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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의혹들, 알면 알수록 분노할 수 밖에 없다.
게시물ID : sewol_440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뭐로할까
추천 : 3
조회수 : 85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4/30 17:39:31
 내일 오후 7시에 광화문에서 세월호 집회가 있습니다. 오셔서 같이 진실을 외쳤으면 합니다.
세월호 사건은 알면 알 수록 분노할 수 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현재 정권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반성은 커녕 시행령을 통해  권력을 남용하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진실을 확인해야만 합니다.
 
 이에 공감하지 못하시는 분들을 많이 봐왔고 안타까운 마음에 누추한 솜씨로 밝혀야할 의문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일부 검찰 조사로 드러난 것은 그대로 적었지만 밝혀지지 않은 것은 또 너무 많아 다 적지 못하였습니다.
 
 
사고 배경
 
09년 해운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여객선운용 시한이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됩니다. 일본에서 18년 된 선박 세월호가 들어오게 됩니다.  규제 완화의 확실한 배경을 밝히고 합리적 결정이었는지 다시 따져야합니다. 세월호 수입과정의 자금 출처, 안전 검사에 대해서도 확인해야합니다.
12년 세월호 증축 당시 안전검사 부실이 밝혀졌고 관련자는 현재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이 선고되었습니다. 13년 인천-제주 운항 신청 당시에는 허위자료를 제출하고, 일부 자료는 제출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경, 해운조합, 해운항만청 모두가 허가를 내줍니다. 현재 뇌물수수로 조사를 받고 재판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운조합과 새누리 현역 의원의 비리도 밝혀졌습니다.
사고 3개월 전에는, 청해진 해운의 이전 직원이 임금체불과 불법 운영 실태를 청와대 신문고에 고발 하였으나 임금 체불만해결되었습니다. 이 나라의 고발 시스템은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안전 불감증은 어디부터 시작되었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출항 직전에는 세월호가 보고한 화물, 차량의 양이 실제보다 상당량 적었음에도출항이 허가됩니다. (화물 적재기준치 1065톤초과) 출항 전 검사 부실로 인해 사고 직후에도 탑승객 인원 수를 정확히 알지 못하여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화물 고박(묶는 것)조차도 부실했습니다. 선원 분들께 물어보면 세월호의 이런 행태는 매우 비상식적이라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를 해왔고 공무원이 이에 동조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개로 인해 세월호는 예정보다 1시간30분늦은 21시 출항하게 됩니다. 당시 유일하게 출항한 선박이었습니다.
 
 
 
사고 당일
 
 
 세월호는 본래의 권고 항로가 아니라 항해거리를 매우 단축한 저수심 항로를 선택했습니다. 그것도 최고속도로 운행했습니다. 늦게 출항하였으니 빨리 가고자 했던것으로 보입니다. 침몰 지역의 최대 수심은 37m입니다. 단축 항로의 낮은 수심으로 인해 조타가 어려워졌고(수심이 낮으면 조타가잘 먹히지 않는다고 하네요) 급변침 과정에서 균형을 잃고 침몰이 시작됩니다. 정부 발표는 08:49분 사고 발생입니다. 관리 부실과 구조 미숙 그리고 위와 같은이유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징역을 선고 받았으나 이들은 1년짜리 계약직일 뿐입니다. 갓 부임해 잘 모르는 선장에게 항로를 선택하고, 과속을 지시했을 상부의 실제 명령권자를처벌해야 합니다.
사고 과정의 의혹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조도 거주 주민에 따르면 세월호는 07시부터 약 1시간을  조도 근처에 가만히 서있었다고 합니다. 섬 앞에서 그 큰 배가 떡하니 있으니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했겠지요. 1시간 가까이 서있다가 다시 출발한 세월호는 얼마 못 가 곧바로 침몰하게 됩니다.
어째서 서있었고 만약 문제를 감지했다면 왜 다시 출발하였는가? 문제보고는 누구에게 했고, 출발 지시는 누가 하였는가?
모두 밝혀야할 중대한 사안입니다. 잘 가는 배라면 멈춰있었을 이유가 없지요.
또 있습니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이미 8시 직후 탑승객들은 배의 이상을 감지했고 (쿵 하는 소리 : 아마도 부실한 고박으로 인한 화물의 충격기울어짐)
08:43 에 이미 바다에 떠있는 컨테이너를 목격했습니다. 이미 사태가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50분, 교감이 학교에 침몰 상황을 보고합니다. 현재 기록상으로 알려진 가장 최초의 외부 보고자입니다.
52분, 최덕하 학생이 119에신고하고 나서야 55분 선원들은 제주 vts 로 구조를 요청합니다.
 
 선원들은 그 동안 대체 무엇을 했을까요?
정부 발표를 그대로 따르더라도 이미 49분 세월호는 항적 상으로 J자 모양을 그리며 표류하였는데
55분에야 신고를 하고, 또 분명 레이더로확인했을 정부, 해경, 청해진 해운은 왜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을까요?
선원들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구조요청을 그렇게 늦게 할 리가 없지요. 분명이전에 누군가에게 보고를 하다가 늦어졌을 것이고 이를 알아야만 합니다. 이후 세월호의 최우선 보고 계통은 국정원으로 밝혀집니다. 보고를 받고도 늦장 대응한 곳은 누구이고무슨 의도였을까요?
 
