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은 여성의 몸에서 탄생한다는 것이고 뱃속에서도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죠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자극의 수용과 그에 따른 반응이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정해진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모두 같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죠 크게 보면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 성질을 띠지만 유전적 형질이 다르죠 이건 뱃속에서 들어오는 영양성분, 자극과는 별개입니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정해진 것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사람마다 그 정해진 것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근데 이렇게 임신이 되면 모두 자궁 속에서 자라나지만 그 환경이 다릅니다. 들어오는 영양의 성분과 양이 다르고 어머니로 부터 전달되는 자극도 같지 않죠
그렇기에 우리는 출산 이전에 [일률성]과 [개별성]을 가집니다. 똑같이 유전적으로 어떠한 것들을 가지고 태어나지만(일률성) 그 유전적인 것이 다르게 부여되고, 유전적인 것들이 발현되어갈 때 노출되는 동일하지 않은 환경에 의해(개별성) 비슷하지만 모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탄생 - 자아형성 - 사회성과 비사회성간의 갈등 로 설명했던 것을
유전형질 - 유전형질이 발현되는 환경의 차이 - 출산 - 자아형성 - 사회성과 특이성 사이의 갈등 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이제 아기가 뱃속에서 자라면 나와야합니다. 출산을 겪죠 이때 나는 '나'와 '내가 아닌 것' 의 구분이 없습니다 이건 제 얘기가 아니라 심리학(정신분석학) 얘기입니다
중요한 게 어머니 - 나 의 관계인데 나는 태어나기 전까지는 공간적으로도 어머니의 안에 있었고 생각과 감정 또한 공유하기에(그래서 태교가 중요하죠)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야 라고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거죠 아기한테는 내가 세상의 전체이고, 세상의 모든 것이 나입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아기는 옆에 사람이 울면 따라 울죠)
이제 자아 형성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이게 복잡한데 가능한 간단하게만 이야기 해보죠 이게 언어와 관련이 된 건데
어린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표현합니다. 근데 그게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녜요 밥을 먹고 싶다고 밥과 관련되게 표현하는 게 아니고, 자고 싶다고 수면과 관련되게 표현하는 게 아니죠 왜? [자기/자기가 아닌 것]의 개념이 없다는 것은 ‘밥’이나 ‘수면’ 조차도 개념화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기가 아무리 뭔가를 요구해봤자 그것이 완전히 충족될 수 없어요 뱃속과는 다른 거죠. 그때는 항상 욕구가 충족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자신이 어머니의 관심 대상이 되려고 합니다. 어머니는 밥을 주고 재워주고 모든 것을 제공해주는 것 같으니까요. 근데 가능한 게 아니죠. 어머니는 아이의 요구를 확실히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24시간 붙어서 무언가를 해준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이후 내가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존재(아버지)의 금지를 받아들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결핍이 일어나죠 이걸 채우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얻게 되어도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갈 수밖에 없죠. 그것이 내가 자아형성과정에서 겪은 결핍을 채울 수 없으니까요 (이걸 채운다는 것은 모든 것이 충족되는 상태인데 불가능하죠. 그래서 프로이트는 이걸 죽음충동으로 설명하고 라깡은 주이상스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늘어지는 것 같은데 이 얘기를 하는 건 자아가 형성되기 이전에 가지고 있던 '나' 라는게 있고 자아가 형성되면서 만들어지는 또 다른 '나' 라는게 있다는 거죠 억압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요구해야 할 것인가 라는 것과 내가 추구하는 대상(어머니)와 나를 동일시하려고 하기 때문에 습관이나 생활을 따라간다 라고 생각하시면 쉬우실 것 같습니다. 사회화 되어가는거죠 (나라는게 꼭 두 가지로 구분된다 라는 생각은 아니지만 그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넘어가겠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원래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나(억압된 나) / 자아가 형성되면서 만들어지는 나(사회의 나) 를 구분하자는 거죠
다시 주제로 돌아가자면 우리가 태어날 때 규정될 수 있는 '나'는 억압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사회의 나' 라는건 항상 '억압된 나'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죠 왜냐하면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항상 무언가를 욕망하기 때문이죠 표현하자면 억압된 나의 흐름 위에 사회의 나라는 것이 뒤덮고 있는데 항상 억압된 나에게서 무엇인가 튀어 올라온다 랄까요 ('억압된 나' 가 '사회의 나'에 항상 영향을 끼친다는 말입니다)
