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는 어느 멋진날 입니다.
베오베에 올라간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03149 글 보신분 계시죠?
그 글과 관련된 사연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오유어플로 사진업로드가 안되서 사진 인증이 안되니.. 이야기를 테마별로 적겠습니다. 제 어제 하루나 광화문 상황이 딱히 궁금하지 않으신분은 5번글만 보시면됩니다.^^
차근차근 봐주실거라면 스압주의임을 인지해주세요^^*
1. 목석이라 부르마
저는 매주 광장에 나온건 아니었고,
짬이 나면 나와서 돕거나 같이 행진을 하는식이었습니다.
사정상 서대문까지 갔다가 좌절해야했던
4월 16일 1주기 추모를 늦게라도 하려고,
그리고 18일 3시에 시청에서 하는
범국민대회에도 참여하려고 광화문 분향소로 갔습니다
결혼식 하객역할을 충실히 마치고,
챙겨온 편한신발과 바지를 부랴부랴 갈아입었죠.
그리고 처음으로 실종자 가족분들의 얼굴을
직접 눈앞에서 보고 벙찌더라고요. (다 계신건 아니었습니다) 인양촉구 피켓인가? 하고 보려다가 정말 닭똥처럼 뚝뚝떨어지는 어머님 한분의 눈물을 봤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픈데 어떻게 위로해야하나 막막했습니다. 그 흔한 "힘내세요" 한마디도 나오지않고, 쩔쩔매다가 근처 편의점에 가서 물과 견과류를 샀습니다.
사람 수대로요
네 개씩 손에들고 막 뛰어왔는데 읭?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오신건지
어머님 한 분이 더 서계시더라고요.
헐레벌떡 물한병과 견과류 한봉을 더사고
2+1으로 물한병을 더 받아서 다시 급하게 왔습니다.
근데 으의잉..?!
한분이 더 추가되신겁니다.
돈이 부족해버려서 결국 다섯분께는 각각
물한병.하루견과 한봉씩 수줍게 놔드리고
마지막 한분께는
"저.. 죄송해요 한분더계신걸 체크못하고.."하면서
또 쭈뼛대며 물한병이라도 드렸습니다.
3시반 무렵의 광화문은 햇살이 뜨거웠거든요.
그런데 어떤 시민분이 살짝가서 부모님들 손을 잡아드리고 안아드리는겁니다. 보면서 '오오 난 저거 못해 ㅠ 손이 앞으로 안나가져.'하면서 대단해 했더랬습니다.
따뜻한 위로는 아무나 하는게 아닌가 보다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이게 좀 비약이 심하다면, 적어도 제가 겁나 뻣뻣한 사람이란거 정도는 알 수있었죠.
2. 광화도 생성
광화문 광장은 실종자 가족분들의 눈물과. 추모객들의 눈물을 빼고는 차소리와 맞은편 불신지옥 소리 뿐이었습니다.
나름의 평화랄까요.
헌화하고 조금 복작거리며 소일거리 돕다가
집에 가려한 저는 이상한 풍경을 봤습니다.
경찰차가 조금씩 늘어나는겁니다.
그 무렵 상황실을 '잠깐만'봐달라고 들은 저는
가만히 그 곳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이상합니다.
차벽이 점차 두터워지고 경찰들이 마구 달려오더군요.
광화문이 섬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헌화하던 분들도 어리둥절하고 어린아이들 눈이 똥그래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입니다.
젊은경찰들이 뛰어가니 반대편에서 뛰던 연장자 경찰들이 "빨리 뛰라고! 빨리 이새끼야!"라며 후배경찰을 타박하고 각기 목적지를 향해 방패를 들고 광화문 광장을 에워싸더군요.
그래도 그곳은 나름 조용했습니다.
"왜저래? 왜막아?" 등의 시민들 푸념이
간간히 들려올 뿐이었습니다.
3. 섬에는 세개의 세상이 있었다.
그렇게 생겨난 광화도.
