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싸와디깝, 통차이 등으로 불리지만, 지금까지 많은 별명으로 불리고 살아온 것 같다. 물론 주로 외모와 관련된 창작물이긴 한데 나의
별명의 역사를 한 번 써보겠다.
1. 똘똘이
어머니께서 나를 임신하셨을 때 부모님께서는 동네 바보 1호, 2호를 맡고 있던 형들과 다르게 똑똑한 아이가 태어나길 원하는 바람으로 나의 태명을
'똘똘이' 라고 지었다. (참고로 큰형은 깐돌이, 작은형은 하도 깐죽대고 다닌다고 해서 깐죽이라 불렸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태어났을 때부터 형들과 다르게 총명함을 안고 태어난 듯 싶었다고 한다. 물론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총명함을 서서히 잃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동네 바로 1호, 2호, 3호 중 3이 되었다.
지금까지 부모님과 형들은 나를 항상 이름보다 '똘똘아~' 라고 부르고 있다.
얼마 전 형들과 홍대 입구에서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사람 많은 홍대 입구에서 형들은 큰 소리로 내게 "똘똘아~ 똘똘아~"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웬만하면 밖에서 똘똘이라고 부르지마." 라고 말했다. 형들은 동시에 "그 좋은 호칭을 왜?" 라고 물어보길래
"미국에서 존슨이라고 하는 걸 한국에서는 똘똘이라고 부른단 말이야." 라고 했지만, 형들은 "부대찌개?" 이러며 존슨의 의미도 똘똘이의 의미도
모르고 있었다. 결국, 난 답답함에 "똘똘이가 남자 성기를 뜻하는 은어란 말이야. 좃이라고 좃!!"
(적나라한 단어 사과 드립니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그러자 형들은 더 좋아하며, 더 큰소리로 내게 "어이구! 우리 똘똘이, 아주 실하게 잘 컸네!!" 라며 이후 19금 발언들을 남발했다.
휴... 저 바보들... 똘똘이 형이라서 좋겠다.
2. 메기
사춘기를 시작하면서 남들이 키가 클 때 나는 입술이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버지께 물려받은 한국인의 평균치를 넘어서는 구릿빛 피부와
두꺼운 입술의 만남은 이국적인 외모의 완성판이었다. 친구들이 나의 정체성을 의심할 때 즈음 고1 때 생물 선생님이 나를 빤히 바라보시더니
"야 17번, 너 메기 닮았다." 라고 하셨다. 그 뒤로 난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들도 메기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지나가면 친구들은 '메기의 추억'을 흥얼거렸고, 개구리 왕눈이의 최종 보스이자 민물고기의 제왕으로 고등학교 3년을 보냈다.
별명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별명 이어 메기 캐릭터를 열심히 그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메기 질렌할' 이라는 배우가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것 같다.
3. 지미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눈에 띄던 녀석이 하나 있었다. 어류의 눈에는 어류만 보인다고 아귀처럼 큰 입을 가진 놈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녀석의
고등학교 시절 별명은 "아귀"였다고 한다. 학기 초 민물과 바다의 상위 포식자로서 서로 견제만 하다 우리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어류라는 공통점으로
빠르게 친해지게 되었는데, 함께 술을 마시며 메기와 아귀로 불렸던 슬픈 과거를 이야기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나는 녀석에게 "넌 절대 아귀를 닮지 않았어. 난 너를 처음 봤을 때 스티븐 타일러 인 줄 알았다니까!" 라고 말했다.
녀석은 내게 "그런데 스티븐 타일러가 누구야? 영화배우야?" 라고 물었다.
"아니 미국의 전설적 락그룹 에어로 스미스의 리드 보컬인데, 노래도 잘하고 되게 멋있어 그 아저씨!!"
녀석은 처음으로 개구리, 아귀, 두꺼비 등 어류나 양서류가 아닌 사람으로 자신을 봐주었다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려 했다.
"아귀 너를 앞으로 내가 너를 스티븐 이라고 불러줄게!"
아귀 아니 스티븐은 내게 "메기야, 너도 혹시 불리고 싶은 사람 없어? 아! 마이클 잭슨 어때? 내가 아는 흑인 가수는 마이클 잭슨 밖에 없어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도 나쁘진 않은데 하며 잠시 고민하다 나는
"내가 요즘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거든 기타의 전설 지미 헨드릭스라고 불러주면 안될까?" 라고 했다.
녀석은 흔쾌히 "좋아 앞으로 너는 지미야!"
우리는 그 후 과 사람들과 수업 시간에 서로에게 스티븐과 지미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저기 아귀랑 메기가 서로 뭐라고 뻐끔거리는 거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스티븐과 지미는 우리 둘이 서로 부르는 애칭이 되고 말았다.
4. 태국사람
사회에 나왔을 때 별명보다 **씨로 드디어 내 이름을 찾는가 싶었다. 똘똘이, 메기, 지미라 불리던 시절이 좋았었구나 생각하며 드디어 찾은
내 본명으로 살아갈 무렵 새로운 별명인 싸와디깝은 회식자리에서 얻게 되었다.
회사 전체 회식 자리였는데 타부서 여직원이 "홍보팀 **씨 영화배우 같아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당연히 흑인 영화배우겠지 생각하며 윌 스미스, 덴젤 워싱턴 같은 훈남 흑인영화배우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전 옹박을 봤는데, **씨 수염만 붙이면 거기 나오는 목이 꺽기고 팔이 부러지는 악당 단역들 같이 생겼어요."라고 했다.
주연도 아니고 단역이라니...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는데, 직원들이 하나둘씩 태국 여행에서 나같이 생긴 사람을 길에서 많이 봤다고 하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옹박이라는 영화를 국내에 수입해 배급한 영화사와 해외여행 완전 자유화를 시행한 노태우 대통령을 원망했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별명으로 불리면서 아주 간혹 기분이 나쁠 때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나를 쉽게 기억해주고, 나의 별명을 통해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