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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란 건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게시물ID : gomin_5236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게그렇다
추천 : 11
조회수 : 16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12/31 04:09:07
 중학교 이학년 때였다. 조회시간이었나, 그랬다.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는데 친한 친구가 투덜거렸다. 야, 내 다리 알 배긴 것 좀 봐. 내가 이게 평생 콤플렉스야. 진짜 심하지? 그 애는 제 종아리를 꾹꾹누르며 내 동의를 구했다. 그때 내 눈은 다른 걸 보고 있었다.
 
 너 발목 정말 예쁘다. 다리에서 발로 이어지는 중간이 두툼한 나에 비해 그 애의 발목은 복사뼈 뒷쪽이 옴폭 들어가 잘록했다. 어, 그래? 그런가? 거울보다 정직한 그 애의 볼이 교복 치마처럼 붉었다. 나는 곧 이 일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해 가을 수학여행에 그 친구는 9부 바지를 입고 왔다. 네가 내 발목 예쁘다고 했잖아. 우리 엄마도 내가 장딴지는 굵어도 발목은 잘 빠졌대. 달랑거리는 바지 밑단, 오목해서 힘줄이 도드라진 발목이 동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만큼 선명한 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내가 말의 힘을 최초로 깨달은 때였다.

 시간이 좀 지나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에게 내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안다. 넌 절대 그림으론 성공 못한다.
 
 지금 생각해도 눈꺼풀이 떨릴 만큼 고통스런 말씀이었다. 교복 마이를 채 벗기도 전에 눈물이 떨어졌다. 점점이 방바닥에 동그란 물방울로 퍼지는 그 짠물을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있었다.

 언어에 형체가 없다는 말에 회의를 느꼈다. 사실 말에는 모양도 색깔도 향기도 있지만 오직 내어뱉은 사람에게만 보이지도 맡아지지도 않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몇 마디에 나는 참 많이 흔들렸다. 아버지는 평생을 나를 지켜보신 분이고, 절대 허튼 소리는 안 하실 분이다. 거기다 평소에 내가 그의 안목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나. 아니다. 아버지라고 항상 옳을 수는 없다. 화가를 그림쟁이라고 부르는 분이시다. 너무 늙으셨다. 나는 할 수 있어.
 
 다잡으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 작은 말이 점점 커져서 내 속을 끊임없이 헤집고 부수고 다녔다. 너무나 뻔한 얘기지만, 때로 세상을 조각내는 데에는 생각만큼 큰 힘이 필요하지 않다. 짧은 이야기와 조그만 손짓으로도 어떤 세계는 충분히 바스라진다.

 나는 내가 갈대 같았으면 했다. 비바람이 지나가고나면 보란듯이 하얀 솜털을 치켜들고 서있는 의연함이 갖고 싶었다. 불행히도 현실의 나는 수양버들이라 고개를 푹 숙이고서 파릇한 이파리만 자꾸 떨구어내렸다.
 
 사실 우리 집에서 그림을 포기한 건 나만이 아니다. 내 사촌 오빠도 집안 사정으로 붓을 꺾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잃은 건 그림만이 아니다. 손 내밀면 누군가 붙잡아 줄 사람이 있을 거야, 하는 어린애다운 발상. 세상에 대한 근거 없는 신뢰. 그게 쪼그라들어 없어졌다. 쪼글쪼글 늙고 나이들어 말쑥한 성인이 되어버렸다.
 
 진짜 산타를 믿는 애들은 믿는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냥 산타는 '있다'고만 한다. 그것처럼 나는 내 미래는 당연히 화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열 여섯의 나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그림이 날 배신할 리 없다고 생각했고 이토록 열렬히 간구하는 대상이 내게서 고개를 돌릴 리가 없다고 여겼다. 한 번 결심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던 나였다. 굵은 발목으로 잘도 내달리던 어린애. 내 아버지의 나직한 음성이 박살낸 건 그런 것들이었다. 내가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순간 바로 그 때에.
 
 시인 류시화는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내게도 눈이 하나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한 점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그렇게 한 눈으로만. 아니 귀가 없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다른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도록. 내 아버지의 무심한 목소리가 내 안을 갈갈이 찢어놓지 못하도록.
 
 지금도 그 애가 9부바지를 입고 다니는 지는 모른다. 졸업 후 얼마간 연락하다 곧 소식이 끊겼다. 나와 아버지는 몇 년이 흐른 후에야 간신히 몇 마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너 그림 안 시킨 거, 그거 아빠는 죽도록 후회한다. 어느 날 밤에 아버지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끝내 당신이 하신 그 말씀, 딸의 가슴을 난도질한 무딘 칼은 기억해내지 못하셨다. 그리고 나는 조금쯤 의기소침한 어른으로 자라나 경영학과를 다니고 있다.
 
 
 
 안녕하세요. 또 기어왔습니다.
 비회원 로그인이 되지 않아 결국 아이디를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검색하면 나오는 두 글 다 제가 쓴 것이 맞습니다..
 괴로운 밤 이렇게 토해내고 또 자러 갑니다.
 세상에 저와 비슷한 슬픔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또 별처럼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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