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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형 중세 병원과 사회 구조 (1)
게시물ID : history_45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름없는여자
추천 : 0
조회수 : 5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5/30 14:35:00
오늘 다루어보고자 하는 내용은 서양의 병원과 의학 기술의 유래 및 연혁 그리고 특수한 의학 복지를 뒷받침해주었으며 나름의 특징을 보유한 사회 구조에 관련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사회에서 일반 다중(多衆)에게 제공하는 복지에 대한 관심은 있기도 하고 특히 재정의 부침 문제 등과 겹치면서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정부가 독점적으로 이를 책임지는 방식보다는 준 공영으로 운영되면서도 사회 자체적으로 유지되는 모델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병원과 의학 기술의 역사를 다룬 서적에서 관련된 내용을 추론할 수 있었기에 이러한 글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1936년, 저명한 의학사가(醫學史家)인 Henry Sigerist는 병원이 절망적으로 빈곤한 이들의 마지막 피난처에서 탈피하게 된 것은 겨우 19세기의 후반 반세기 때부터였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 때에도 분명히 4세기의 그리스도교 자선 기관들이 병원을 탄생시킨 것은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만 오랫동안 많은 학자들은 4세기 이래로 19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의 병원은 일절 과학적 방법론으로 접근한 의학이 부재하였고 다만 빈민들의 피난처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미국에서 의학 기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갔던 Paul Starr도 "19세기까지는 병원과 의학 기술의 발전이 독자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였지요. 그러나 그러한 주장에는 심각한 비약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 글은 시작됩니다. 근세 시대, 이탈리아의 플로렌스 시에는 15세기 인본주의자들이 '그리스도교인들의 첫 번째 병원'이라고 환영하였던 '새 성모 마리아(Santa Maria Nuova)' 병원이 존재하였습니다. 이 병원은 플로렌스 시내에서 가장 뛰어난 의사 여섯 명을 고용하고 있었고 이 의사들은 매일같이 출근하여 환자들의 치료를 관장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젊은 의사 세 명에게 숙식을 전제로 병원에서 살면서 전일제로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대신 의술을 배우는 것을 지원해주었습니다. 환자에 대한 보호와 더불어 이 병원은 외래 진료를 운영하였습니다. 비싸게 돈을 주고 개인 의사를 둘 수 없는 처지의 시민들도 이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고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확히 플로렌스 시민들 중에 얼마의 사람들이 이 시설을 이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병원을 이용했던 개인 환자의 기록을 분석해보면 1502년에서 1514년 사이에 '새 성모 마리아' 병원의 생존 퇴원율이 약 86~91%를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말인즉슨, 1500년대 초반 13년동안 겨우 9~14%의 입원 환자가 사망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그 상실은 엄청난 일이겠으나 현대적인 방역이나 백신 등의 보급이 없어 전반적으로 전염병 등에 취약한 상황에서도 저 정도의 수치를 기록한다는 것은 상당한 선방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의아하게도 플로렌스의 이 '새 성모 마리아' 병원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그 이전까지의 서유럽식 병원과는 판이하게 차이가 납니다. 병원의 구조나 운영, 치료법 등의 측면에서 그러하지요. 학자들은 아직까지 명확한 사실 관계를 규명하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1453년까지 콘스탄티노플의 병원(당시 본토 표현으로는 Xenones)에서 과학과 의학을 가르쳤던 지오반니 아르기로풀로, 즉 요안니스 아르기로풀로스가 1453년 이후 플로렌스에 정착하면서 그리스 인들이 그리스의 학문과 의학을 가르치는 와중에서 강력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추측을 뒷받침하는 매우 강력한 증거 중 하나로 '새 성모 마리아' 병원에서 종종 환자의 병증에 효과적인 치료법을 기록해 두는 관습이 있었는데 바로 그러한 현상이 동방 제국의 병원에서 지난 1천년동안 사용해 온, 전형적인 치료 방법 축적의 한 수단이었다는 점입니다. 더불어 최소한 3가지의 치료법이 동방의 병원에서 직접 전해온 것으로 보인다는 점도 한 가지 요인입니다. 플로렌스 시에서 아직도 운영 중인 '새 성모 마리아' 병원 실제 건축 공사는 1543년과 1550년 사이에 완료되었으나 그 전부터도 운영되고는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 이 건물의 기초는 중세 그리스의 '정사각 십자가형' 교회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고 하니 여기에 끼친 동로마의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로마에서는 어떻게 병원이 형성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부터 최소한 오늘날의 '병원'에 해당하는 개념, 즉 '병에 걸린 환자가 편하게 쉬면서 치료나 수술을 받고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이와 관련해 빈민 구제소나 요양원과 구분될 수 있었는지부터 시작하여 의학 기술의 발전 연혁과 그 양상을 다뤄볼 것입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핵심 주제로 다루어질 병원 운영과 관련된 사회 복지 체제(개인적으로는 이 정도 정비된 체제부터야 복지의 이름을 달 수 있다고 보긴 합니다) 등에 관해 서술하려 합니다. - 다음 글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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