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평전/[8장] 분단정부 추진과 초대대통령 취임 2012/03/31 08:00 김삼웅
이승만은 1월 26일 유엔 한국위원단과 면담하고 나서 “유엔과의 협의 아래 먼저 남한 총선거를 실시함이 옳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고 밝히고, 김구는 “미ㆍ소 양군이 철수하지 않고 있는 현 상태에서 자유로운 분위기가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미ㆍ소 양군이 철수한 후 남북요인 협상으로 총선거가 실시돼야 된다” (주석 5)고 주장했다.
이승만과 한민당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고, 김구와 한독당은 양군 철수 뒤 남북총선으로 맞섰다. 김구는 이를 위해 3월 8일 남북요인협상론을 제기하였다.
한편 남조선과도정부 정무회는 2월 6일 즉각적인 남북통일론의 비현실성과 준비없는 미ㆍ소 양군 철군은 남한을 적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남한만의 총선거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왔다. 한민당도 김구ㆍ김규식의 남북협상론을 당리당략에 사로잡힌 주장이며 남로당의 주장을 대변하는 인상을 준다고 비난했다. 이에 맞서 2월 7일에는 여기저기에서 유엔위원단을 거부하는 총파업과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런 가운데 김구는 10일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란 장문의 성명을 통해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위해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선언하고, 이어서 “한민당은 “미 군정하에서 육성된 미 군정의 앞잡이”이며 “매국매족의 일진회식 선각자”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주석 6)
이에 대해 이승만은 2월 22일 성명을 통해 남한총선거안은 미국정부와 하지 중장도 절대 지지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3천만 동포는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남한 총선에 의한 통일정부수립에 매진하자”고 역설했다.
이에 맞서 김구는 경교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은 남한을 빙자, 인민공화국을 수립한다 하고, 남한은 북한을 빙자, 중앙정부를 수립하려 하고, 일부 정권욕에 사로잡힌 정치지도자는 민중을 속이고 있다”고 개탄했다.
유엔 한국위원단은 남북한 선거관리 국가로 정식불참을 통고한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① 필리핀, ② 엘살바도르, ③ 중국, ④ 프랑스, ⑤ 러시아, ⑥ 캐나다, ⑦ 오스트리아, ⑧ 인도 대표로 구성하고 인도대표 메논을 의장으로 선출하였다. 유엔 한국위원단은 북한의 입북거부와 관련, 남한만의 선거실시 여부에 대해 토론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들의 손에 한국의 장래, 특히 이승만의 정치적 운명이 달려 있었다.
8개국 가운데 ①~④번 국가들은 남한만의 총선을, ⑤~⑧번 국가는 통일정부 수립의 입장이었다.
따라서 메논 의장의 손에 단정 수립 여부의 결정권이 부여되었다.
“권력에 대한 이승만의 집념은 상식을 초월하고 양식과 사리를 떠난, 그 자체가 절대적 목표”(서중석 교수)였다. 이승만은 메논을 집중 공략하였다. 1948년 2월 26일 유엔소총회에서 유엔위원단의 제1안인 가능지역 총선안이 가결되었다.
미 군정은 김규식을 한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밀 방침이었으며, 유엔 한위 각국 대표들도 그에게 큰 비중을 두고 접촉하고 있었다. 이승만에게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메논 의장도 남한단독정부안을 꺼리고 인도의 중립노선과 관련 김규식의 남북통일정부수립안에 관심을 보였다. 다시 이승만의 ‘권력의지’가 작동하였다. ‘모윤숙과 메논의 비사’도 이 무렵에 이루어졌다.
모윤숙
유엔총회에 참석케 되는 메논의 향배는 사실상 이승만의 정치적 생명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었다. 이승만을 지지하는 조병옥ㆍ장택상 등은 여류시인 모윤숙을 메논에 접근시켜 그를 이승만 지지쪽으로 기울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이날밤 이승만은 모윤숙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밤이 우리나라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운명이 결정되는 날이니 어떻게 해서든지 메논을 데려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당부했다.
이에 모윤숙은 드라이브를 빙자, 메논을 이화장으로 안내, 이승만과 만나게 하고 프란체스카가 전해주는 연명서를 귀로에 메논에게 전하였다. 메논이 유엔총회로 떠난 후에도 이승만은 모윤숙의 이름으로 남한단독정부수립을 호소하는 서신을 띄웠다. 메논은 유엔 소총회의에서의 보고서에서 “이승만 박사라는 이름은 남한에서 마술적 위력을 가진 이름이다. 네루가 인도의 국민지도자인 것과 같은 의미에서 그는 한국의 국민적 지도자가 될 것이다. 이박사는 한국의 영구적 분할을 옹호하기에는 너무도 위대한 애국자”라고 이승만을 극구 찬양하였다. (주석 7)
인도의 정치가 메논. 사진은 다음에서.
유엔소총회에서 메논은 이승만의 손을 들어주었다. 모윤숙의 역할이 컸다. 세간에서는 모윤숙의 ‘미인계’가 메논을 움직였다고 보았다. 유엔소총회의 결정을 미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남한단독정부수립안을 두고 토론 끝에 2월 26일 유엔소총회는 유엔 한위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가능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역사적 결의를 하게 되었다.
이승만의 승리였다. 인도의 메논 대표는 찬표를 던졌는데 부표가 예상되던 인도의 태도 돌변은 많은 의혹을 샀다. 인도정부와 메논간의 견해 차이가 있었다는 말이 나돌았다. 메논의 뒷날 자서전에서 “이것이 나의 임무에 있어 감정이 이성을 지배한 유일한 기회였다.”고 유엔 활동에 모윤숙을 크게 의식했음을 고백하였다. (주석 8)
주석
5> 앞의 책, 438쪽.
6> 앞의 책, 444쪽.
7> 앞의 책, 449~450쪽.
8> 앞의 책, 450~4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