거기엔 정확히 세 종류의 세상이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유가족들의 연행소식을 들음과 동시에,
범국민대회조차도 저지당하여 분노한 시민들이 여러방법으로 섬에 들어오고 있었고 그들은 1차 세계인 집회의 세계를 생성했습니다.
그들은 이순신 장군님을 지나 세종대왕님 곁에가서 농성을 했습니다.
그걸 예의주시하며, 필요한것이나 사고여부. 변동사항등에 촉을 세우고 있던 스텝들의 천막. 이것은 두번째 세계였습니다.
누군가는 명확한 분노의 방향을 알고있었고 누군가는 군중심리로 이전보다 더 큰 흥분감에 휘감겨서 농성을 하고 있었으나 천막에 있는 스텝은 궁금해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게 일이어서 바삐 소통하고 추모시민분들 안내도 하고 있었죠.
그리고 어떤 상황이든 그저 우린 가여운 희생자에게 꽃한송이 두고싶었을 뿐이다.라고 생각하는듯 침착하게 질서를 지키는 세번째 세계. 분향소가 있었습니다.
섬이 되어버린 이상, 귀가가 어려울수 있겠다 싶어, 부모님께 친구집에서 잔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했지요.
집회가는거 늘 솔직히 말한 저였지만.
차벽과 물대포 소식을 들으면 재까닥 들어오라고 하실것같아서 이날만큼은 둘러댔습니다.
기묘한 일들은 이때부터 조금씩 일어났습니다.
4. 뇨뇨뇨뇨의 기묘한 하루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까운 곳에서 물대포를 보았습니다. 스텝이라 농성인원에 끼진 못했으나 이순신장군님 동상 쪽에서 굵고 매서운 물줄기를 보며 조금 겁도 났습니다.
게다가 경고차원이 아니라 이미 '공격'이 되어버린, 사람을 향한 물줄기는 무기가 된 지 오래였고요.
슬슬 부상자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1인 미디어 시대에 목격자. 피해자. 가해자.(피해와 가해는 뭐 서로입장에서는 바뀔수있겠죠) 그리고 분탕하려는자. 그들의 SNS전쟁과 취재열기도 과열되고 있었지요.
비교적 시사적인 일에 미온한 반응인 친구들에게 텔레그램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며 설명해줬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처음 본 물대포에 경악하고 있던 찰나, 누군가 상황실 천막에 방문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유가족분들 드리려고 편지랑 ~것들을 가져왔습니다."
선생님을 꼭닮아 이 사안에 걱정을 가득품은 표정을 띈 고등학생 세명이 서있었지요.
그걸 시작으로, 고생하신 분들 나눠드시라고 푼돈모아 간식을 보내주신 커플(이런 커플이면 깔 수 없어버려..) 종이배를 한아름. 아니 한보따리 접어다주신 여러단체들.
섬 한켠에서 너무도 차갑고 매섭고 실제로 맵기까지한 응답이 시민들에게 뿌려지고 있을때, 섬 속 두번째 세계인 상황실에는 계속 '온정'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세월호 뉴스에 피로감을 많이 느껴'라는 저희 어머니말에 당장 반박하며 보여주고 싶던 모습이었습니다.
네이버.네이트 댓글 등을 보며 탄식하고,
너무도 그리워했고 목말라했던,
"내 일이었다면"이라 생각해 주는 사람들.
아이들 사진을 보며 눈물훔치고,
물대포를 보며 "저런 시위꾼들은 당해야돼"대신,
"저걸 직접쏘면 어떡해..."라며 발을 구르던 시민들.
그 분들이 거기에 계셨고 끊이지 않고 오고 가셨습니다. 그때 오유의 반응이 궁금했고, 게시판에 들어갔습니다.
5. 친목에 대한 경계심이 깨질뻔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03149 이 글을 보게되었고, 위험한 상황이라 겁이 날수있는건 지극히 당연한데, 무언가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주고싶으신 마음도 심하게 이해가 되서 댓글을 달았습니다.
제가 상황실에 오늘 하루 있을것이라고 밝히며, 위치설명을 했고, 위험할까 겁나시면 여기로 오셔서 물품을 주시거든 저희가 전달하겠다. 라고 했습니다.
