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정해진 무언가로 설정하고 살아갑니다.
성공, 돈, 권력, 사랑, 신앙...
우리가 삶의 저편에 있다고 생각하고 달려가는 것들입니다.
사실 삶의 저편에는 아무것도 없죠.
언젠가 내가 정한 무엇인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막연히 기대하고, 의지하죠.
그런데 살다보면 그것을 깨버리는 사람이 있죠.
데카르트가 그러했고, 니체가 그러했고, 또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그러하겠죠.
니체가 니힐리즘, 니힐리즘, 니힐리즘!
입 아프게 얘기 했죠.
얼마 전 누군가가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입 아프게 얘기하면서 그것을 부수려 했죠.
니체의 글은 강력합니다. 그 힘이 전해지죠.
근데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처절함이 느껴집니다.
그렇게만 자신을 긍정할 수 밖에 없었던 불안감이 느껴집니다.
더 이상 발 딛을 곳 없는 벼랑 끝에서
그는 뛰어내려 모든 것을 부정하던지, 그게 아니라면 그저 불안함 자체를 긍정하던지,
사실 니체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는지 모르죠.
그는 자신의 삶을 긍정한 것일까요?
기독교 집안을, 동생과의 관계를, 자신의 지식을,
그리고 누구에게도 긍정될 수 없던 자신을... 진정 긍정했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삶을 긍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이고, 우리는 정답도 오답도 없는 문제를 가지고 뭔가 선택을 해야만 하거든요.
우리가 긍정하는 것은 진짜 우리의 삶인지, 아니면 그저 긍정을 위한 긍정일 뿐인지 잘 모르겠네요.
다시 기독교! 라고 외쳤던 그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는 사실 기독교를 부정할 수 밖에 없도록 강요되었고
그가 비난했던 신과 함께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신을 부정하는 그 사람을 비난할 수 밖에 없도록 강요당했는지 모르죠.
전 신을 믿지 않습니다. 삶을 긍정하려고 발버둥 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일 뿐이죠.
하지만 내가 긍정하는 것은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그것밖에 없다는 것을 부정하고, 그저 그것을 좋게 미화시킬 수 밖에 없음을 부정하고
그저 믿으려고 하는것인지 모릅니다.
무언가 긍정해야 하기에, 그럴 수 밖에 없기에 긍정할 뿐이죠.
사르트르가 그랬던가요?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그는 인생의 무한한 자유를 이야기 했지만
사실 그는 자유를 위해 투쟁한다는 그것 안에서 구속당했는지 모르죠.
사실 내가 긍정하고 믿고 있는 그 무언가 조차도
아무것도 아닌 것일지 모르죠.
하나의 관념에서 탈피했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 자체가 나를 가두고 있는 무엇인가인지 모르겠네요.
사실 종교인이나 저나 똑같이 그냥 막연히 믿을 수 밖에 없는거거든요.
그 사람들은 신을 긍정하고, 전 삶 자체를 긍정하려 하고.
사실 똑같아요. 거기서 거기예요.
살다보면 내가 만들어놓은 인생의 환상을 깨버리는 일을 겪곤 하죠.
내 인생을 긍정한다는 믿음 아래
내게 다가오는 또 다른 사실을 부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내가 긍정한다고 믿는 막연한 믿음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