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토요일이었고
나는 고향친구들의 모임을 가기 위해 강원도 영월로 향하는 길이었다.
골프약속을 겸한 오랜만의 모임이었다. 마누라의 눈총을 피해 부랴부랴 일찍 나선 길이지만 영월로 빠지는 나들 목이 나오기 전까지는
토요일의 교통정체는 이른 시각을 용납하지 않았다.
‘라운딩 시간이 몇 시였더라?’ 나는 휴대폰을 열어 친구 놈이 보내준 메시지를 확인해 보았다. XX cc 11시 10분…
차의 시계는 벌써 10시 2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네비게이션의 도착시간은 11시였다. 5월의 짙푸른 초록이 차창 밖으로 싱그럽게 펼쳐져 있었다. CD를 틀자 이글스의 호텔캘리포니아가 흘러나왔다.
특이하게도 이 밴드의 메인 보컬은 돈 헨리 라는 드럼주자다. 호텔 캘리포니아의 백미는 노래가 끝나고 이어지는 마지막 연주부분이다.
나는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그 강렬한 사운드에 빠져든다.
네비게이션의 여자목소리가 사운드의 틈을 비집고 좌회전을 외치자 나는 볼륨을 줄였다.
넓은 도로를 버리고 샛길로 들어서라는 안내였다. 좌회전을 하여 들어서자 마자 한 눈에 보기에도 구불구불한 편도 일차선의 시골길이 펼쳐 진다. 내 차 외에는 아무도 없는 시골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모퉁이를 돌자 파란색 포터가 이제 막 시작되는 산길을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주 낡은 포터였다. 낡은 화물차는 번호판이 삭아서 식별이 잘 안되었고 무엇보다 배기구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별로 가파르지 않는 이 산길을 오르기에도 벅차 보였다. 나는 양보를 부탁하기 위해 가볍게 클랙슨을 울렸다. 하지만 웬만하면 가장자리로 비켜 줄만 하건만 포터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할 수 없이 나는 반대편 차로의 시야가 추월할 정도로 확보될 때 까지 느릿느릿 포터의 뒤를 따랐다. 이윽고 추월할 만한 장소가 나오자 나는 가속 패들을 밟아 반대편 차선으로 추월진입을 하였다. 길길 거리며 산길을 오르던 앞의 포터가 갑자기 반대편 차선으로 핸들을 틀어 내 차를 막아 섰다. 그 바람에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나는 클랙슨을 내리치듯 누르며 포터의 운전수에게 경고음을 보냈다. 동시에 핸들을 돌려 제 차선으로 복귀 한 후 반대편 차로의 포터를 추월하려 다시 패들을 밟았다. 이번에는 포터가 옆면을 거의 다 보일 정도로 방향을 틀어 다시 내 차를 막아 섰다. 거의 받을 뻔한 상황에서 간신히 차를 정지 시킨 나는 핸드브레이크를 당겨 차를 세우고는 문을 열고 내
렸다.
차선을 복귀한 포터는 잔뜩 화가 난 내가 내리는 것을 보고 위협을 느꼈는지 그대로 차를 몰아 가버렸다. 멀어져 가는 포터를 향해 욕을 퍼붓고는 나는 황급히 차로 돌아가 포터를 쫓기 위해 액셀을 밟았다. 폐차 직전인 포터는 금방 내 차에 의해 따라 잡혔다. ‘내 차는 뽑은 지 한 달도 안 되는 신형 아우디란 말이다 이 XX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뇌까리며 클랙슨을 누른 채 상향 등을 켜대며 포터의 꽁무니를 뒤 쫓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저 놈이 급정거 해버리면 어떡하지?’ 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사고의 원인이 나에게로 모두 귀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나는 일단 거리를 벌렸다. 고갯길의 정상이 다가오자 길은 점점 가팔라졌다. 아니나 다를까 포터가 길을 막기 위해 차선을 변경하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재빨리 차선을 틀어 다시 원위치 한 뒤 급 가속 스위치를 눌러 순식간에 포터를 앞질렀다. 그 와중에 나는 욕을 하기 위해 창을 열어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내 욕이 포터 운전자 놈에게 비수가 되어 꽂힐 수 있도록 포터의 창문도 내 쪽으로 포터 옆을 지나치면서 열린 창문으로 포터 운전자의 얼굴이 보였다. 검게 탄 얼굴에 강한 인상의 운전자는 내 쪽을 보며 씨익 쪼개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섬뜩해 보여 나는 급 위축이 되어버렸다. 앞질러 가서 차를 세우고 멱살잡이라도 할 생각을 고쳐먹은 나는 대신 운전자를 향해 고래고래 “야이 촌놈의 XX야 똥차 가지고 고생이 만타, 너 그따구로 살지 마라 이 똥차 인생아!!” 어차피 추월 한 뒤 포터는 내 아우디를 따라 잡을 수는 없을 터였다.
