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후배들이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자고 유혹을 했을 때 항상 단호하게 그 유혹을 견뎌냈다.
"성성아 나 vips (빕스라 부르는 게 맞지만 대학물을 마셨다는 유식한 친구는 항상 브이아이피에스 라며 vip들이 만찬을 즐기는 장소라고 했다.)
쿠폰 있는데 같이 안 갈래?"
"안가. 패밀리 레스토랑이잖아. 말 그대로 가족끼리 가는 곳이야. 우리는 친구이지. 가족은 아니잖아. 가족끼리 만찬을 즐기는 그런 오붓한 장소에
너 같은 반려동물과 함께 입장하는 것은 간만에 만찬을 즐기려는 다른 손님들에게 예의에 어긋난 행동 같아."
"그래도 거기 송아지 고기 아주 좋아~ 게다가 한우야 한우~"
한우라는 말에 입가에 침이 고였지만, 가족끼리 가는 곳에 가축과 함께 다정하게 입장할 수는 없었다.
회사의 여자 후배들도 가끔 내게 유혹을 했다.
"선배님 점심에 아웃백 런치 가요. 가격도 디너보다 저렴하고, 우리도 점심에 맛있는 거 좀 먹어요."
"너희 부모님 모시고 그런 패밀리 레스토랑 가본 적 있니? 물론 우리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또 하나의 가족이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은 가족끼리 함께 식사를 즐기며 집에서 나누지 못한 정을 나누는 장소란다."
"아...네.."
후배들은 '저 쪼잔한 새끼 돈 쓰기 싫으니까 이제 별 핑계를 다 대네'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대쪽같은 성격의 나는 전혀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
"물론 너희 중에 나와 가족의 연으로 묶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함께 갈 수도 있지."
통짜이 씨와 국제결혼을 한 뒤 러브 인 아시아에 출연할 수는 없다는 단호한 표정의 여자 후배들은
"선배, 그냥 우리 점심에 돼지 부속물이 잔뜩 함유된 순대국밥 먹어요."
"선배 우리 요식업계의 발할라인 김밥천국 가서 성스러운 라면에 김밥 순례나 하죠."
이러면서 나와 패밀리 레스토랑을 함께 가는 것을 거부했다. 물론 생각이 올바르게 잡혀 있는 건전한 젊은이라면 '선배는 부모님을 공경할 줄 아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청년' 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뒤 회사에서 내가 패밀리 레스토랑에 함께 가자고 섣불리 제안하는 여자 후배는 없었다.
내가 처음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게 된 것은 먼 과거의 옛날인 대학 시절 친구들과 술 약속이 있어 대학로에 갔을 때였다.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모태솔로 남성이 정체불명 여인의 손을 꼭 잡고 웃으며 걷고 있었다.
그의 정체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 손도 잘 안 잡고 다니던 도도한 큰 형이었다.
큰 형은 나를 보자 "니가 거기서 왜 나와" 이런 표정을
그리고 미래의 형수는 '저 사람이 누구길래 갑자기 내 손을 뿌리쳤을까? 친구, 선배? 아니면 숨겨진 연인?' 하면서 놀라는 표정이었다.
"형~ 직장인이 대학로에서 뭐하는 거야? 직장인답게 넥타이부대가 상주하는 테헤란로에 있어야지 왜 노인네가 대학로 물을 흐리고 다녀?"
"태국 방콕의 짜뚜딱 시장 아니면 면목동 방에 '콕' 처박혀 있어야 할 너야말로 낯선 한국 땅에 무슨 일이냐?"
평소 점잖고 농담을 하지 않는 형이 내게 농담으로 도발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를 듣던 형수님은 '아 **씨 동생분이군요' 하면서 내게 반갑게 인사를 하셨다.
"안녕하세요. **씨 직장 동료예요."
"아.. 안녕하세요! **씨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해맑은 미소를 가진 3형제의 막내이자 **씨의 예쁨과 아주 가끔 용돈을 듬뿍 받는 성성이 입니다."
형은 형수와 나의 대화를 들으며, 평소 형에게서 보이지 않던 분노로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너 무슨 약속이 있어 대학로 온 거 같은데, 이제 너 갈 길을 가야 되지 않겠니. 막내야."
웃으며 말은 했지만,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지고 있었다.
"아.. 그렇게 중요한 약속은 아니고. 아직 약속 시간도 남아서.."
옆에서 지켜보던 형수는 내게 예의상
"저희 지금 저녁 먹으러 가려 했는데, 성성 씨도 시간 되시면 같이 가시죠."
"아.. 그러시구나. 제가 거절하면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고..."
형은 다급하게
"3만 원 줄게. 어디 가서 곱게 술 처마시고, 다른 곳으로 새지 말고 택시 타고 집으로 정주행해서 가야지 막. 내. 야!"