보통 우리가 인식하는 나는 '사회의 나' 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 행동, 선악 등은 항상 우리의 사회의 관념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사회에서 왜 여러 가지 갈등을 가질 수밖에 없냐 하면 '사회의 나' 는 나의 특이성을 억압하고 내가 의식 아래에서 나에게 주는 충동을 막는 역할을 하는 거죠 '억압된 나'는 억압을 받아들이면서도 항상 자신의 충동을 표출하려고 하죠. 그게 보통 ‘진짜 내가 원하는 것’ 이라고 생각 되는 것들이겠죠 그래서 나는 항상 갈등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거예요
뜬구름 잡는 얘기인 것 같으니 예를 들자면 우리는 사회의 도덕을 받아들이고 선악을 개념화 하죠 근데 그 선악의 논쟁이 끊일 수 없는 것은 도덕은 '사회의 나'가 추구하는 방향인데 '억압된 나'에게는 그 도덕이 자신의 충동을 업악하는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억압된 나'가 추구하는 것은 뭐라고 해야 하느냐 하면 그것이 윤리예요. 도덕이 '억압된 나'의 경향성과 다른 쪽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저 도덕은 틀렸다. 이것이 아니라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되는 거죠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절대적인 도덕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내 본성에 맞는 도덕으로 바꾸려고 하는 거죠. 근데 앞에서도 말했듯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특이성을 가지고 있어요 아무리 논의하고 논의해도 모두가 만족하는 도덕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얘기예요
이걸 좀 더 보편적 차원으로 넘어가면 개인 - 개인 - 개인 - 개인 - ..... - 개인 의 무수한 관계(우리가 사회라고 인식하는 틀)로 끌고 들어가면 우리가 보편적인 행복을 추구하면서 개인의 특이성을 추구한다는 게 서로 모순되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행복 추구를 할 때 사회의 총체성에 맞추면 전체적으로 당장 갈등은 해결될 수 있겠지만 개인의 특이성은 억압될 수밖에 없죠 근데 개인의 특이성이 억압된다는 게 또 행복하지 않다. 라고 느껴지는 게 문제예요
반대로 개인의 특이성을 추구하고 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해간다면 사회가 위협받게 되죠 억압을 없애고 개인이 진짜 원하는 방향으로 추구해나간다는게 사회 구조의 해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봐요
달리 말하면 우리는 우리의 갈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갈등을 해소해 나간다는 게 어떻게 하면 개개인이 가진 특이성을 잘 억압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되고 그 갈등을 억압하는 게 개인에게는 나를 상실해 나간다고 느껴지고 이게 또 하나의 갈등이거든요
그러면 우리는 어떤걸 추구해 나가야 하나? 답은 없죠.
사회 안에서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자. 라는게 사실은 사회의 안정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를 해체해나가자. 라는 말과 같지는 않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의 사회를 해체해나가자 라는 것도 웃긴 게 내안의 나를 찾아간다는 게 모두 다른 나를 가지고 있기에 더 많은 갈등의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고 더 나아가 내가 알고 있던 나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게 또 하나의 나를 부정하는 것 밖에 안 되는 거예요
만약 우리 모두가 사회의 나를 부정하고 억압된 나를 깨운다고 가정하더라도 사람이라는 게 결국 또 사회성을 추구해나갈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태어나지 전에 부여된 일률성이니까요
사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게 한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잖아요 우리는 진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선, 미를 추구하는데 사실 진리적인 것이라는 게 추악할 수도 있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그런 방향일 수도 있는 거죠 근데 내가 찾고 있는 것이 추악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참 힘들긴 해요
이 얘길 왜 꺼냈냐면 위에서 말했던 갈등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러한 갈등이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갈등 속에서 다양화되고 변해가는거죠 크게 보면 이 갈등을 통해서 우리는 사회를 재구성해나가는거죠 이 갈등이 없다면 우리는 정체되고 고착화될 뿐이지 않을까요?
그럼 저것을 그냥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러한 개개인의 합을 통해서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해요 갈등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갈등을 통해서 보편적 가치가 개인의 가치에 맞게 변화되어가고 미시적으로 보면 개인의 가치가 억압되더라도 개개인의 합으로 보면 개인의 가치가 존중되는 재구성 또는 순환 구조를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에너지로 비유하자면 높은 에너지가 낮은 에너지로 흐르는 과정에서 불균일성과 규칙성이 있고 그 흐름의 과정에서 하나의 형태를 가지게 되는데 사회를 그것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무작정 자신의 가치만 추구해 나가더라도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다른 사람의 가치 추구를 위협해 나가는 것에는 긍정적이라기 보다는 약간은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네요
누군가의 의견을 듣고 이야기하는 방향 쪽으로 논의를 하다 보니 무조건적인 비판으로 보시나 싶어서 제 생각을 이야기해보는 것도 하나의 대화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올립니다. 빨리 나가봐야 해서 다듬지 못하고 올리는 점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