나는 지름길이랍시고 가르쳐 준 네비에다 대고 욕을 하면서 많이 늦어버린 시간을 당기기 위해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한 10여분을 달렸을까
조수석 쪽이 주저 앉는 느낌이 나면서 핸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
펑크였다. 낭패감이 드는 것은 펑크 보다 혹시 있을지 모를 그 미친 포터의 습격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차를 더 이상 운행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 상태로는 운전자체가 불가능하다.
그 동안 갈래길이 많았으니 포터는 다른 곳으로 갔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자그마한 강을 건너는 다리의 입구 바로 앞이었다.
다리의 입구 옆으로는 강으로 급하게 경사진, 사람이 다닐 만한 길이 나 있었다.
나는 급히 트렁크를 열어 스페어 타이어와 자키를 꺼내 들었다.
하도 오랜만이라 자키를 어떻게 다루는지 헷갈려 한동안 헤매다가 겨우 차체를 들어 올렸는데
이런 젠장 헐….순서가 틀렸다.
바퀴의 볼트를 풀려면 다시 차체를 내려야 했다.
그렇게 꽤나 시간이 걸려 스페어 타이어로 바꾸고 볼트를 두어 개 조였을 즈음이었다.
언덕 위 길모퉁이를 돌아 내려오는 파란 색 포터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싸움을 잘 하는 편이 못되었다.
대신 눈치는 빨랐다. 나보다 우월한 상대에게는 싹싹하게 허리를 굽혀 주었다.
그런 자세가 사회생활에도 그대로 이어져 떨려나지 않고 아직 살아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길옆에 세워진 내 차를 발견하고 돌진하듯 내려오고 있는 포터를 보면서 나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일단 나는 차 안으로 들어가 안에서 문을 걸어 닫았다. 포터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내차 옆을 지나더니 후진으로 다리입구와 내차 사이의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뒷부분의 적재함을 내 차 보닛 위에 걸칠 정도로 바짝 들이댔다. 아마도 내차가 곧바로 빠져 나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인 듯 했다.
예상보다 훨씬 덩치가 큰 사내가 포터에서 내리고 있었다. 마흔 살 어름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는 성큼 거리며 내게로 걸어오더니 앞 창문을 통해 나를 들여다
보았다. 느물거리면서도 어딘지 모를 섬뜩함이 풍기는 얼굴이었다.
나는 창문을 손가락이 들어 오지 못할 정도로 열고는 그에게 말했다.
“그냥 가시오, 당신이 먼저 잘못한 거 아니유, 내 욕한 건 미안하외다” 사내가 앞 창문을 깨질 듯 손바닥으로 쳤다.
창문에는 모기 한 마리가 사내의 가격으로 인해 몸체가 산산이 분해되어 들어 붙어 있었다.
“왜 이러는 거요? 그냥 가라는데…”
“그냥 가라고? 너 아까 나보고 뭐라 했어?” “아…그, 욕한 건 미안하다고 했잖소, 하지만 당신도 잘못…”
사내가 다시 한번 앞 창문을 내리치는 바람에 나는 말을 삼켰다. “내려! 내리라구 왜 내가 무섭냐? 이 겁쟁이 XX야”
“욕하지 말고….거 나이도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난 촌놈의 XX라 그 딴 거 모른다 이 XX넘아 안 내려?”
내가 전혀 내릴 기미를 안보이자 사내가 자신의 포터 쪽으로 걸어갔다. 가려나 보다 하고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사내가 포터의 운전석 뒤편을 뒤적이더니 이내 내렸다. 내 차를 향해 걸어오는 사내의 손에는 빠루가 들려져 있었다. “좋소 근데 하나만 물읍시다 내가 나가면 날 때릴 참이요?”
