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완벽한 재앙이다.” 미국 환경 전문가인 산타모니카 대학 윌리엄 셀비 교수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사태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미국까지 흘러오는 방사능 잔여물은 희석돼 무시할 수 있지만 생선 등 어패류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 식품의약청(FDA)도 “바닷물이 방사능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약화시키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하지만 FDA 의도와 달리 미국 국민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바다로 떠내려간 엄청난 양의 방사능 오염 물질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미국 해안 일대로 다가오고 있다는 데 있다.
과학 전문 매체인 <라이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일본 바다로 흘러간 방사능 오염 물질은 2014년부터 미국 해안에 도착하기 시작해 2016년에는 절정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가장 위험한 발암물질로 알려진 ‘세슘 137’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하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자연 상태의 ‘세슘 134’보다 핵분열로 발생하는 인위적인 물질인 ‘세슘 137’이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1년 전부터 스탠퍼드 대학 과학자들은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일본 해안 일대에서 캘리포니아 해안으로 돌아오는 ‘흑다랑어’에서 검출되는 ‘세슘 137’을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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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잡힌 참다랑어에서 방사능 농도가 증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의 오염수 차단 발표, 과학적 근거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가장 크게 타격을 입고 있는 사람은 어업을 생업으로 삼는 어부들이다. 산타모니카 부두의 베테랑 어부 서지오 휴이츨은 “해조류가 밀려오면서 방사능에 오염된 물질이 연안으로 다가온다면 생선 등에 분명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물고기들이 함유한 방사능 수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이곳 부두에는 (행정 당국을 포함해) 그 누구도 방사능 스캐너를 가지고 오지 않는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산타모니카 대학 환경연구소는 “미국 FDA나 연방세관(CBP)이 일본에서 수입되는 모든 식품에 대해 조사와 현지 실사를 하고 있지만 방사능 물질은 30년 동안 잔존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안에 전면 재조사를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FDA는 아직은 일본산 수입 식품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 6월까지 FDA는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식품 중 1313개 제품에 대해 무작위 샘플 검사를 실시했는데, 이 중 199종이 수산물이나 수산물 가공 제품이었다. 여기서 단 한 개의 생강가루 첨가 제품에서만 세슘이 발견됐는데, 이조차도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준치 이하의 세슘이었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일본의 후쿠시마·이와테·미야기·이바라키·군마 지역에서 생산되는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방사능 함유 부유물들이 미국 해안 일대로 다가오자 각종 연구기관에서 세슘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는 점 또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방사능 근원지인 일본은 9월8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25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다. 방사능 누출 논란에도 일본이 개최지로 선정된 데는 아베 신조 총리의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 그는 총회에서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는 통제돼 있고, 0.3㎢의 항만 내에서 오염수 영향이 완전히 차단돼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10월7일 <블룸버그통신>은 “일본 정부는 도쿄전력의 발표를 기초로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지만, 과학적으로는 전혀 근거가 없어 보인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해양학 연구기관인 우즈홀(Woods Hole) 해양연구소의 켄 버슬러 선임 과학자의 입을 빌려 “일본의 주장은 과학적으로 진실이 아닌 어리석은(silly) 이야기”라고 전했다. 버슬러는 “매일 400t 이상의 오염수가 유출되는데 0.3㎢ 항만 내에서 차단하고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방사능 오염수 차단에서는 기술적인 해답도 중요하지만 모두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우선인데 더는 유출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은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의 확신과 달리 10월3일 후쿠시마 제1원전 방사능 오염수 저장 탱크에서 누출 사고가 발생해 기준치의 2만 배가 넘는 방사능 물질 430ℓ가량이 차단벽을 넘어 바다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10월9일에는 최소한 7톤의 오염수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작업자 6명이 피폭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적으로 미국 언론은 아베 정부에 대한 불신을 바탕에 두고 사건을 지켜보고 있다.
10월6일 교토에서 열린 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아베 총리가 3일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문제를 언급하며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지식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다”고 말하자 미국 언론들은 “원전 사고 문제가 통제되고 있다는 자신에 찬 발언은 이제 사라졌다. 사고가 난 지 2년이 지나서야 위험성을 절감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를 포함한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도쿄전력의 발표를 과신했기 때문에 조기에 제대로 된 수습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9월과 10월에만 벌써 5차례나 누출 사고가 있었다며 “작업자들의 실수 외에 누출을 막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언론, ‘후쿠시마의 부서진 삶’ 집중 조명
요즘 미국 언론들의 화두는 후쿠시마의 부서진 삶이다. 10월3일 <타임>은 17장의 사진을 게재하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역의 비참한 생활상을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들도 비슷한 사진으로 후쿠시마를 조명하면서 방사능 누출 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이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언론들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재앙(Global Disaster)’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2011년 3월 당시만 해도 1만㎞나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는 지리적 거리감 때문인지 미국에게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나 점점 미국 해안으로 밀려오는 방사성 물질, 잇따르는 방사능 누출 사고, 사고를 제때 통제하지 못한 일본 정부에 대한 불신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미국은 이미 스리마일 섬의 악몽을 겪은 바 있다. 1979년 3월28일 펜실베이니아 주 스리마일 섬에 건설된 원전 2호기에서 방사성 물질이 누출돼 주민 10만여 명이 대피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미국 정부는 국민의 불안을 없애기 위해 재빨리 전 세계에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전혀 상반되는 대처를 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해 미국의 불안이 점점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http://m.sisapress.com/articleView.html?idxno=61369&menu=2 슬슬 후쿠시마 사태에 미국 시민과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