이미 오유등의 커뮤니티나 SNS에 최루액 이야기가 다 알려진 상황이었기에 도움의 손길은 여러곳에서 오고있었습니다.
혹여나 성사가 안되더라도 참..따뜻한 마음 씀씀이들이었다. 감사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글쎄 이분들 제 댓글에 추천을 때려박기 시작하더니 이 글을 베오베로 보내기 시작하고 만날 출구를 정하기 시작합디다.
'이..이거? 현실로 이루어지는건가? 그나저나 이거 강제정모인건가... 참 시절이 수상하니 별 에피소드가 다 생긴다. 친목질이라 뭐라하진않겠지 ㄷㄷㄷ'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는 제가 어떤장소에 있을지 더 자세히 말씀드리고 최대한 그 장소를 안 뜨려하며 일을 보고있었습니다.
그 무렵 한 학생이
"페북보고, 다치신분들이 많다고 들어서요."라며 조심스레 반창고.붕대.연고들을 가득 꺼내놓는 걸 보고 페북의 위력(저는 페북을 안해요)을 새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몇분뒤에 우비를 챙겨입으신 몇몇분이 상황실앞을 긴가민가하며 쳐다보시고 저는 직감적으로 '오유분들이다!' 알수있었죠.
그 중 한 분이 수줍게 "저기... 오늘의 유..머.."이러시길래 얼른 "네네 맞아요. 제가 댓글달았습니다^^!!"하고 부랴부랴 인사도 나누고 물품도 받고 서로 "고생한다" "와주셔 감사하다"며 훈훈한 상황이었어요.
정말 끝도없이 개개인 손에 물병들이 들려있는데, 각기 용량도 물종류도 달라서 더 찡하더라고요.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각자 있는곳에서 이렇게 뭐라도 도움주고싶어서 낑낑거리고 와주셨다는것이..
짧지만 따뜻한 정모였어요.
사람을 잘 믿지 않아서 온라인 뒤에서 글쓰고 구경을 하면했지 정모 나가본적 한번도 없었는데.. 아마 다시 못할 정모가 아닐까요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커뮤니티 정모가 정말 가슴벅차는 일로 가득하게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살면서 점점. 사람들은 악하게 태어나고 다만 학습에 의해 그걸 누르며 '선함'을 배워가는것이라고 느끼던 저였는데. 어제는 그 생각에 많이 타격을 받았습니다.
일베나.. ㅇㅇ연합이니뭐니.. 이런인간들이 결국 우리 주변에 가면을 쓰고 살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세상사는 낙도 없어질것같은 요즘이었어요.
그런데 '아차, 그런 사람들이 전부가 아니었지 참'하며 새삼 느낀 날이었지요.
이날 도움주신 초등학생.중고등학생.대학생.그밖의 2~30대여러분. 그리고 연령대에 대한 편견갖고있던걸 미안하게 만든 40~80세 이상의 어른들. 모두 고맙습니다.
제 닉과 얼굴만 동시 노출해서 개손해(개이득 반대말이라고 쓴건데 왜이리 거칠죠..)이긴 했지만^^!!!
뭐 이것도 추억이겠죠.
오유분들이 집회에도 합류하시고 얼마지나지 않아 상황종료가 된걸로 기억하는데, 혹여나 허탈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도 다치지않아서 참 다행이기도 했습니다.
6. 남겨진 것들
어제의 그 따뜻하고 뜨거운 순간이 지나고. 다들 다독다독 고생들했다고 하던 중에 큰 소리가 났습니다.
대부분, 이런 순간 나는 큰소리는 좋지않은 상황을 알리는 경우입니다.
동물떼가 우두두두두 뛰듯, 일제히 큰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큰 소리의 정체는 이것이었습니다.
"유가족들이 다시 연행됐어요!!!!!!!!!!!"
이 외침에 사람들이 달려간것은 의협심에서 비롯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희 부모님께서 "너. 정 가고싶으면 말리진 않겠는데.. 그런 곳에선 분위기에 휩쓸리지 마라"라고 하신 이유를 이때 알았습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의협심을 얻는대신, 이성을 잃은 이들이 가득했죠.
