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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포풍, 폭풍이 몰려온다!! (4)
게시물ID : history_45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름없는여자
추천 : 3
조회수 : 187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5/27 14:15:21
지난 글 : 3. 바실레프스키의 등장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kind=&ask_time=&search_table_name=&table=history&no=4512&page=1&keyfield=&keyword=&mn=&nk=&ouscrap_keyword=&ouscrap_no=&s_no=4512&member_kind= 4.포풍의 계획안과 포풍을 위한 붉은 군대의 준비 8월 폭풍 작전의 개요 자체는 바실레프스키 답지 않게 무척 간단한 편이었습니다. 서쪽과 동쪽에서 가해지는 두 개의 주공으로 만주 양쪽에서 들이쳐 포위망을 완성하고 북쪽의 조공이 포위망 안을 소탕한다는 간단하지만 거대한 이 작전은 만주 동쪽에서 시베리아 군관구의 전시 편성 형태인 제 1 극동전선군이 공세를 가하고 서쪽에서는 바이칼 군관구의 전시 편성 형태인 자바이칼 전선군이 공세를 가해서 관동군을 협격하고 시베리아 군관구에서 갈려나온 제2 극동전선군이 북쪽에서 조공을 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참 쉽죠? 서쪽에서 공세를 가하는 자바이칼 전선군은 내몽골 사막지대를 가로질러 대싱안링 산맥을 넘어 진격할 계획으로 선양을 점령한 뒤 남만주의 장춘까지 도달할 제1 극동전선군과 합세해 협공을 완성할 예정이었습니다. 공세의 선두로 독소전쟁에서 혁혁한 활약을 한 제6 근위전차군이 나서 357킬로미터에 이르는 진격을 달성할 예정이었습니다. 공세의 좌익은 제36군이 맡아서 제6 근위전차군과 기타 제대들의 진격을 엄호하는 동시에 제2 극동전선군과 하얼빈, 치치하얼과 합류할 계획이었습니다. 스타브카는 자바이칼 전선군이 고립된 일본군의 저항을 우회하여 사막 지역을 가능한 한 빨리 건너, 수비군이 알아채기 전에 대싱안링 산맥을 넘는다는 계획 하에 상당한 병참의 문제를 감수하고서라도 내몽골 사막지대에 부대들을 집중시켰습니다. 일본군 정보 장교들은 소련이 이렇게 먼 곳에서 기계화 부대를 지원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동쪽에서 공세를 가하는 제1 극동전선군은 제1 적기군, 제5군, 제10 기계화군단을 선봉으로 삼아 동쪽에 밀집된 관동군 요새들을 돌파하여 1차 목표로 무단장을 함락시키고 지린, 하얼빈, 장춘으로 쇄도하여 자바이칼 전선군과 장춘에서 합류하여 포위를 완성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2차 목표로 제25군이 한반도로 진격, 38선까지 진격하는 것을 두었습니다.(아오 ㅅㅂ) 북쪽에서 조공을 가할 제2 극동전선군은 하얼빈과 치치하얼로 진격해 자바이칼 전선군과 합류한 뒤 포위망에 같힌 관동군을 섬멸하고 다른 전선군들이 장춘을 점령한 뒤 요동 반도로 진격, 뤼순항을 확보할 계획이었습니다. 각 전선군의 편제는 이렇습니다. 자바이칼 전선군 제17군 제36군 제53군 제6 근위전차군 플리예프 소련-몽골 기병-기계화 집단 제12 항공군 총병력:654,040명 야포:654,040문 다련장로켓포:583대 전차, 자주포, 돌격포:2,416대 항공기:1,324대 제 1 극동전선군 제1 적기군 제5군 제25군 제35군 제10 기계화군단 제9 항공군 총병력:586,589명 야포:11,430문 다련장로켓포:516대 전차, 자주포, 돌격포:1,860대 항공기:1,137대 제 2 극동전선군 제2 적기군 제15군 제16군(여기 소속인 제56 소총병 군단은 사할린에서 공세를 할 것이었습니다.) 