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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포풍, 폭풍이 몰려온다!! (1)
게시물ID : history_45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름없는여자
추천 : 3
조회수 : 528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5/26 15:44:41
1.관동군의 전력 독소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일본과의 분쟁이 있었던 외몽골을 비롯한 극동 지방은 무척 평화로웠습니다. 할힌골 전투의 결과로 일본은 소련의 요구를 상당부분 들어주며 1941년 4월, 소-일 불가침조약을 맺고 더 이상의 군사적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불가침 조약을 맺고 기념사진을 찍은 스탈린과 일본의 마쓰오카 외상 6월에 독소전쟁이 발발하고 모스크바까지 위태로워지자 스탈린은 극동의 사단들을 빼 와서 유럽전선에 투입하고 싶었지만 '관동군 특종연습'이란 명목으로 일본이 관동군 병력을 이제까지의 최대 규모인 1,000,000으로 증강하고 대대적인 훈련을 시작하자 일본이 확실히 불가침조약을 준수할 것이라는 것을 믿기 힘들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일본에 침투해 있던 공산주의자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의 첩보에 의해 일본은 불가침조약을 준수하고 미국을 공격할 것이란 전문을 받게 됩니다. (물론 독일과 호응하여 시베리아와 외몽골을 공격하자는 '북방 작전'을 입안하고 추진하려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안심한 붉은 군대는 시베리아 군관구 소속의 7~8개 사단 병력을 유럽전선에 투입합니다. 시베리아의 추위에 익숙했던 일명 이 '시베리아 사단'들은 러시아의 겨울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전투력을 유지해 독일군을 놀라게 합니다. 그런데 시베리아에서 전 병력을 뺀 줄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2대갤의 일빠는 물론이고 정상적인 사람들까지 '일본이 독일과 호응해 소련을 공격했으면 소련을 망했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제법 있지만 엄연히 축소된 편제지만 그 형태와 병력을 유지하고 있는 시베리아 군관구와 바이칼 군관구 병력들이 방자의 이점을 이용해서 관동군을 상대한다면, 그 관동군들은 전부 시베리아의 거름이 되어 시베리아를 옥토로 만들어 그 해 감자농사를 풍작으로 만들었을 거라는 반박이 대세입니다. 일본군 시체 거름으로 재배했다는 시베리아 감자 (뻥이고 이 사진은 네덜란드 감자) 관동군이 그때까지 소련은 공격 안해서 시베리아의 거름 신세가 되는 것은 면했지만 1945년 5월에서 8월 초 까지의 관동군 병력은 옛날의 위세에 비해 참 눈물나는 수준이었습니다. 아, 안습 1945년 당시 야마타 오토조 대장이 지휘하는 관동군의 야전군 급 편제는 2개의 방면군과 기타 독립 제대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만주국 북부에 주둔한 제1 방면군 휘하에는 제3군과 제5군이, 만주 서남부를 지키는 제3 방면군 휘하에는 제30군과 제44군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기타 독립 제대들로 북만주의 제4군, 몽강 일대의 관동방위군, 압록강 일대의 제34군, 그리고 우리나라에 주둔한 제7 군,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의 제5 방면군이 있었습니다. 편제상으로는 제법 야전군 숫자도 많은 제법 괜찮은 전력 같아 보이지만 속사정은 별로 좋지 못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벌어지자 관동군은 계속해서 중국전선이나 태평양전선, 버마전선 등지로 차출당해 1945년 8월 쯤 되면 관동군은 31개 사단, 12개 독립여단으로 구성되었는데 모두 보병이었고, 31개 사단 중 25개 사단이 1945년 창설된 신규사단이었습니다. 게다가 관동군은 당시의 대세이자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는 3개 보병연대+1개 포병연대의 삼각편제를 따르지 않고 1차대전식의 4개 보병연대로 구성되는 사각 편제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즉, 사단 단위 작전에서 포격지원은 꿈도 못꾸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리고 관동군의 전차 전력은... 모에모에 치하쨔응 하악하악 더 설명이 필요한지?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어쨌든 관동군은 저 모에한 치하쨩을 포함해 1225대의 무장 차량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그 무시무시한 독일 국방군과의 전쟁으로 다져질 대로 다져진 붉은 군대가 만주에 어택땅만 하면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그러기에는 소련군의 딜레마가 너무 많았습니다. 생각같으면 그냥 어텍땅 하고 싶은데... 신경쓸 게 제법 많네. 아무리 관동군이 저 정도가 되도, 괴뢰국인 만주국군까지 합하면 그 머릿수는 75만에 달했고 이 숫자는 소련 입장에서도 무시 못할 머릿수였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만주 내에서 항일 게릴라들을 상대로 실전 경험을 겪은 제법 경험 있는 병사들이 관동군을 구성하고 있었으며 여기서 얻은 전투 노하우들을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잠재 적국이 적국인 만큼, 강도 높은 훈련 또한 병행되고 있었습니다. 훈련 중인 관동군의 모습. 관동군의 인적 자원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게다가 사단급 포병지원은 안습이지만 6,700여문의 야포를 운용하는 관동군의 야전군급 포병 밀집도는 제법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미군을 제법 열받게 만든 89식 150밀리 야포, 기타 92식 100밀리 야포, 41식 75밀리 야포 등이 관동군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걸 고려하더라도 붉은 군대가 관동군을 희생을 감안하고 삽시간에 짖밟아 버리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단순한 머릿수와 무기의 질 비교만으로 붉은 군대가 함부로 계획 없이 관동군을 공격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화에 설명합니다. *옮긴이 주 : 1) 모에, 일본에서 파생된 조어인데 그냥 음..귀엽다 내지 귀여운 라고 해석하시면 됩니다. 2) ~쨩, 일본에서 가깝거나 친한 어린이나 여성등을 부를 때 이름이나 호칭 뒤에 붙이는 단어입니다. 다소 거부감이 드는 표현일수 있으나 탈것을 여성화 해서 부르는것은 세계의 공통적인 전통? 이며 글의 원작자 분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점은 그러한 점에 기인한것 같습니다. 또한 사실 치하가 동 시기의 주력 전차 중에서는 크기나 성능 모두에서 참 짠할정도로 빈약하기도 한 점도 기인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연약한 여성의 이미지를 생각하신 것 이실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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