"유가족 잡혀갔어요?"
"유가족분들 또 연행됐어요?"
"유가족분들 에워쌌대!!!"
"유족들을 때렸다고?????"
말이 불어나는 과정또한 봤습니다. 너무 리얼하게 봐버렸지요.
상황실 실장님이 어지간해서 화를 안내시는데
"에헤이... 유언비어를...!"하면서 앞에 나서자,
목소리 큰사람이 이긴다고 믿어의심치 않는 두세분이 쩌렁 쩌렁 말하더군요.
"유족들이 다시 잡혀갔는데 상황종료???? 뭐가 상황종료야??????"
"확인을 다시 해본다고요??? 가서 하셔야죠!!! 여기서 이렇게 말할시간이 있어?? 당장 저기로 뛰어 가라고!!!!!"
"아니기는?????ㅅㅂ 사람들이 에워쌌잖아!!!!! 당신들이 그러고도 상황실이야? 이렇게 상황을 모르는데??"
그러던 중 스텝한분이 "유족 측과 연락됐습니다. 연행안됐어요"라고 알렸죠.
머쓱해하며 사과할줄알았지만, 사과에 인색한 그들은 "뭐? 아니 잠깐 그럼 유족이 아니면 연행이 되도 좋다는 거야?"
오늘하루의 훈훈함들이 발암으로 이어지기에 충분한 물타기 발언들이 이어졌습니다.
아, 그래. 이거지. 이래야 사람이지. 사과할줄모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나타나줘야 맛이지......... 휴............. 하고 착잡해했고,
결국 추가 연행은 없었다는걸 확인하자 어느새 사라져있더군요.
그 '선동'후에 일부 사람들은 신나게 '박그네 퇴진 송'을 부르기 시작했고요.
사실 스텝끼리도 어떤 단체는 불편해하기도 하고 어떤 단체,혹은 개인은 쁘락치라는게 너무 눈에 보여서 싫어하기도 합니다.
각종 커뮤에서 핫한 문제였던 태극기 불태운것. 경찰차 부수고 락카로 글쓴것들은 앞장서있던 강경파나 쁘락치들의 행동이었습니다.
스텝들끼리도 강경.온건에 대한 의견은 조금씩 갈릴수 있지요. 저는 굳이 밝히면 순차적이길 바라는 쪽입니다.
언론의 방향을 빼박캔트로 한쪽으로 몰기에 오히려 인터넷 강국이라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될때가 있죠.
부정선거라던가 어떤 문제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한사코 가리려는 세력들 역시 넷상에서 무척 활발하니까요.
과반수의 국민이 박통을 지지하지 않을수는 있겠지만. 그 이유가 모두 부정선거때문은 아닐수있다는겁니다.
불통. 일처리능력. 인사문제등은 뉴스에 나왔어도 부정선거가 논해진적은 없기에 더더욱 '우기는 것'으로 알수도 있다는거지요.
예~전에 세월호 집회당시 후기글을 쓴 것도 떠올려보면 저는 사람들이 행진하며 구호를 외칠때 철저히 계획해서 유족들의 요구사항만을 구호로 하길 바랐습니다.
적극적인 구조. 특별법 제정 이 두가지를요
그러나 뒤로가면 꼭 박통퇴진에 대한게 나오더군요. 그러면 그냥 길을 가던사람들은 '세월호 피켓을 들고 왜 대통령얘기를?? 허어..저사람들 순수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하네?'(정치적이란 표현 극혐이지만 제법 많은이들이 이런 개념을 가지고있지요)라고 생각할테니까 기승전퇴진의 흐름을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짧은 구호에 '박통이 내려와야만하는 이유'까지 담기진 않으니까요.
그런데 어제도 결국 락카로 쓴 문구는 부모님들의 바람인 '온전한 인양. 시행령 폐기'는 한두 개고(뭐.. 많이 있었어도 꼬리잡히기에 좋았겠지만요) 퇴진요구가 가득하더라고요.
