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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철학(?)
게시물ID : sisa_434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막
추천 : 19/2
조회수 : 52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8/02/19 01:43:49
방금 KBS 시사투나잇인지를 보다 보니 소위 '노무현 막말'과 언론개혁 시도 관련으로 여러 인터뷰가 나오던 중 조선일보 기자라는 작자가 나와서 이런 소리를 한다.
있었던 사실의 분량이 100이라고 하면 그 중에 20을 전달할 건지 30을 전달할 건지 하는 것은 미디어의 자유 선택권이다.
그래, 그런 취지로 그간 짜깁기와 거두절미로 왜곡을 일삼아 오고 있었구나. 말은 참 그럴싸하게 한다. 그런 취지로 조선일보를 보니 마침 류근일 칼럼이 눈에 뜨인다.(2007년12월24일자)
일부 ‘먹물’들은 지난 10년이 민주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치러야 했던 일종의 ‘역사적 홍역’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크메르의 학살자 폴 포트의 ‘킬링 필드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혁명도 민주화, 선진화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필연’이었다고 이야기해야 할 것인가? 키우 삼판(폴 포트의 2인자)에 대한 최근 크메르 당국의 검거(檢擧)와 제소(提訴), 그리고 마오쩌둥을 비판한 덩샤오핑(鄧小平)의 중국은 그것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지난 10년을 민주화·선진화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필연’이었다고 주장한다면, ‘박정희의 유신 8년도 산업화를 이룩하기까지의 ‘역사적 필연’이었다고 설정하겠다는 뜻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권위주의 30년 만에 찾아온 민주화는 물론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타당한 사태였다. 그러나 그 민주화 물살에 편승해 그것을 극좌 민중혁명으로 애써 견인하려 했던 지난 세월의 ‘음험한 한 가닥’만은 결코 보편타당성을 인정해줄 수 없는, ‘미친 부류’들의 ‘굿거리’였다. 김근태의 말을 역(逆)으로 써먹는다면, 그것은 홍위병 ‘치매인’들의 ‘아류(亞流) 문화혁명’이었을 뿐, 반드시 거쳐야 했던 ‘역사의 필연’이 아니었다.
자, 나는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조선일보의 방식을 따라가 보자.
조선일보 류근일, "민주화는 치매들의 아류 문화혁명" 12월 24일자 조선일보는 "민주화는 치매들의 아류 문화혁명"이라는 류근일의 주장을 여과없이 지면에 실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칼럼에서 류근일은 민주화에 대해 "먹물"이라는 비아냥을 사용해 가며 박정희의 유신 8년을 칭찬했는데, 특히 크메르의 킬링필드 학살와 모택동의 문화혁명을 역사적 필연이었다고 강조한 부분이 이채롭다. 아울러 지난 권위주의 30년의 세월이 보편타당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도 곁들였다.
대충 20%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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