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함께 일하고 있지 않지만,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자칭 '미녀 3총사', 내가 부를 때는 '먹방 세 여인' 와 함께 팀으로 일한 적이 있다.
항상 수컷들과 팀을 꾸려 일을 하다 새로 만들어진 팀에서 그것도 팀장으로 미녀라 불리고 싶은 왕성한 식욕의 세 여인을 감당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들과 함께 일할 때 때로는 엄마같이, 그리고 때로는 누나 또는 여동생처럼 느껴지게 재밌게 일했던 일화를 몇 가지 쓰려 한다.
물론 그녀들은 항상 오유를 눈팅하고 있으며 내가 글을 쓸 때 댓글을 남기고 싶어 하지만 나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 남기지 않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1. 연약한 팀장
본부장님과 논의 후 새로운 팀을 만들기로 했다. 구성원은 나와 세 여인, J 팀장과 L사원, 그리고 당시 아르바이트 학생 신분의 Y였다.
수줍음이 많고 부끄럼을 타는 못생긴 샤이보이인 내가 과연 여자 세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다행히도 세 여인은 업무면 업무, 작업이면 작업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한 나를 많이 도와주었는데, 팀워크가 좋던 우리 팀의 가장 큰 문제는
팀장인 나의 저질 신생아 체력이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 약간 가파른 경사길이 있었는데, 회사의 발전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며 걷다 넘어져서 제법 난이도가 있는
앞구르기를 한 적이 있다.
나의 역동적인 모습을 실시간으로 Y가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바로 Y에게 맨 인 블랙의 윌 스미스처럼 볼펜을 꺼내 1분 전 지켜본 기억을 지웠다고
생각지만 30분 후 J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팀장님 무릎 보호대 하나 해드릴까요? 우리 아이도 잘 넘어지는데 무릎 보호대 하니까
넘어져도 상처도 안 나고 좋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 뒤 내가 사무실에서 졸다가 넘어졌을 때도, 길거리에서 걷다 간판에 부딪혔을 때도
그녀들은 마치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이처럼 나를 불안하고 안쓰럽게 여겼다.
내가 회사에서 연약한 청순가련의 아이콘으로 등극하게 된 결정적 사건은 우연히 팔씨름 이야기를 나누다가 팀원들이 J팀장과 팔씨름을 한 번
해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내가 설마 여자에게 지겠어 하는 마음에 J팀장에게 도전했지만, 결과는 태어나서 처음 만나 본 가장 강력한 여성의 힘 앞에
내 손은 탁상 바닥을 찍고 말았다. 지켜보는 팀원들과 부서원들 앞에서 이마의 땀을 닦으며 "하핫. 내가 져준거에요. 남자가 여자한테 팔씨름 이긴다고
무슨 자랑도 아니고. 하하하.. 그런데 손목이 좀 뻐근하네." 그 뒤 나는 L사원과 Y에게 연속으로 2연패 한 뒤, 그녀들에게
"팀장님 걱정마세요. 소문은 안낼께요."라며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몇 시간도 안되 하나둘씩 나를 찾아오는 여직원들의 손을 잡아보게 되었고, 그녀들에게 남자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2. 성희롱
당시 우리 부서는 1팀, 2팀, 3팀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우리는 3팀이었다. 매주 회의 때마다 1팀장은 출판사 직원답게 소설 같은 발표를 해서
주변 직원들의 탄성을 자아내기 일쑤였다. 여느 때처럼 1팀장의 말도 안 되는 소설 같은 발표를 듣다 나도 모르게 내 무릎을 친다는 것이
옆에서 그림공부를 하고 있던 Y의 무릎을 치고 말았다. Y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을 때, 나는 바로 Y에게 빠르게 해명을 했지만 나는 손버릇 나쁜 직장상사가 되었다. 물론 지금은 Y와 사람들을 만날 때 즐겁게 이야기하는 에피소드가 되었지만 그 당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진땀이 난다.
하지만 몇 주 후 같은 회의 자리에서 또다시 시작된 1팀장의 소설 같은 발표가 이어질 때 누군가의 발이 나의 다리를 비비고 있었다.
아래쪽을 살펴보니 J팀장의 발이 나의 다리를 비비고 있었다. 내가 무릎을 쳤을 때 Y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지. 같이 발을 비벼줘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J팀장은 바로 "팀장님 죄송해요. 탁자 기둥인 줄 알았어요."
라고 해명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 J팀장은 그 뒤로 남자 다리를 비비는 밝히는 아줌마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우리 팀은 손버릇과 발버릇 안 좋은 두 동갑내기 팀장이 운영하는 변태스러운 팀이 되었다.
3. 그만 좀 먹어
우리 팀은 자주 고기를 함께 먹었는데, 그건 순전히 고기를 좋아하는 세 여인 덕분이었다. 처음 그녀들과 고기를 먹을 때 여자 셋이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어 하는 마음에 고기 판을 벌였는데, 고기를 다 먹고 계산을 한 뒤 그달 나의 법인카드가 올인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평소에 말이 없던 L은 고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회식 전 뭘 먹을까 고민할 때 항상 L사원은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족발"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족발 하니 생각나는 일은 단체 카톡 방에서 회식 때 뭘 먹을까 하는 대화의 장이 열렸을 때 다들 장문의 문장으로
왜 내가 먹고 싶어하는 메뉴를 먹어야 하는 지 설명했다. L사원이 짧고 굵게 보낸 메시지는 "좃발" 이었다. 지금까지 L사원을 만나면
우리 좃발이나 먹으러 갈까? 라며 우리는 L사원을 놀린다. 처음에는 오타 난 거라고 강하게 부정하던 L사원도 지금은 "그래요. 우리 좃발이나
먹어요." 라고 인정하고 있다.
내가 그녀들하고 고기 먹을 때 서러웠던 적은, 네 명이 고기를 먹을 때 항상 고기를 굽는 건 나였다. 단순히 고기를 잘 구운다는
이유로 내가 구웠는데, 그녀들은 고기 먹을 때 만큼은 서로 말도 없었고,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그녀들의 젓가락은 일사불란하게 고기를
불판에서 제거시켰다. 그녀들과 고기를 먹으면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내가 구워주는 고기를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에 팀장으로서 팀원을 챙기는
역할을 해냈다는 뿌듯함보다 먹지 못한 그날의 고기가 아쉬웠다.
우리의 회식은 평균 8인분의 고기와 공기밥 등을 소화한 뒤 뭔가 아쉬운 듯 치킨 2마리를 더 먹고서야 항상 마무리되었다.
물론 치킨을 먹을 때도 항상 내 몫은 다리 하나였다.
그리고 평소에는 과묵하고 불판 앞에서도 과묵한 L에게 "L사원은 왜 고기 먹을 때 상추에 안 싸서 먹어?" 라고 물어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아주 짧게 "고기 맛 떨어져요." 라고 했다. 아.. L사원은 그 뒤로 내 핸드폰에 "육식동물" 이라 저장되었다.
그녀들은 지금은 함께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직장생활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팀원들이다. 앞으로 같이 일을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그녀들과 재미있게 일하고 싶다.
J팀장은 외모는 할머니, 식성은 엄마를 닮은 예쁜 딸을 양육하며 지내고 있고, 작가가 꿈이던 L사원은 소설을 한 편 내고 열심히 직장생활 중이다.
Y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독일 유학을 준비중이다. 자주는 못 보지만 그들이 각자의 역할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