16일의 두터운 차벽과, 약 2일간 유족들 고립시킨것. 그리고 18일의 유가족 연행등으로 격앙되어 있던 사람이 워낙 많았고, 그중에도 강경파의 피는 더 끓었으리라 봅니다.
그들의 차벽허물기 요령 등 집회경험으로 쌓인 강한 행동들이, 부당한 차벽과 물대포에 대해서 분노했던 농성자들의 단결력을 더 끌어왔을겁니다.
하지만 혹자들에겐 앞뒤 다자르고 또다시.
시위라는것이, 특히 세월호 유족들의 시위가 더이상 순수하지 않다고 느낄수있게 만드는, 유족분들이 약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만드는 자극적 빌미가 될수있다는 점이 걱정이긴합니다.
결국 미담과 용기의 순간이 지나고 오늘아침 헤드라인엔 '폭력' '버스' '태극기'등이 남아있더군요. 티비조선에서 버스들먹이며 국세타령이나 안했음좋겠습니다.
사소한 생활도 정치와 밀접한 연관이 되기에 저는 편견가득한 '정치적'이라는 표현을 혐오합니다.
그럼에도 집회때는 키워드 선정에 신중하길 바라는쪽입니다. 어차피 모든 집회는 정치와 연관됐으니 무엇을 외쳐도 괜찮아!가 아니라요
정치과정.정치적결단.여론형성에 의해 좌우될수있는 유족들의 바람이 외침의 주된 키워드가 되길 바랍니다.
정치인 누군가의 이름이나 단체의 이름, 장소의 이름(박그ㄴ,청ㅇ대 등등)을 외치는순간 볼드모트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무관심하던 사람들 눈엔 빨간색 선글라스가 씌워지겠지요.
선진국 코스프레를 하는 나라에선 좀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7. 민주주의의 딜레마, 그럼에도 민주주의
간혹 어떤분들은 말합니다.
민영화반대.ㅇㅇ파업.ㅇㅇ연대.ㅇㅇ당 이런거 적힌 깃발을 들거나 조끼를 입은 사람이 왜 세월호 집회에 껴있냐. 진짜 순수하다면 그런거 다 벗고. 내려놓고 일반시민의 모습으로 참여해라. 자기 소속광고하냐 등등
그 덕에 진정성이 훼손된다며 비판하십니다.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나 유족들께서도 진정성에 의심받으면 힘들어하시고 쁘락치라면 이를 갑니다.
안먹어도 될 욕을 듣게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쁘락치로 의심된다해서 열외시키고. 깃발을 지참하지말라고 명령할순없습니다. 그들의 자유로운 권리니까요.
유족측에서 소속 드러내달라고 한건 아니지요. 그러나 많은이와 연대가 필요한건 분명합니다. 더많은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한겁니다. 많은 간판이 필요한게 아니고요.
그럼에도 간판을 내려달라 강요할수 없는것이 민주주의이지요. 부탁하고 이유를 설명한후 그들의 선택에 맡길순있겠죠. 그걸로 내려놔라 마라 하는순간 소모적인 갈등에 휩싸일건 뻔하니까 길게 붙들문제도 아니고요.
제 지인과 그런 농을 한적이 있습니다.
-야 세상을 바꾸려면 친일..아 요샌 민족반역자라고 하라더라. ㅇㅇ 민족반역자들을 다 색출해서 그런놈들의 3대를 멸하고말이야. 그런놈들의 도움으로 큰 기업들도 뿌리를 뽑아버려야될듯
-ㄷㄷㄷ 근데 뭔말인진알겠다. 결국 그렇게 욕하던 쿠데타를 직접?;;
-윽 그렇게 되네.. 근데 만약 쓸어버렸다 치자. 그럼 정말 다 해결될까?
-아니지. 남은 사람사이에 또 이해관계로 얽히고 분열될걸
-... 그럼 서로 또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을 숙청하겠네?
