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내에서 주는 기내식을 폭풍 흡입하고 부른 배를 문지르며 앉아있었다.
막내는 멀리 떨어진 자리라서 계속 왔다갔다 했고, (주로 초코바나 패드 꺼내달라는 용무로)
큰오빠와 작은 오빠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본 땅을 무사히 밟을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공항에서 놀다보니 부모님도 도착하셨고, 모든게 순조로웠다.
일본에 거주중인 아버지 친구 분이 마중을 나오셔서 불편한 점도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가는 길도 재미있었다.
차창을 보면서 '아직도 눈이 녹질 않은게 내 마음과 같네', 같은 쓸데 없는 소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내려 숙소로 이동할 때도 즐거웠다.
정말 너무 이상하게 즐거운 것이다. 아마도 여행을 와서 그런가보다 하고 작은오빠 등에 매달리기도 하고,
작은오빠: 야이 씨 내 인생도 무거운데 저리 안꺼져?
큰오빠한테 치덕거리기도하고 아빠와 엄마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이상한 애교도 부렸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려고 앉아있는데 문득 큰오빠가 질문하나를 했다.
큰오빠: 막내는?
작은오빠: (멍하니 있다가) 아까 봤는데.
큰오빠: 난 아까도 못봤는데.
나: 지하철 탈땐 봤잖아.
큰오빠: 그땐 봤다고?
나: 화장실 간거 아니야?
작은오빠: 전화해봐.
잠시 후
나: 전화 꺼져있는데...
엄마: 왜? 무슨 일 있어?
작은오빠: 막내 없어.
엄마: 걔가 왜 없어.
나: 우리야 모르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애는 전화를 안받지, 당장 여긴 한국도 아니니 말도 통할리가 없으니까.
아빠는 지인분과 일단 지하철 역으로 가보겠다고 했고, 우리도 찾을 방법을 사실 없으나 엄마를 위해
전화도 계속 시도하고, 호텔 로비에 엄마, 길거리에는 나와 작은오빠가, 큰오빠는 호텔 직원과 함께 경찰서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찾으러 다니다가 호텔 로비로 모두 모였다.
그때까지 핸드폰이 켜지지 않은 막내를 걱정하던 엄마는 혹시 무슨일이 생긴건가 해서 울기 시작했고,
오빠들과 나는 막내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하는 형 누나가 되어 있었다.
당장 엄마 아빠도 애가 없어졌는지도 몰랐으니 거기에 대한 자책이 컸다.
호텔 측에서는 일단 올라가서 짐을 풀고 기다리면 알아봐주겠다고 엄마를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막내: 여기서 다들 뭐해?
그 때,
호텔 로비 자동문이 열리고 막내가 들어왔다. 헤실헤실 웃으면서.
작은오빠: 야이씨X놈아!
큰오빠: 야! 너! 진짜!
나: 으앙!!!
엄마는 달려가서 막내를 붙잡고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혹시 오다가 상한 곳은 없는지 물었다,.
막내: 나 괜찮은데. 근데 나 택시비 줘야해. 돈 없어서 지금 아저씨 기다려.
아빠: 일단 계산하고 올테니까 너 여기서 기다려.
막내: 엉.
큰오빠: 어디 갔었어?
막내: 왜 다들 안 깨우고 내렸냐.
작은오빠: 이 개생키가 지금 누구탓을 해. 정신 똑바로 안차리지? 어? 이게 빠져가지고!
나: 전화는 왜 안 받아! 왜!
막내: (해맑게) 아 맞다! 나나, 오다가 핸드폰을 잃어버렸어. 근데 트렁크는 챙겼어. 다행이지?
말하면서 웃는 막내를 보던 엄마는 자리에 주저 앉아 대성통곡을 했고,
우리 남매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느라 그날 저녁이고 관광이고 다 포기하고 방에 누워만 있었다.
결국 잃어버린 핸드폰은 찾지 못했고, 그래도 애는 찾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위로했으나
20대 아들을 잃어버린 것도 창피한 부모님은 이 일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