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일상적으로 우리 영혼 조작·통제한다
박근혜는 거짓말쟁이... 천주교는 예민할 수밖에"
▲ 김인국 신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겐 의무(obligation)입니다."
지난 3월 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1세의 말이다. '가난한 이들의 벗'이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에서 즉위명을 따온 첫 교황답게 그는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폭정'을 낳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각국은 경제를 더 많이 통제해야 한다"며 거침없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최근 한국 천주교회도 그 어느 때보다 바삐 움직이고 있다. 지난 7월 부산교구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15개 지역교구 모두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나선 것이 그 출발이었다. 이 선언에는 전체 사제의 40%가 넘는 2천여 명이 참여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8월 수원교구의 시국미사를 시작으로 전북 전주교구와 충북 청주교구, 전남 광주대교구로 번진 이들의 거룩한 저항은 마침내 9월 23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국 시국미사'로까지 이어졌다. 이처럼 천주교회 전체가 나서서 정부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군사정권 시절에도, 이명박정부 시절에도 없었다. 그야말로 한국 천주교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나서게 한 것일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총무이자 옥천성당 주임신부인 김인국 신부를 만나 물었다.
천주교 전국 시국미사, 역사상 초유의 일... 왜?
그는 "천주교회가 이렇게 반응을 예민하게, 선도적으로 하는 데에는 거짓말이 얼마나 큰 악인지에 대한 감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의 말에서는 더 이상 물러나선 안 된다는 절박함도 묻어났다.
"여기서 무력하게 주저 앉거나 숨어버리거나 물러나거나 하면 저쪽에서는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다 뺏을 거다. 때리고 뺏고 내쫓고. 유신시대 때 했던 짓이지 않나. 용납하면 안 되는 악이다."
그는 최근 이어진 각 지역교구의 시국선언에 대해 "주교단의 지침이요 입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며 무게를 실었다. 시국선언을 주도한 정의평화위원회는 주교회의에서 대사회적 발언을 담당하는 곳이므로 이곳에서 발표한 것은 곧 "주교회의의 뜻"이라 게 그의 설명이다. 주교회의는 한국 천주교회의 최상위 협의기구다.
또 그는 "의로운 뜻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기도의 1차적 목적이라고 말했다.
"여러분들의 기도에 우리도 함께 함으로써 여러분들의 뜻이 매우 옳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힘을 불어넣어주고 싶은 거다.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은 거다."
▲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9월 23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국정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천주교회의 거센 저항에도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국정원의 여론조작과 연결지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온 교회가 궐기할 정도로 민주주의의 근간에 균열이 생겼는데도 사람들이 그다지 분노하지 않는 것, 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는 것이야말로 심리전단의 일상적 활동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대선 댓글부대가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영혼을 감시하고 조작하고 통제하고 있다."
끝으로 그는 시민들을 향해 "박근혜정부가 유신의 회귀가 되지 않고 건강한 정부를 탄생시키는 도약대가 되길 바란다면 약자들의 연대를 더욱 더 튼튼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래는 김인국 신부와 나눈 대화의 전문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주말 옥천성당 내 그의 관저에서 약 1시간 가량 이루어졌다.
"박근혜는 거짓말쟁이... 천주교는 예민할 수밖에 없다"
- 천주교회의 시국선언과 시국미사가 이어지고 있다. '사상초유'라는 말이 붙을 정도인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박근혜정부는 거짓말을 굉장히 많이 한다. 국정원의 선거 공작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인정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용납하면 사회 전체가 혼란스러워지고 삶의 기반이 무너진다. 천주교회가 이렇게 반응을 예민하게, 선도적으로 하는 데에는 거짓말이 얼마나 큰 악인지에 대한 감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천주교회 지도자들이 4대강 사업을 이례적으로 반대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4대강을 죽이는 일인데, 살리겠다고 말을 바꿔치기 했다. 우리가 보기엔 살아있는 강을 죽이는 일이었다. 생사를 두고 거짓말을 한 거다. 모든 거짓말은 생사의 운명을 뒤바꿔치기 한다. 그래서 악한 것이고, 가장 파괴적인 힘이 들어있는 것이다.
