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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연하의 부인과 결혼한 이야기 _ 임신과 출산
게시물ID : humorstory_4288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53
조회수 : 5819회
댓글수 : 38개
등록시간 : 2014/12/02 19:31:22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28293  1편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28337  2편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28596  3편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28651  4편
 
http://todayhumor.com/?bestofbest_188068  김장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부부의 대화는 거의 글쓴거와 비슷합니다. 물론 어른들 앞에서는 듬직한
지아비의 말투와 조신한 아녀자의 말투로 서로 오가지만 집에서는 거의.... 하아.... 그럼
 
 
나와 부인은 결혼 후 2세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유에 있는 분들이 안생기듯 우리 부부에게는
노력 (여기서 말하는 노력은 상상하지 마세요.)은 했지만 결혼 3년째 2세는 우리 곁으로 오지 않았다. 부인과 양쪽 집안 모두 2세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나만이 가지고 있던 큰 오산이었다.
부인은 나 몰래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했었고, 양쪽 부모님들은 불심으로 대동단결 하여 부처님에게 손자를 보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었다고 한다. (부인은 산부인과 검사 결과 본인은 정상이라고 나오자 한동안 내가 심영과 동급이 아닌가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었다고 한다.)
사실 아이가 없어서 좋은 점도 많았다. 부인과 둘이 함께 영화도 보고 여행도 많이 다니는 등 서로 총각 처녀 시절처럼 자유로운 시간들을 많이
보냈으며, 격렬하게 콜로세움의 백인 검투사와 흑인 컴투사가 목숨을 걸고 싸우듯 부부싸움을 할 때도 누구 눈치를 보지 않고 격렬하게
싸웠다. 물론 항상 지고 나서 구석에 혼자 벽보고 있는 것은 항상 나였다. 지금도 싸우면 내가 진다. 도저히 말발로 그녀를 당할 재간이 없다.
심지어 이제 힘도 딸린다.
 
우리 부부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지인 분들과 함께 떠난 캠핑장에서 부인이 그 좋아하던 고기를 먹지 않고 계속 속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회다 싶어 고기를 마셨다. 참고로 우리 부부는 고기를 먹을 때 서로 말이 없다. 심지어 서로 한 점 더 집어 먹으려고 쌈도 안 싸먹는다.
난 고기 먹을 때 말 많은 인간들과 쌈 싸먹는 인간들이 제일 좋다. 
캠핑장에서 계속 좋지 않은 표정으로 있던 부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약국을 갔다 오더니 내게 막대기 하나를 내밀었다.
술에 취해서 나도 모르게 "도핑 테스트?" 이러면서 막대기를 입에 갖다 대려다가 부인에게 맞았다.
부인은 "자세히 좀 봐" 라며 화를 냈다. 두 줄이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임신이로구나.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임신 소식을 들은 남자들은 (부인이 곰솥에 국 끓여놓고 4박 5일로 해외여행간다고 할 때 처럼)기뻐 날뛰는데,
난 날뛰기보다 그냥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된다는 생각에 눈물이 먼저 났다. (훗날 나의 모습을 부인은 참 찌질해 보였다고 한다.)
 
바로 임신 소식을 양가에 알렸다. 먼저 장모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장모님은 내게 계속 "수고했다, 수고했다" 말씀하시면서 우셨다.
우리 어머니는 부인에게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우시면서 통화했다고 한다. 간만에 두 분에게 자식 노릇, 사위 노릇 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잠깐 우리는 감격의 시간을 보낸 뒤 부인은 내게 말했다. "오빠 고자 아니었구나. 한동안 나 정말 고민 많이 했어"
난 그날 내가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에 한 번 울었고, 고자가 아니었다는 생각에 두 번 울었다.
 
부인은 임신을 하면서 나의 모든 사생활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술자리는 주 1회, 집 반경 20km 내에서 흡연 금지, 그리고 게임 금지
(덕분에 아제로스 대륙을 호령하던 타우렌 검은 소는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부인은 "내 몸에 손대지말고, 얼굴 가까이
내밀지 마, 우리 아이는 이쁜 것만 봐야되." 결국 난 부인이 시킨대로 말을 잘 듣는 온순한 그리고 못생긴 예비 아버지가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부인의 몸에는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6개월전까지는 부인의 배가 임신했는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부인은 9개월까지 지속된 입덧과 다리에 붓기가 심해서 임신 기간 내내 고생했다. 내가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건
물을 떠다 주고, 밤에 다리 주물러주면서 걱정해주며 은은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태교통화를 읽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삼삼이(3월 3일이 출산 예정일이어서 삼삼이라고 태명을 지었습니다.)가 엄마 배를 찰 때도 병원에서 초음파 사진을 함께 보면서
우리는 이제 부모가 된다는 생각에 설레였으며, 엄마 뱃속에서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 삼삼이가 너무 기특했다.
부인은 삼삼이의 건강한 출산을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태교에 전념했다. 그 좋아하던 호러 영화과 랩 음악을 끊고
태교 동화를 읽었으며, 집에는 모짜르트와 슈베르트, 슈만 등의 음악이 울렸다.
특히 처녀 시절부터 가발 쓴 '빈 디젤'이었던 스피드 광 부인이 그 좋아하던 드라이브를 끊은 것이 가장 신기했다.
(하.. 사실 부인은 체격도 빈 디젤 같았고, 그에 비하면 나는 세렝게티 초원의 톰슨 가젤 같은 몸매였다.)
 
