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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429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시하
추천 : 0
조회수 : 41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12/23 20:42:26
나는 해군 해상병 출신이다.
 
남들 다 걸린다는 뽑기 7등도 걸려본 적 없던 재수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던 나는 3급함정에서 뼈를 묻게 되었다.
 
해군 출신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알거라 생각한다. 병장 말년까지 뺑이 쳤다는 거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에서나 미신이 있겠지만 그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해군 함정은 어부출신 주임원사 때문인지 쓸데없는 미신이 정말 많았다. 출항 전 고양이를 태워서 출항해야 한다는 것, 배가 노하므로 여자는 절대 태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 고래 떼를 발견하면 돌아서 가야한다는 것(당연해 보이지만 미신이 포함된 다른 의미가 있었다). 바다 위에서 시체를 발견하면 재수가 좋다는 것.
 
이제는 시간이 지나 기억에도 없지만 여러 가지 시시콜콜한 미신들이 잔뜩 있었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큰일이나 나는 듯 부대 내의 모두가 그것을 철칙처럼 지키곤 했다.
 
그 중에서도 아주 아주 ㄹ혜스러운 하나가 사병 침실에 위치한 물탱크 위의 해먹침대였다.
이 해먹침대는 평소에는 설치되어 있는 상태이지만 취침점호 때에는 걷어서 옆에 세워두었는데 이 침대에서 자면 꿈에 물에 퉁퉁 불어터진 여자 귀신이 나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나보다 한달 늦게 전입 온 숫총각 동기녀석을 말년고문이 여자 하나 소개시켜 주겠다며 낄낄거리며 그 자리에 재웠고(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것도 여자는 여자이니까)
 
다음날 아침 새파란 얼굴로 끙끙대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농담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머리 속에 번뜩!
 
‘아니, 침대를 아예 없애버리면 되잖아?!’
 
라는 어설픈 생각으로 침대를 창고에 집어넣었다가 다음날 상병들이 단체로 가위에 눌리는 사태가 일어나 함장에게까지 불려가 관심사병으로 찍혀 휴가까지 반납하게 되었고 그 후로 나는 이 침대와 그 퉁퉁 불은 년에게 복수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쉬는 시간에 불경을 근처에서 왼다던지, 주기도문을 붙인다던지. 그리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카운터어택 휴가반납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이 ㄹ혜 스러운 침대에 붙어있는 년은 성질이 보통 까탈스러운게 아닌지 침대에 얼룩이 지거나, 위치가 바뀌거나 하면 취향을 가리지 않고 아무 사내놈의 꿈에 나타나 너덜거리는 면상을 들이밀고는 자신을 어필해 댔는데 굿이나 부적도 전혀 통하지 않는 무적의 처녀귀신이었다.
 
게다가 이 귀신년은 군바리 출신인지 병들의 계급체계도 정확히 꿰어 이병이 자기 침대에 실수하면 일병에게, 일병이 실수하면 상병의 꿈에 나타나 그 끔찍한 얼굴을 부벼대곤 했다. 아, 병장들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말년들은 아예 각자의 격실(기관실, 행정실 등)에서 지내면서 전역까지 그년의 얼굴을 보지 않기만을 소망했다.
 
그렇게 이 귀신붙은 침대와도 어느정도 미운정 고운정이 들기 시작한 상병 초.
새로운 갑판중사가 들어왔다. 이름은 X동원. 그의 첫인상을 나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아직도...
 
웬만한 연예인보다 크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지닌 그는 이목구비가 매우 또렷했지만 슬프게도 눈과 눈 사이가 아주 멀었다. 그리고 송승헌 같은 밤송이 눈썹이 아쉽게도 일자로 붙어있었다. 참... 못생긴 것은 아니지만 원숭이로부터 분화되어 진화된 현생인류 같지는 않았다. 그랬다. 당시 난 속으로 생각했다. 부모님께서 참 이름을 잘 지어주셨다고.
 
‘동원참치’
 
2함대에서 바로 와서 숙식할 데가 아직 없던 어류로 추정되는 이 참치중사는 사병침실에 잘 생각이었고 우리는 깊숙이 숨겨둔 스페셜 말년석을 내주었으나 어류와 인간의 잠자리 취향은 많이 다른 모양이었는지 그는 특등 말년석을 거부하고 남들이 만류하는(내 바로 윗고참은 심지어 화를 내면서 말렸다. 뭐 엄청난 인류애를 가지고 있는 녀석은 아니었고 단지 지 꿈에 나타날까봐 겁이나서 였을거다.) 그년이 기생하는 해먹침대에 짐을 풀기 시작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말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병장들은 잽싸게 침구류를 가지고 각자의 격실로 대피했고 상병이하는 빵초를 걸고 저 동원참치가 하루를 버틸지 못 버틸지를 기대했다.
 
점호가 끝난 후 함미 갑판에서 담배를 태울 때, 그를 걱정하는 우리에게 참치중사는 비릿하게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태 가시내 손도 못잡아봤는디, 구신이건 말건 나타나믄 좋지. 내는 상관읍써~.’
 
아... 그의 숙연한 분위기에 우리는 모두 눈물을 흘렸고 더 이상 그를 말릴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 날 아침 기상시간에 멀쩡히 일어났다. 식사도 잘 했고, 과업도 잘 했다. 아주 멀쩡했다. 며칠 간 그는 계속 그 침대에서 잤고 그는 귀신년을 보지 못했다. 함장부터 이등병까지 모두가 의아해 했으나 그는 아무렇지 않게 집을 구할 때까지 몇 달간을 그 침대에서 잘 지냈다.
 
그리고 그 후로 그 침대에서 낮잠을 자도, 심지어 뽀글이 국물을 흘리는 불경한 짓을 해도 귀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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