거짓말이 득세하는 시대다. 다 거짓말이다. 너무나 뻔뻔하다. 여기서 무력하게 주저 앉거나 숨어버리거나 물러나거나 하면 저쪽에서는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다 뺏을 거다. 때리고 뺏고 내쫓고. 유신시대 때 했던 짓이지 않나. 용납하면 안 되는 악이다."
- 대구교구가 시국선언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들었다.
"4대강 사업의 체험이 사회적 발언의 계기가 됐을 것이다. 익숙한 대자연을 빼앗긴 체험으로 인해 현장에 나가게 되었고. 거기서 기쁨을 얻었다. 소명도 확인하고, 성경도 다시 읽고, 신앙의 요청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알아 듣게 되고, 그런 것들이 확장이 돼서 국정원 대선 개입, 민주주의의 타락에 대해서도 교구의 의견을 내는 상황으로까지 나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신부님은 지난 5년 내내 이명박 정권과 싸워왔다. 박근혜와 이명박 정부를 비교해보면 어떤가.
"이명박 정권의 연장이다. 차별성이 전혀 없다. 이명박 정권에서 하던 일들을 계속 하겠다고 하는 강한 의지가 드러난 부분이 국정원의 대선개입이라고 본다. 공작은 인위적 조작이다. 그런 억지를 부리고, 무리수를 둬서라도 하던 일들을 계속 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일이란 건 특정 계층에 의한 전면적 사유화다. 강이든 바다든 도로든, 사회 생활을 위해서 누구나 공유해야 되는 자원들을 전면적으로 사유화하겠다는 정책 기조를 관철시키려는 것이다. 그런 의지가 대선에서 드러난 것이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 시절보다 더 무서운 때가 올 것이다."
- 야권에서는 박근혜 정부를 두고 '유신의 부활'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에 대해 국민이 얼마나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율도 비교적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고, 유신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도 많다.
"사람들이 유신의 부활에 대해 '글쎄'라고 주저하는 것은 자신감 때문이라고 본다. 정말 그런 어두운 시절로 돌아가기야 하겠느냐, 혹은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는 정도의 자신감.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 사람들은 겁이 나서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말 유신시대가 다시 오고 있다면 사람들이 피곤해지지 않나. 일상에서 벗어나서 비상적인 상황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 피하고 싶은 거다. 그래서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민주주의 원칙의 파괴라는 점에서 명백한 유신의 부활이다."
▲ 시국미사의 촛불 수녀
"저들은 일상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조작하고 통제한다"
- 지금까지 교구에서 나온 시국선언들은 각 지역 정의평화위원회가 주도했고, 아직 주교회의 차원의 목소리는 없었다.
"주교회의가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주교회의 산하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표를 했기 때문에 이것은 주교회의의 뜻이다. 주교회의의 여러 분과가 있는데 대사회적 발언은 정의평화위원회에서 하게 돼있다. 따라서 이것은 주교단의 지침이요 입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종교계가 나서는 것이 고무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사회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현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국정원의 여론조작과 연결지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70년대 유신의 회귀라고 말할 정도로, 온 교회가 궐기할 정도로 민주주의의 근간에 균열이 생겼는데도 사람들이 그다지 분노하지 않는 것, 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는 것이야말로 심리전단의 일상적 활동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대선 댓글부대가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영혼을 감시하고 조작하고 통제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우리 모두 기겁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마치 방사능의 소리없는 체내축적처럼 소리없이 우리의 사고와 정신을 마비시키는 공작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 시국미사로부터 서울광장 미사까지 투쟁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으나 박근혜 정부는 꼼짝도 않고 있다.
