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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형 중세 병원과 사회 구조 (1) 먼저 이 부분과 관련하여 8세기에 무슬림 제국(諸國)과 이집트, 지중해 해안 일대를 방문한 당나라 사람의 일대기를 서술한 글을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꼭 보지 않으셔도 되지만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이야기거리입니다. 클릭 =>
중동을 여행한 당나라인 위의 링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제가 아래에 인용해 놓은 부분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비잔틴 인들에 대해서 놀란 것은 그들이 뛰어난 의술을 갖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비잔틴 출신의 기독교인 의사는 안질과 이질을 치료했고, 심지어 뇌수술을 해서 종양(두환은 이것을 벌레로 착각했습니다)을 꺼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집트와 시리아 지역에서 기독교인 의사들이 사라센의 의술을 주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동로마에서 병원이 처음 나타난 연혁과 그 용어에 대한 안내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고대 그리스 시대로까지 거슬러올라가면 이미 이 때부터 많은 실패를 거치면서 기본적인 의학 지식을 쌓기 시작하는 의사들 - 당시 표현으로는 의학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를 활용해 '아스클레피아드의 아들'이라고 하는 - 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고대 로마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이들 의사들은 거의 대부분이 개인 영업을 하는 이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치료 비용은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의료라는 서비스가 일반 다중이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체제가 변혁을 경험하게 된 것은 3세기와 4세기,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는 와중에서 많은 신자들이 '디아코니사'라고 하는 자선 단체를 만들고 자선 기관을 운영하면서 많은 빈민들을 구제하는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 와중에 '전문적으로 환자를 수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전 과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의 병원의 개념이 확립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7~8세기에 이르면 병원과 호스피스(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가 편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보내지는 곳), 요양원과 양로원, 고아원 등이 엄밀하게 분리되었으며 이 구분된 각 기관들은 수많은 정치적 부침에 거의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사회 내에서 유지되었고 그 결과 1453년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제 기능을 하고 있었습니다. 8세기의 병원(Xenones -
그리스어 발음 )과 의학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고 얘기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병원들은 기존의 왕조 국가들이 정부 자체에서 지원해 유지한 의료 기관과는 분명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의료 기관이 국가의 지원 및 관리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상술해볼까요?
보통 국가의 지원/관리에서 벗어난다고 하면 사유화(Privatization)로 이해될 수 있지만 실제로 로마에서 이루어진 것은 조금 맥락이 달랐습니다. 계속 보시죠. 본래는 여관이나 여인숙 정도의 의미를 가지며 오늘날 그리스에서 호텔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Xenodocheion은 4세기 전반의 이른 시기부터 "병원 + 빈민 구제소"의 혼재된 개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332년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가 기아에 시달리는, Xenodocheion의 빈민과 미망인 및 성직자들에게 지급하도록 시리아의 교회에 곡물 공급권을 제공한 것이 그 첫 기록이었으며 이어서 344년과 370년도에도 사용되다가 마침내 381년에 이르러 본격적인 의미의 병원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당시 안티오키아에서 부제일을 맡고 있던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는 자신의 친구인 스타기로스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형태의 고난'에 대해 고찰할 것을 제안하는 와중에서 Xenon의 관리인에게 요청해서 "질병의 이상한 형태 그리고 모든 우울함의 근원인 모든 악의 뿌리를 볼 수 있게" 하라는 얘기를 하게 됩니다. 아직 '전문적인 의사'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이는 분명히 '전적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의 병원을 가리키는 언급이었고,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일반적인 병원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