제5 독립소총군단 아무르 분함대 제10 항공군 (위키에서 찾은 건데 제2 극동전선군 소속의 Chuguevsk Operational Group 이 대체 뭔지 모르겠습니다 -_-) 총병력:337,096명 야포:5,988문 다련장로켓포:72대 전차, 자주포, 돌격포:1,280대 항공기:1,260 포풍으로 몰아닥칠 이 전선군들은 총 89개 사단 1,577,725명의 병력과 3,704대의 전차, 1,852대의 자주포, 돌격포, 구축전차, 1,171대의 다련장로켓포, 27,086문의 야포, 85,819대의 차량과 3,721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으앍 물량포스) 4년간 죽을 힘을 다해 전쟁을 치러온 국가로서는 어마어마한 역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붉은 군대의 물량을 보라! 물론 독소전쟁의 여파로 사병들의 연령층은 대부분 10대 후반과 40대 초반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대병력을 극동으로 이동시키기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수송능력이 한정되서 상당한 양의 차량을 동원해야 했습니다. 이 포풍을 실현시키고 또 미래의 소련군을 위해, 스타브카와 바실레프스키는 소련군의 대대적인 개편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만주의 전선군들을 총 지휘할 새로운 사령부가 필요했습니다. 무대가 유럽이라면 그냥 모스크바의 스타브카가 지휘해도 되겠지만 사실상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는 시베리아까지 스타브카가 지휘하기에는 큰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아는 바실레프스키는 아예 극동의 전선군들을 통합 지휘할 새로운 상급 사령부의 구성을 요청했고 마침내 사실상 '극동의 스타브카'와 다름 없는 '극동전략방면군'이 창설됩니다. 극동전략방면군은 작전 종료 후에도 아시아에 영향을 미칠려는 스탈린의 의중이 반영되어 사실상 상설기구화 되서 현재까지 남아 러시아의 바이칼 군관구와 시베리아 군관구를 통제 하에 넣고 있는 상급 사령부로 남아 있습니다. 이 새로운 사령부 구성을 일본 정보부서 뿐만 아니라 연합국에게도 숨기기 위해 극동전략사령부는 '상장 바실레프스키 그룹'이라는 가공의 존재로 칭해집니다. 극동전략방면군 편제표 극동전략방면군 초대 사령관에 취임한 바실레프스키는 극동에 배치될 사령관들을 교체합니다. 제1 극동전선군에는 겨울전쟁에서는 잉여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범장 이하의 능력을 보여줬지만 핀란드군과 독일 북부집단군을 상대로 죽어라 구른 결과 능력 있는 장군으로 다시 태어나 경보병으로 종심작전을 실현하는 방법까지 창안한 전 카렐리야 전선군 사령관 키릴 메레츠코프 소연방 원수가 임명되었습니다. 난 더 이상 잉여가 아니다! 자바이칼 전선군에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때부터 소련군의 대공세에 선봉으로 서 오면서 항상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헝가리로 쳐들어가 부다페스트를 점령한 전 제2 우크라이나 전선군 사령관 로디온 말리노프스키 소연방 원수가 임명되었습니다. 덤벼라 야뽄스키들아! 제2 극동전선군에는 별반 활약이 없었지만 극동에서 오래 근무한 막심 푸르카에프 상장이 임명되었습니다. (푸르카예프는 화성작전에 칼리닌 전선군 사령관으로 투입된 후 43년부터 쭉 극동에 있었습니다.) 난 공식적인 초상화나 사진이 없다 ㅠㅠ 듣보잡이라고 이래도 돼? ㅠㅠ 메레츠코프와 말리노프스키만 해도 주바로코 4인방 수준은 아니지만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원수들인데 그 휘하 대장, 상장들도 보통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제6 근위전차군 사령관 안드레이 크랍첸코는 동료들 사이에서 '전차주의자'로 통하는 전차부대의 맹장으로 제5 근위전차군에서 로트미스트로프의 막하에서 활약하다 5개 전차군 이외에 새로운 전차군을 창설할 것을 강력히 주장, 뜻을 관철시켜서 자신의 전차군인 제6 근위전차군의 아버지가 됩니다. 