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15078
그래도 문제제기조차 없는 나라... 완벽한 퇴행
일제 식민 지배를 미화하고, 군사독재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면서 논란이 거세다. 일제 지배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다 되지만, 여전히 친일파가 살아있는 듯하다. 일본 우파 정권은 망발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 땅에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고, 이들의 주장이 역사 교과서에 버젓이 실리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암울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 또 있다. 일부 사립학교들은 친일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동상, 또는 기념관들을 버젓이 학교 교정에 세워놓고 있다. 최근에는 친일파들의 동상 등이 새로 만들어지기도 해, 우리 사회가 과연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해서 제대로 청산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
13년만에 다시 세워진 흉상 : 제자를 정신대에 보낸 학교 설립자 2000년 서울의 어느 사립학교. 설립자의 흉상이 교정에 새로 세워지면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애국독립인사로 알고 있었고, 학교 설립자이자 흉상의 주인공이 일제강점기 제자를 정신대에 보내고, 조선 청년들에게 학도병으로 일제군대에 지원하라고 독려한 친일파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
전교조 교사를 중심으로 10여 명이 흉상 제막식에서 이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를 벌였다. 학교측에서는 설립자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고 난리가 났지만, 진실을 알게된 학생들은 교사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특히 학생들은 설립자가 자신의 제자들을 정신대로 보내면서 일장기를 머리에 두르게 하고 찍은 기념사진까지 공개되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졸업생들과 시민사회단체까지 나서 이를 문제 삼자 결국 학교는 흉상이 세워진 지 한 달도 안 돼 이를 철거했다.
위 이야기는 2000년 서울의 중앙여중고에서 벌어진 일이다. 추계예술대와 중앙여중고를 운영하는 그 사학법인은 추계학원이다. '추계'는 이 학교 설립자이자 친일파인 황신덕의 호다.
'교장(황신덕)의 눈물 어린 호소'에 속아 정신대로 끌려갔던 그 여학생은 나중에 왜 자기를 정신대에 보냈냐며 교장을 원망했다. 황신덕은 국방헌금과 전쟁 지원을 호소하는 글을 신문에 쓰고, 전국 순회 시국강연을 다녔다. 그는 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단체의 간부를 맡으면서 조선청년들의 일제 학병 지원을 호소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벌였다.
당시 철거된 것은 추가로 세우려던 흉상일 뿐 이 학교에는 여전히 황신덕의 전신상이 있고, 그의 이름과 호를 딴 '황신덕 기념관', '추계콘서트홀' 등 건물과 장학금이 있다. 게다가 최근 신축된 대학원 건물 앞에는 2000년 세우려다 철거된 흉상이 13년만에 다시 세워졌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완벽하게 과거로 돌아갔다. 제자를 정신대로 보내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설립자의 동상과 기념관을 보면서 2013년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까?
성적조작·입시비리 영훈중 설립자도 친일파 친일파 설립자 동상은 추계학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국제중을 설립해 수억원의 입학 대가를 받고 성적을 조작하는 등 입시비리가 발생한 영훈국제중과 영훈고, 영훈초를 운영하고 있는 영훈학원의 설립자 역시 친일파로 분류되는 인사다.
영훈학원은 일제 강점기 예산과 당진군수 등을 역임하여 친일파로 분류된 김영훈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설립한 학교법인이다. 이 법인이 운영하는 영훈고에는 설립자 김영훈의 흉상이 서 있으며, 영훈초등학교 교정에는 김영훈 부부 전신상이 세워져 있다. 과연 이 학교 졸업생들은 설립자가 친일파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가 죽은 뒤 이 학교 이사장은 아들인 김하주가 맡았으며, 그는 사학법인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 사학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 그는 최근 국제중 입시비리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친일파 인사 중 동상이 여러 곳에 세워진 대표적인 인물은 고려대 설립자로 알려진 김성수다. 알려진 동상만 해도 8개나 된다. 고려대 본관과 중앙고의 입구에 커다란 입상이 서 있는 것을 비롯해, 서울대공원과 <동아일보> 사옥, 인촌기념관 등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를 기념하는 인촌기념관도 있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인촌상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김성수의 광복 직전 동향'이라는 꼭지를 통하여 그의 사진과 함께 그가 창씨 개명을 거부하고, 일제가 주는 작위도 거절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일제 징병을 찬성하는 신문 기고는 명의가 도용당한 것이며,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일본 총리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쓰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에 따르면 김성수는 친일파가 아니라 일제의 탄압을 받던 독립인사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는 그가 일제의 전쟁 동원을 정당화한 대표적인 친일단체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이사였으며, 조선방송협회 평의원을 맡아서 학병을 독려하는 강연을 했고, 관련 글을 다수 쓰는 등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한 친일파라고 밝히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대학생들 중심으로 친일파 설립자들의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운동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고려대와 중앙고 등에 그의 동상은 여전히 건재하게 남아 있다.
학교에 세워진 친일파 동상·기념관 친일파들이 설립하거나 총장을 지낸 학교는 전국에 분포돼 있으며, 해방된 지 70년이 가까운 2013년에도 학교 안에 그 친일파의 동상과 기념관이 세워진 학교가 상당수 있다. (위 표 참고)
조선의 강제합병에 기여한 공로로 귀족 작위를 받았던 대표적 친일자본가 민영휘가 세운 휘문고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그의 자손들은 환수당한 조상 땅 찾기 소송도 진행했다. 상명대에도 설립자인 배상명씨의 전신상이 세워져 있으며, 그의 호를 딴 계당기념관, 계당장학금이 있어 그를 기념하고 있다. 배상명씨는 일제강점기 조선임전보국단 친일단체 간부로 전시 동원을 정당화하고 학병 모집 등 친일 행위를 한 대표적 여성 친일인사로 알려져 있다.
