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todayhumor.com/?humorstory_439959 1부주소입니다
그 처음 만났던 날부터 우리는 문자를 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낯가림만 심했던 그녀는 문자를 할 때는 말이 또 많은 성격이였다.
그렇게 문자를 잘 하던 중, 몇 번의 전화통화도 하며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져 갔다.
꽤 행복했던 것 같다 그때는, 이제는 이 친구에 대해 궁금한 것 보다 걔는 뭘 하고 있을까가 더 궁금해졌고, 그렇지만 아직은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며 혼자 자주 말하던 시절이였으니까.
그렇게 조금씩 서서히 그 친구에게 빠져들고 있었을 무렵, 학교에서 오티를 가게 되었다. 그러나 악덕사장이 도저히 알바를 빼주지 않아 나는 하염없이 울 수 밖에 없었다.
오티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는지, 그녀는 나에게 곧잘 투정을 부렸고, 나는 곧잘 진상손님을 잘 해결해왔기 때문에 그녀도 열심히 달래주었다. 그렇게 계속 문자가 이어지던 중 어느새 오티의 마지막 날이 되었고, 대학교 오티의 특성상 다들 모여서 술을 먹는 자리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많이 먹지 말라고 가볍게 답한 후 계속 일을하고 퇴근이 다된 시간에 갑작스레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이미 술에 많이 취한 목소리로 그녀는 내게 애들이 자꾸 춤을추라고 한다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때 그 일을 주도했던 친구를 바꿔달라고 해서 상당히 뭐라뭐라 쏘아붙였던 것 같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를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 후에도 나는 내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아니, 바꿀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날 전화를 끊는 내게 너같은 친구가 있어서 정말 좋다며 술주정을 부렸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대학와서 만난 정말 좋은친구 A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느꼈으니까.
생각보다 아프지는 않았다, 남녀사이에 진짜 친구는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연기할 자신은 차고 넘쳤을뿐더러, 이 이상 무언가를 시도했다간 그녀와 어색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때 내가 걱정했던 것은 내가 그녀와 잘 안될 것 같다는 불안보다, 친구로라도 남겠다는 것 뿐이였으니까.
그렇게 개강의 하루가 밝았고, 나는 그 전날부터 튼튼한 닭다리를 자랑하다 끌려간 농구동아리에서 술을 어마무시하게 마신 상태였다. 시간표를 짤 때 공강을 만들어서 다행이지, 정말 큰일날 뻔했다며 안심하는 내 눈에 그녀가 보였고, 크게 이름을 부르며 쫄랑쫄랑 달려가서는 선배들이 술을 너무 먹인다며 그녀에게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미련하다며 내 등을 팡팡 치던 그녀는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컨디션을 사와 내게 주었다. 마시며 그녀와 자연스레 이야기를 했고, 생각보다 속이 편안해진 나는 그녀와 어떻게든 더 붙어있으려고 계속 말을 걸었다. 그러나 첫날부터 수업이 있어 과제가 있다는 그녀를 더는 붙잡지 못하고 기숙사에 데려다 주었고, 나도 터덜터덜 내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오자, 첫날 눈싸움을 하며 친해진 옆옆방 녀석이 소주를 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룸메형과 앉아서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전날에도 대량의 술을 마신 나는 오늘도 마시다 죽을 것 같은 치사량의 소주를 위속 그린고트에 차곡차곡 저장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취기가 오를대로 올라버린 나는 그 두 사람에게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당시 내 싸이월드 비밀번호와 같은 등급의 비밀을 불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미친놈이지.
다음날 이불을 뻥뻥 찰 새도 없이 오전에 수업을 하고 점심에 학식을 먹으러 부랴부랴 뛰어가던 나를 어떤 여자애들 둘이 세웠다. 돌아보니 그날 같이 술을 마셨던, 같은 지역에 사는 동기 여자애들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언제부터 그녀를 좋아했는지를 캐묻기 시작하는게, 좀만 더 얘기했다간 내 가슴둘레마저 전교에 퍼져나갈 기세였다. 그만큼 그녀들은 집요했고, 타블로이드 기자처럼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싶어했다.
간신히 그녀들을 따돌린 후 나는 내방이 아닌 친구방에 있었고, 그 녀석은 무릎을 꿇은 채 미안하다를 연발하며 꼭 술을 사겠다고 했다.
그렇게 학교에 입학하기 전날부터 매일 매일 무슨일이 생겨 술을 마시게 되었다. 허나 그러던 와중에도 나는 그녀와의 연락이 끊이지 않게 신경을 잘 썼으며, 마시는 알콜의 양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내 네이트온 대화명에도 신경을 써가며 좋은 친구 연기를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초반에 친구가 몰래 이야기해 버린 그 몇 명의 여자애들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고, 둘에게 큰맘먹고 치즈돈까스를 사주며 그건 정말 너희가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녀를 진짜 좋아하지 않는다고 무한한 해명을 한 후에야 간신히 수긍을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