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의 중형 세단 말리부가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2.0ℓ 디젤 엔진을 얹은 것. 국내에서는 현존 유일 2.0ℓ 디젤 중형 세단이다. 엔진은 기존 한국지엠이 생산해 크루즈나 캡티바 등에 장착됐던 것이 아닌 오펠이 만드는 유럽형이다. 워즈오토 선정 세계 10대 엔진에 포함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여기에 일본 아이신이 제작한 6단 자동 변속기를 조합했다. 이를 통해 가솔린 세단 수준의 정숙성을 확보하고, 높은 성능, 뛰어난 효율을 확보했다. 최근 국내 디젤 바람을 감안한다면 소비자가 만족할만한 상품성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말리부 디젤 출시를 기념해 쉐보레는 언론 시승회를 준비했다. 강원도 홍천에서 경포대를 잇는 약 150㎞ 길이의 구간이다. 해당 구간은 국도와 고속도로, 한계령을 넘는 극한의 곡선 주로까지 다양한 형태의 코스가 마련됐다.
▲스타일
말리부는 쉐보레의 글로벌 스탠더드 중형 세단으로 외관에는 쉐보레가 추구하는 디자인 기조가 모두 담겼다. 기본적으로 가솔린 제품과의 큰 차이가 없다. 이번 디젤 엔진 장착은 외관의 변화보다는 동력계 선택의 폭이 넓어진 점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쉐보레는 말리부 전체 볼륨 확장에 주력한다는 계산이다.
쉐보레 로고가 선명한 2단 라디에이터 그릴은 강인한 말리부의 성격이 담겨있다. 3년전 말리부의 첫 출시 때는 약간 부담스럽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현재에는 오히려 브랜드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듯하다. 경쟁 차종과의 차별성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역동적인 헤드램프 또한 전체 분위기와 어울린다.
측면에서는 역동이 더욱 도드라진다. 돌출 범퍼가 억제된 덕분에 오버행이 짧아져 다부져 보이는 것. 독일 프리미엄 세단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후면은 쉐보레 스포츠카 카마로와 디자인 맥을 같이 한다. 리어램프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 공격적이다. 스포일러 역할은 하는 트렁크 리드 역시 개성이 넘친다.
실내 역시 바뀐 것은 없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강하게 휘어잡는 캡어라운드 스타일이다. 일각에서는 말리부 실내의 소재나 디자인에 대해 '저렴하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말리부는 대중 중형차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상품성과 원가 절감 사이의 줄타기를 해야한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로는 디자인 등에 큰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 복합한 경쟁차의 실내보다는 차분하게 다듬어져 있다.
▲성능
쉐보레에 따르면 말리부 디젤 엔진은 GM 유럽 파워트레인이 개발하고, 독일 오펠(Opel)이 생산하는 4기통 2.0ℓ 직분사 터보다. 여기에 정숙성과 동력전달 효율이 뛰어난 아이신(AISIN) 2세대 6단 자동변속기가 조합됐다. 최고 156마력, 최대 35.8㎏∙m을 낸다. 엔진 회전수 1,750rpm부터 2,500rpm 사이의 실용 주행구간에서 최대토크를 발휘하기 때문에 저속에서의 가속이 경쾌하다. 다중 연료분사 시스템과 최적화 된 분사제어는 디젤의 단점인 연소 소음을 잡았다. 전자제어 방식 가변형 오일 펌프는 고부하가 걸리는 실주행 구간에 효율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시승은 150㎞ 구간에서 두 명이 번갈아 시행했다. 한계령 정상에서 경포대로 향하는 약 75㎞ 구간에서 주행감각과 실효율 등을 체험했다.
굴곡진 도로가 많은 한계령 도로의 특성상 핸들링 감각과 하체 강성 등을 살폈다. 결론적으로는 곡선 주로를 잘 타고 넘는다는 느낌이다. 특히 헤어핀 구간에서 차가 바깥으로 쏠리지 않고, 버티며 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스티어링 감각도 재미있다. 운전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정확하게 움직인다. 스티어링에 따른 차체의 반응도 묘하게 역동적이다. 내리막길인 까닭에 가속 페달은 많이 밟지 않았다. 코너에 이르러 진입 속도를 줄이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제동력 또한 잘 가다듬었다고 할 수 있다.
순간적인 가속은 가솔린보다 날래다. 디젤 엔진 특유의 토크 성능 때문이다. 게다가 실영역대에서 최대토크가 발휘되도록 엔진 세팅이 이뤄져 차가 완전히 멈춰있는 상태에서도 급격히 속도가 오른다. 출력도 가솔린보다 10마력 정도 높기 때문에 속도를 유지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어서는 마음껏 속도를 내봤다. 금방 한계 속도에 이른다. 가솔린 제품이 갖고 있던 수치상의 단점을 잘 상쇄했다는 생각이다. 차가 전반적으로 쭉 뻗어나간다. 그러면서도 하체는 더욱 묵직해진다. 속도가 오를수록 중량이 아래로 집중돼, 낮게 깔린다는 인상인 것. 고속 주행 안정성 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다만 노면 소음이 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보강이 필요해 보인다. 패밀리 세단으로서는 약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풍절음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디젤 엔진의 진동, 소음 자체도 크지 않다. 시승차의 주행 거리가 짧아서 아직 진동, 소음이 커지지 않았을 여지는 분명하다.
주행을 모두 마치고 트립 컴퓨터에 표시된 평균 효율을 확인하니 ℓ당 18.7㎞를 주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히 경제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연비가 회사의 말대로 뛰어났다. '디젤=고효율'이라고 인식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기 때문에 높은 경쟁력이 아닐 수 없다. 수입 디젤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총평
말리부가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이다. 그동안 뛰어난 안전성은 호평을 받아왔지만 성능과 효율 면에서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번 디젤 엔진 장착으로 부족한 부분을 완벽히 메웠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추천이 아깝지 않은 제품이다.
하지만 회사 측면에서 말리부 디젤의 선전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동력계가 모두 수입 부품이기 때문에 제작 단가에 대한 부담이 있어서다. 실제로 재무 부문에서 현재 말리부의 판매 가격을 부담스러워 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쉐보레는 말리부 디젤의 가격을 합리적으로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출범 3년차를 맞은 쉐보레의 현재 가장 큰 문제점은 브랜드 인지도다. 아직 일반 소비자 중에서도 쉐보레를 확실하게 인식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대우차' 혹은 '지엠대우'가 강하게 남은 탓이다. 때문에 올해가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임원진 측으로부터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낮은 인지도를 타개하기 위한 세부 계획은 이미 세워져 있다. 말리부 디젤의 출시도 그 일환이다. 말리부 디젤이 제 역할을 잘 해내기를 기대한다.
강릉=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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