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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은 사근동에 살았다. 곧장 한양의대 계단강의동 뒤 샛길로 빠지면, 닭칼국수집 앞에 한양촌이 서 있고, 그 주위엔 원룸촌이 널렸는데, 방음이 잘 되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 옆 방에서 물 따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러나 허생은 책 읽기나 좋아하고, 그의 인서울 인문대 출신 여친이 편의점 알바를 해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여친이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상위권엘 들지 못하니, 파워는 읽어 무엇 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진급이라도 못 하시나요?”
“이런 성적으로 진급해봤자 9등급인데 무슨 과를 하겠소?”
“그럼 기초라도 못하시나요?”
“기초는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겠소?”
“그럼 2차 가서 피안성은 못 하시나요?”
“연줄도 없고 가보았자 허드렛일만 하다가 팽 당하기 일쑤이고, 하물며 나는 로얄이 아니라 보장도 없거늘 어떻게 하겠소?”
여친은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책만 파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진급도 못 한다. 2차도 못 간다면, 피부시술 배워서 GP라도 못 하시나요?”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의학과 생활만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획 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자매 식당으로 나가서 콩나물국밥을 먹던 본2를 붙들고 물었다.
“누가 한양대에서 제일 부자요?”
김종량을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김 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김 씨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김종량은 한양대학교 설립자 김연준 총장의 장남이자, 한양대 8대 총장입니다 - 퍼온이)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천억 원을 꿔주시기 바랍니다.”
김 씨는 “그러시오.” 하고 학부모들이 낸 등록금으로 꼬불쳐놨던 비밀 증권과 어음을 정리하여 당장 천억를 만들어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김 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허생을 보니 말년 PK였다. 베이지 면바지는 때가 카키색에 가까웠고, 이마트 구두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보세 옥스퍼드 셔츠에 머리는 몇 일 감지 않아 기름이 잔뜩 끼었으며, 오른쪽 주머니에는 중고나라에서 산 2008년판 파워내과가 있었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천억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김 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가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부탁을 하러 오는 사람은 으레 공손한 척 하지만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천억원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을 하겠느냐?"
허생은 천억을 입수하자마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풍납동 아산병원과 일원동 삼성병원으로 갔다. 아산과 삼성은 국내 내로라하는 의사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이요, 각종 의료계 떡밥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메이저 분야는 물론이거니와 마이너, 기초분야까지 성실하고 일 잘하는 MD들을 모조리 스카우트했다. 개개인에게 9시 출근 5시 퇴근과 자유로운 연구 환경, 풍족한 연구비 지원, 행정 업무 배제, 논문 의무 제출 편수 대폭 축소, 토요일 포함한 휴일보장을 제시하고 학연, 지연, 혈연에 관계없이 인사를 투명하게 진행하니 스카우트 아니 당하는 이가 없었다.
허생이 나라의 소문난 의사들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에서 한양대병원을 보고 환자들이 앞을 다투어 짐을 싸들고 왕십리로 달려가기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이른바 빅5의 병원 관계자들이 도리어 허생에게 찾아와 의사들을 따따블의 값으로 다시 스카우트 해가게 되었고, 그나마도 잘 되지 않았다. 병원은 미어터져 로비까지 환자들이 줄을 섰으며, 텐트를 치고 밤을 새우며 외래를 기다리는 진풍경까지 연출되었다. 브레덴코는 빵이 구워져나온지 30분만에 모든 밀가루가 소진되었고, 발란스버거는 진동벨이 모자라 주문을 받지 못할 정도였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천억 원으로 전국 환자 흐름을 좌우했으니 우리나라의 형편을 알만하구나.”
허생은 공인중개사를 만나 말을 물었다.
“혹시 새 병원 부지로 쓰기 좋은 곳이 없던가?”
“있습지요. 병원 후문으로 나가서 섭웨이 쪽으로 쭉 가다보면 넓은 지대가 하나 나오지요. 수년 전부터 아무도 쓰지 않는 땅으로 원래 한양대병원처럼 언덕이 있지 않고 평지로 지하철 역도 보다 가깝고 새 병원 부지로 쓰기가 좋습니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내가 그곳에 병원을 짓게 해준다면 새 병원의 커피전문점 자리를 내주지.”
라고 말하니, 공인중개사가 크게 기뻐하며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도착하여 빈 공터와 그 주위를 주욱 둘러보고 실망하여 말했다.