“응….내려서 뺨 석대만 맞아라 촌놈이라고 한 것에 한대, 내 차를 똥차라고 해서 또 한대, 내 인생을 똥차라고 조롱 한 것에 한대….” “이 사람이…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당신이 먼저 잘못 해놓고선 이런 행패를 부려? 정 이러면 경찰에 신고하겠소 그냥 가면 없던 일로 할 테니 제발 그냥 가시오” 빠루를 들어 앞창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앞 창이 거미줄 형상을 보이며 갈라졌다.
나는 이 경악할 사태가 믿기질 않았다. 백주 대낮에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진작에 내릴 것이지 이 XX넘아 너 이리와” 가격을 멈춘 사내는 빠루를 내 던지고 나를 향해 개 부르듯 손짓을 했다.
나는 거의 멘붕 상태였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사내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내 얼굴이 사내의 손에 의해 때리기 좋은 각도로 꺽여졌다. 철썩! 철썩! 철썩!
입으로 짭조름한 것이 흘러 들었다. 코피였다.
“함부로 주둥아리 놀리면 이렇게 되는 거다 이 찌질한 XX야” 임무를 완수한 사내는 나를 떠 밀치고 빠루를 줍더니 포터 쪽으로 걸어갔다.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한 사내의 의기양양한 등짝을 보자
아까 보았던 그 비웃는 듯한 웃음이 사내의 입가에 번졌다.
“어…..그냥 운전하다 보니 심심해서…” 사내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명함 같은 것을 땅바닥에 던졌다. “차 유리 수리비는 이거 보고 청구해라, 그리고 지금 욕 한 거…..함 봐준다 수고!” 포터에 오르는 사내를 보며 나는 내 차로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나는 이제 막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 포터의 뒷부분을 내 차로 밀어 부쳤다. 포터의 브레이크 등이 켜졌지만 아우디의 추진력이 포터의 접지력 보다 훨씬 더 강했다. 버티던 포터의 차체가 다리 옆으로 난 경사진 길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액셀을 바닥까지 밟았다.
포터의 중심이 급격히 강을 향해 경사되더니 이윽고 굉음을 내며 추락했다. 정확히 말하면 경사로를 따라 강바닥으로 내리 쳐 박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추락한 포터를 확인하기 위해 나는 차에서 내렸다.
포터는 강 가장자리의 자갈밭에 앞머리를 쳐 박은 채 연기를 뿜고 있었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나는 바지를 내리고 포터를 향해 오줌을 갈겼다.
“이 똥차인생아 꼴 좋다” 뒷일이야 어떻게 되든 나는 복수와 배설의 쾌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포터의 운전석 문이 벌컥 열리더니 차 밖으로 사내가 굴러 떨어졌다.
사내는 이내 몸을 추스리더니 나를 향해 경사로를 미친 듯이 달려 오르고 있었다.
사내의 얼굴은 추락의 충격으로 피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야차 같았다. 나는 얼른 차로 돌아가 도로로 차를 몰았다.
경사로를 올라온 사내가 내 차를 향해 돌진을 해왔다.
간발의 차로 사내를 따돌리고 나는 다리 위 도로를 질주했다. 사내가 뒤 따라 달려오며 악다구니를 퍼 붓고 있는 모습이 룸미러로 보였다.
“니 차 번호 다 봐놨다 이 개XX야 니는 내 손에 뒤진다 반드시!!!” 사내의 악다구니를 귓전으로 흘리며 나는 다리를 건너갔다.
다시금 단언하지만 이때라도 그냥 갔어야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뒤 따라오던 사내의 악다구니가 내 귓전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악마 같은 놈이 이후 나를 반드시 찾아 올 것이라는 확신과도 같은 예감은 나로 하여금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일을 매듭 지어야 한다는 결심을 촉발시켰다.
나는 차를 돌려 다시 다리를 건너갔다. 멀리 다리 끄트머리로 여전히 이쪽을 보며 길길이 날뛰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포터와의 조우 이후 다른 차는 단 한대도 이 도로를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 사실은 내 결심을 더 굳건히 만들고 있었다. 사내의 모습이 가까워지자 나는 차의 속력을 배가 시켰다.
도망갔던 내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사내는 이게 웬일인가 하고 보고 있다가 낌새를 차렸는지 뒤돌아 다리를 벗어나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다리를 벗어난 사내는 내 차를 피해 도로 옆으로 몸을 던졌다.
다리를 벗어나 관성으로 인해 100미터 가량을 질주 한 뒤 나는 차를 돌려 세웠다.
