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요약 : 은둔하며 지내는 A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B와 처음 연락을 주고받음.
한 줄 요약 : A와 B가 처음으로 만남. A의 죽었던 연애 세포가 아주 조금씩 세포 분열을 하려 준비 중.
한 줄 요약 : A와 B가 처음으로 함께 술자리. 그리고 말을 트게 됨
한 줄 요약 : 새우젓 축제에 함께 가 김치를 담그다가 사귀게 됨.
정말 신기하다.
집중력이 약한 나는 주변 소리와 지나가는 사람들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있으면 오직 그녀의 말만 들렸다. 그리고 그녀만 보인다.
그녀도 그랬을까?
5. 새우젓 축제에서 우리는 사귀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 관계가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자기 전 전화통화를
1시간 이상 하고, 길을 걸을 때 손을 잡고 걷는 정도...
우리는 데이트 할 때 주로 커피숍에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읽고 싶은 책을 읽다 헤어질 시간이 되면
손을 잡고 이야기하면서 지하철역까지 가곤 했다.
"너희 선배 오늘 지각했다."
"왜? 어제 술 먹고 실신했데?"
"말로는 지하철이 막혀서 늦었다는데, 오자마자 술 냄새가 확~ 풍기더라고."
"누구랑 술을 마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소주 마시고 고량주 마셨을 거야. 완전 그 냄새였어."
이 여자... 개 코다. 어젯밤 선배는 갑자기 자취방에 찾아와 탕수육과 고량주를 함께 먹고 나보다 먼저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 허둥지둥 씻지도 않고 출근했는데 지각을 안했을리가 없지.
"벌써 지하철역이네. 우리 한 정거장만 더 걸을까. 날씨도 좋은데?"
"이미 홍대입구에서 합정까지 걸어 왔거든. 그다음은 양화대교 건너야 해."
"다리 건너지 뭐..."
우리는 양화대교 입구에서 서로 약속한 듯이 '우리 선유도 공원 가자.' 라고 말했다. 손을 잡고 시원한 밤바람이 부는 선유도 공원을
걸을 때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선유도 공원을 걸으며 그녀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너 왜 처음에 나한테 전화도 그렇고 봤을 때 쌀쌀맞게 대했어?"
"같이 외주하던 분도 있었고 일단 나는 낙하산이 싫어. 그리고 네 목소리에 자신감도 없는 거야. 이런 사람이 일을 제대로 하겠나 하는 생각을 했지.
처음 봤을 때 키가 큰 거야. 난 내가 키가 작아서 키 큰 사람들 옆에 있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지금은 어때?."
"넌 키만 컸지. 완전 애야 애. 귀여워."
그녀는 귀여워라는 말을 하며 내 엉덩이를 톡톡 쳤다. '너도 귀여워'라며 그녀의 엉덩이를 톡톡 쳐주고 싶었지만, 속으로
'진도가 너무 빠르면 안 돼.' 하며 참았다. 그리고 '귀엽다'라는 말은 10살 이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그녀와 내가 처음 싸운 건 아주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다. 커피숍에서 내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그녀는 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아니 남의 핸드폰을 왜 보는 거야."
사실 내 핸드폰을 봐도 통화기록의 90%는 그녀, 10%는 인터넷, 핸드폰, 보험 등 스팸 전화였고, 문자도 거의 그녀와 주고받은 것밖에
없었다. 아.. 가끔 쓰레기 분리수거와 건물 내 금연을 강조하던 오지랖 넓은 건물주가 보낸 문자 정도..
"뭐. 봐도 별거 없던데. 왜 기분 나빠?"
"당연히 나쁘지. 서로 사생활이 있는데. 내가 너 화장실 간 사이에 네 핸드폰 열어보면 기분 좋겠어?"
"난 내 남자친구가 누구랑 통화하고 하루를 보내나 보고 싶었던 거야.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사생활은 개뿔. 사실 그녀가 핸드폰을 열어봤다는 것보다 오직 그녀와 통화하고 문자를 주고받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녀가 내게
'너는 친구도 없냐?' 이 말을 하는 게 가장 두려웠다.
"됐어. 앞으로 그러지 마."
"너 화났어?"
"안 났어. 나 화 잘 안 내는 성격이야."
"에이 화났네. 났어. 너 화도 낼 줄 아는구나."
"내가 부처님, 예수님도 아니고 화가 날땐 당연히 나지. 그리고 이제 풀렸으니까 그만해."
"풀렸으니까 그만해?"
"응 풀렸어. 완전히."
"풀렸어. 완전히?"
"야. 너 내 말 따라 하지 마!"
"따라 하지 마?"
"그래 따라 하지 마. 약 올리는 거 같아."
"약 올리는 거 같아?"
잠시 나는 이 말을 할까 생각했다. 좀 더 좋은 분위기에서 하고 싶었고,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사랑해"
큰 뿔테 안경 속 그녀의 큰 눈이 나를 바라보고 웃고 있다. 그리고 검은 눈동자에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그녀를 바라보는 내가 있다.
"사랑해"
우린 그 날 처음으로 서로에게 사랑한다 말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나는 좀 더 그녀와 발전적인 관계로 나가고 싶었다.
"뽀뽀해 줘,"....
나를 바라보며 잠시나마 달콤한 사랑의 시간을 보낸 그녀의 눈빛은 다시 평소대로 돌아갔다.
"이 자식. 오냐 오냐 했더니 커피숍에서 이불 깔고 뒹굴자고 할 놈일세.."
그래도 그 날 지하철역까지 걸으며 그녀는 내 손을 예전보다 더 꼭 잡아줬다. 그녀는 나와 함께 걸으며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런데 뽀뽀는 언제..'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난 더럽고 음탕한 놈이다.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내 삶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내 삶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