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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마트 과일코너에서 생긴 일.
게시물ID : humorstory_4421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꾸꾸다뜨
추천 : 11
조회수 : 1449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15/11/16 18:11:48

중국의 작은 도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을은 역시 대륙답게 매우 넓고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차로 한참을 가야 조그만 번화가, 또 달려야 번화가가 나오는 그 도시는 크지만 밀도가 작은, 표현하자면 공갈빵 같은 도시였다.

 

부두에서 가까운 마을 번화가 까지는 자동차로 10여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배로 올라와서 화물작업을 하는 인부가 있었는데 내가 시가지에 가고 싶어서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 하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직접 차를 태워 시가지에 보내 주겠노라 하고 선뜻 말하였다.

 

일반 택시를 이용하였다면 5천원,만원이면 충분햇을 거리를 괜한 친절을 베풀던 인부의 이야기에 홀랑 속아 넘어가

 

왕복 5만원 정도의 삥을 뜯기고 돈을 내고 조그마한 번화가에 도착했다.

 

 

 

 

나는 유독 신선한 과일을 으적으적 먹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학생 시절에는 급식에 돼지갈비와 사과 반쪽이 나오면 앞자리의 친구의 입에 돼지갈비를 쑤셔 넣으며 모든 언행을 제압하고 사과를 약탈해가는 악명 높은 과일도적이었다.

 

직업 특성상 신선한 과일을 내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과일에 굶주려 있는 한 마리의 사나운 야생 토끼였다.

 

붉은 눈을 부라리며 나는 큰 마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청과 코너를 찾아 헤매기 시작하였다.

 

그때 눈앞에 보인 것은 구름에 닿을 것 만 같은 수박의 산이었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산 속으로 이끌렸고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키위가 뛰놀고, 앵두가 지저귀며, 바나나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유토피아였다.

 

마치 이곳 어딘가에 흰 눈썹과 수염을 지닌 도인이 산 정상에 정좌를 하고는 나에게 바둑돌 대신 낑깡을 건넬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는 흥분했다. 복숭아를 씨까지 씹어 먹어버릴 수 있을 만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서있는 판매직원 아주머니 중 한명에게 달려가 말했다.

 

 

아줌마!!! 사과 1키로에 얼마에요!??”

 

 

초록색 유니폼과 두건을 한 아주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다른 직원에게 눈길을 옮기고는

 

한궈러.”

 

한궈러??”

 

한궈러!!”

 

하였다.

 

나는 아차 싶어 서둘러 영어로 물어보았으나 역효과였다.

 

아줌마들은 동공을 흔들며 동요하였다. 나 또한 등판의 땀구멍에서 방수를 하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 우리 말의 대부분은 한자로 이루어진 한자어라는 국어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긴박한 순간에서 엄청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인간이 가진 잠재능력이 아니었을까?

 

아줌마와의 대화가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복숭아!! 시식!! 가능??”

 

시식!! 허가!! 허가!!”

 

과한 수신호와 몸짓이 있었지만 분명 아줌마는 내 한자어를 알아듣기 시작하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시식용 과일을 과도로 푹 찔러서는 입에 넣어 주었다.

 

시퍼런 날이 입으로 날아 들어오는 공포보다 간만에 미뢰를 자극하는 과즙의 쾌락이

더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칼끝의 과육을 받아먹었다.

그 순간 다른 과일을 담당하는 아주머니들이 모두 칼 끝에 자신이 자신하는 과일을 꽂아서는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해맑은 미소로 내 입에 칼을 쑤셔 넣는 아주머니들의 정성에 나는 과일을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과일쪼가리를 받아먹고 나는 용과며 사과며 앵두며 자두며 아주머니들이 먹여준 과일들을 모두 사고 있었다.

 

 

 

 

그 때 입에서 굉장히 불쾌하고 이질적인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인분과 바나나를 4:1 비율로 섞어서 만든 떠먹는 요구르트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두리안이었다.

 

생전 처음 먹어본 두리안의 강렬한 맛에 나는 이십여년 동안 한 번도 움직여보지 않았던

 

얼굴 근육들이 찌그러짐을 느끼며 한발 물러섰다.

 

나도 모르게 내 다리는 두리안과 멀어지려는 것인지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두리안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짧았지만 너무도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거부감이 들었다.

 

 

 

 

어느새 과일코너와 멀어지고 있는 나를 바라보던 아주머니들이

 

갑자기 두리안 아주머니를 둘러싸더니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먹여주는대로 덥썩덥썩 잘 받아먹고 사라는대로 다 사는 호갱이었는데

 

니가 두리안을 먹여서 도망가지 않았느냐 하고 심문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두리안 아주머니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과도로 아주머니 하나하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일일이 받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괜히 물을 흐린 미꾸라지가 된 기분이 들어 멀찍이 떨어진 생선코너에서

 

아주머니들의 눈치를 보며 사지도 않을 오징어의 빨판만 만지작 거리며 셈할 뿐이었다.

 

아주머니들이 혀를 길게 뽑아 채찍질을 하면 과도를 휘두르며 저항하는 두리안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채찍질을 하는 노예상인과 그에 맞서 외롭게 대항하는 노예검투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한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빙긋 웃자 모두가 돌아보며 다시 오라고 손짓을 하는 모습에

 

나는 얼굴이 파래져 마트를 서둘러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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