평소 내게 용돈이라고는 문화 상품권 5천 원을 주며 읽고 싶은 세계문학전집을 사서 읽으라던 큰 형에게 3만원이라는 거금을 자신의 원만한
데이트를 위해 엄청난 베팅을 하고 있었다.
"아니야. 형! 형 여자친구 분, 아니 미래의 형수님이 되실 수 도 있는 분이 말씀하신 건데 거절하면 큰 실례가 될 거 같아."
지금 같았으면 3만원 받고 곱게 술 처먹으러 갔을 거 같은데, 당시 나는 형이 여자친구를 만난다는 것과 형수에 대한 궁금증으로 불타오르는 연탄을
집은 연탄집게처럼 그들에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형과 형수, 그리고 나는 아웃백이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게 되었다.
잠시 형수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형은 내게 다급하게 말했다.
"너 **씨 나오기 전에 친구 전화 받는 척 연기하고 공손하게 인사하고 나가. 그러면 지금까지 너의 만행을 없던 일로 해줄게."
"형... 미래의 형수가 되실 분이라 생각이 들어. 그러니까 내게 '패밀리', 즉 가족 레스토랑에 오자고 하신 거잖아. 내가 그냥 일어서는 게 더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야. 그리고 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 연기는 못해."
태어나서 형이 그렇게 분노한 표정은 처음 봤다. 하지만 형수가 화장실에서 돌아오자 평소의 온화하며 북극의 빙하를 녹여버려 바다의 수심을 더
깊게 하는 따뜻한 큰 형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웃고 있지만, 형의 표정에 수심은 더 깊어지고 있었고, 형은 참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우리 3인 세트에 맥주 무제한 행사 하니까. 우리 맥주도 같이 한잔 해요."
조용한 성격의 형과 다르게 형수는 웃으면서 내게 말씀을 건네셨다. 물론 그 이후 형수는 내게 그런 따스한 미소를 보이지 않으셨지만, 아직도
그날의 따뜻한 누님 미소는 잊히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누나가 없어서 그런지 더 다정다감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형수님 감사합니다! 100분 동안 맥주가 무제한이니까 5분에 한 잔씩 마시면 우리 20잔은 마실 수 있을 거 같아요!"
"호호홋. 성성씨 술 잘 마시나봐요. 5분에 한 잔씩 마시다니..."
"형들 하고 마시면 맥주 한 병도 안 넘어가는데, 여성 아니 그것도 경국지색의 절세미녀하고 마시는데 그정도는 마셔야죠!"
내가 미녀라고 했을 때 형 표정은 수심 대왕오징어가 서식한다는 해저 2만 리까지 깊이 내려갔고, 형수님의 "호호호호홋" 하는 웃음소리는
아웃백에 더 크게 울리고 있었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맥주가 한 두잔 오갈 때 즈음 형도 어느 정도 자포자기한 눈치였다. 그리고 형수님은 내게 형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시기 시작했다.
"**씨 어렸을 때 어땠어요? 지금처럼 과묵하고 듬직했나요?"
"그럼요. 형은 어렸을 때부터 과묵하고 듬직하게 동생들에게 일을 시켰죠. 우리는 가련한 소작농이고 형은 악덕 지주였어요."
나는 형수에게 그동안 형이 동생들에게 베푼 자비와 노동력 착취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포크를 쥔 형의 손은 스테이크가 아닌 나를 향해
점점 방향을 틀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은 날카로운 톱니가 달린 나이프를 쥐려 하고 있었다.
둘은 오붓하게 그리고 한 명은 분노에 떨며 식사와 맥주를 마치고 나왔을 때 나는 이제 두 분이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기시라며 자리를 피해드렸다.
하지만 형수님을 그냥 보내 드리기에 아쉬움이 남아 형수님 앞에서 인사를 하며 말씀드렸다.
"저희 형이 못생겼고, 말도 재미없지만 형하고 사귀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또다시 강조하지만, 형은 못생겼고 재미없는
대신 사람이지만 절대 가볍지 않고 자신이 내뱉은 말과 행동에 책임감 있는 사람이거든요....제가 부모님만큼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에요.
누님은 그런 형이 사랑하는 분이시니 이제부터 제게도 소중하신 분이고요."
형수님은 나를 향해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바라보듯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 주시고 있었다.
"그리고 저랑 작은 형은 잘생겼고, 말도 재미있게 하거든요. 꼭 저희 형수님이 되어주세요. 형수님 말 정말 잘 듣겠습니다.
오늘 그리고 맛있게 먹었습니다.두 분 오붓한 시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형과 미래의 형수와 헤어졌다. 그리고 그분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집안의 맏며느리 겸 동생들의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형수님이 되어 주셨다.
그리고 훗날 상견례 자리에서 작은 형을 봤을 때 내게 작은 목소리로 '이런 사기꾼 태국인' 이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