 
구조과정
 
-침몰 전
그 유명한 대기방송이 시작됩니다. 분명 이때만 해도 구명동을 입히고 배에서 나와 바다에 띄웠으면 전원 구조 가능했을 시기였습니다. 09:27 헬기 도착, 30분 인근 어선 도착, 32분 해경 123정 도착. 배는 이미 45도 정도 상당히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즉각 선장과 선원들을 이용해 정보를 얻고 구조에 나서야할 해경은 선원들을 가장 먼저 구조하여 육지로 보냅니다. 그 결과 해경 도착 후에도 선내에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계속해서 울려퍼지게 됩니다.
 어째서 123정 하나만이 왔는가? 이미 배가 상당량 기울어져있음을 발견하고 123정만의 자체능력으로 구조가어려움을 인지하고도 어째서 추가 지원요청을 하지 않았는가? 오히려 어선 등의 도움을 거절한 이유와 명령권자는누구인가?
 
정상적인 구조작업이었다면 이미 세월호 참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후 급격히 기울어진 세월호는 갑판으로 자력으로 나올 수 있는 소수의 탑승객만 구조된 후 가라앉게 됩니다.
 
-침몰 후
11시에는 언론에 전원구조 오보가 뿌려집니다. 구조 전용 대형 함정은 오전 1130분이 되고서야 도착합니다.
뒤집혀진 배의 구조상 에어포켓의 가능성은 확실했습니다. 반드시 들어가꺼내왔어야만 했습니다. 수심은 고작 37m였고 선수는 여전히 바다 위에 떠있는 채였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단 한 명도 살려내지 못했다.
21세기에 존재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해냈어야만 하는 일입니다.
최고 명령권자인 박근혜는 오전 10시 서면 보고를 받고도 7시간이나 행적을 알 수 없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장의 해경에게 보고용 영상자료를 빨리 내달라며 재촉했습니다.
도움을 위해 달려온 민간 잠수부들은 제대로 투입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해경은 이들을 충분히활용하지 않았고 해경 녹취록에는 "하는 흉내라도 낸다"라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관리 부실로 잠수부 한 명이 익사하자 오히려 이들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18일 오전 1시에 도착한 크레인으로 선수에 케이블만 걸어 올렸어도 현상유지를 시키는데 충분했습니다. 선수는 더 가라앉지 않았을 겁니다. 배가 더 가라앉지 않았다면 에어포켓의 크기가 유지되고 일주일 넘게 생존이 가능했습니다. 정부는 일을 내팽겨치고 구조만을 위해 달려온 크레인을 대기만 시켜놓고 사용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종편들은 벌써부터 인양 얘기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잠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다이빙벨은 논란이 커지고 나서야 투입되었습니다. 그마저도 무수히 많은 논란만을 남기고 철수당했습니다. 가용한 모든 장비가 즉각적으로 총동원 되어야 할 구조 작업이 그러지 못했습니다.
배 안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는 논란만 일으켰을 뿐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능력이 없었다면 미국, 호주, 일본의 도움을 거절해서는 안되었습니다. 백명을 구하더라도 단 한 명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랬어야합니다. 일본에게 빌더라도 도움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침몰 이후 구조 과정은 분명히 납득이 어려운 의혹의 연속 뿐입니다.
 
사고 이후
 
세월호 선박 안에서국정원 보고사항이라는 자료가 발견 되었습니다. 실제로 사고 직후, 09:10 (세월호가 아닌)해운사가 국정원에게 문자로 보고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해운사는 보고가 들어가지 않았을 것을 우려해 재보고 차원에서 했다고 합니다. 또한 세월호 자체의 최우선 보고계통이 국정원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보고계통대로라면 외부에서 세월호 사고를 가장 먼저 알았을 곳이 국정원인 것입니다. 국정원소유 의혹보다 먼저 제기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보고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국정원은 대체 무엇을하였는가? 400명이 탑승한 대형 여객선이 침몰위기에 처했는데 국가 지도부와 가장 가까운 국정원이 가장 먼저 보고를 받고도구조작전이 어찌 이리 허술하게 진행되었는가?
국정원 지적사항문건은 이후 발견 되었습니다. 매우 세세한 내용들, 직원 휴가, 비품관리, 작업 수당 등 실제 소유자가 아니면 전혀 관련 없는 내용의자료에 국정원 이름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국정원은 100여 개항목 중 보안 측정 관련 4개 항만을 인정하였고 검찰이 이를 받아들여 나머지에 대한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월호사건에 있어서 가장 이해가 안되는 것은 수많은 기록 자료들의 분실, 삭제, 고장, 이상 작동 등입니다. 사고이전 7시부터 인근 해역을 지나던 선박 중 세월호 만이 유일하게 진도vts와교신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기록이 "없습니다" . CCTV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꺼집니다. 이런 자료 편집의혹은 너무 많아 정리하지 않겠습니다.
 
위의 의혹들은 정부, 해경, 해군 등을 온전히 조사해야만 알아낼 수 있는 것 들입니다. 정부는 헌법 질서를 위반하는, 모법에 대놓고 반대되는 시행령을 만들어 이러한 조사를 막고자 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합니다. 지금의 시행령으로는 안됩니다. 반드시 폐기하고 정부는 특별조사위원회 원안을 수용해야합니다.
내일 오후 광화문에서 뵙겠습니다. 알면 알수록 분노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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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youtu.be/pfNahzPJalI
http://past.media.daum.net/sewolferry/timeline/
http://www.podbbang.com/ch/7290?e=21692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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