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두살 터울 오빠가 하나있다
어릴때는 '와 나 진짜 내가 이새끼보다 고작 밥을 2년 덜먹었다고 이런 수모를 겪다니. 밥 먹은 양으로 치면 내가 누난데 와 나 진짜 이새끼'를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만큼 오빠와 나는 앙숙이었다
무엇을 하든 오빠는 나보다 좋은 자리를 선점했고 나보다 좋은 물건을 얻었으며 나보다 좋은 조건으로 자라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엄마아빠가 아들만 좋아하는 분들이어서가 아니라
그 녀석이 첫자식이었기 때문에 모든 선택은 당연 그 놈이 먼저했기 때문이다
중학생때 일이다
내 방 구석 깊숙히 자리잡은 먼지 쌓인 앨범을 꺼내보다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수영장 사진이었는데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메모하는 것을 좋아하셔서
사진마다 코멘트를 달고 가끔 부장님 개그를 달아두곤 하셨다
그 사진 속에는 오빠새끼가 환한 미소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옆에 있던 새카맣고 병삼같은 꼬꼬마 남자아이는 알록달록한 수영팬티를 입은 채
떨떠름한 표정으로 오빠새끼를 째려보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순간, 이생키는 뭐야 내가 오빠를 욕하는 건 참아도 남이 내 오빠를 천대하는 것은 못참지!!
라고 흥분하던 찰나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오빠랑 엄마 얼굴은 당연히 알겠는데 이 꼬꼬마 사내놈은 누구지?! 하며 의문을 품기도 전에
앨범에 새겨진 엄마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개구쟁이 오빠와 우리공주 송이. 오빠를 왜 째려보고 있니?"
나니?
나?
우리공주 송이까진 좋았다
하지만 그 사진 속에는 여성의 얼굴을 한, 아니 여자아이 수영복 차림을 한 생명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런~ 씨! 나구만"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좀전까지 오빠새끼를 째려보던
낯선 꼬꼬마사내아이를 미워했던 나 자신을 자책하는 동시에 위로했다
'그래. 누구라도 그랬을거야. 이런 하찮은 오빠같으니.'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내가 비키니나 원피스 수영복입기를 너무 답답해해서 오빠 수영복을 입혔다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되물었다
"아니 그럼 비키니 수영복을 입혔다가 답답해하면 위에 쭈쭈가리개만 풀러주면되지, 왜 오빠수영복을 입혔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나오지도 않는 기침을 억지로 쥐어짜며 화장실로 들어가 뿌루우우부우루루뿡뿡 가스를 분출하셨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들었던 방귀소리중 가장 시원했던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또 하나를 깨달았다
아, 이게 바로 tv에서만 보던 한평생 전전긍긍하던 양엄마가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자 속이 후련해지는 소리구나...!
나는 엄마의 방귀소리와 함께 집을 뛰쳐나와 그 길로 곧장 오락실로 달려갔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반항이자 방황이었다
분노의 보글보글을 하기를 30여분.
마지막 투비컨티뉴가 종료됐을때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빠와 나는 줄곧 앙숙이었지만 오빠가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나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자기도 이제 어른이라며, 모가지를 인디언 추장처럼 삐걱거리며 했던 말이 있다
"누가 괴롭히면 오빠한테 얘기해. 그리고 너도 오빠 괴롭히는 사람있으면 니가 혼내주고 흐흐흐"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오빠얼굴에 침을 튀기며 말했다
"너다 이새끼야"
그말에 오빠는 자기 머리를 쥐어박...긴 개뿔
내 머리를 빡 소리나게 내리치며 외쳤다
"내 동생을 괴롭히는 나...를 괴롭히는 너년을 처단한다!!"
나는 엉엉울며 내가 죽기전에 너새끼를 죽여버릴거라며 되뇌였다
하지만 우리 자매 사이가 항상 나쁘기만한것은 아니었다
오빠가 춤바람이 들어 대학로로 춤추러 다니던 시절
여중출신이었던 내 친구들, 후배들 사이에서는 우리오빠 팬클럽이 생겨났고
대학로에 오빠의 길거리 공연이 있을때면
나는 삼삼오오 친구들, 혹은 후배들을 데리고 오빠가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별로 친하지 않던 친구들도 우리 오빠새끼가 잘생겼단 소문과
어쩌다 학교로 나를 데리러 오는 오빠의 얼굴을 보고,
나와 친해지기를 원했었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오빠새끼의 매니저가 되었고
준 연예인급이던 오빠는 잘난 외모 덕에 하루에 서너번씩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알아주는 기획사 오디션에서도 당당히 합격했지만
천성이 자유로운 탓에 연예계 생활로 이어지진 않았고
그렇게 방랑생활을 즐기던, 잘생긴 등신이었던 우리오빠는
지금은 아기아빠가 되어 평범하고 행복한 등신이 됐다
가끔은 죽여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나는 오빠새끼가 엄마 다음으로 좋다
(지금은 그렇다. 센치해지는 새벽이니까. 내일 아침이 되거나 나한테 또 다시 돼지새끼라고 놀리는 날이면 나는 오빠를 세상 그 누구보다 가장 증오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