“생각보다 부지가 크지 않고 주위에 후줄근한 건물들이 알박기를 하고 있으니 무엇을 해보겠는가? 평지이고 새 건물이니, 단지 2차 병원급은 될 수 있겠구나. 앞의 비버리힐스까지 확장한다면 뜻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
“스카우트한 교수들이라고 해봤자 다들 나이가 있는 원로급들이고 신선한 피가 없는데 무슨 병원을 새로 하시겠단 말씀이요?”
공인중개사의 말이었다.
“대우를 잘해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대우를 못 해줌이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허생은 큰 돈을 들여 한양대역을 포함한 덕수고등학교, 비버리힐스 근방을 모두 사들여 병원 건축을 시작했다. 한양건설이 아닌 공정한 입찰을 통해서 업체를 택해 수주를 맡기니 비용도 절감되고 진행도 일사천리였다.
이때, 여러 지역에서는 수천의 의사들이 usmle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의사생활을 하고 싶었으나 수직적 조직문화가 너무 답답하고 미국 병원들의 조건이 좋아 곤란한 판이었다. 허생이 공보의협회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었다.
“미국으로 가면 돈은 얼마나 더 받지요?”
“1.5배는 되지요.”
“거기 친척이라도 있소?”
“없소.”
“원래 외국으로 너무 가고 싶었던 것이오?”
연구원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민을 가지 왜 한국의대 나와 미국을 가겠소?”
“정말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 일을 하고 연구하지 않는가? 그럼 입에 맞는 음식 먹으면서 집에는 부부의 낙이 있을 것이요, 명절에는 친척들과 화목하게 윷놀이도 할 수 있을 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대우가 너무 넘사벽이고 모든 일이 까라면 까야 하니 그렇지요.”
허생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할 일이 있소. 내일 각자의 이메일을 열어보오. 어떤 병원보다 최고 대우의 근로계약서와 자유로운 연구를 약속할 테니 맘에 들면 찾아오시구려.”
허생이 공보의들과 언약하고 내려가자, 연구원들은 모두 그를 미친놈이라고 비웃었다.
이튿날, 공보의들이 이메일을 열어보았더니, 과연 허생이 보낸 조건이 어떤 미국 병원보다 나았다. 모두들 대경해서 허생 앞에 줄지어 이력서를 보냈다.
“오직 선생님이 시키신 대로 하겠소이다.”
허생은 몸소 이천 명의 자리를 준비하고 기다렸다. 젊은 의사들이 빠짐없이 모두 모여들었다. 허생이 usmle 시험 예정이던 공보의들을 몽땅 쓸어가서 gmes는 망했으며 usmlekorea엔 사람이 없었다. 드디어 다들 새 병원에 짐을 풀고 일을 시작했다.
그들은 논문 아이템부터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끝없이 토론했다. 열린 분위기에서 교수, 펠로우, 전공의, PK 할 것 없이 자유롭게 사소한 문제점도 모두에게 공유되니 금방 해결방안이 나오게 되었다. 출신학교나 나이, 출신고교, 동아리, 지역, 포트폴리오 등은 아무도 문제 삼지를 않았다. 앞으로 병원을 이끌어갈 3가지 핵심 분야를 정해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나머지 아이템들은 후에 구리한양대병원이나 다른 병원에 매각하였다.
신성장동력을 찾던 기존의 병원들이 참신하며 신기술을 가진 의사들을 한참 찾고 있는 차라 이 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나간 이들이 전국에 퍼져 배운 바를 전파하게 되었다.
허생이 탄식하면서,
“이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하고, 이에 전공의 이천 명을 모아놓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병원에 들어올 때엔 임상과 기초를 함께 키워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나 휴스턴의 엠디엔더슨을 넘는 병원을 만들려고 하였더니라. 그런데 포괄수가제에 규제까지 심하니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전공의을 받거들랑 학연, 지연, 혈연을 배제하고, 스탭들은 자만하고 독단하지 말라.”
하고 10조를 어려운 학생들에 투자하며,
“돈이 없어 걸출한 이가 크지 못한다면 얼마나 슬프랴!”
했다. 그리고 낙하산으로 들어온 자들을 모조리 해고하면서
“이 병원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
했다.
허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 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돈이 1조가 남았다.