“저 미친 XX가 사람을 죽이려 하네 야이 개 같은 XX야!!” 길 옆으로 몸을 던진 뒤 일어선 사내가 내 차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나는 액셀을 밟았다.
사내가 도로에서 다시 다리 옆으로 피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방향으로 그대로 차를 몰아갔다. 스페어 타이어로 갈았던 조수석 바퀴가 탈착이 된 것은 내 차가 거의 사내를 받을 뻔한 순간이었다.
볼트를 겨우 두어 개 만 조였던 것을 잊은 것이 화근이었다.
핸들이 확 꺽이더니 사내를 지나쳐 아까 포터가 떨어진 경사로를 향해 내 차가 돌진을 했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다른 점은 이번에는 내 차가 포터의 꽁무니에 쳐 박혀 버렸다는 것이었다. 에어백이 터지면서 나는 잠시 쇼크 상태에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린 것은 차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이었다.
터져버린 에어백이 내 몸을 옥죄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사내가 트렁크를 통해 뒷좌석을 밀치고 차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잠시 기절한 사이 사내는 차 안으로의 진입을 위해 차에 나있는 창이란 창은 모두 건드린 모양이었다,
거미줄 모양의 균열이 모든 창에 나있었다. 하지만 아우디의 창 유리는 거의 방탄 수준의 초 강력 강화 유리란 걸 촌놈이 알 턱이 없었다.
아무리 해봐도 안되니까 사내는 마지막 수단으로 트렁크를 열고 뒤로 들어오려고 시도를 한 듯 했다 빠루로 강제로 열었던지 충돌의 영향으로 저절로 열렸던가 했겠지.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지금은 없다.
사내의 머리가 거진 차 안으로 다 들어와 있었고 이제 막 어깨가 빠지면 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는 주변에 무슨 무기가 될 만한 것이 없나 하고 둘러 보다가
뒷좌석 상면에 달린 차량용 소화기를 발견하고는 손을 뻗었다. “어…너 XX 깼냐? 이 개XX 넌 뒤졌어, 지금 꼼짝도 못하지? 조금만 기달려라 내가 죽여 줄 테니….” 머리가 완전히 빠지고 고개를 들 정도가 된 사내가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을 보고 이를 갈고 있었다. 난 자동으로 작동되는 운전석 시트가 움직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단추를 눌러보았다.
전기는 다행히 살아 있었다.
시트를 뒤로 누이자 에어백으로부터 몸이 풀려났다.
“XX놈! 이거나 먹어라” 나는 두 손으로 소화기를 들어 사내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악!! 이 개XX가!!"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욕을 해댔다.
나는 인정사정을 두지 않고 사내의 머리를 가격했다.
사내가 단말마를 내 뱉더니 그의 머리가 갑자기 축 늘어졌다.
사내의 머리가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타격을 멈추고 죽었는지 기절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사내의 머리를 들어올렸다.
피에 덮여 흉측한 몰골의 얼굴이 드러났다. 다!!!
순간 사내의 눈이 번쩍하고 뜨여지더니 그의 몸이 차 안으로 확 밀려져 들어왔다.
"이 XX새끼 죽어라"
상체가 완전히 빠져 나와 자유로워진 사내의 손이 내 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얼굴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얼굴에서 피와 살이 튀었다.
나도 가만히 맞고 있지는 않았다. 소화기를 다시 잡고는 사내의 얼굴을 찍었다.
사내의 손아귀에 잡힌 목이 더 죄여졌다. 나는 잡힌 목을 풀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갑자기 차 안에 음악이 울려 펴졌다.
내 발버둥에 CD 스위치가 눌려진 모양이었다.
원체 체급이 달랐다.
우악스런 사내의 주먹질에 데미지가 가중되면서 나는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사내를 가격하던 소화기의 안전핀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안전핀을 뽑아 사내의 얼굴에다 대고 소화기를 분사했다.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 바람에 사내의 손아귀를 벗어 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운전석 도어를 열어보려고 손잡이를 당겼다.
도어가 조금 열리는 듯 하다가 바깥의 장애물에 걸린 듯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도어를 있는 힘을 다해 발로 찼다.