과감하고 뚝심 있게 밀어붙이길 좋아하는 크랍첸코는 제6 근위전차군을 이끌고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기병-기계화집단 운용의 달인인 아이사 플리예프는 기갑부대가 통과하기 힘든 험지에서의 기병-기계화 집단 운용으로 명성을 떨치는 험지 기동의 전문가였습니다. 이 두 대장과 크릴로프 상장, 류드니코프 상장은 만주와 비슷한 험지에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유럽에 있던 자신들의 야전군들을 데리고 극동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극동의 사령관들 교체와 투입과 함께, 붉은 군대는 그들 자체의 체제를 대대적으로 개선하기 시작합니다. 투하체프스키 이론의 부정 등으로 소련의 기계화부대가 크게 후퇴할 때 벌어진 독소전쟁 때문에 소련군은 투하체프스키가 꿈꿨던 제병협동작전을 생각할 세도 없이 독일 기갑부대를 맨 몸으로 막아햐 했고 그 결과 소련은 독일 기갑부대를 우선 틀어막을 대대적인 전차 생산에만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전차를 우선적으로 뽑다 보니 기계화보병을 안전하고 확실히 수송할 다소 비전투적이고 보조적인 장갑차나 수송차량의 존재는 등한시 하게 되어 그 결과, 소련의 기계화보병들은 운 좋게 미제 M3 하프트렉을 타지 못하면 인간 반응장갑이라고 자주 놀리는 전차 위에 올라타고 이동하는 위험천만한 땅크 데산트, 즉 탱크보병이 되어서 기계화전투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땅크 위에 타고가니 야 신난다! 그런데 이 기계화연대들은 뚫어 놓은 돌파구로 진격하다가 독일군이 돌파당할 시 돌파구 차단을 위해 소방수로 투입하는 무시무시한 적을 만나야 했는데 바로...... 중전차대대 왔쩌염 뿌우 중전차대대를 만난 이 땅크 데산트들의 운명은 게다가 기계화되고 장갑화된 운송 수단의 부족으로 소련군 제파식 종심전투 전술에 따라 제1파로 후속 기계화부대와 전차부대의 통로를 열기 위해 투입되는 병력은 많은 숫자가 그냥 알보병이 되고 마는 안습한 상황이 여러번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붉은 공군의 지원과 돌파를 지원하는 전차들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알보병은 ㅠㅠ) 이런 식의 공세들은 항상 기계화보병들의 출혈을 크게 강요하게 되었습니다. ㅅㅂ 장갑차만 제대로 주어지면 이 고생 안해도 되는데...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자, 소련군은 문제가 많았지만 고칠 생각을 못하고 있던 이 체제를 바꾸기 시작합니다. 미국에서 M3와 윌리스 트럭들도도 잔뜩 공여받았겠다, 전후에 사용할 이상적인 군사 조직을 구성할 만큼의 충분한 무기, 장비, 그리고 인력을 갖춘 붉은 군대는 더 이상 기계화부대의 개편을 미루기에는 장비가 부족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소련군은 지상군의 '허리'이자 종심침투의 주촉이 될 기계화부대를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오오 M3를 활용한 붉은군대 판 승공포 자바이칼 전선군의 선봉으로 만주에서 작전적 침투를 하도록 되어 있던 제6 근위전차군은 원래 2대 전차군단으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이 중 하나가 기계화 군단으로 교체되고 전차군에 2개 차량화소총병 사단과 2개 돌격포 여단, 2개 경포병 여단, 1개 모토사이클 연대가 배속되면서 제6 근위전차군은 돌파력은 이전보다 다소 떨어졌지만 고속전진-돌파-종심침투라는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최고로 균형잡힌 전차군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제6 근위전차군은 25개의 전차 대대와 44개의 차량화 소총병 대대로 구성되었으며 1,019대의 전차와 돌격포, 자주포를 장비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조는 소련, 러시아의 기계화군 구조의 큰 선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소련군의 기본인 소총병 사단들도 크게 강화되었는데 많은 경우 소총병 사단에는 독립 전차 여단, 돌격포 연대와 1~2개 포병 연대가 추가 배속되어서 소총병 사단이라기 보다는 제병협동 사단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게 바뀌었습니다. 