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강원도 모 사단 헌병대 출신임.
어느 초겨울 고즈넉한 저녁근무시간.. 사수와 함께 위병소 근무를 나갔드랬음.
심심한 군생활을 달래려 노가리를 싄나게 털고 있는데 저만치서 거수자 접근..
본인은 FM대로 수하를 실시하였음. 그 거수자는 순순히 수하에 응했고, 우리부대 앞을 지나가려면 수색대 초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별 의심 없이 통과시켰음.
그 거수자를 통과시킨지 30초 후, 수색대 초소에서 인터폰이 옴. "헌병대 병사 한명 내려갔는데 잘 들어갔느냐?" 고
시발..
사수와 나는 사색이 되었음. 우린 카이저소제같은 거수자에게 깜빡 속은거임.
어떡하지 어떡하지.. 약 10초간의 고민 끝에 솔직히 보고하기로함. 당시 당직사관이 헌병대 수사관(상사) 였기 때문에 오히려 빠른 사건처리가 이 사태를 수습하기엔 더 나아보였음.
사수는 떨리는 손으로 지통실에 인터폰을 쳤고.. 얼마 후 한가로이 티비를 시청하던 군탈체포조 선임이 슬리퍼 바람으로 뛰쳐나옴.
뒤이어 탈영한 거수자의 소대장 및 여타 간부들도 헐레벌떡 뛰어내려옴.. 시발.. 나는 떨리는 손으로 거수자가 내려간 방향을 가리킴.
몇 분 뒤, 군탈체포조와 간부들의 손에 이끌려 거수자가 잡혀돌아옴. 개새끼년이 계급이 병장인데 여자친구 보고 싶다고 탈영을 했다함..
넌 여자친구 보러 간거지만 너때문에 우린 군생활 좆될거 같아.. 이 아름다운 새끼야.. 속으로 나는 그리 생각했음.
내가 근무하는 영창에 내가 잡혀들어가겠구나.. 하 시발 존나 근무했는데 이제 좀 편히 쉬겠네.. 허허 책 많이 읽어서 좋겠군..
청소도 안해도 돼.. 야간근무도 안서도 되지.. 하하 차라리 잘됐어..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며 남은 근무를 서는데 유독 길게 느껴졌음..
그 탈영병새끼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수사를 받았는데, 초범에 탈영 미수로 끝난 사건이라 영창은 안오고 부대 자체 징계로 끝난듯 했음.
이제 우리의 징계시간인가.. 사수와 나는 그 후 1주일을 좀비처럼 영혼을 빨린 채 지냈음. 그러나 징계 소식은 들리지 않았음.
다행이다.. 군생활 늘진 않겠구나..
그런데 이게 왠걸.. 사단에서 공문이 내려옴. 나와 사수를 근무유공자로 표창하겠다는 거임..
헐.. 영창 안보낸것도 감지덕진데 표창이라니.. 나와 사수는 어안이 벙벙했음.
어찌된고 하니, 사건 당일 당직사관이었던 수사관이 사건 처리 여부를 사단에 보고할 때 우리가 초동조치와 보고체계를 잘 지켰다는 식으로
잘 말해주었다고 함.. 그로 인해 사단장이 폭풍 감동하여 친히 표창을 수여하겠다고 공문을 보내신거임..
이렇게 나와 사수는 영창 대신 사단장 표창과 포상휴가를 받게 되었음..
여기서 잠깐, 당시 그 탈영병을 헌병대 병사로 알고 통과시켜준 수색대 초소 근무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건 한 달 뒤, 그당시 근무자 두명이 영창에 들어옴.. 2박3일의 짧은 기간동안 그들은 영창의 아늑함을 느끼고 돌아감..
사람 운명이 이리도 극명하게 갈리는 가 싶었음.. 참.. 지금 생각해도 염통이 쫄깃해지는 경험이었음.
P.S 사단장께서 건내주신 포상휴가증은 백지휴가증이었음.. 백지수표도 아니고 백지휴가증.. 쓰는 만큼 나간다는 백지휴가증..
그러나 헌병대장님은 신종플루와 기타 제반 사항의 이유를 들어 4박5일로 줄여주심..
덕분에 군기강이 해이해지지 않고 무사히 군생활을 마쳤다는 훈훈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