-어. 지구는 망하지
-아니지. 인간만 망하겠네
-오 그렇군. 역시... 제길.. 쿠데타가 왜 해결책이 아닌지 새삼 느껴버렸다
-ㅇㅇ
뭐 이런 미친 무알콜 무맥락 무정신 대화였죠.
결국 흔들림없고 완전무결한 사회가 영원토록 지속될수없겠죠. 아니 탄생을 못하겠죠.
우린 결점이 참 많은 '인간'이니까요.
분탕세력을 즉각 힘으로 밀거나 뿌리뽑는건 우리가 꿈꾸는 민주주의에서 늘 딜레마로 남는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이 많은 삐그덕거림을 매번 반성하고 고뇌하고 개선해나가며 사방에 흩뿌려진 민주주의의 조각을 맞춰나갈수 있는것 또한 우리가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기 때문이겠죠.
시행착오. 그리고 언론카르텔. 견고하게 쌓여버린 지역감정. 넷전쟁 등 장벽이 많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귀를 조금만 열어주면 서로의 이유를 들어주고 오해도 풀고 이해도 하게되리라 믿고싶습니다.
미국에서 신혼여행중인 친구가 어제 광화문 소식듣고 오늘 제게 사진을 보냈더군요.
백악관 근처에서 세월호 추모행진을 하는 일행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악관 근처를 거닐수있었고 방해받지않았지요. 그게 많이 부럽더군요.
그저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호소하며. 목적지까지 걷고 돌아오는게 집회 초반부터 지금까지의 주목표였는데
그걸 힘으로 막고 자극하고, 사람들에게 폭도라며 손가락질받게 만드는 우리나라 현실이 서글프더라고요.
매번 걷고 피켓을 들고 구호만 외쳤으면, 유족갑질? 전문시위꾼?(누구덕분에 날로날로 프로페셔널해지긴하겠네요.)폭도? 이런말을 들을 일이 있었을까요?
광주 경찰분들처럼 집회인원을 보호해주고 서로 고마워하고 위로하며 매번 집회를 마쳤다면 사람들이 집회를 색안경끼고 봤을까요?
미국..참 감추는것 많은 나라 지만, 그런 문화는 선진국스럽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도 그럴날.. 오겠죠.
8. 어느 멋진 날
아직도 제 마음의 성악설은 지워지지않았고, 많은 지지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오해도 받아버린 집회였지만.
저는 광화도에서의 4월 18일은, 그럼에도 멋진날이었다고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날 다치신분들. 머리에 피가 흐르던 분. 갈비뼈를 다치셔서 숨이 잘안쉬어지시던 분. 손가락 뼈가 눈에띄게 꺾여있었는데 막차시간이라 그냥 귀가하신 분. 심지어 진압하다 다친 경찰조차도 잘 치료받았음 좋겠습니다.
고사리손으로 낑낑거리고 팔을 주무르며 커다란 생수 6병을 들고와준 두 초등학생.
그리고 위에 언급한,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자발적 도움'을 실천해준 많은 시민분들
비오는 오늘도 계속 국화한송이 직접 희생자앞에 놓아주겠노라 와주신 추모객여러분.
어제의 짧은시간 정모에서 만나뵌, 오징어코스프레 쩌는 훈내 오유유저분들.
이 모두가 맛없는 결혼식 뷔페에서 밥먹고 그냥저냥 귀가하고 탱자탱자 쉬었을 저의 토요일을 멋진하루로 만들어주신분들이십니다.
이 긴글을 읽어준 여러분 역시 그렇고요.
고맙습니다.
강한쪽에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모든 문제들은 장기전이 되어버리죠. 이 또한 긴 싸움이 될테고 그때마다 또 언론에 의해 많은 이들이 일희일비할테지만
부디 작은 힘을 모아주세요.
이 일에 뜨거운 가슴으로 대해준 여러분에게도 힘든순간 같은마음으로 많은이들이 힘을 보태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오유에서 와주셨던분들께 제 마음이 전달되길 바라봅니다. 문득 이글 한번 보시게 되기를.
이제 그날이후 친목은 할수없겠지만 눈으로 봐주기만이라도 하심 반갑고 좋을것같아요.
안녕히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