그렇게 10개월을 채우고 드디어 운명의 3월 3일이 다가왔다. 부인은 병원을 가기 전 감자탕이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 둘은 출산이라는 긴장의 순간을 앞두고 함께 감자탕을 먹었다. 오늘따라 감자탕이 맛있다며 숟가락질 하던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진통이 온 것이다. 나는 걱정되어 빨리 병원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부인은 인상을 쓰며 감자탕을 먹으며
말했다. "음식 남기면 벌 받어..." 결국 부인은 감자탕을 깨끗하게 비우고, 난 부랴 부랴 부인을 데리고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산부인과는 전쟁터 그 자체였다. 여기저기서 산모들의 고통 스러운 소리가 들리고, 밖에는 남편들이 가방 하나씩 들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둘째나 세째를 낳으러 온 산모와 남편들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선배 산모와 남편들의 모습은
마치 "나 화장실 잠깐 갔다 올께 가방 들고 기다려" 같은 백화점에서 자주 보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에 비해 나와 초보 아빠들은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기도 하고, 간호사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붙잡고 *** 산모 괜찮나요?
물어 보며 안절부절 못했다. 부인은 정확히 오전 8시 28분 대기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관장부터 출산을 준비하는 과정들을 진행했다. 
진통이 시작되고 부인도 다른 산모들처럼 고통에 소리쳤다. 내가 그런 부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손을 잡아주고 있는게 전부였다.
정확히 대기실에서 3시간 고생한 뒤 부인은 출산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부인의 모습은 처음 봤다.
항상 씩씩하고 늠름한 그녀였는데, 이렇게 힘 없이 힘들어 하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네.. 저 눈물 엄청 많습니다. 얼마 전 왔다 장보리
보면서도 맨날 울었습니다. 나쁜 년 이었지만, 연민정의 마지막 모습 보면서도 울었습니다.)
부인은 나 보고 계속 나가 있으라고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아빠를 처음봐야 되는 삼삼이가 오만잡상을 하고 울먹이는 내 모습을 처음으로
보는게 싫었다고 한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의 손을 잡고 "살려 주세요"를 외쳤다. 간호사 선생님은 괜찮다고 좀만 힘내라고 하시며
부인 옆에 있어줬다. 사실 나가고 싶었으나 우리 부인의 잡는 힘이 대단해서 연약해 보이는 간호사 선생님은 나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계속되는 고통의 시간을 보낸 뒤 오후 12시 23분 (거의 4시간 정도 산통을 했는데, 이건 아주 짧은 거라고들 한다.) 삼삼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처음 본 삼삼이는 나와 너무 똑같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삼삼이의 손과 발 그리고 귀를 확인해줬다. 작았지만 있을게 다 있었고,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울기만 하는 삼삼이가 너무 귀여웠다.
이런게 처음 2세를 만나는 아버지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인가 생각 들었다. 제일 먼저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하고
부인에게 고생했다면서 또 울먹이며 말했다. 부인은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나 둘째는 절대 안 낳을거야. 앞으로 내 몸에 손도 대지마"
 
잠시 출산장에서 휴식을 취한 뒤 일반 병실로 부인은 옮겨졌고, 난 집에 가서 부랴부랴 인터넷에 검색해서 미역국을 끓였다.
병실에는 장인 어른과 장모님이 오셨고, 난 부인에게 내가 끓여 온 미역국을 먹였다.
부인은 감동하며 말했다. "내가 끓인 거보다 맛있다. 짜증나" 장모님께서도 한 수저 맛 보시더니 "그러네.."라고 인정 하셨다.
신생아실에서 처음 삼삼이가 우리 병실로 왔을 때 이제 우리도 부모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14년 3월 3일은 내 평생, 아니 부인의 인생에서도 절대 잊지 못할 날이다.
 
마지막으로 정말 존경합니다. 어머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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