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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고3 전과생의 3월 모의고사 참회록, (feat. 최인훈-광장)
게시물ID : humorstory_4339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공중그ㄴㅔ
추천 : 13
조회수 : 1171회
댓글수 : 69개
등록시간 : 2015/03/13 22: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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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앉으시오.”

전과생은 움직이지 않았다.

“학생은 어느 쪽으로 가겠소?”

“이과.”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학년주임(52, 한국사)이, 윗몸을 서서 쓰는 책상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학생, 이미 2학년의 절반이 지났소. 벡터와 공간도형이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학생의 입체도형공부는 초등학교 4학년 정다면체에서 이미 끝났지 않았소?"

"이과."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영예로운 문과학도의 자리를 도대체 왜 포기하려는 것이오?"

"이과."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진로상담부장(철학교양, 48)이 나앉는다.

"학생, 지금 학생이 다니고 있는 학교는, 응, 당연케도 문과가 10반 이과 2반이오. 겨우 70명 되는 이과, 그래, 1등급이 3명 남짓인 그곳에 가서 어떤 수로 내신을 따겠다는 말이오?"

그는 전과생의 성적표를 한동안 쳐다보더니, 착잡한 표정으로

“그래, 내신은 어처피 버렸구만. 그래도, 수능에서, 그 수능에서 날아다니는 과고생! 그리고, 천부적으로 수학에 특출난 남학생! 그들을 이길 수 없단말이오. 수학B 1등급의 9할은 남학생이란 말이오. 그렇다손 쳐도, 과학은 어쩔 것이오? 그대가 내신에서 보던 교양과학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오. 정단층은 장력! 이런 시시껄렁한 내신 암기형 문제나 푸는 족속들이 아니란 말이오. 게다가 학생의 물리지식은 1/2mv제곱에서, 생물은 종속과문강문계에서 멈추었소.”

"이과."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학년주임이, 다시 입을 연다.

"학생의 심정도 잘 알겠소. 오랜 문과 생활에서, 이과생들의 간사한 꼬임수 -문과생들은 2점마다 대학이 하나씩 떨어진다거나, 그렇게 대학 가도 허울 좋은 백수 대학원생이 된다거나, 하지만 우리는 과로사하더라도 일단 취업은 된다. 라는- 에 유혹을 받았던 것도 용서할 수 있소. 하지만, 우리는 그대, 문과 학생의 한때의 선동당함을 탓하기보다도, 학생이 사회문화와 화법과 작문II에 바쳤던 피땀 어린 노력을 더 높이 평가하오. 일체의 보복 행위는 없을 것을 약속하오……"

"이과."

“학생, 당신이 무언가 착각하고 있나본데, 이과나부랭이라고 마냥 대학을 쉽게 가는 줄 아는 것이오? 그곳은, 그래 그곳은, 여태껏 학생이 알던 수학을 배우는 곳이 아니오. 기껏 다항식의 미적분도, 눈물 흘리며 깨우쳤던 학생이 지수로그삼각함수분수 미적분을 어떤 수로, 응? 지금 어떤 수로 하겠다는 것이야!”

세계지리가,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설득하던 학년주임은, 증오에 찬 눈초리로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눈길을, 방금 도어를 열고 들어서는 다음 전과생에게 옮겨 버렸다.

아까부터 전과생은 계열변경 담당 선생들에게 간단한 -‘이과’- 한마디만을 되풀이 대꾸하면서, 지금 다른 교무실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광경을 그려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도 자기를 세워 보고 있었다.

"자넨 어디 출신인가?"

"……"

"음, 화생지 선택 2계열이군."

교무부장(50, 기하와벡터)은, 앞에 놓인 전과생의 1,2 학년 모의고사 성적표를 뒤적이면서,

한숨을 내쉰다. 그러고는, 13122 라는 6개의 성적표에, 저도 모르게 침을 쿡 삼킨다.

수학이 한번만이라도 1등급이 나왔었더라면, 이 아이는 지금 여기에 있지 않겠지. 여고에 특히 많은 수학이 붕 뜨는, 전형적인 문과생의 탈을 쓴 이과생이다. 경험 상 어려운 케이스임을 직감한다.

"문과라지만 막연한 얘기요. 원래 제 자리보다 나은 데가 어디 있겠어요. 현역 시절 전과했다가 다시 원래 계열로 재수하는 재수생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지만, 전과 해봐야, 그제서야 원래 하던 공부가 쉬웠구나, 하고 깨닫는다 하잖아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불안은 나도 압니다. 친구들은 고 1때 적분과통계까지 다아 나갔다는데, 혼자 수II 미적미적 하고 있는 나를 보면 얼마나 불안할까요? 이과가 살인적인 공부량 가지고 있는 것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이과에는 있습니다. 넓은 대학문, 취업문이. 그으래, 얼마 전 신문 보았지요? 상위 10개 대기업, 문과 출신 3할도 채 안 뽑는다 해요. 인간은 무엇보다도 밥벌어먹고 사는 것이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전문직! 전문직이 있어요. 인간은……"

"문과."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담당 이과의 한사람이, 타향 만리 사회문화국에 가겠다고 나서서, 동족으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길 안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이과생 68만 동포의 부탁을 받고 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수학B형 품으로 데려오라는……"

"문과."

"당신이 지금 떠난다면 그간 당신이 공부했던 책들, 프리패스로 끊어둔 이과생 전용 인강들은 모두 무엇이 되는 것입니까? 우리는 지금 당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위기에 처한 자연계를 버리고 떠나 버리렵니까?"

"문과."

"지식인일수록 불만이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리 쉽게 전과해버리겠습니까? 그 순간 불안하다고 말이지요.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우리 과학계에는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나이를 더 먹었다는 의미에서, 충고하고 싶습니다. 자연계의 품으로 돌아와서, 우리나라를 위해 개처럼, 소처럼 일하는 공학도가 돼주십시오. 낯선 땅에 가서 고생하느니, 미래에는, 그쪽이 당신 개인으로서도 행복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만일 이과에 잔류하는 경우에는, 원피스 빵 2개를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전과생은 고개를 쳐들고, 이미 꽤 많은 양의 석면이 떨어진 것 같은 천장을 올려다본다. 한층 가락을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 외듯 나직이 말할 것이다.

"문과."

교무부장은, 손에 들었던 볼펜으로, 책상을 툭 치면서, 곁에 앉은 학생부장(57, 지구과학II)을 돌아볼 것이다. 학생부장은, 어깨를 추스르며, 눈을 찡긋 하고 웃겠지.

나오는 문 앞에서, 전교회장의 책상 위에 놓인 상담명부에 이름을 적고 교무실을 나서자, 전과생은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눈물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눈물은 멎지 않았다.

“그래! 내가 있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꿈 없는 내가 바로 죄인인 것을!”

轉科생이 아닌 前科생이 된 소녀는, 지금, 부채의 사북자리에 서 있다. 삶의 광장이 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녀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로 줄어버렸다. 


ㅋㅋㅋ 다 읽어주신 분 있으실까 모르겠지만 감사드립니다.

최인훈 님의 '광장' 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 전쟁포로 회유부분을  한 번 바꾸어 써봤습니다.

컴퓨터에만 저장해두면 언젠가는 날라갈 것 같아 오유에 올려봅니다.

저는 고2 중반, 문과에서 이과로 전향한 학생입니다...

어느덧 전과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이번 3평도 131...

너무 불안하지만 오늘도 외쳐보며 자기위로 해봅니다

수능 미만잡!! 화이팅!! 오유 고3러분들 문과이과 막론하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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