“이건 김 씨에게 갚을 것이다.”
허생이 가서 김 씨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 씨의 아들이 대신 대답하였다.
“EBS 명의에 한 번도 출연을 못하더니, 혹시 천억 원을 실패 본 것 아니오?”
허생이 웃으며,
“여기저기 찔러주며 이름값을 높이는 건 당신들 일이오. 천억 원이 어찌 도를 살찌게 하겠소?”
하고, 1조짜리 자기앞수표를 내놓았다.
“내가 하루아침의 갈굼을 견디지 못하고 융복합 소양 쌓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천억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김 씨의 아들은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했지만, 허생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김 씨의 아들은 그럼 한양대 명예 박사학위라도 받아달라고 하자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삼엽충으로 보는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버렸다.
김 씨는 가만히 그를 따라 4220번 버스를 탔다. 허생이 사근동에서 내려 조그만 원룸으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예과생이 길가에서 밥버거를 먹는 것을 보고 김 씨가 말을 걸었다.
“저 조그만 원룸이 누구의 집이오?”
“사근동 허생네 집이지요. 국시도 안 보는데 사근동에서 공부만 하고 있어서 허구한 날 생쇼한다고 허생이라고 부릅지요. 저 형 이 동네에서 유명해요.”
김 씨는 비로소 그가 유급 낭인임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이튿날, 김 씨는 받은 돈을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주려 했으나, 허생을 받지 않고 거절하였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10조 원을 버리고 1조 원을 받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삼거리 월식이나 끊어주고 방세나 내주도록 하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돈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김 씨는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김 씨는 그때부터 허생이 월세가 밀릴 때쯤 되면 몸소 찾아가 도와주었다. 허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전세라도 얻어주려고 하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날더러 2년마다 전세금 올려주라는 것이오?”
하였고, 혹 양주를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로 폭탄을 말아주며 취하도록 마셨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어느 날, 김 씨가 5년 동안에 어떻게 10조 원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보았다. 허생이 대답하기를,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한국의 의료계가 심평원의 제제만 강하고 정치권이 휘두르면 인기과와 비인기과가 순식간에 뒤바뀌고 의사와 병원이 끌려다니는 터라 불안하지요. 무릇, 천억은 적은 돈이라 미국식 영리병원을 유치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열로 쪼개면 백억이 열이라, 또한 이를 이용해서 돈놀이나 부동산 놀음 하는 건 당신네들 하는 짓 아니오?
대개 1조를 가지면 족히 이 땅에 의학의 부흥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에, 내과면 내과 전부, 외과면 외과 전부, 기초면 기초 전부를 세계 제일의 분야로 만들어낼 수 있지요. 기초는 제자리인데 임상만 잘나가고 있다면 학생들이 눈이 뒤집혀 달려들 것인데, 이는 근본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나중에 후대들이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학생들은 반드시 한강에서 정모하게 될 것이오.”
“처음에 아버지가 선뜻 천억 원을 꾸어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허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 아버지만이 내게 꼭 빌려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능히 천억 원을 지닌 사람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100조는 벌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로또 1등도 토요일이 되어야 아는 것을, 낸들 그걸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어찌 주지 않았겠소? 이미 천억 원을 빌린 다음에는 그의 돈복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김 씨가 이번에는 딴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의사들이 기초에 충실히 하고 그 우월함을 다시 굳혀 세계에 우뚝 서서 노벨상을 싹쓸이하고자 하니 우리나라에 선생과 같은 인재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선생의 그 재주로 왜 사근동 원룸에만 있으려 하십니까.”
“어허, 자고로 병원에서 일하는 건 몸이 축나는 법이오. 돈을 많이 받아도 주는 만큼 부려 먹는다는 소릴 듣고, 또 당신 아버지가 이사장 자리에 있는 것처럼 금수저 아버지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드니 돈도 빽도 없는 나는 금방 밀려나기 마련이지. 또 죽을 만큼 일해서 과의 과장직함을 달아도 아들 하나 잘못두면 바로 빠이빠이는 순식간이니, 나는 장사를 잘하는 사람이라 내가 번 돈이 족히 한양대10개를 살 만하였으되, 기초에 투자하고 돌아온 것은, 도대체 쓸 곳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김 씨는 한숨만 내쉬고 돌아갔다.