"우리는 정부를 향해서, 정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호소를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기도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기도는 청와대보다 국민을 향한다. 의로운 뜻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1차적 목적이다. 여러분들의 기도에 우리도 함께 함으로써 여러분들의 뜻이 매우 옳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힘을 불어넣어주고 싶은 거다.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은 거다."
- 한국 천주교회가 보이는 이런 적극적 움직임에 교황 프란치스코의 등장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가.
"연관이 없지 않다고 본다. 우리 한국 천주교회에는 이런 실천역량이 있다. 그러나 그 새 교황님의 가르침이 우리를 긴장시키고 자극을 주고 격려하는 바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교황님이 정치에 개입하라고 하신다. 건강한 신앙인이라면 정치에 개입하라, 침묵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씀하신다."
다른 거대 담론에 대해서도 분명한 지침을 주셨지만,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신부들을 보면 내 마음이 몹시 슬프다'라는 말씀도 하셨다. 이런 말씀들이 가슴에 와닿는다. 지도자는 틀림없이 그가 이끄는 집단에 무서운 영향력을 발휘한다."
- 얼마 전 김한길 대표가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함께 하는 연대기구를 제안했다. 참여할 생각이 있나.
"아직 고민해보지 않았다. 사제들은 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하지만 사제들 고유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맡기는 게 옳다고 본다. 우리가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방식은 다르다."
"새누리당은 사생결단으로 불법, 야당은 성실하지 않다"
-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정치의 역할이 필요하다. 정치권에 쓴소리를 한다면.
"특권 기득권 세력과 이들을 대변하는 여당 국회의원들은 굉장히 성실하다. 악을 저지른 자들은 성실하다. 국정원 댓글 공작은 악의 성실성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런 깨알 같은 노력도 하지 않나. 새누리당이 불법 저지른 건 사생결단으로 한 거다. 목숨 건 게임을 벌였다. 그래서 불법의 결과물이지만 정권 연장에 성공한 거다.
반면 야당 정치세력들은 그만큼 성실한가. 그 정도로 자기 것을 내놓고 목숨 건 싸움을 하길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자기를 내던지는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는 한번 물어보고 싶다. 야당의 무력감은 그와 같은 자세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대로라면 여당은 만년여당, 야당은 만년야당으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민주당을 비롯한 개혁진보 세력 정치인들은 새누리당이 하는 수준의 사생결단을 해야 한다."
▲ "촛불은 계속된다"
- 박근혜 정권의 미래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나.
"현재의 국정수행지지율에는 기대와 희망이 절반쯤 섞여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렇게 힘으로 밀어붙이면 얼마 못 가 스스로 자중지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이미 시민들의 민주주의 수준은 박근혜 대통령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반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라보고 있는 쪽은 자신감이 때문이라고 본다.
막무가내식 강압적 통치가 얼마나 가겠나. 물론 공안정국도 일으키고 윽박도 지르고 겁도 주고 틀림없이 갖가지 역주행을 시도할 거다. 그러나 스스로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사람들도 때가 되면 결집돼서 폭발적 힘을 보여줄 거다. 광우병 쇠고기를 우리 식탁에 놓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그 정도의 양식과 자존감이 여전하다. 유신식의 퇴행 민주주의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거다."
-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한 마디를 한다면.
"강자들의 동맹과 약자들의 연대가 있는데 강자들의 동맹은 너무나 막강한 반면, 약자들의 연대는 너무나 허술하고 연약하다. 둘이 붙으면 백전백패다. 이 강자동맹이 약자연대를 해체하는 비장의 무기가 바로 '3자 개입 금지' 조항이다. 사문화된 조항이지만 밀양에서 보듯이 연대를 무조건 외부세력의 개입으로 몬다.
박근혜 부가 유신의 회귀가 되지 않고 건강한 정부를 탄생시키는 도약대가 되길 바란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약자들의 연대를 더욱 더 튼튼히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조금조금씩만 더 거들면 된다. 외부세력이라고 지목을 당해야 한다. 우리 약자들에게는 숫자밖에 없다. 더 열심히 뭉쳐야 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