왈칵 하며 도어가 열렸다. 나는 걸리적 거리는 에어백을 밀치고 차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경사는 눈으로 보기에는 거의 수직에 가까웠다.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뒷덜미를 잡아채는 사내의 손길에 내 상체가 다시 차 안으로 당겨졌다. 두 발이 차 밖으로 모두 나가 버린 상태가 되어 내 몸이 사내의 손에 의해 대롱거리고 있었다.
사내는 이제 차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상태였다.
사내가 안전벨트를 당겨 내 목에다 휘둘렀다.
그리고 나서 사내는 뒷덜미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 버렸다. 몸이 차 밖으로 완전히 빠져 나와 대롱거렸다. 나는 무언가 걸려 주기를 바라며 허공에다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아무것도 발을 지탱해 주는 것이 없었다. 나는 목을 조여오는 안전벨트를 부여잡고 숨을 쉬기 위해 몸을 당겨 올렸다.
“꼴 좋다 이 XX야 ” 머리위로 운전석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보기만 해라 내가 니를 어떻게 죽이는지…”
불길한 예감이 든 나는 사내를 보기 위해 고개를 위로 젖혔다. 사내는 급한 경사 때문이었는지 차를 내리지 않고 상체를 차 밖으로 빼고서는 뒤쪽에 있는 연료통의 캡을 눌러 열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입고 있는 남방의 소매를 찢어 떼내더니 열려진 연료통의 구멍으로 쑤셔 넣었다. 소매 천의 길이를 충분히 둔 것은 불을 붙이고 자신이 빠져 나갈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인 듯 했다.
“안..돼 살…려..줘!” 목이 감긴 상태라 말이 거의 안 되었지만 나는 처절하게 사내를 향해 빌었다. “그 딴 소리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 XX넘아 이 상황에선 니는 이렇게 뒈져야 나도 산다” 사내가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를 꺼냈다.
정신이 혼미해 지고 몽롱한 기운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뻗어 사내가 열어 놓아서 잡을 수 있게 된 뒷문의 창틀 프레임을 잡았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몸을 당겨 올리자 발이 차체에 닿았다.
소매 천에 불을 붙인 뒤 사내가 경사가 덜한 반대쪽 문을 열고 있었다.
나는 목에 감긴 벨트를 황급히 풀었다. 그러나 채 풀기도 전에 차체에 고정된 발이 미끄러졌다. 내 몸이 다시 허공에 매달리려는 순간 나는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사고의 현장을 내려다 보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사내 역시 망연자실 내 옆에 서서 밑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현장은 경찰차와 렉커차로 한적하던 도로가 시끌 벅적 거리고 있었다.
“개XX! 저게 다 니놈 때문에 시작된 일이야”
나는 사내를 향해 악을 썼다.
“XX놈아 그까짓 일로 이렇게까지 할 건 머냐?”
사내가 분을 못 이겨 나를 향해 주먹을 치켜 들었다.
“이 악마 같은 XX야 됐고, 하나만 인정해라 니가 먼저 잘못했냐 안 했냐?”
“이XX야 그런다고 사람을 죽이려 드냐고” 도무지 분이 안 풀려 나는 뒤에 서있는 제복의 남자에게 향해 하소연 하듯 말했다.
“경찰 선생님, 선생님이 보기에 누가 잘못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무표정한 얼굴의 남자는 말 없이 뭔가를 수첩에 적고 있었다.
“내가 욕을 먼저 한 건 맞지만 그건 저 놈이 먼저 도발을 했기 때문이고 나중에 사과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 놈은 나를 때리고 모욕을 줬어요. 그리고 길을 가로막은 이유가 심심해서 그랬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기재 할 것을 다 적은 남자는 수첩을 덮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 봐요, 자세하게 얘기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누구의 잘못이냐는 이제 별로 중요하지도 않아요”
“예? 그럼 뭐가 중요합니까? 경찰이면 경찰답게 말해야지 잘잘못을 당신이 안 가리면 누가 가립니까?” 나는 내 예상과 틀린 남자의 말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따졌다. 대답 대신 남자는 어깨에 달린 견장을 툭툭 쳤다. 나는 어깨의 계급장 같아 보이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둥근 원 안에 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경찰이 아닙니다. 당신들 발 밑을 보세요 아니면 머리 위를 보던가"
내 발이 땅을 밟고 있지 않고 허공에 떠 있었다. 사내의 머리 위에는 방금 싸우면서도 보지 못했던 흰 원반 같은 것이 떠 있었다.
모티브
- 영화 와일드 테일즈
中 두번 째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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