김 씨는 본래 보건복지부 장관 문형표와 잘 아는 사이였다. 문형표가 장관이 되어서 김 씨에게 혹시 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김 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문형표은 깜짝 놀라면서,
“기이하다. 그게 정말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소인이 그분과 상종해서 3년이 지나도록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니다.”
“그인 이인(異人)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
밤에 문형표는 의학전문기자들도 다 물리치고 김 씨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김 씨는 문 장관이 문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허생을 보고 문 장관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당신 가져 온 스타벅스 벤티 사이즈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그리하여 즐겁게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이켜는 것이었다. 김 씨는 장관을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문 장관이 방에 들어와도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문 장관은 몸 둘 곳을 모르며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보건복지부 장관이요.”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받는 신하로군. 내가 와룡 선생(臥龍先生)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네가 효자동 VIP에게 아뢰어서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문 장관은 고개를 숙이고 VIP의 지능과 말 안듣는 심평원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허생은 외면하다가, 문 장관의 간청을 못 이겨 말을 이었다.
“의사들이 공부하던 옛 가락이 있으나 싸구려 포괄수가제나 값싼 수가에 못 이겨 전문의가 된 뒤에도 대출이자 갚을 길이 없어 지방 요양병원에서 정처 없이 알바나 뛰고 주휴일과 수당도 제대로 못 받아 먹고살기 힘들어 자살까지 하는 지경이니, 너는 정부에 청하여 전공의 주 40시간 근무와 6개월 출산휴가 미보장 및 퇴직 압력을 줄 경우, 병원이 휘청거릴 만한 벌금을 때려 여성의사의 경력단절을 막고, 포괄수가제를 비롯한 의료수가를 총체적으로 정비하여 재원을 확보하고, 기초가 맘 편히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환자가 몇 되지 않는 희귀병 분야라도 자유로이 연구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금을 줄 수 있겠느냐?”
문 장관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제대로 된 의사를 만들어 내려면 학생 때부터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인문학 소양을 가진 의사만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의 교육부터 올바르게 바뀌어야 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바꾸고 세계사, 한국사, 일본사, 중국사 등등 역사와 기본적인 철학, 한국 문학 등을 고등학교까지 가르쳐 교양인을 육성하고, 온갖 외래어가 섞여 있는 국어를 손을 보아 모든 학문, 문화의 시발점을 정돈해야 한다. 그리곤 각각 분야별로 학자들에게 전문용어 손질을 맡겨야 한다. 예를 들어 의학용어도 창렬스럽지 않게 제대로 된 우리말로 바꾸어 학생들이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순수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의학 교과서도 집필하여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창렬스러운 한국어판 해리슨을 비롯한 허접쓰레기 번역판들은 계동 뒤 소각장에서 불태워버리고 제대로 된 번역을 통해 한국어 텍스트를 확보해야 한다. 또한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인한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고 나이나 직위를 이용한 상명하복 구조의 타파를 기원한다면 반드시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의학자가 나올 것이다.
되지도 않는 포괄수가제는 집어 치우고 수가라도 조금이나마 현실화하고 만성 적자화된 건강보험에 대해서 개선을 도모한다면 교과서에 나오는 바람직한 정부형태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평타 이상을 친 정부로 후대에 평가 받을 것이다.”
문형표는 힘없이 말했다.
“모두 지금 보험구조는 국민들이 혜택을 받고 있어 바꾸게 되면 아무도 그 바꾸려는 정치인에게 표를 주지 않을텐데, 누가 의료수가 현실화를 주장하고 포괄수가제 철폐를 입에 올리려 하겠습니까? 또 의학은 서양학문이라 당연히 영어로 해야 한다고 말하는 교수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파워내과를 떳떳이 들고 다니겠습니까?”
허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교수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영어도 안 쓰는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자칭 글로벌 인재를 원한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국시 100%에 등록금을 퍼붓고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명문대가 어쩐다는 키보드 워리어들이나 하는 짓이고, 자국 질병의 통계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미국 통계는 달달 외고 다니며, 학생들 처지를 볼모 삼아 학생 인턴으로 사기나 치다 어디서 자기계발서적이나 읽고 와서 포트폴리오 하라고 하면서 인문학을 겸비한 의대생들이 없다며 헛소리나 하고 있으니, 대체 무엇을 가지고 의사라 한단 말이냐 국격이 별것이냐?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신임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문 장관은 놀라서 일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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