 방안까지 따라와서 나를 감시했다.
"솔직히 말해. 나 보이잖아?"
솔직히 이쯤되니 무서운걸 넘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응을 보였다간 무슨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잠자코 있었다.
형체도 점점 인내심이 바닥이 났는지 그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야!!!!!!너 빨리 대답 안해?!!!!!???!보이잖아!!!!"
잘려고 준비할 즈음에는 말거는 빈도도 잦아지고 말투도 더더욱 거칠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고 나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드디어 형체도 포기했는지 "진짜 안보이나....?"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한시름 놓고 있노라니 A에게서 전화가 왔다.
"드디어 사라졌어요!!!!!!"
전화를 받으니 형체가 없어졌다며 울음섞인 A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심이 된 나머지 울고있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끈질기던 형체들이 그렇게 단번에 포기하고 사라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A군 진정해. 아직 확실히 모르는거야. 좀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이제 괜찮다니까요!!! 그런데 그 형체말이에요..사라지기전에 이상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너희가 만일 눈치를 챘더라면 너희를....."
A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로 엇!!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대로 전화가 끊기고말았다.
걱정이 되어 몇번을 전화해 봤지만 A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는 곳을 몰라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A에 대한 걱정과, 형체들이 보고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결국 잠이들지 못하고 아침까지 게임을 하면서 밤을 지샜다.
날이 밝자마자 학교 가기전에 아르바이트 하는 가게에 들렀다.
A의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점장님에게 A의 주소를 묻자 점장님은 뜻밖의 말을 했다.
"어제 A말야 집에서 책장이 쓰러지는 바람에 다쳤다는가봐. 목숨엔 이상이 없다고는 했는데 입원했는 모양이더라고. 아까 A어머니께서 전화주셨어. 입원해서 한동안 일하러 못나올 것 같다네."
일단 점장님께 A의 병원주소를 받은 뒤 그날 저녁,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A의 병원으로 문병을 갔다.
다행히도 머리를 부딪쳤지만 큰 이상은 없는 듯 며칠간의 검사가 끝나면 퇴원할거라며 A는 말했다.
어제밤의 정황을 듣고싶었지만 A군의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은 탓에 단기성 기억상실증에 걸려 어제 하루를 아예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단지 어제의 기억만을 잃은 것은 아닌것 같았다.
형체에 대한 이야기 해도 A는 그 어떤 것도 기억을 하지 못했다.
어제의 기억만 사라졌다기보다는, 형체와 관련된 기억 모두가 송두리채 사라졌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그 외에는 평소의 A와 다를바 없었다.
A는 사흘간의 입원 후에 퇴원했고, 아르바이트도 정상적으로 나온다. 현재까지 이상한 점은 없다.
나는 그 이후로도 한동안은 그 형체가 보였지만 언젠가부터 눈에 띄는 일이 없어졌다.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형체의 그 목소리도 그날 밤 이후로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단 한가지 아직까지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날 방송국 앞에 모여있던 몇백명의 형체들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어째서 그 앞에 밀집해 있었던 것일까.
파손되어있는 형체들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