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나의 사랑스러운 조카가 우리집을 점거했다
물론 본인의 뜻에 따라 스스로 온 것은 아니었지만
여차저차 우리집 거실에 들어선 순간
조카는 '이곳이 나의 파라다이스구만'이라고 느꼈나보다
그때부터 조카의 횡포가 시작됐다
우리나라 나이로는 3살이지만 말이 조금 느릿탓에
단어나 문장 구성에 있어 또래 아이들보다 약간 뒤처져 있는 이 아이는
언어대신 온몸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내가 놀아주는게 조금만 시원찮아도
외출복 겉옷을 쫄래쫄래 들고와서는
"아아까? 아아까?"를 연발하곤 한다
그말인즉슨 내가 조카에게 옷을 입혀주며
"나갈까? 나갈까?" 를 흉내낸 것이었다
처음 한두번은 귀여웠다
아. 이 아이가 정녕 나가고싶은가보구만
그래 어디한번 나가서 진탕 놀아봅세!!하며 그때마다 조카를 데리고 나갔지만
그 횟수가 점점 잦아질수록 나의 눈동자는 8도 지진보다 더 심하게 떨려왔다
"응~ 이따 나가자. 좀아까 나갔다왔지? 맘마 먹고 나가야지~ 그래야 더 많이 놀지"
라고 조카를 달래봐도
조카는 대쪽같은 표정으로 연신 "아아까? 아아까?"를 반복하며
자신의 외출복을 이리저리 들추느라 바빴다
내가 끝까지 모른척하자 조카는 급기야
"얀냔!!"을 외치며 양말을 가져와 컨트롤되지 않는 자신을 손을 부들부들 떨며 양말에 발을 우겨넣었다
무서웠다
이 상태에서도 나가지 않으면 조카가 내 뺨을 후려갈길것만 같았다
두려움에 벌벌 떨며 조카에게 옷을 입힌 후
"신발신자~~신발~"이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조카는 현관앞에 털썩 주저앉아 "띠빠! 띠빠!"를 외쳤다
띠빠...?
순간 빈정이 상했지만 애써 참으며 조카에게 신발을 신겨주었다
양쪽 신발을 다 신을 때까지 조카는 내게
"띠빠"를 외쳐댔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으로 조카와 외출을 감행했다
1층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조카는 우다다다다 뛰며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현관 편지함에 수놓아진 나비를 보며 삿대질을 해댔다
"으으응! 으으응! 으으으으! 으으응~~"
나비야 노래를 허밍으로 멋드러지게 부르던 조카는
이내 내 손을 뿌리치고 다시 어디론가 황급히 달려갔다
"위험해!! 같이가자~~"
경고와 애원을 함께 내뱉던 내말은 안중에도 없는 조카님은
빨간 자동차 앞에 멈춰서서 내게 간절한 구애의 눈빛을 보냈다
"응~ 빨간 자동차! 빨간 자동차네~~? 자동차! 자!동!차!"
한 마디 한 마디 꼭꼭 짚어 말해주자 조카는 기분이 좋은듯 꺄르르르르 웃으며
"빠빵! 빠빵"이라 외쳤다
그래. 나도 알아. 자동차 클락션 소리는 빠빵이라는 거.
내가 그거 몰라서 너한테 물어본건 아니잖니...
볼모로 잡힌 노예처럼 조카 뒤를 쫓기를 30여분.
드디어 조카님이 세상구경에 지친 것 같았다
때를 놓칠리 없었다
"들어가자~ 들어가서 맘마먹장"
내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카는 내게 돌진해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두팔을 펼쳤다
자기는 걸을만큼 걸었으니 안아달라는 신호였다
순간 부러웠다
나도 졸리면 우어어어어어어라고 찡찡거리고
마려우면 그 자리에 엉거주춤 뿌직뿌직 똥을 갈기고
나가고싶으면 우에에에엥 아아까?를 연발하고
걷기 귀찮을땐 두팔벌려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삶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삶 그 자체였다
물론 돌이켜보니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엄마말로는 어릴 적 나는 유독 땡깡이 심했다고 했다
조금만 마음에 안들어도 세상이 파괴된 것처럼 악을 써댔고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동네 땅바닥을 내 방처럼 보듬으며 드러누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나니 인생선배로서 더이상 조카의 행태를 묵과할 수만은 없었다
"안돼요! 이렇게 하면 안되거든요?!!!!!"라고 타이르듯 혼내듯 단호한 억양을 섞어 말하자
조카는 내게 초롱초롱 눈빛 발사를 하다 이내 세상이 떠나갈 듯 울어댔다
울음소리가 시작되기 무섭게 나는 조카를 품에 안았고
그제야 조카는 "그래 이거지!!!"라는 평온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품에 쏙 안겼다
망할기지배...
그래도 밉지 않다
얼굴이 이뻐서이기도 하지만 그냥 저냥 마냥 이뻤다
내 품에 안긴 조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내 내게
"까까?"라고 말했다
뽀로로 치즈맛 과자를 조카 입 안에 쏙 넣어주며
나는 오늘도 조카 등신의 길을 험난히 걷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