이 편제는 모든 소련 소총병 사단 편제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간단히 하자면, 스타브카는 완성된 종심작전과 나중에 표준이 될 여러 가지 새로운 형태의 편성과 개념을 시험하는 장소로 만주를 선택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전후의 소련군은 모든 제대에 기동력, 작전 지속력, 화력을 부여했습니다. 바실레프스키는 마침내 작전을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끝났다고 판단하자, 8월 3일에 스탈린에게 작전 실행 준비가 모두 끝났다고 보고하고 필요하다면 8월 5일에 작전을 시작할 수 있다고 보고합니다. 포풍이 몰려온다!!! *옮긴이 주 1) 스타브카 (СТАВКА): 소련의 전시 작전지휘 최고 사령부입니다. 극동의 스타브카라 칭해질정도로 극동전략방면군은 상당한 군축이 진행된 현재의 러시아에서도 수위의 전력을 자랑하는 또 재량권을 가진 사령부입니다. 2) 승공포 : 국내에서 후방 내지 산업 단지등의 방공과 보병 지원을 책임지고 있는 M45 쿼드마운트 4연장 기관총을 말합니다. 원래는 M16 다용도 자주포라 하여서 장시간 사격이 가능한 M2 기관총의 개량형인 M2HB 4문을 묶고 장탄수 5,000여 발이 탑재된 M45D 즉 M45 쿼드마운트 4연장 기관총을 탑재시킨 M3 반궤도 장갑차의 파생형에서 유래된 것으로 사람을 갈아마시기 좋다 해서(....) 미트쵸퍼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한국전쟁이나 베트남 전쟁 등에서도 활약할 정도로 그 효과가 입증된바 있으며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이 포탑을 채택하여 승공포라는 이름 아래 사용하고 있습니다. 3) 만일 미국이 일본을 가루가 되도록 까뒤짚는 '몰락 작전'이 시행이 되었다면 우리는 태양과 같이 위대한 조선의 영도자님들의 지도 아래 '지상락원'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 몰락작전을 다룬 RedPain님의 글에 쓴 댓글을 가져와 다시 설명드리자면 실전 경험이 있는 거의 유일 무이한 제대로 된 전투병력인 300여명의 광복군 1지대는 사실상 독립부대라 임정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더욱이 지휘관이 팔로군 출신이라 미군과의 연계는 무리입니다, 결국 당시 임정이 직접 통솔할 수 있는 광복군 수는 100여명 정도였는데 이 들의 대부분은 구한말 의병 출신의 원로들과 학자 그리고 문인들로, 실제 가용 병력은 수십도 안되는게 사실입니다. OSS를 생각하실지 모르는데 훈련받은 인원은 30여명입니다. 임정의 실제 가용 병력은 이게 다라고 봐도 좋습니다. 45년 당시 경찰을 제하더라도 한반도 내 일제 병력이 10만에 달한것을 생각해보면, 이건 말 그대로 생색내기 수준 이상 이하도 아닌 문제이며 독립군에 의한 한반도 탈환은 환상일뿐입니다. 4) 하루 두편의 기조를 지키려 하는데, 왠지 도배가 되어 가고 있는듯 하군요, 자제해야 할것 같습니다. >질문이나 반문을 주신다면 성심성의를 다해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절대 조회수 대비 댓글이 없어 쓸쓸한게 아닙니다.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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