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보니 벽난로가 꺼졌다. 밖은 이미 황혼을 넘어 새벽녘의 어스름 까지 도달했다. 불씨가 꺼져있어 나뭇가지에 램프기름을 바르고 램프 불로 불을 붙였다. 옷이 얇지 않아서 아직 열이 난다거나 목이 아프지는 않지만, 더 오래 끌게 되면 위험할지도 모른다.
불이 붙고 나서는 다시 나무를 집어넣었다. 이제 나무가 부족하다. 곧 겨울이 다가오는 만큼 나무는 필요하다. 여태 벌은 돈으로 나무를 사야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겨울에 무엇도 먹기 힘들다. 할머니가 종이를 묶어 책을 만드는 일을 하지 못해서, 내가 산에서 풀을 뜯어 팔고 있지만, 그건 사실 돈벌이에는 쥐약이다. 사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발사, 약재상들과 필요로 하는 노인들이지만, 내가 어린아이라는 것 때문에 제값을 주려하지 않는다. 요번 겨울은 꽤나 가혹하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서늘하지만, 두꺼운 이불을 덮은 할머니는 따뜻할 것이다. 커튼을 걷고 쟁만을 싱크대에 올리려 부엌에 다녀와서 다시 청소하기 시작했다. 매일 청소를 해서 먼지는 없지만,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다. 하루 시작의 의식.
벽난로 안에 물을 올려놓고 물이 끓여질 때 까지 기다렸다. 아, 수건, 수건. 재빨리 욕실에서 수건을 꺼내왔다. 빨리 끓어야 할 텐데.
물이 끓어서 꺼내어 놓고, 약간 퍼서 다른 그릇에 담은 뒤 할머니 방으로 가져가서 내려놓고, 할머니를 깨웠다.
“할머니, 할머니, 닦아야해.”
일어나실 때, 도와드려 몸을 일으켜 침대 머리 쪽 벽에 등을 기대게 한 뒤, 수건을 물에 넣었다 빼고 물을 짜서 할머니의 몸을 닦기 위해 상의를 탈의시키고, 얼굴부터 시작해 아래로 닦아 내려갔다. 주름진 살에 걸릴 때마다 다시 한 번 닦아야했다.
다 닦아 드린 후에 나와서 스프를 끓였다. 내용물이라고는 버섯이 전부. 고기는 솔직히 먹기 힘들다. 나 혼자서 벌어야 하니 침만 흘릴 뿐.
발로 문을 열고 스프를 쟁반채로 할머니에게 드렸다. 한 번도 내색하지는 않으시지만, 꽤나 드시기 지루하실지 모른다. 이전에는 스프만 드시지는 않으셨으니까.
“다 먹으면, 탁자위에 올려놔야해.”
문을 열고 나가서 내 방에 들어갔다. 밋밋한 방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어제 하루 들어오지 않아서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옷장을 열며 안에서 로브와 보닛(bonnet)을 꺼냈다. 보닛으로 흘러내리는 긴 생머리를 머리 위쪽으로 고정했다. 이제는 출발하기 위해 바구니 안에 샌드위치를 넣고, 호미를 들고 집을 나섰다. 바로 뒤에 산이 있어서 편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서글프다. 우리 집 근처의 집은 없다. 산을 조금 내려가야 나오는 집들이, 내가 주로 나물과 약제를 팔러 다니는 마을이다.
산의 중턱까지 올라와서 약제와 나물을 찾아다녔다. 꽃을 팔면 모두 내 수입으로 들어올 수 있지만, 내가 수레를 옮겨가면 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없다. 하여튼 오늘은 꽤 많은 양을 채취해서 팔아야 한다. 날이 추워지면 약제를 구하기 어렵다. 추운 겨울이 아니기를 빌어야한다.
많은 양을 캐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오늘은 버섯도 땄으니 어느 정도 충당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더 비싸게 팔아야 해. 그래, 겨울이라 캐기 힘들어진다고 해야지. 바구니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입에 물었다. 폭포 아래쪽의 물에서 발을 담그고 앉아서 흥얼거리며 약간 딱딱한 샌드위치를 먹었다. 슬슬 겨울이 되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듯, 물이 여름보다 더 차가워 진 것 같다. 옆에 풀어놓은 보닛을 다시 머리에 묶었다. 슬슬 내려가야겠다. 바구니를 들고 산을 내려갔다. 해가 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에 마을은 꽤나 북적인다. 어린아이들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일단, 약재상으로 먼저 들렸다. “오늘은 많지 않아요.” 바구니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약사 할아버지는 외눈 안경을 한 번 치켜들고는 내 바구니 안을 살폈다. “아, 그렇군.” “그, 그리고 이제 곧 겨울이라 구하기도 힘들어서 가격을 올릴 거예요!” 다시 한 번 외눈 안경을 치켜들고 나를 바라봤다. “아, 그래. 저번에 준 값에 조금 더 쳐주지.” 어째 이겼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아저씨는 서랍을 열어 동전을 꺼냈다. “70소와 45프랑이다. 분명히 저번보다 많이 줬다.” “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며 문을 열었다. “아, 말 안한 게 있는데 말이다. 엔젤……. 다치면 먼저 찾아와도 된다.” 멋쩍게 웃으시며 말하는 표정을 보며 나도 웃으며 대답하고는 가게를 나왔다. 손에 땀이 묻어나면서 따끔거린다. 안타깝게도 엄마의 책에서 상처에 쓰일 약제를 찾지 못했다. 자연적으로 빨리 나으면 좋겠다.
병원에선 정말 할 일이 없네요. 얼른 이 지겨운 항암치료가 끝나길 빕니다.
너무 짧은 것 같아 조금 추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