연세대에는 친일단체 간부로 학병을 독려했던 이 학교 총장을 지낸 백낙준의 동상이 있고, 그의 호를 딴 용재관이 있으며, 용재상도 있다. 또 다른 친일인사인 유억겸의 이름을 딴 유억겸 기념관도 연세대에 있다.
최근 국사편찬위원회 교과서 검정심의위가 명예 훼손 우려가 있다고 사진 삭제를 권고해 논란이 일고 있는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의 동상도 이화여대에 있다. 그녀는 '징병제와 반도 여성의 각오'라는 제목의 징병 독려 글을 썼을 뿐 아니라, 조선임전보국회와 애국금차회 등 친일단체 간부를 맡아 일본군 기금마련 운동을 펼치는 등 적극적 친일 행위를 한 대표적 여성 친일파이다. 이화여대에 있는 동상 뿐 아니라 김활란상이라는 여성상도 있다.
이외에도 또다른 여성 친일파로 알려진 인덕대 설립자 박인덕의 동상이 학교에 있으며, 서울여대 설립자 고황경씨의 동상과 그의 호를 딴 바롬교육관과 장학금이 있고, 성신여대 설립자인 이숙종의 좌상과 그의 호를 딴 건물 운정관과 운정장학금 등이 성신여대에 있다.
민주정부에서는 일부 동상이 철거됐지만 일제에 충성 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은 10원의 기여도 없이 영남대의 교주(校主)가 되었고, 경북대 사범대에 "가난한 농민의 아들, 성실한 교육자, 용기는 혁명가, 민족중흥의 위대한 정치인"이라는 문구가 써 있는 흉상 부조가 서 있다.
대표적인 친일문인 중 한명인 동랑 유치진이 설립한 한국연극아카데미는 서울예대의 모태로, 서울예대에는 그의 동상이 있으며, 그의 호를 딴 동랑청소년연극제도 있다.
설립자나 총장은 아니지만 단국대에는 대표적인 친일 음악가인 홍난파의 동상과 함께 난파기념음악관이 있으며, 숭실대에도 친일 음악가인 안익태의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국립대학인 서울대 음대에도 친일음악가인 현제명의 동상이 서 있다.
그나마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에서는 친일파들의 후손들이 눈치라도 보고, 학교에서 친일파 동상을 철거하는 일도 드물지만 있었다. 덕성여대 설립자로 알려진 송금선의 동상이 2000년 철거되었는데, 독립운동가였던 차미리사 여사가 진짜 설립자라는 것이 밝혀지면서이다.
광신중고를 운영하는 광신학원 설립자 박흥식은 일제에 바칠 비행기 공장을 만들고, 국방헌금을 낸 화신백화점 주인으로 일제 강점기 최고의 매판자본가였다. 그는 임전보국회 등 친일단체에서 적극적인 친일매국 행위를 해 해방후 반민특위 제1호로 검거된 친일파였다. 그런 그의 동상이 광신학원의 교정에 버젓이 서 있다가 2001년 철거됐다.
성 남중고를 운영하는 원석학원은 대표적 친일군인인 김석원과 원윤수의 이름을 따서 설립된 사학이다. 김석원은 일본육사 졸업 후 일본군 대좌 및 대대장을 역임하며, 일제 전쟁 협력 강연회 등을 통해 적극적인 친일을 한 인물이다. 교정에 세워진 그의 동상은 이 학교 전교조 교사들과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으로 2003년에야 학교에서 철거됐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추계학원 황신덕, 원석학원 김석원, 덕성학원 송금선, 광신학원 박흥식 등 친일파의 동상 일부가 학교에서 철거되기도 했고, 고려대와 이화여대 등에서도 친일파 설립자 동상 철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보수화되면서 영훈학원과 추계학원 등에서 다시 동상이 세워지고 있지만 문제제기조차 없다.
이래서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할까 백낙준과 이선근, 이병도 등 친일인사로 분류되는 이들이 교육부(문교부) 장관을 지내는 나라에서 교육계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친일을 미화하는 역사 교과서가 등장하는 것도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제자를 정신대로 보낸 교장의 동상과 기념관이 학교에 세워지는 현실에서 과연 일본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제대로 촉구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주정부에서 그나마 사라졌던 친일파들의 동상들이 최근에는 문제 제기조차 없이 되살아나고 있다. 일제에 충성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친일파 군인이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데 이어 그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되고, 새누리당 의원들이 논란이 되고 있는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하고 나서는 것 역시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제자들을 정신대로 보내고, 학병을 독려하며, 국민들에게는 전시동원을 옹호하며 일제에 국방헌금을 낸 친일파들의 동상이 세워지고, 기념관이 세워진 학교에서 어떻게 제대로된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사실 지금까지 이 일을 전교조 교사들과 시민단체들이 해왔다. 이제라도 교육당국은 학교에서 친일파들의 동상과 기념관을 치우는데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박근혜 정권과 보수세력은 친일과 독재의 후예라는 오명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